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29)                                                                                (2018. 07. 29)
천국에서 큰 자/마태복음 18:1-10
                                                            
                                                             
     우리가 마태복음을 읽어보면 5대 교훈의 말씀이 나오는데요. 첫째가 5-7장에 나오는 산상보훈의 말씀이고요. 둘째가 10장에 나오는 제자 파송의 교훈이고요. 셋째가 13장에 나오는 천국 비유의 교훈이고요. 넷째가 18장에 나오는 어린아이의 교훈이고요. 다섯째가 23-2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에서의 최후의 교훈인데요. 오늘은 그 중에 네 번째 어린 아이를 통한 교훈의 말씀이에요.
     하루는 제자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하고 물어요. 우리는 천국에서 큰 자라고 하니까 죽은 후에 천국에서 큰 자로 착각하기 쉬워요. 유대인을 대상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에서는 하나님이라고 함부로 부르는 것이 불경건한 일이라고 믿어져서요. ‘하나님(θεός 테오스, God)’이란 단어 대신 ‘하늘(οὐρανὡν 우라논, Heaven)’이란 단어를 써서요. ‘하나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대신 ‘하늘나라(the Kingdom of heaven)’ 즉 ‘천국’이라고 불렀던 거예요.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천국’이란 죽음 후에나 가는 세계가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세계를 말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 천국에서 큰 자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말씀을 들으면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서 큰 자로 살아갈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는 사람임(3-4절)
     먼저 본문 3-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
예수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제자들들 가운데 세우시고 실물교훈을 하신 거예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하고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세요. 너희가 지금 다 된 것처럼 교만에 빠져 있는데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는 거예요. 왜냐하면 교만한 순간부터 우리는 어떠한 영적인 은혜도, 축복도, 행복도 누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유머) 어린 아이와 엄마의 대화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겸손하고 유하게 섬기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라고 말씀하신 거예요. 여기 ‘큰 자’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μείζων(메이존)’이라고 해서요. ‘the greatest(가장 위대한 자)’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천국에 들어가고 천국에서 위대한 사람이 되려면 가능한 한 겸손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요. 철저히 자기를 낮춰 겸손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가운데 높아지고 세워져서  큰 자가 되기 싫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위대한 사람은 다 되길 원하면서요. 자기 자랑이나 하고요. 자기 주장이나 앞세우고요. 자기 고집이나 피우면서 큰소리치면서요. 성경의 이 역설적인 진리대로 행하지 않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위에서 아무도 인정을 안 하는 거예요. 첫째는 가정에서 마누라부터 인정을 안 해 줘요. 그러니 교회에서 어느 주의 종들이 인정을 하고요? 교인들이 인정을 하겠어요? 그리고 나니까 세상에서는 더더욱 인정을 안 해 주는 거예요. 그렇게 결국 자기 교만이 자기 스스로를 무너뜨려 버리고요. 그 좋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를 다 끊어버리고요.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마는 거예요.

예화) 에딘버러대학교의 제임스 심프슨 교수 이야기
     마태복음 11:29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지 않아요?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기쁨으로 지고요. 예수님의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을 배워서요. 온유하고 겸손한 삶을 살아가면요. 우리의 마음이 주님 안에서 위로를 받고요. 평안을 누리고요. 참된 안식을 얻게 되는 거예요.

예화) 목척추 인대골화증으로 고통 당하는 어느 안수 집사님 이야기
      우리가 돌이켜서 어린 아이와 같이 자신을 낮추며 겸손해질 때 가장 먼저 주님으로부터 인정받으면서요. 내 마음도 평안해질 뿐만 아니라요. 모든 주위 사람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요.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도 회복되고요.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줄로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어린 아이 하나라도 영접하는 자임(5절)
     계속해서 본문 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또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니” 누구든지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하나, 즉 헬라어로 ‘παιδίον(파이디온)’이라고 해서요. 예수님의 이름으로 어린 아이 혹은 어린 아이와 같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 하나라도 영접하면요. 곧 주님을 영접함이라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부지중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 때문에요. 어떠한 사람을 만나든지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소중하게 여기고요. 사랑으로 잘 영접하고 섬겨야 ‘천국에서 큰 자’라는 거예요.

예화) 어린이집 학대 및 치사 사건 이야기
     그런데도 우리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도 그렇게 섬기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조차 자기에게 이익이 될 만한 사람, 즉 돈이 많거나 지위가 높거나 능력이 있거나 유명하거나 교회 안에서 힘을 좀 쓰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는 눈에 보일 정도로 그렇게 굽실거리고 아첨을 해요. 그러나 교회 안에서 어린 아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돈이 없어 보이거나 늙고 병들었거나 볼품이 없고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을 보면요. 우습게 생각하고요. 냉대하고요. 무시해 버리는데요. 그런 사람들은 엄밀하게 말해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닌 거예요.

유머) 병원에 간 어느 10대 아이 이야기
     내일부터 지진 피해를 입었던 포항으로 농촌전도봉사활동에 가서도 수많은 시골 사람들을 대할 텐데요. 시골 사람들이라고 절대 우습게 생각하거나 무시해선 안 돼요. 그 분들도 다 우리 조부모님이나 부모님이나 형제들과 같은 분들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다 옛날에 시골 촌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이런 때는 꼭 촌사람들이 아니었던 것처럼 시치미 뚝 떼고 앉아 있네요) 그런데 지금은 우리가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출세한 거예요? 서울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가장 크게 출세한 것이니깐요. 제주도나, 부산이나, 거제나, 진주나, 여수나, 고흥이나, 장흥이나, 해남에서 온 분들이 가장 출세한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분들은 더욱더 지금까지의 모든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섬겨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대하는 사람들 가운데 주님을 만날 수 있는데요. 우리가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하면서 인상을 쓰고 큰소리를 치고 반말을 하며 함부로 대할 수 있겠어요?
     이렇게 사랑이 식어져서 우리의 신앙이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한 것은 말세 마지막 때의 라오디게아교회의 징조이기도 하지만요. 예수 믿고 복이나 받으려고 하는 기복주의자들이거나 병이나 나으려고 하는 신비주의자들이거나 돈벌이나 하고 명예나 얻으려고 하는 삯군들이 그러는 거예요. 엄밀하게 말하면 그들은 신앙인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 날 주님께서 심판하실 때 의인들이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으며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영접하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고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가서 뵈었나이까?” 하니깐요. 마태복음 25:40에 주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세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신 거예요.

예화) 요한 트레보니우스 수도원 원장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에게 맡겨주신 어린 아이 하나라도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의 정성을 다해 영접할 때 그러한 사람들이 진정으로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요. 수많은 주의 일군들을 길러내고요.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줄로 확실히 믿습니다.

3. 작은 자 중 하나라도 실족케 하지 않는 자임(6-7절)
     마지막으로 본문 6-7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여러분들, 우리가 겸손하게 낮아지고요. 사랑으로 영접해서요.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데요. 같이 신앙생활을 하다가 그 믿는 자 중, 그것도 작은 아이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요.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낫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 7절 말씀을 주의 깊게 읽어보면요.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7상)라고 말씀하신 것은 상처를 받고 시험에 빠져서 실족하게 되어서요. 믿음으로 이겨내지 못한 자도 화가 있다고 말씀하시는데요. 우리가 상처 받지 않고요. 시험 들지 않고요. 실족해서도 안 되는데요. 이러한 상처와 시험과 실족이 자신과 상관이 없는데도요. 오버센스를 해 가지고요. 끊임없이 삶 가운데 이러한 상처와 시험과 실족을 수집하는 취미를 가진 교인들이 있어요(취미도 별 취미를 다 가져요). 그런데 그러한 사람에게도 화가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당하는 화인 거예요. 그래서 육신적으로 불행과 고통을 당하는 거예요.

유머)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는 거절법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가 이미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 무슨 자존심을 내세울 게 있고요. 무슨 감정을 앞세울 게 있고요. 무슨 이익을 따질 게 있어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하고요. 죽을 때까지 참는다는 일사각오의 심정으로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얼마 남지도 않은 짧은 여생을 영혼을 실족케 하는 화를 불러일으키기 보다는 영혼을 살리는 일에 의미 있고 보람되고 복되게 쓰임 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다음에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7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이렇게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요. 남을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도 화가 있다는 거예요. 그것은 영원한 심판과 멸망의 화를 당하고 만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화를 당하지 아니하려면 우리의 손이나 발이 범죄 하려거든 찍어버리거나 우리의 눈을 빼어서라도  영원한 지옥불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얼마나 무서운 경고의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천국에서 큰 자’는 주위의 시험에 실족하지도 않고요. 또한 남을 실족하게도 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 보면요.  말세의 마지막 때가 되어서요.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평생 가도 전도 한 명 못하는 사람들이 사탄의 도구로 전락해서요. 영적 매복을 하고 있다가요. 조그마한 시빗거리라도 생기면요. 사탄의 정체를 금방 드러내고요. 말이나 글이나 행동을 통해 여지없이 공격해 둘어오는 거예요.그래서 얼마나 주위 사람들의 신앙을 실족케 해서요.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을 교회에서 내쫓는 일을 평생의 사명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여지없이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요.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경고하시는데요. 여기 맷돌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여자들이 손으로 돌리는 조그만 맷돌이 있고요. 그 다음에는 나귀들이 돌리는 큰 맷돌이 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연자 맷돌’은 헬라어로 ‘μύλος ὀνικὸς(뮐로스 오니코스)’라고 해서요. 나귀들이 끄는 큰 연자 맷돌을 말하는 거예요. 그 큰 연자 맷돌을 목에 매달아서요. 멀리 서해안까지 갈 필요도 없이요. 가까운 한강물에라도 빠뜨려서 멸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것은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실족시키기 때문이에요.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주위에 그러한 사람들은 수천 명의 교인들 가운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말세의 마지막 때 교회들이 사탄에게 다 속아서요. 정작 감당해야 할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헌신과 헌금과 예배와 전도와 치유와 양육과 봉사와 선교의 사명에는 너무도 무관심하면서도요. 자신과 자손이 복 받기만을 바라고요. 신앙생활에 아무런 쓸데도 없는 시비와 불화 가운데 분쟁의 소모전을 하다가 인생을 끝내버리는 경우가 얼마나 많아요? 이처럼 성령님의 사람들은 용서와 화해의 감동을 남기지만요. 사탄의 사람들은 입만 열면 불화와 분쟁의 감정만 남기는 거예요.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우리를 실족케 하기 위해 상처를 주고 시험에 빠뜨리려고 해도요. “No Thank you!(천만에요!)”하고 절대 받아들이지 마시고요. 거절해 버리세요. 그러면 절대로 상처를 안 받고요. 시험에 안 들어요.


예화)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지혜 자매 이야기
     이처럼 우리가 어떠한 상처와 실족의 시험조차도 다 이겨내면요. 베드로전서 1:7에 뭐라고 약속하세요?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우리가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요. 끝까지 인내하면서 이겨내면요.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으로 나와서요. ‘천국에서 큰 자’로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서 살면서요.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 귀하게 쓰임 받지만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해병대 헬기사고 순직 장병 5명에 대한 합동영결식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현재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요. “와! 하나님 아버지...... 우리 아빠다!”하는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돌아가서요. 자신을 낮추고요. 어린 아이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고 영접하며 섬기고요.
작은 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때에요. 우리의 삶을 무너뜨리려는 어떠한 슬픔과 고통 속에서도 새 희망과 용기를 안고 일어서고요. 주위에서 아무도 안 알아줘도요. ‘천국에서 큰 자’로 행복하게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