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복음화(39)                                                     (2018. 10. 21)
    그 간청함을 인하여
    누가복음 11:5-13

  지난 번 미국으로 떠나기 전 예수님께서 한 가지만이라도 족한 것으로서요. 말씀과 기도의 영적 교제의 충만한 삶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요. 오늘 계속해서 기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말씀하세요. 먼저 본문 이전 2-4절에는 우리가 모범으로 삼아야 할 주기도(Lord’s prayer)에 대해서 주님께서 가르쳐주시면서요. 하나님께 대해서 구할 것과 사람에 대해서 구할 것의 기도의 내용에 대해서 말씀하시고요. 그 다음에 기도의 자세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우리가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할 것인가 오늘도 본문 말씀 가운데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함
먼저 5-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또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벗이 있는데 밤중에 그에게 가서 말하기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꾸어 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하면” 한 사람에게 친구가 있었는데요. 밤중에 친구에게 찾아가서 말하기를 “친구야,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려주라 내 친구가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하고 사정을 한 거예요. 당시 유대 지방에서는 낮의 뜨거운 열기로 인해 밤에 여행을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여행 중에 있던 친구가 밤중에 찾아왔는데요. 떡 세 덩이 즉 한 사람의 한 끼 식사량도 없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어려웠던 가정이었음에 틀림이 없어요. 그런데 밤중에 친구가 찾아왔는데 먹일 양식이 없을 때 대부분의 경우 떡이 다 떨어졌다고 어려운 형편을 말하고요. 양해를 구하고요. 그 날 밤을 지샐 수도 있었지만요. 친구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권하고 그 순수한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요. 그는 밤중에 다른 친구 집에 가서 떡 세 덩이를 빌려달라고요. 자신의 자존심을 상해 가면서요. 사정을 하면서요. 매어달려야 했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구원도, 모든 치유의 역사도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동기가 되었듯이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그 중의 핵심 중의 하나인 기도도 바로 이 사랑이 동기가 되어야 해요. 바로 이 사랑이 없는 헌신도, 헌금도, 봉사도, 전도도, 선교도, 어떠한 교제도, 기도도 위선이요, 가식이요, 종교적인 행위에 불과할 뿐이에요.
예화) 어느 교회 목사님의 설교 준비

  그리스도의 사랑이 동기가 된 헌신과 봉사는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기뻐 받으시고요. 주님의 뜻을 이루고요. 사랑의 감동과 풍성한 열매를 맺지만요. 사랑이 동기가 되지 않은 헌신과 봉사는 주님의 뜻을 이루지도 못하고요. 주님의 영광을 다 가리우고요. 갈등과 불화만 가져오고요. 그 결과 자신에게도 어떠한 은혜도, 축복도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1-3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 그토록 사랑을 강조하였던 거예요. 그렇다면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의 마음 속에서 가장 쉽게 메말라가는 이 사랑을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거예요. 그것은 다른 길이 없어요. 인간의 감정으로는 사랑의 한계가 있잖아요? 자신의 마음에 들고, 자신의 말 잘 듣고, 자신에게 잘 해 주는 사람만 사랑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내 가슴에 못질을 하고요. 피눈물을 흘리게 하고요. 평생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는 철천지원수가 있다고 하더래도요. 우리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원수를 위해 십자가의 사랑을 간구하는 수 밖에 없어요. 우리가 기도해도 안 되면 금식하면서라도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내 자신의 감정이 아닌 성령님의 열매로 자연스럽게 맺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5:22-23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는 열매를 맺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24절에 뭐라고 말씀하세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증거한 거예요.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운데 우리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 자아가 죽어지게 될 때 비로소 내 감정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용서하게 되고요. 내 감정으로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하게 되고요. 내 감정으로 결코 섬길 수 없는 사람도 그 인간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내가져야 할 십자가라고 생각하고요. 끝까지 인내하면서요. 기쁨으로 섬기며 승리하게 되는 거예요. 여기에 십자가의 사랑의 승리가 있고요. 감동이 있고요. 축복이 있고요. 영광이 있는 거예요.
예화) 미국 메이저리그 LA 다저스팀의 투수 클레이튼 커쇼

  여러분, 우리의 신앙생활이 왜 불행과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줄 아세요? 내 마음 속에서 십자가의 사랑이 식어버렸기 때문이에요. 아직도 사랑하지 못하고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60 평생을 살아오면서 남을 해하는 사람이 잘 되는 것을 한 번도 보지 못했어요. 전직 대통령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주 힘없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남을 해하는 사람들은 평생토록 신앙생활을 아무리 해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다 잃어버리고요. 마지막 종말이 다 비참하고 불행하게 끝나버리더라고요. 그래서 내 자신이 진정으로 행복하고 축복되게 인생을 살려면요. 원수는 하나님의 심판에 맡겨버리는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하는  거예요. 바로 이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 신앙생활을 하고요. 바로 이 사랑이 동기가 되어 어떠한 어려운 속에서도 주님만 바라보며 기도하는 거예요. 저는 노량진교회 림인식 목사님에게서 목회를 배울 때 이렇게 ‘살리는 목회’를 수없이 깨우침 받으며 배웠어요. 그리고 치유하는 교회에 와서도 그렇게 했더니 지난 19년 동안 우리 치유하는 교회를 통해서 놀라운 기적의 역사들이 얼마나 많이 일어났어요? 그러므로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요. 주님만 바라보며 그 십자가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서요. 간청함으로 간구할 때 오늘도 우리의 삶 가운데 기적의 역사가 새롭게 일어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담대함으로 매어달려야 함
계속해서 본문 7-8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안에서 대답하여 이르되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문이 이미 닫혔고 아이들이 나와 함께 침실에 누웠으니 일어나 네게 줄 수가 없노라 하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 이처럼 밤중에 여행 중 찾아 온 허기진 친구를 위해서 찾아와서요. 자존심을 버리고 사정을 하는데요. 그 친구가 밖에 나와 보지도 않고요. 집 안에서 “나를 괴롭게 하지 마라. 우린 다 씻고 누웠다. 다시 일어나서 네게 줄 수가 없다”는 거예요. 물론 당시 유대의 풍습에는 옛날 우리처럼 부모와 자녀뿐만 아니라요. 종들까지도 한 방, 한 이부자리에 한 이불을 덮고 잤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주인이 일어나면 가족들과 종들까지 다 일어나야 하니깐요. 거절할 수 밖에 없었던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의 핵심을 밝혀 주세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비록 벗 됨으로 인하여서는 일어나서 주지 아니할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8)고 말씀하세요.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는 주님께서 강조하실 때 쓰시는 어법이라고 했지요? 비록 친구라는 이유로는 일어나서 안 줄지라도 그 간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그 요구대로 주리라고 말씀하셨는데요. 여기 ‘간청함’은 헬라어로 ‘ἀναίδειαν(아나이데이안)’이라고 하는데요. ‘부끄러움이 없는 뻔뻔스러움(shameless audacity)’이란 뜻으로요. ‘담대함’이라는 뜻으로서 전의 개역판의 강권적으로 청한다는 ‘강청함’이라는 번역이 더 나은 것 같아요. 다시 말하면 밤늦게 미안한 줄도 모르고요. 그저 굶은 친구를 먹이기 위해서요. 부끄러움이 없는 뻔뻔스러움으로라도 담대하게 구한 거예요. 그런데 그냥 친구라고 해서는 안 들어줄지라도 그 담대한 간구로 인해 그 요구를 들어주게 되리라는 거예요.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예요. 내 자존심 생각하고요. 세상 지위 따지고요. 교회 직분 따지고요. 주위 눈치 보고요. 내 체면 앞세우면요. 우리는 자신의 기도도, 다른 사람에게 기도 부탁도, 아무 것도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유교문화에 젖어 살다 보니깐요. 우리의 신앙도 유교문화에 깊숙이 젖어 있고요. 교회 안에도 유교문화가 많이 들어와 있어요. 그래서 그 하찮은 인간적인 자존심, 세상적인 체면, 교회 안의 권위 등을 생각해서요. 주님 앞에 온전히 매어달리지 못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화) 도둑질을 하다 경찰에게 붙잡힌 도둑

  그러나 우리가 주님 앞에 영적으로 바로 서면요. 주님과 우리 사이에 걸릴 것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고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매어 달려서요. 이 생명 다하도록 주님의 응답의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사실 이것을 주님께서 가장 두려워하실 거예요. 그렇잖아요? 우리의 자녀가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였는데요. 안 들어주었더니요. 식음을 전폐하고요. 금식하며 기도하면서요. 목숨을 담보로 매어 달리는 거예요. 그 때는 아무리 고집 센 부모도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이 나온 거예요. 이것이 바로 목숨을 건 신앙이고요. 목숨을 건 기도이고요. 목숨을 건 기적의 응답을 일으키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때 우리가 이렇게 목숨 걸고 담대히 기도하지 않고요. 새벽기도회 나와서도 매일 녹음기 틀듯이 형식적이고 습관적으로 기도하거나요. 자다가 졸다가가 버려요. 기도 안 한 사람보다는 낫지만요. 그런 사람에게는 어떠한 은혜도, 능력도, 변화도, 축복도, 기적의 응답도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 이보다 더 무기력하고요. 무능력하고요. 무책임한 기도가 어디에 있어요? 그래서 요한일서에서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를 향하여 이 담대함을 4번이나 강조하는데요. 요한일서 5:14에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주님의 뜻을 구하는 우리의 담대한 기도를 강조하신 거예요. 사실 우리 성도님들이 갖가지 안수기도 요청을 해 올 때 제 마음 속에 부담이 전혀 없는 것은 결코 아니에요. 그러나 제가 확실히 믿는 것은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와 육신의 질병을 모두 다 대신 지시고 치유해 주심을 확실히 믿고요. 고통당하는 양떼들의 아픔을 함께 느끼면서요. 응답을 주시고 안 주시고는 주님의 뜻이니깐요. 저로서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뿐이에요. 그런데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요. 놀라운 치유의 역사를 일으켜주시는 것이 기적인 거예요.
예화) 뇌경색이 치유된 한 집사님의 청년 딸 & 족저근막염이 치유된 한 교구권사님의 간증
예화) 우간다 박석출 선교사님의 간증

  이러한 기도의 응답들을 어떻게 인간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겠어요? 때로는 우리가 무지하고요. 무식하고요. 창피하고요. 부끄러운 것 같지만요. 십자가의 능력을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간청함으로 매어달릴 때 마지막 때 성령님을 물 붓듯 부어주셔서요. 하나님의 기적의 응답의 역사가 계속해서 불일 듯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가장 좋으신 응답을 확신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1-1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아버지 된 자로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결론적으로 구하는 이마다 받고요. 찾는 이는 찾아내고요. 문을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리는데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응답을 주실 때에요. 아버지로서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는데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는데 알 대신에 전갈을 주겠느냐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거예요. 사실 우리에게 성령님을 주신다고 하신 것은 그 분이 소유하신 세상 모든 것을 다 들어주신다는 약속과 다를 바가 없는 거예요.
예화) 점을 보러 간 교회 다니는 청년
예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이기호 교수가 쓴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에 나오는 이야기
      위임목사님께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으신 사랑의 간증

  이처럼 우리의 육신의 부모님도 우리의 필요를 다 아시고요. 때를 따라 그렇게도 감격스런 도움을 주시는데요. 하물며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어요? 우리의 아픔을 누구보다 더 잘 아시고요. 가슴 속 깊이 느끼시고요. 더욱 더 희생적으로 함께 나누시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보상해 주시고요. 언젠가는 가장 좋은 것으로 다 갚아주시는 거에요. 우리 생애에 못 갚으시면 자녀손들에게까지라도 다 갚아주시는 줄 분명히 믿으셔야 해요.
예화) 필라델피아 안디옥교회 호성기 목사님의 간증

  그래서 부족한 종이 지난 40년 동안 목회를 해 오면서 확실히 체험하고요. 치유목회를 하면서 늘 강조하는 신앙의 5대 강령(핵심적 진리)가 있는데요. 첫째,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요. 둘째, (그의 단 하나밖에 없는 죄 없으신 아들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변함없이 뜨겁게 사랑하시고요. 셋째, 우리의 모든 기도(작은 신음까지도)에 가장 좋으신 것으로 응답하시고요. 넷째, 지금도 기적으로 우리를 치유하시고 역사하시고요. 마지막으로 다섯째,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이에요(믿으십니까?). 그러므로 어떠한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가장 좋으신 성령님의 응답을 확신하며 간청함으로 매어달릴 때 어떠한 어려움도 모두 다 승리하며 나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전교인체육대회 림보 경기에서 부상을 입으신 사모님 간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의 한 치 앞을 알 수가 없어요. 또 시시때때로 부딪혀오는 삶의 환난 속에서 우리의 힘만으로 이겨낼 길이 없어요. 그러나 그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마음 속에 사랑이 동기가 되고요. 주님께 담대함으로 매어달리고요. 항상 가장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의 응답을 확신하면서요. 그 간청함으로 매어달릴 때 오늘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지켜주시고요. 합력하여 선을 이루셔서요. 놀랍게 영광 거두어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