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36) (2018. 9. 16 오순절 후 열일곱번째주일, 외국인근로자주일, 다문화선교주일)
진정한 화목/ 마태복음 22:34-40             

율법에 박식하고 율법을 해석하고 가르치는 권위자요, 전문가였던 율법사가 와서 예수님께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μεϒάλη, 메갈레)”하고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시험하고자 했습니다. 613가지 계명 중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이냐고 물었을 때 율법을 꿰뚫지 않고는 답변하기 참으로 어려운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답변은 우리에게 십자가의 복음의 의미를 밝히 보여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진정한 화목을 누리며 살아갈 것인가 가르쳐 줍니다.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을 사랑하고 화목해야 함(37-38)
마 22:37-3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사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구약의 율법서인 신명기 6:5의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화와를 사랑하라”는 말씀을 인용하신 것인데 우리가 진정한 화목을 누리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화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영, 혼, 육으로 다시 말하면 전인적으로 주님을 사랑하라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화목 하는데 결정적인 걸림돌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경고합니다. 우리 주위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자신의 돈일 수도 있고, 자존심이나 명예일 수도 있고, 육신의 정욕과 세상 향락일 수도 있고, 심지어는 부모나 남편이나 아내나 자식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이러한 육신의 탐심에 대해서 철저히 죽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탐심을 버릴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화목할 수 있고, 그 때부터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해지고, 마음이 평안해지고, 육신이 축복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화목한 가정의 비결: 전적인 순종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비로소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때로는 이해가 안 되고, 실천을 하기가 힘들어도 기쁨으로 순종할 때 그것이 진정으로 우리에게 축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욥기 22:21에 “너는 하나님과 화목하고 평안하라 그리하면 복이 네게 임하리라”고 분명히 약속합니다.
예화) 빨판상어와 빨대상어
예화) 하나님 뜻대로 진행된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3회 총회  
우리가 아무리 계획하고 노력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다 어긋나고 맙니다. 설령 우리 뜻대로 밀어붙여 강행한다 할지라도 마음이 평안하지를 못하고, 진정한 하나님의 복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와 주님 사이를 가로막은 주님과 나만이 아는 죄가 있다면 그것부터 이 시간 주님 앞에 철저히 다 내려놓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그 순간부터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화목하게 되고, 우리가 영적으로 은혜가 충만해지고, 마음이 평안해 져서 축복된 삶을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자신을 사랑하고 화목해야 함(39하)
마 22:39하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우리는 흔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다음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으로만 아는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기 전에 “네 자신 같이”라는 단어를 놓쳐선 안 됩니다. 전에 개역판성경에는 “네 몸과 같이”라고 번역되었지만 헬라어 원어성경에 보면 ‘σεαυτόν(세아우톤)’이라고 영어 ‘yourself(네 자신)’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이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많은 때 이 말씀의 놀라운 진리를 놓쳐버립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이웃 사랑은 안합니다. 엄밀하게 말씀드리면 이웃 사랑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고, 자신과 화목하지 못하고,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인 자존감(self-esteem)을 회복하지 않아서 그러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보다 조금만 못한 것이 있으면 마음 속에 열등감에 빠져서 남을 시기하고 질투하거나, 남보다 조금만 잘난 것이 있으면 우월감에 빠져서 교만에 사로잡혀 남을 무시하기도 합니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자존감을 회복하지 못한 사람들의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 있을까요? 나다니엘 브랜든(Nathaniel Branden) 박사가 쓴 「자부심의 기적(How to Raise Your Self-esteem)」이란 책 가운데 보면 우리가 자존감을 회복하는 방법을 3단계로 말씀합니다. 가장 먼저는 자기가 누구인지 자기 자신부터 인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Self-awareness, 자기 인식).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6:1에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하면서 우리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고 합니다. 우리가 구청장, 시장, 대통령과만 함께 일해도 영광스러운데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주님과 함께 일하는 자라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예화) 위임목사님의 자기인식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우리는 열악한 환경의 자신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Self-acceptance, 자기 수용). 그래서 바울 사도도 고린도후서 6:4-5에서 “오직 모든 일에 하나님의 일꾼으로 자천하여 많이 견디는 것과 환난과 궁핍과 고난과 매 맞음과 갇힘과 난동과 수고로움과 자지 못함과 먹지 못함 가운데서도”라고 현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현실도 얼마나 어렵고 힘든 현실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현실을 부정하거나 도피하면 또 다른 불행을 맞고 맙니다. 그래서 현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어려운 삶을 이겨내는 가장 지혜롭고 은혜로운 방법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으로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Self-expression, 자기 표현). 그것도 감사로 자기의 어려운 현실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6:8-10절에서 “.....우리는 속이자 같으나 참되고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라는 감사의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 순간 자신의 삶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고 실패에서 축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예화) 감사와 긍정의 삶에 관한 글
이처럼 자기 인식, 자기 수용, 자기 표현의 3단계를 거치면서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인 자존감(Self-esteem)을 회복하게 되고, 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고, 나 자신과 화목하게 됨으로써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일생토록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이웃을 사랑하고 화목해야 함(39상-40)
마 22:39상-40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첫째, 하나님 사랑처럼 둘째, 이웃 사랑도 똑같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이 두 계명이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합니다. 율법은 구약의 모세오경(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을 말하고, 선지자는 구약의 예언서(이사야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대예언서 5권, 소예언서 12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두 계명이 구약성경의 강령이라고 합니다. 여기 ‘강령’이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κρεμαται(크레마타이)’라고 하는데 ‘매달다(hang)’ ‘의존하다(depend on)’ ‘요약하다(summarize)’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 구약성경의 요약이요, 핵심이라고 할 정도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유머) 당신과 함께 라면
오늘날 교인들의 삶 가운데 가장 약한 것이 바로 이 이웃 사랑입니다. 이웃은 커녕 형제와도 화목이 안 됩니다. 그래서 감정을 풀지 못하고 가슴에 응어리를 품고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고, 주님의 제자도 아니고, 천국 백성도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 날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 받지 않으면 평안하지 않고, 행복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지도 못하고, 화목하지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유머) 교회에서 가장 은혜가 넘치는 곳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화목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날마다 순간마다 에베소서 4:31-32 말씀처럼 살아가면 됩니다.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새벽마다 내 마음의 상처가 치유를 받으면 내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내 이웃과 화목하게 되고, 내 이웃과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나는 너를 용서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렇게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고자 하는데도 안 될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래서 마태복음 5:44에 분명히 명령합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원수에 대해 사랑이 안 되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로마서 5:5에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고 분명히 약속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감정으로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우리의 기도에 성령님께서 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화) 이리 신광교회 장덕순 목사님의 용서와 사랑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하게 될 때 이웃과 진정으로 화목하게 되고, 그러한 사람들이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요, 주님의 제자요, 천국 백성인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3:34-35에 “세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강조합니다.
예화) 노량진 교회 림인식 목사님이 가르쳐 주신 화목 목회
우리의 인생의 불행과 고통이 어디서부터 온다고 생각하세요? 하나님과 화목하고, 자신과 화목하고, 이웃과 화목하는 진정한 화목을 회복하게 될 때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영원히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