지역복음화(8) (2018. 02. 25)

악한 세대의 신앙

마태복음 12:38-45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 지역 복음화를 해 나갈 때 부딪히는 문제 중의 하나가 귀신의 문제예요. 우리의 삶을 불행과 고통과 파멸 가운데로 몰고 가는 귀신의 존재를 우리는 결코 부정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타락한 천사장이었던 사탄과 그를 따르는 귀신들의 무리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전전 주간에 있었던 플로리다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총기난사사건의 범인인 고등학생 니콜라스 크루즈도 악마의 소리를 듣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분명히 고백했잖아요? 오늘 본문에도 그러한 귀신들을 따르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의 신앙에 관한 말씀이 나와요. 오늘은 이 말세의 마지막 때의 귀신에 사로잡힌 신앙 가운데서 우리가 보통 신앙으로는 안되고요. 어떠한 신앙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복음에 사로잡혀 살아가야 함

먼저 3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악하고 음란한 세대는 표적을 구한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이 말씀의 배경은 구약성경에서 온 것인데 하나님과 부부 관계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 숭배를 하고 이방인들과 잡혼을 함으로써 영적 간음을 하게 된 거예요(73:27, 57:3, 62:5, 23:27, 4:4, 2:20). 그리하여 그들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것은 말세의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돈이나 명예나 자녀들이나 세상 향락 등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리의 우상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어려운 세대를 살아 온 연세 높으신 분들은 대부분 물질이 우상이 되어 있어요. 사실 물질은 선한 청지기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축복으로 주신 건데요. 대부분 자신의 욕망이나 자식들의 번영을 위해서 써버리고 말아요.

예화) 결혼기념일 선물로 비싼 이혼을 원한 아내

예화) 지하철에서 민망한 애정표현을 하고 있는 젊은 연인을 향한 연로하신 할아버지의 야단

 

그러나 이처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우리의 신앙은 복음의 본질을 벗어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일찍이 중국의 철학자인 장자는 이렇게 말했어요. “질그릇을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잘 쏠 수 있지만 은고리를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마음이 흔들리고 황금을 내기로 걸고 활을 쏘면 눈앞이 가물가물하게 된다. 활 쏘는 실력은 똑같은데 연연하는 것이 생기면 그것 때문에 마음이 좁아지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생기면 우리의 신앙은 흔들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러한 우상에 빠진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되어서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표적만을 구해요. 여기 나오는 표적이란 헬라어로 σημεον(세메이온)’이라고 해서요. 인간계에 나타나는 기적으로서요. 우리에게 영적인 상징을 담고 있는 교훈적인 기적을 말하는데요. 이러한 이적만을 구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볼 때는 그럴 듯한 아주 체험적인 신앙인 것 같지만요. 사실은 우리의 신앙의 근본은 그러한 표적만을 구하는 신비주의 신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22-24에서 바울 사도는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고 외친 거예요. 유대인들은 표적을 구하는 신비주의를 따르고요.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하는 자유주의를 따르지만요.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복음주의를 따라야 한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표적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의 증거가 되고요. 지혜는 하나님을 이해하는 방법이 되지만요. 복음은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로마서 1: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고 담대히 증거하지 않아요?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구원의 능력이 되는 거예요.

예화) 221() 금년 10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 20세기 최고의 복음 전도자인 빌리그레이엄(Billy Graham) 목사님

 

그렇다면 복음의 진정한 변화의 삶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말세의 마지막 때 가장 약해지기 쉬운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의 사랑의 삶인 거예요. 상대방이 우리에게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아무런 상관없어요. 십자가의 사랑으로 보다 더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의 삶을 사는 거예요. 그러므로 항상 강조하지만 우리가 복음의 중심을 잡고 살아야지요. 좌로나 우로 치우쳐선 안 돼요. 몇 주일 전에 말씀드렸듯이 영적으로도 율법주의나 신비주의를 뛰어넘어야 하지만요. 정치적으로도 보수주의나 진보주의의 벽을 뛰어넘어야 해요. 여러분, 어떻게 올림픽에 보수가 있고 진보가 있을 수 있어요? 이제는 우리 믿는 사람들부터 신앙의 벽을 뛰어넘어야 해요.

예화) 동계올림픽 최하위 여자 팀추월 팀과 은메달 남자 팀추월 팀의 이승훈 선수 & 일본 고다이라 나오 선수의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사랑

 

그러므로 우리가 악하고 음란한 세대 가운데서 표적만 구하지 아니하고 복음에 사로잡혀 살아갈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주위에 놀라운 감동을 일으키는 주님의 능력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십자가의 주님을 확실히 믿어야 함

계속해서 본문 4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요나서 1장에 보면 요나 선지자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간 머문 후 토해진 것은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무덤 속에 계시다가 부활하신 것의 상징을 보여주신 거예요. 그런데 그 때 니느웨 사람들은 요나 선지자의 전도를 받고 회개하여 돌아왔고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자 십이만여 명까지도 구원을 받았는데요. 이 유대인들은 요나 선지자와 비교할 수 없이 크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전도를 하시고 이적을 보여주시는데도요. 회개하지 않고 믿음을 갖지 않으니 그만큼 마음이 강퍅해지고 완악해진 유대인들은 최후 심판의 때에 니느웨 사람들에게 정죄를 받게 되리라는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점점 강퍅해지고 완악해지고요. 신앙도 점점 나태해지고 침체가 되어서요. 믿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의 능력의 삶이 나타나지 않고요.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삶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예화) 예수님의 피의 의미를 모른 시골 교회 장로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피 흘리셨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무슨 대가를 치러주셨는가가 십자가 복음의 핵심인 거예요. 이것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이사야 53:4-5에 예언되어 있는데요.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삶의 변화의 결정적인 장애가 되는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를 대심 담당하셨다는 중요한 사실을 우리는 꿈에도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말세의 마지막 때에 수많은 주의 종들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역사를 영혼의 죄악의 용서로 국한해 버리고요. 마음의 상처의 치유나 육신의 질병의 치료를 증거하지 않고요. 많은 교인들이 이 십자가의 전인적인 치유의 역사를 진심으로 믿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삶 가운데 마음의 상처의 치유도 육신의 질병의 치료도 체험하지 못하고요.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것이 오늘날 말세 교인들의 치유의 한계였던 거예요. 그래서 존 헌터 목사님의 하나님을 제한하지 말라라는 책을 통해서 우리가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영원불멸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데요. 하나님께서 우리로 인해서 제한을 받으시고요. 우리를 쓰시는 데에 제한을 받으시고요. 심지어 우리의 자기 본위의 신앙에 의해서 제한을 받으셔서 되겠느냐는 거예요. 결국에는 우리만 손해는 보게 되는 거예요.

예화) 지난 주간 목포사랑의교회 부흥성회

 

그러나 우리 치유하는 교회 내에서나 부족한 종이 나아가는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나 세계 선교지의 치유 선교의 현장마다 이 십자가의 치유의 역사를 통해서요. 영혼의 죄악의 용서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고요. 마음의 상처의 치유를 통해 행복의 감격을 누리고요. 육신의 질병의 치료를 통해 기적적인 치료를 체험 하면서요. 얼마나 놀라운 전인치유가 기적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예화) 우리교회 91세 되신 권사님이 새벽기도 때마다 경험한 기적적인 치료의 체험

 

그러므로 우리도 새벽이나 심야 때나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다 내려놓고요. 믿음으로 치유를 받아야 해요. 그래야 우리의 죄악이 용서를 받고요. 우리의 상처가 치유를 받고요. 우리의 질병이 치료를 받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길이 없어요. 인간의 힘으로 불가능해도 우리는 십자가의 주님 앞에 나아가서요.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다 내려놓고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다 대신 지심을 진심으로 간절히 믿음으로 맡길 때 우리의 믿음에 주님께서 기적적으로 응답하심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의 기적적인 치유를 체험하며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음

마지막으로 본문 44-4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이르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이 본문은 신약성경의 난해 성구 중의 하나예요. 특별히 이 말씀을 근거로 해서 예수님을 영접한 성도들도 귀신 들릴 수 있다는 근거로 많이 인용되는 성구예요. 그러나 저는 이 말씀을 반대로 해석하고 싶어요. 가장 먼저는 본문의 비유는 처음부터 구원받지 못한 악하고 음란한 세대를 대상으로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신 것이고요. 두 번째는 불신자들에게는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다면서 그들에게 십자가의 구원이 절실함으로 말씀하셨기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한 불신자들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고요. 더 나아가 세 번째는 그 집이 비고 청소되고 수리되었다는 것이 구원받아 그들의 죄악이 용서받고 깨끗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 의해 인간적이고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깨끗해진 것을 말하고요. 아무리 사람들이 그렇게 깨끗한 체 해도 악한 일곱 귀신이 들어가면요. 여기 일곱 귀신이란 유대인의 완전수로 꼭 일곱 마리 귀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요. 많은 수를 말해요. 악한 많은 귀신이 들어가면 인간적인 도덕성이 한 순간에 무너져 버림을 경고한 것인데요. 일곱 귀신이 들어간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그 전보다 더욱 심하게 타락하고 만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 마지막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한번 구원을 받으면요. 사탄 마귀와 그의 부하인 귀신의 세력들에 의해 결코 귀신들리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이를 증명하는 결정적인 하나님이 말씀은 요한복음 10:28-29에 나오는데요.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는 약속의 말씀이에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그의 손에서 빼앗아 귀신 들리게 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한 때는 사탄의 시험으로 범죄 할 수도 있고요. 마음의 상처로 낙심할 수도 있어요.

예화) 아내의 가족 때문에 고혈압에 생긴 한 남자

예화) 젊은 시인상을 받았던 이근대 시인의 마음을 비워요라는 시

 

또한 우리가 정신질환이나 신체 질병으로 인해 심한 고통을 겪을 수도 있고 인생의 어떠한 실패나 불행도 겪을 수 있어요. 그러나 헤롤드 바커 목사님이 쓰신 영원한 보증이란 책 가운데 이런 내용이 있어요. 우리가 부모님의 자녀로 태어났으면 아무리 큰 죄를 지어도, 심지어 교도소에 가고 사형을 당하고 호적에서 파인다고 해도 자녀 됨을 지울 수 없는 것처럼 한 번 구원은 잃어버릴 수 없는 영원한 보증이라는 신구약 성경의 곳곳의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의 한 번 구원은 영원한 보증임을 확실히 강조하고 있어요. 그래서 로마서 8:37-39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는 말씀은 최후의 승리의 선언인 거예요. 우리가 바로 이 믿음만 확실히 가진다면 우리는 말세 마지막 때 어떠한 사탄의 공격 속에서도 이 악한 세대 가운데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영원히 빼앗을 자가 없을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목포 사랑의 교회 백동조 목사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제는 이 악하고 불의한 세대 가운데서 우리의 남은 여생이라도 복음에 사로잡히고요. 십자가의 주님만 믿고요. 우리를 주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 없을 줄 믿을 때 우리는 어떠한 환경도 이겨내고 기적적인 승리의 역사를 이루며 귀하게 쓰임 받으며 크게 영광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