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33)                                                                      (2018. 08. 26)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마태복음 18:15-20)
 
   지난 주일까지 잃어버린 양, 잃어버린 드라크마, 잃어버린 아들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이제는 돌아온 형제가 범죄 했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거예요. 목회를 하면서도 보면 교인이라고 하면서 갖가지 범죄를 저지를 때에 우리 맘대로 감정을 따라 치리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그들이 사탄에게 속아 범죄하며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어지럽힐 때 우리가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개인적으로 은밀하게 권고해야 함(15절)

   만약 네 형제(ὁ ἀδελϕός σου)가 범죄 했을 때 너와 그 사람과만(μόνου) 상대할 것을 강조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형제의 범죄가 알려지면 더 큰 상처를 받게 되고 더 이상 공동체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는 거예요. 여기 ‘권고한다’는 단어가 헬라어로 ‘ἔλεϒξον’으로서 원뜻은 ‘죄를 깨닫게 하다’라는 뜻이에요. 죄를 깨닫게 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영혼을 살리려는 형제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의 앞에서는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모두 다 죄인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위에서도 보면 죄가 많은 사람일수록 정신분석학에서 보면 심리학적 방어기제인 투사(projection)를 하여서요. 남의 허물을 덮지 못하고 더 지적하고요. 더 공격하며 달려들어요. 그래서 요즘 세대를 ‘칠면조의 세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칠면조는 그들 중 하나가 등에 상처를 입으면 우리 안에 있는 모든 칠면조들이 덤벼들어 상처 입은 칠면조가 쓰러질 때까지 상처를 쪼아댄다고 합니다. 말세의 세상 사람들도 칠면조처럼 누구의 허물이 있으면 모두들 달려들어서 죽을 때까지 쪼아버려요. 그 때마다 옛날 어르신들의 지혜로운 속담이 떠올라요.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는 속담이에요.
적어도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남의 허물에 대해서 수군거리거나 상처를 입혀서는 안 되고 서로 허물을 덮어주어야 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우리가 진정한 형제라면 은밀하게 범죄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그의 잘못을 바로 잡아주어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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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사랑이 식어만 가는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사랑의 회복이에요. 사랑이 있으면 대화가 가능하고요. 대화를 하면 어떠한 문제든 다 풀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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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베드로전서 4:7-8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a multitude of sins, 수많은 죄들)를 덮느니라”고 분명히 강조하고 있는 거예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것은 우주적 종말뿐만 아니라 개인적 종말도 가까웠다는 거예요.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깨어 기도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기독교의 최고 덕목인 사랑하라는 말씀 이전에 기도하라고 강조하신 이유는 내 감정으로는 내 가슴에 못질을 하고요. 일생을 불행과 고통 속에 살게 하는 철천지원수 같은 인간들을 도저히 사랑할 수가 없지만, 간구하며 기도할 때에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부어주셔서 사랑할 수 있기 때문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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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형제가 범죄 했을 때 십자가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 개인적으로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은밀하게 권고하라는 거예요. 그리할 때 그들이 죄를 깨닫고 돌아옴으로 온 천하보다 더 귀한 형제를 살리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두세 증인을 세워야 함(16절)

  상대방이 우리의 사랑을 거부하고 우리의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는 한두 사람을 증인으로 데리고 가면 결국 권고한 사람을 포함해서 두세 사람이 되잖아요? 이 두세 증인이 보고 들은 대로 그들의 말을 통해 그 형제의 범죄를 확증하게 하라는 거예요. 여기 ‘확증한다’는 단어는 헬라어로 ‘σταθᾑ’라고 해서 원래 뜻은 ‘(다른 사람들 앞에) 세우다’라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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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신명기 19:15에서 “사람의 모든 악에 관하여 또한 모든 죄에 관하여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또는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라고 권면하지만요. 범죄한 일에 대해 의견이 대립되었을 때 영적으로 보면.
어느 한쪽은 사탄에게 속고 있고요. ‘거짓의 아비’(요8:44)인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고 있음에 틀림이 없어요. 그래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 두세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에베소서 5:8-9의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는 말씀과 같이 순종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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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두세 증인을 세워서라도 범죄한 형제에게 진실을 밝히게 될 때 어떻게 해서라도 그들을 거짓된 불의로부터 구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교회의 말도 듣지 않으면 불신자처럼 여겨야 함(17절)

   이렇게 증인을 세워서 진실을 밝히는데도 범죄한 형제가 온갖 거짓으로 끝까지 버티면 그 때는 교회에 알려야 해요. 그리하여 오늘날에는 당회와 노회와 총회 재판국에서 치리하도록 해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로부터 부여받은 교회의 영적 권위가 아니고서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교회에서 떠나가라!”고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주님과 주님의 영적 권위를 가진 교회만이 모든 사람을 심판하고 치리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세 번의 재판을 통해서 처벌을 받는데요.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 때는 교회의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요. 이방인과 세리 즉 불신자와 같이 여기라는 거예요. 주님께서 우리의 신앙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약속하시면서요. 본문 18절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라고 강조하여 말씀하세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본문 19-20절에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는 말씀으로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교회의 영적 권위에 더 이상 항거할 수 없도록 쐐기를 박으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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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주님께서 교회의 영적 권위에 더 이상의 논란의 여지가 없도록 쐐기를 박으신 거예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삼 단계에 걸쳐서까지 치리의 단계를 거쳐야 했을까요? 바로 여기에 주님의 인내의 사랑이 담겨져 있는 거예요. 우리가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오래 참으며 기다릴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3:4,7에 사랑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사랑은 오래 참고....”로 시작해서요. “(사랑은)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로 끝나는 것처럼 사랑은 한 마디로 말해서 인내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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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신앙도 끝까지 인내하면 다 이겨낼 수 있는데도 참다 참다 더 이상 못 견뎌내는데 지난날의 우리의 신앙의 한계가 있었던 거예요. 그러나 인내하는 자는 자신의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적적인 역사를 일으키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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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인생에 인내 없는 열매는 없는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서 5:11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잖아요? 그러므로 범죄한 형제가 아무리 교회의 말을 듣지 않고 불신자처럼 사탄에게 빠져들어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며 기다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그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언젠가는 주님의 품으로 돌아와 변화되는 감동적인 생애를 살아가며 영광 돌리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약수터 목회’를 통해 인내의 승리를 몸소 경험하신 위임목사님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끝까지 기다리는 인내의 사랑이 결국에는 위대한 승리를 가져다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하나님의 품을 떠나 아무리 우리를 괴롭혀도 십자가의 사랑으로 은밀히 다가가 권고하고 거짓이 덮어지지 않도록 한두 사람을 증인으로 세우고 교회의 말도 안 듣고 불신자처럼 살아도 끝까지 인내하며 사랑으로 섬길 때 아무리 강퍅하고 완악한 심령이라도 언젠가는 회개하고 돌아와서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은혜롭고 행복하고 축복된 여생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