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34) (2018. 9. 2 오순절 후 열다섯번째주일, 총회주일)
형제를 용서하려면/ 마태복음 18:21-35             

  2017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통계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회적 포용이나 갈등문제로 인해 사회적 포용지수는 최하위인 30위로 드러났습니다. 2017년 삼성경제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이러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연간 최소 82조원에서 최대 246조원에 이른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불화와 갈등 가운데 있는 형제의 잘못을 어떻게 용서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일곱 번 뿐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용서할 줄 모르는 종의 비유를 들려주셨습니다.

  1. 주님의 용서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함(28)
마 18:28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
  종이 일만 달란트를 빚졌다고 했는데, 1만 달란트는 엄청나게 큰돈입니다. 실제로 계산해 보면 한 달란트가 6,000 데나리온이고, 한 데나리온을 오늘날 근로자 하루 품삯 10만 원으로 잡는다면 6조 원에 해당합니다. 평생 동안 모든 재산을 다 팔고 온 가족이 일해도 결코 갚을 수가 없는 엄청난 빚입니다. 주인이 그 엄청난 빚을 다 탕감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엄청난 용서를 받은 종이 자신에게 백 데나리온(100 × 10만원=1,000만 원)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엄청나게 많은 빚을 탕감 받은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요? 지난 날 그가 받았던 주인의 큰 은혜를 잊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조금만 상처받고, 손해보고, 희생당하면 참지를 못합니다.
유머) 예배시간에 핸드폰 울린 목사님
  우리는 흔히 용서에 대해서 상대방이 회개하면 용서를 해 주고, 상대방이 회개를 하지 않으면 용서를 못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용서를 잘못 오해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8에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비록 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용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예화) 영화 “밀양”
  우리가 회개할 때 하나님께도 용서를 구해야 하지만, 우리가 피해를 입힌 사람에게도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이 진리를 바로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해 용서에 대한 영적인 큰 혼란이 오는 것입니다.
유머)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는 남편
  우리가 원수들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에베소서 4:31-32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명령합니다.
예화) 아시안게임 축구: 베드남과의 경기 이후 화합의 모습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엄청난 용서를 받았으면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면 은혜를 베풀어 주신 주님을 배신하는 배은망덕(背恩忘德)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나 자신의 불행과 고통과 멸망만 가져올 뿐입니다.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면 자신도 진정으로 행복하고 축복될 뿐만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감동을 주는 것입니다.
예화) 성 프랜시스의 용서
  그러므로 아무리 용서할 수 없는 철천지 원수라고 할지라도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받은 그 엄청난 용서의 은혜를 잊지 않을 때 어떠한 원수라도 다 용서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결단코 기억해야 함(29-30)
마 18:29-30 “그 동료가 엎드려 간구하여 이르되 나에게 참아 주소서 갚으리이다 하되 허락하지 아니하고 이에 가서 그가 빚을 갚도록 옥에 가두거늘”
  동료 종이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간구했습니다. 여기 ‘간구했다’는 단어가 헬라어로 ‘παρεκάλει(파레칼레이)’인데 미완료과거형으로 일회적인 사건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사정하며 애걸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신도 주인에게 이렇게 간절히 용서해달라고 간구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동료 종을 용서하지 않고 감옥에 가두어버렸습니다. 자신의 그 엄청난 빚더미에 쌓여 있었던 그 어려웠던 시절은 다 잊어버린 것입니다. 우리도 지난 날 그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한다면 우리 주위의 어려운 사람에 대해서 마음 속 깊이 이해하고, 그 아픔을 함께 나누면서 용서해 주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때 우리는 지난 날 그 힘들었던 시절을 다 잊어버림으로 인해 감사도 사라지고, 만족도 없어지고, 행복도 다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예화) 유럽으로 배낭 여행간 두 친구
  자신의 과거의 그토록 힘들었던 일들을 기억한다면 다른 사람들의 그 아픔도 기억하며 헤아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화) 존 매케인(John McCain) 상원의원
신명기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우리는 지난 날 그토록 힘들었던 인생의 광야 시절을 늘 기억하면서 겸손하게 낮아짐으로써 주님의 명령을 따라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다 기억하시고요. 모든 관계를 회복시켜 주실 줄 믿습니다.

3. 주님과 같이 원수를 불쌍히 여겨야 함(33-34)
마 18:33-34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엄청난 빚을 탕감 받은 종이 자신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빚이 적은 동료 종의 빚을 가지고 그렇게 힘들게 하자 그 종의 동료들이 그것을 보고 몹시도 딱하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그 일을 다 알렸습니다. 여기서 ‘알렸다’의 헬라어 원어는 ‘διεσάϕησαν(디에사페산)’으로서 ‘ζιά(디아, 상세하게)’와 ‘σαϕέω(사페오, 설명하다)’가 결합된 단어인데, 단순한 보고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하게 설명함으로써 그 종의 불의한 점을 그대로 강조한 것입니다. 그랬더니 그 주인이 심히 노하여 그 종을 불러다가 6조원 빚을 다시 다 갚도록 하고, 옥졸들ㅇ게 붙이게 됩니다. 여기 ‘옥졸들’은 그냥 감옥을 지키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헬라어로 ‘βασανισταἱς(바사니스타이스)’라고 해서 영어로는 ‘tormentors(고문하는 자들)’를 뜻합니다. 감옥에만 가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을 깨닫도록 고문을 시키도록 한 것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본문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 ‘불쌍히 여겼다’는 단어입니다. 27절에 그 주인이 “불쌍히 여겼다”고 할 때는 가슴 속까지 끓어오르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took pity on)을 의미합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보고 측은히 여긴 것과 같은 마음을 말하는 거예요(눅15:20). 그런데 본문 33절에 나오는 “불쌍히 여긴다”는 말씀은 그 종에게 일반적으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had mercy on) 조차 못 갖는냐는 책망이었던 것입니다. 결국 문제의 화근이 된 동료 종을 불쌍히 여기지 않음으로 인해 결국 빚의 탕감도 못 받고, 동료 종과 비교할 수 없는 화를 당하고 만 것입니다. 그래서 어떠한 이유로든지 용서하지 않는 자들에게 주님께서 더 나아가 뭐라고 경고하세요?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유머) 불쌍한 한국 남자
  세상에 안 불쌍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쌍한 인생이 똑같이 불쌍한 인생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요? 불쌍히 여겨주는 것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강조해도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의 가장 큰 약점 중의 하나는 서로를 불쌍히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의 허물을 용서할 수가 없고, 감정이 치유될 수가 없고, 신앙이 회복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삶의 은혜는 메마르고, 축복은 잃어버리고, 행복은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8-9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 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명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라도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면 결국 우리가 복을 누린다는 약속의 말씀인 것입니다.
예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용서
  우리가 어떠한 원수라도 불쌍히 여길 때 다 용서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복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위임 목사님의 용서
  우리가 인생을 살다 보면 억울하고 원통하고, 가슴 아프도록 눈물겹고, 앞이 캄캄한 절망적인 순간들도 얼마나 많았어요? 세상을 산다는 것이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하는 순간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도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받은 용서의 은혜를 잊지 말고, 우리의 어려웠던 시절을 결단코 기억하고, 어떠한 원수라도 불쌍히 여기며 용서할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다 닦아 주시고, 우리의 상처 난 가슴을 다 싸매 주시고, 우리의 여생을 오히려 더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해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