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25)                                                                                 (2018. 07. 01)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 / 마태복음 16:13-23                                                         
     우리는 금년에 예수님의 사역의 발자취를 따라 지역 복음화에 힘쓰고 있는데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1개월 반 전에 공생애를 결산하시면서요. 두 번째이며 마지막으로 북쪽으로 가시던 도중에 갈릴리호수 북방 약 32km 지점 이방 도시인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들르세요. 그리고 제자들에게 물으세요.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거기에 대한 제자들의 답변을 들으면서요. 오늘, 금년 상반기를 결산하며 첫 이삭의 추수에 감사하는 맥추감사주일이요 교회 설립 49주년을 맞이하는 교회 설립 기념주일에 왜 하필이면 주님께서 교회에 대한 말씀을 주시는지, 우리 치유하는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시는 주님께 다시 한 번 감격하며 전율하면서요. 이 마지막 때 우리가 지켜야 할 신앙이 어떤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있기 바랍니다.

1. 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함(16절)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에 제자들이 “더러는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요. 더러는 엘리야라고 하고요.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하나이다”라고 대답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하고 물으시니깐요.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시몬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그의 신앙을 고백한 거예요. 이 고백은 주님이 우리를 죄악과 상처와 질병 가운데서 구원해 주실 구주되시고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거룩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바른 신앙을 고백한 거예요. 우리도 시몬 베드로와 같은 바른 신앙고백을 해야 해요. 우리가 살아계신 주님이 우리를 죄악과 상처와 질병에서 구원해 주신 구주가 되시고요.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거룩한 신성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것을 믿지 못하고요. 예수님이 4대 성인(예수님, 석가모니, 공자, 마호멧) 중의 한 사람으로 알거나요.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위안을 주는 분으로만 믿고요. 구원의 확신도 없고요. 믿음의 헌신도 없어요. 교회만 왔다갔다 하면서요. 그저 종교생활을 하는 분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이 없고요. 영원한 생명도, 소망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세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으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뿐만 아니라요.이 땅에 사는 동안에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에 의해 복을 누리고요. 이 땅을 떠나 후에도 하늘의 상을 받게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께 바른 신앙고백을 하고요. 구원의 확신과 믿음의 헌신을 한 성도들은 삶 가운데 하나님의 살아계신 역사를 날마다 체험하며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목회를 하다 보면 세월이 흐를수록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가 건강의 문제예요. 그래서 육신의 질병의 고통 가운데 있는 교인들을 뵐 때 너무 마음이 아파요. 그런데 그 고통 가운데 있는 교인들을 위해 부족한 종이 해 드릴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심을 믿고요. 아픈 곳에 손을 얹고요. 십자가의 사랑으로 영혼을 뜨겁게 사랑하며 간절히 기도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면 그 결과는 우리의 믿음대로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예화) 귓병으로 인해 고통당하던 아기의 치유 이야기
     우리 치유하는 교회에서 이렇게 기적적인 치료가 계속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은 십자가의 치유의 능력을 확실히 믿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데 건강 다음으로 어려운 문제는 경제적인 문제예요. 요즘 우리 경제가 얼마나 어려워요? IMF 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잖아요?
예화) ‘라이트하우스’ 등 많은 기업을 거느린 김태연 회장 이야기
      이처럼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은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고요. 언젠가는 기필코 주님 안에서 꿈을 이루게 되는 거예요.
예화) 제6회 전국 목사·사모 초청 치유목회세미나 이야기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고요. 기적의 치유를 믿지 못하고요. 사람의 변화를 믿지 못하는 목사나 사모가 있다면 그 믿음대로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주님의 능력을 분명히 믿고요. 기적의 치유도 확실히 믿고요. 사람의 변화도 분명히 믿는 사람들에게는 그 믿음대로 오늘도 기적적인 능력과 치유와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것은 못 읻어도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고백을 하면서요. 우리의 신앙을 지킬 때 오늘날에도 그 믿음대로 기적적인 능력과 치유와 변화가 일어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교회적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함(18절)
     예수님께서는 시몬 베드로의 이러한 신앙고백에 대해서 “바요나(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하고 칭찬을 하시면서요.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약속하세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 개신교회와 케톨릭교회의 교회론의 큰 차이가 나와요. 여기 나오는 ‘베드로’는 헬라어로 ‘πέτρος(페트로스)’라고 해서 ‘반석’을 뜻하는 남성 명사요, 고유 명사인 거예요. 그런데 그 다음에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에 나오는 ‘반석’의 헬라어인 ‘πέτρᾳ(페트라)’는 여성 명사요, 보통 명사인 거예요. 그런데 캐톨릭교회는 그 다음에 나오는 여성 명사요, 보통 명사인 ‘반석’ 위에 교회를 세웠다면서요. 베드로가 교회의 기초요, 천국 열쇠를 가진 주권자인 초대 교황이라고 억지 해석을 해서요. 교황권을 강화시키기 위해 그렇게 해석해 버린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나중에 나오는 ‘반석’은 베드로 자신이 아니라 그의 신앙고백을 말하는 거예요. 그 신앙고백에 기초하여 교회를 세우리라는 거고요. 그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신 거예요. 여기 ‘음부’는 헬라어로 ‘ᾅσης(하데스)’라고 하고요.  히브리어로는 ‘스올’이라고 하는데요.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는 자가 가는 곳으로 죽음의 무덤을 의미한다고 보아야 해요. 그래서 교회는 죽음의 권세도 이기지 못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천국 열쇠를 베드로뿐만 아니라 모든 주님의 제자들, 더 나아가 오늘의 교회공동체에 주어서요.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교회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하시면서요. 교회에 중차대한 사명을 약속하신 거예요.
     믿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교회적 사명이 주어졌음을 결코 잊어서는 안 돼요.
사회학자인 아주대 사회학과 노명우 교수는 그가 쓴 「사회물정의 사회학」이란 책에서 지식은 많지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배운 괴물이라고 했어요. 그러면서 독일의 괴테와 괴벨스를 예로 들었어요. 두 사람 다 수려한 문장가였는데요. 괴테는 그 문장 실력으로 수많은 아름다운 글들을 써서 시대를 뛰어넘는 대문학가가 되었고요. 괴벨스는 히틀러정권에 붙어서 그 문장 실력으로 유대인 학살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만들어서요.많은 독일 국민들이 나치정권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했어요. 그러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괴테와는 달리 괴벨스는 결국 나치정권이 무너지면서 아내와 6명의 자녀들과 함께 지하 벙커에서 동반자살을 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고 말았어요. 좋은 재능을 가볐지만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오히려 사회를 크게 해치는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사명을 감당할 좋은 재능을 주셨는데요.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하여 그 재능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면요. 결국 그 재능으로 인해 자신뿐만 아니라요. 가족과 교회와 사회까지도 크게 해치는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말세의 마지막 때에 한국 교회나 이민 교회나 세계 선교지까지도 큰 사탄의 시험 속에 빠져 있는데요. 이들의 영·혼·육을 치유하는 것이 바로 우리 치유하는 교회에게 주어진 특별하신 교회적 사명인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의 중차대한 사명이 무엇입니까? 가장 먼저는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멸망당할 지옥의 불못에서 건져내기 위해서요. 늘 강조하지만 가장 먼저는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에게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는 거예요. 영혼의 구원은 아무리 강권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왜냐하면 지옥 불못에서 영원히 멸망당할 영혼들을 구해서 영원한 천국으로 옮기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도 우리는 이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 데 얼마나 무관심하고요? 무기력해요?
     우리도 처음으로 전도하러 나가면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아요. 그럴 때 전도 잘 하는 교인을 따라다니다 보면 자신도 전도를 잘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나가는 게 중요한 거예요.
예화) 위임목사님의 지난 40년 목회 이야기
주님께서는 우리 주위의 고통당하는 형제와 이웃을 위해 이런 큰아들의 모습을 우리 모두에게 기대하고 계실 거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사소한 이해관계, 자존심, 감정, 명예와 영광 같은 사치품들을 다 내버리고요. 불타는 복음의 열정을 가지고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고 치유하고 양육하고 사역하면서 살아가길 원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교회적 사명을 잘 감당하며 우리의 신앙을 지킬 때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게 계속 은혜를 베푸시고요. 축복을 내리시고요. 행복의 감격 속에 귀하게 쓰임 받으며 크게 영광 돌리게 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결단코 영적 교만을 물리쳐야 함(23절)
     예수님께서 아직 선포의 때인 부활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알리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시면서요. 머지않아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다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처음으로 제자들에게 말씀하세요. 그러자 예수님이 메시야(구세주)가 되셔서 그들을 해방시키심으로 한 자리 차지할 것을 기대했던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요. 항변을 하면서요.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고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막고 나선 거예요.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되면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는 구원의 역사를 어떻게 이루시겠어요? 그 때 예수님께서 돌이키셔서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몰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며 크게 책망하세요. 여러분, 예수님께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칭찬하시면서요. “이를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니라”고 칭찬하시고요. 이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시고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고요. 천국 열쇠를 주어서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라고 엄청난 약속까지 하셨는데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그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의 역사를 막으려는 베드로에게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하셨겠어요?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 결단코 물리쳐야 할 것이 바로 이 영적 교만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 돼요. 흔히 우리가 은혜 받고요. 축복 받고요. 헌신도 하고요. 봉사도 하고요. 중한 직분을 받으면요. 자기가 하나님과 같이 높아진 줄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말세의 마지막 때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것이 바로 우리가 참으로 영적으로 깨어서 경계해야 할 가장 두려운 영적 교만인 거예요. 교만한 사람들의 결정적인 문제점은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차를 타고 갈 때는 횡단보도를 천천히 건너가는 행인을 욕하고요. 자기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천천히 간다고 빵빵 대는 운전사를 욕하네요. 다른 사람이 천천히 운전하면 소심하다고 하고요. 자기가 천천히 운전하는 것은 안전운전이라고 하네요. 다른 집 남편이 설거지 해 주면 공처가라고 하고요. 자기가 설거지하는 것은 애처가라서 그런다고 하네요. 며느리는 남편에게 쥐어 살아야 한다고 하고요. 자기 딸은 남편을 휘어잡고 살아야 한다고 하네요. 사위가 처가에 자주 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하고요. 자기 아들이 처가에 자주 가는 것은 줏대가 없어서 그런다고 하네요. 남의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버릇없다고 하고요. 자기 자식이 어른에게 대드는 것은 자기 주장이 뚜렷해서 그런다고 하네요. 남이 하면 불륜이라고 하고요. 자기가 하면 로맨스라고 하네요. 심지어 교회에서도 내가 큰소리치는 것은 교회를 바로잡기 위한 것이라고 하고요. 다른 사람들이 큰소리치면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에게 상처를 준다고 하네요.
     이처럼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을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이라고 하는데요.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을 뜻해요. 그러나 이런 성향은 스스로를 파멸로 이끌 뿐이에요. 그래서 독일의 인류학자인 폴커 조머는 “선입견은 사실에 접근하는 것을 철저히 막는다”고 말했어요. 자신에게 잘못이 있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요.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는 거예요.
     그래서 과거에 믿음생활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잘 할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서요. 그 때부터는 주의 종의 영적 가르침을 안 받으려고 하고요. 오히려 가르치려고 하고요. 사사건건 따지면서요. 달려드는 사람들을 많이 봐요.  그 때마다 저의 마음 속에 “너무 많이 크셨네요!....”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것이 주의 종으로서 가장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일이에요. 왜냐하면 그 때부터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은혜도, 축복도,  행복도 없기 때문이에요.
     지난 날 그토록 순수했던 우리가 왜 그렇게 변절되어 버린지 아세요? 하나님께 대적했던 타락한 루시퍼 천사장과 그를 따르는 천사였던 사탄과 귀신들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려고 했고요(사14장).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도 하나님과 같이 눈이 밝아지려고 했듯이요(창3장).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려고 하고요. 하나님의 권위를 내세우다가 영적 교만으로 타락해 버렸기 때문인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셨고요. 갈라디아서 6:3에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고 경계하셨던 거예요.
예화) 러시아 월드컵의 죽음의 조인 F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대한민국과 독일의 경기 이야기
우리가 교만한 순간 우리는 영육 간에 완전히 무너지고 만다는 참으로 두렵고 떨리는 영적 교훈을 얻어야 하는 거예요.
예화) 위임목사님 영적체험
     사실 우리가 교만할 게 뭐가 있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이라도 부르시면 떠나가야 할 인생인데요. 오늘 살아있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요. 건강한 것도 감사하고요. 이렇게 먹고 입고 쓰고 살아가는 것만 해도 감사하고요. 이렇게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니 얼마나 감사해요? 꼭 병들고 고통당하고 갑작스럽게 죽어봐야 정신 차릴랍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목사가 되고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고 그 많은 은혜 받고 축복 받고 행복하게 쓰임 받을 때에도요.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평생토록 결단코 영적 교만을 물리치면서 우리의 신앙을 지킬 때 평생토록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진정으로 은혜롭고 복되게 쓰임 받으며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예화) 고 김병호 목사님 10주기 추도예배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 것 같아요? 세월이 흐르니까 그 부귀 권세를 누렸던 3김씨(김대중, 김영삼 대통령과 김종필 총리)도 다 떠나가지 않습니까? 우리의 인생도 언제, 어떻게 세상을 떠날지 아무도 모르지만요. 분명한 사실은 어느 날 갑자기 그 날이 닥쳐오고요. 그것이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임이라는 사실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남은 여생이라도 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요. 교회적 사명을 잘 감당하고요. 결단코 영적 교만을 물리칠 때 우리의 신앙을 주님 부르실 그 때까지 잘 지키게 되어서요. 주님께서 남은 여생을 더욱 복되게 하시고요. 귀하게 쓰시고요. 크게 영광 거두실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상과 이 땅의 복으로 다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