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18)-가장 어려운 전도
                                                                                              마태복음 13:53-58
                                                         
  금년에 우리가 예수님의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 ‘지역 복음화’에 힘쓰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33년 사시는 동안 3년 동안 주님의 사역을 하셨는데요. 가장 힘드신 곳이 있었어요. 그 곳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께서 사셨던 고향에서의 전도였고요. 가족에 대한 전도였어요. 오늘 우리는 또 다시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면서 우리 자녀들과 다함께 예배를 드립니다만 우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고향이나 가정에서의 전도가 가장 어려워요. 그러나 우리를 길러주신 부모님께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가장 소중한 효도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과거를 탓함을 극복해야 함(54-55절)
  예수님께서 천국의 7가지 비유의 말씀을 다 마치신 후에 고향이었던 나사렛으로 돌아가셔서요. 그 곳에서도 늘 그러하셨듯이 회당을 찾으셔서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셨어요. 그랬더니 사람들이 듣고요. 여기 회당 안에서 뿐만 아니라 그 동안 소문으로 들었던 마태복음 5-7장의 산 위에서의 보배로운 말씀인 산상보훈의 말씀이나 8-9장의 각종 기적의 역사나 10장의 천국 비유의 놀라운 말씀을 비롯해서요. “이 사람의 이 지혜와 이런 능력이 어디서 났느냐?”고 놀라운 거예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목수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는 거예요. 당시 ‘목수’라는 직업은 천히 여기는 직업이었기 때문에 더욱 예수님을 낮춰서 비하하고자 하는 거였어요.


“또 어머니가 마리아이고 남자 동생들이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가 아니냐?”고 한 것은 당시 유대인의 관례에 따르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경우에도 모욕을 줄려고 하지 않으면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는데요. ‘요셉의 아들’이라고 하지 않고요. ‘마리아의 아들’이라고 한 것은 예수님을 아버지 없는 ‘사생아의 아들’이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을 비난하고자 하는 아주 나쁜 비난의 의도가 숨겨져 있었던 거예요. 이처럼 감정적으로 대하다 보니까요. 예수님의 동생의 순서도 마가복음 6:3에 의하면 ‘야고, 요셉, 유다, 시몬’인데요.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로 바꾸어 말한 거예요. 이처럼 예수님의 가문을 들춰가면서 과거를 문제 삼으며 예수님을 비난하고자 했던 거예요.


  그런데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지 않고요. 주의 일에 헌신도 하지 않고요. 복음 전도의 사명도 감당하려고 하지 않으면요. 사탄은 우리를 절대 건들지 않고요. 우리를 그대로 내버려둬 버려요. 그러나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 하고요. 열심히 주의 일을 하려고 하고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하고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고 우리가 가장 잘 못하는 복음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면요. 사탄이 가장 못 견뎌하면서요. 우리를 쓰러뜨리려고 갖가지 거짓을 꾸며서요. “당신의 과거의 가문이 어땠냐? 학력이 어땠냐? 성격이 어땠냐?


행동이 어땠냐? 신앙이 어땠냐?“고 하면서요. 갖가지 비판을 하고요. 험담을 하고요. 비방을 하는 등 공격이 주어져요. 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험에 빠져서요. 신앙도 흔들려 버리고요. 뭐 하러 이 고생을 해야 하나 하고요. 봉사도 무너져 버리고요. 전도도 포기해 버리기 쉬워요. 특별히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하지만요. 어려움이 닥칠 때 우리가 부모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거나요. 부모님께 반항하며 모든 책임을 전가하거나요. 더 이상 부모님께 상처를 드리거나 불행과 고통의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가 그 벽을 극복하고 넘어서야 큰 사명을 감당하고요. 큰 역사를 이루고요. 큰 인물로 쓰임 받으며 영광 돌릴 수 있는 거예요.


예수님도 그 시험을 이겨내셨기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인류를 구원하신 구세주가 되셨고요. 주의 동생들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을 목격한 후에 모두 다 변화되어서요. 첫째 동생인 야고보는 예루살렘교회의 초대 감독으로서 야고보서를 기록하였고요(행15:13, 21:18, 고전15:7, 갈1:19, 2:9, 12, 약1:1). 셋째 동생 유다는 유다서의 기록자가 되었고요(유1:1).


  우리도 여기서 고린도후서 5:17의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는 말씀을 기억해야 해요.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 난 순간 우리의 과거는 다 지나간 거예요. 새로운 피조물인 하나님의 자녀가 된 거예요.

우리의 가문은 하나님 아버지의 가문이 되고요. 학력은 하나님의 지혜가 되고요. 성격은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되고요. 행동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되고요. 신앙도 하나님을 본받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지 못해서 과거에 매여 살아가는 사람들이 문제이지요.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의 과거는 문제될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예화: 장정혁 선수 이야기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지난 날 부모님이나 형제들이나 친척들이나 이웃과의 관계 속해서 받았던 모든 상처가 다 치유 받고요.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부모님의 은혜에 감사할 때, 우리의 가장 소중한 부모님을 비롯한 모든 가족들, 친척들까지의 그 어려운 전도를 해 나가면서요. 날마다 천국의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현재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야 함(56절)


  전 절에서는 예수님의 남자동생 네 사람에 대해서 말씀했는데요.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여자동생들에 대해서 언급해요.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그들이 이미 다 결혼했음을 알 수 있어요. 그런데 여기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고 하면서 ‘다’라는 단어, 영어로는 ‘all’이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한두 명을 ‘all’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both’라고 표현하는 것으로 보아서요. 예수님의 여동생이 적어도 세 사람 이상은 될 것으로 보여지는데요. 중요한 사실은 “다 우리와 함께 살아온 기족들인데 예수님의 모든 지혜와 능력이 어디서 나왔느냐?”는 거예요.

  이제 우리의 과거는 다 지나갔으니 더 이상 과거를 탓하거나 내세우다가요. 후회하지 말고요. 현재의 삶 가운데 지혜와 능력을 보여줘야 해요. 그런데 우리의 지혜와 능력은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야고보서 1:5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고 명령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구해야 하는데요. 그것도 우리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서가 결코 아니라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하고요.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봉사를 위하고요. 주님의 복음의 증거를 위해서요. 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우리는 날마다 구해야 해요. 우리가 아무리 자기 신앙이 최고라고 말로 큰소리를 치고요.

과거에 무얼 했다고 자기를 내세워도요. 주의 종들이나 주위의 영적인 사람들이 안 알아주면요. 아무 소용이 없는 거예요. 우리의 현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지혜가 나타나고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야 참 신앙인 거예요.
                  
<예화: 총회 임원수련회 및 프랑스 개혁교회 총회>
지난날의 유럽 교회가 이렇게 교만과 나태 가운데 빠져 자녀들에게 신앙을 물려주지 못하다 보니까 다 죽어가게 된 거예요. 그러니 우리 치유하는 교회의 치유의 은혜의 복음 선교의 사명이 우리 지역과 민족뿐만 아니라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에까지 미쳐야 할 정도로 얼마나 중차대하느냐는 거예요.


<예화: 한 권사님에게서 온 카톡 문자메시지>
  그래서 늘 강조하지만 고린도전서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현재의 삶 가운데 우리의 가족들이나 특별히 부모님을 전도하려고 하면요.

그 분들 앞에서 우리의 변화된 모습과 더불어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나타내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의 부모님뿐만 아니라 온 가족이 믿음으로 일어서게 되는 거예요. 저는 이처럼 삶 가운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는 주의 종들이나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나 정도님들을 뵐 때마다 너무도 사랑스럽고요.


존경스럽고요. 진정한 동역자로 그렇게 의지가 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의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계속해서 복을 주시고요. 계속 귀하게 쓰시고요. 계속 어려운 전도를 다 하게 하시면서요. 계속 크게 영광 거두어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끝까지 포기해선 안 됨(57-58절)


  이렇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지혜와 능력을 행하시는데도 그의 고향 나사렛 사람들이 배척하니까요. 예수님께서는 너무 큰 상처를 받으셨지만요. 예레미야 선지자가 고향 아나돗 사람들로부터 심하게 배척받았던 것(렘11:21)을 염두에 주시고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을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인하여 예수님께서 고향에서 많은 능력을 행할 수가 없으셨지만요. 그렇게 배척하고 핍박을 받으시는 중에도 끝까지 능력을 행하셨던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우리도 가정이나 직장이나 이웃이나 고향에서 복음을 전하려고 하면 가장 큰 배척을 당해요. 왜냐하면 우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을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아요. 여기서 우리의 구별된 삶이 절실히 필요함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게 돼요. 그런데 우리가 신실한 삶으로 사랑하며 섬기는데도 계속 배척하고 있는 것은 사탄이 강력하게 이를 방해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약해지고요. 우리의 연약한 육신으로 인해서요. 쉽게 낙심하고요. 포기하지 쉬워요.


그러나 우리는 이를 영적으로 분별하고요. 결코 낙심하거나요. 거기서 포기해선 안 되는 거예요. 더욱더 간절히 기도하고요. 금식하고요. 내가 철저히 죽어짐으로서요. 결코 감정적인 대응을 하지 말고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서요. 십자가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6:9-10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고 증거하는 거예요.


여기서 특별히 ‘믿음의 가정’이란 뜻은 NIV 영어성경에 보면 “those who belong to the family of believers(믿는 자의 가족에 속한 자들)‘이란 뜻으로 가족들에게 더 잘 하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 끝이 꼭 오고요. 기필코 구령의 열매를 맺게 된다는 거예요. 사랑하는 가족 전도는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이에요. 왜냐하면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는 주님의 말씀대로 가장 반대가 극렬하기 때문이에요. 부족한 정도 40년 전 주의 종으로 소명받고요.

사도행전 16:31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는 말씀에 걸려서요. 할아버지와 형을 전도할 때도 너무너무 힘들었어요. 그러나 간절히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기도하고요. 기도해도 안 되니까 금식하고요. 사랑으로 섬기고요. 물질도 아낌없이 쏟고요. 핍박 속에서도 죽었다 생각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인내하면서요. 사랑으로 섬겼어요. 그랬더니 결국 믿음이 이겨서요. 할아버지는 예수님 믿고 세례 받고 집사님이 되셔서 주무시듯이 평안하게 하늘나라로 떠나가시고요. 형도 예수님 믿고 결국 아버지의 기도대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로님까지 되었어요.


그래서 저는 시편 126:5-6의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는 말씀처럼 우리의 사랑하는 부모, 형제나 친척이나 아무리 어렵고 힘든 전도도요. 우리가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 섬기면서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요. 언젠가는 기필코 모두 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구원케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날 우리 부모님들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고생과 희생을 서슴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사시다가 더 이상 우리를 위해서 해 주실 힘이 없으실 때 갑자기 쓰러지셔서 떠나가세요. 부족한 정도 7년 전 아버지를 하늘나라로 떠나보내고요. 살아계실 때 마지막 10년을 함께 지내면서요. 제가 가장 어려울 때 마음고생만 시켜드리고요.


더 잘 모시지 못한 것이 가장 마음에 걸려요. 우리는 오늘 또다시 어버이주일을 맞이하면서 지난 날 부모님의 그 깊으신 사랑과 못과 같은 은혜를 다시 한 번 기억하면서요. 이제라도 우리의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 과거를 탓함을 극복하고요. 현재에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보이고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도해 나갈 때 가장 어려운 전도이긴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부모님이나 형제들이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들이라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모두 다 구원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