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복음화(41)                                                     (2018. 11. 04)
     이것을 깨달으라
    누가복음 13:1-5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 우리를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가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예요.
하나님께 대해서나 사람들에 대해서 지은 죄가 우리를 불행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거예요. 그렇다면 회개가 너무도 메말라 가는 말세의 마지막 때에 우리가 이 죄의 문제에 대해서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죄를 지으면 반드시 고통이 따름을 깨달아야 함
본문1절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성서학자들은 여기 갈릴리 사람들이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이란 유다 헤롯왕을 로마제국이 파송한 빌라도총독과 원수 되게 한 일이나(눅23:12) 그 후에 호적을 할 때에 갈릴리의 유다가 일어나 백성을 꾀어 따르게 하다가 그도 망하고 모든 사람이 흩어진 일을 말하기도 하지만요(행5:37). 교회 역사학자인 요세비우스의 기록에 의하면 당시 끊임없이 일어난 유대인의 반란과 거기에 대한 로마제국 군인들의 무자비한 탄압정책에 의해 빚어진 일로 봐요. 이러한 사건들은 유대인이 운집한 절기에 일어나서요. 유월절 제사를 드리다가 3천 명의 유대인이 제물처럼 학살을 당하기도 했고요(Jos. Ant. xvii. 9:3). 무려 2만 명이 학살당한 적도 있었다고 해요(Ibid. xx. 5:3). 그런데 당시 유대인들은 불의의 재난을 그들의 죄의 형벌로 인한 결과로 이해하였어요(요9:2, 욥4:7, 8:4, 20, 12:5 등). 이것은 소극적이고 율법적인 관점의 고통의 해석이에요.
이처럼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요. 첫째는 마음이 평안하질 못해요. 그러니까 둘째로 육신의 건강도 잃어버려요. 그 결과 셋째로 삶의 축복도 잃어버려요. 더 나아가서 주위의 신뢰를 잃어버리고요. 주님과의 관계까지 다 깨어져 버리고 말아요. 그래서 가정에서부터 관계가 무너지고 말아요. 가정 일에 너무도 무관심하고 비협조적인 집사님들이 있었어요.
예화)사오정 면접본 이야기
이처럼 부패하다 보니까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러한 죄로 인한 큰 혼란에 빠져 있어요. 이처럼 우리 부모세대가 모범이 되지 못하니깐요. 자녀들까지도 우리와 똑같이 죄악의 시험에 빠지고 마는 거예요.
예화) 강남의 한 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인 아버지가 쌍둥이 딸들에게 시험문제를 유출사건
예화) 웹하드 업체 회장의 욕설, 구타, 폭행사건
그래서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세요. 그래서 저는 우리 교우님들이 질병을 앓거나  사고가 나거나 고난을 당할 때 그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 바 되고요. 공중의 새 한 마리도 주님이 뜻이 없이는 안 떨어지는데요.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 큰 고난을 당하는데 주님께서 외면하시겠어요? 그래서 그러한 고난 가운데 있는 가정에 가서요. “주님, 이 고난의 밑바닥에서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해 주시옵소서!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새롭게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주님의 깊으신 사랑을 깨닫고 영적인 회복이 일어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간절히 기도해 드려요. 이처럼 영적인 회복 후 모든 문제는 물리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지으면 기필코 고통이 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고요.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죄악을 멀리하고 끊어 버리는 신앙생활을 해야 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죄가 많다고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님을 깨달아야 함
본문 2절과 4절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우리가 죄를 행하면 고통이 따른다고 했는데요. 주님께서는 해를 받은 갈릴리 사람들이 그 외의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들보다 죄가 더 있어서 그런 줄 아느냐고 물으시고요. 또 다시 예루살렘성 동남쪽에 있는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고 물으세요. 그런데 두 사건을 깊이 묵상해 보면 다른 성격의 사건들이었어요. 갈릴리 사건은 악한 사람들의 가혹한 행위에 의해서 야기된 죽음이었고요. 실로암 사건은 뜻하지 않은 갑작스런 불의의 사고에 의해서 야기된 죽음이었어요. 더욱이 실로암 망대 붕괴사건은 빌라도총독의 죄 때문에 발생한 사고라고 믿었기 때문에 희생자들은 더욱더 억울했던 거예요. 이 사건은 영적으로 볼 때 사람의 죄 때문에 고통을 겪는다는 그 동안의 율법적 사고에 더 이상 매이지 않고요. 꼭 자신의 죄 때문만이 아니라 억울하게 고통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복음적 해석을 더해 주신 거예요.
이것은 적극적이고 복음적인 관점의 고통의 해석인 거예요.
예화) 성수대교 붕괴사건, 삼풍백화점 붕괴사건-그들의 죄가 아니라 부실공사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흔히 사람들의 죄 때문에 고통을 당한다는 율법적 사고를 가지고 사람들의 고통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판단을 하고요. 비판을 하고요. 정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는 고난으로 인한 고통 그 자체보다도 주위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말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고요. 고난으로 인한 고통보다 더 큰 고통과 불행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화)애완견을 안고 버스에 탄 아가씨 –불평하는 아저씨를 가리켜 “해피야, 저 아저씨 가까이 절대 가지 마라!
이처럼 주위의 그릇된 시선과 말들이 사람을 더욱 더 고통스럽게 하는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위에서 고통을 겪는 사람이 있을 때 그들이 무슨 죄를 저질러서 저런 어려움을 당하는가 하는 율법적 상상을 해선 결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들의 고통을 위로해 주고요. 함께 나누면서요. 위해서 기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요.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서 우리에게 언제든지 닥쳐올 수 있는 고통을 대비하는 영적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는 거예요.
예화)유대교 랍비인 해럴드 쿠시너(H. S. Kushner)가 쓴 「선한 사람들에게 왜 불행이 오는가」라는 책 이야기
그래서 베드로전서 1:7에 “너희의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지 않으세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든지 저들을 위로하고요. 그들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요. 위해서 기도하면서요. 우리에게 언제든지 닥칠 수 있는 고통에 대해 영적 교훈을 삼을 때 우리가 영적으로 더욱더 깊은 은혜와 축복과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우리는 회개만이 살 길임을 깨달아야 함
본문 3절과 5절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오늘 본문에서도 예수님게서도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강조하시면서요.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두 번씩이나 강조하시면서 말씀하세요. 한 마디로 말하면 우리의 회개만이 고통 가운데 일어설 수 있는 살 길임을 깨우쳐 주시는 거예요. 이것은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고통에 대한 해석인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도 우리의 모든 불행과 고통의 원인인 죄에 대해서 민감하게 대처해야 하는 데요. 말세 교인들의 가장 두렵고도 심각한 문제는 영적 교만에 빠져서요. 자신에 대해서는 굉장히 관대하면서요. 남에 대해서는 굉장히 엄격하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입만 열면 그렇게 남에 대해서 비판하고요. 험담하고요. 비방하면서요. 고통스러운 지옥처럼 살아가는 거예요.
예화) 억울한 일을 당한 한 장로님이 상대를 탓하지 않고 참회하는 모습에서 은혜를 받은 이야기
예화) 순천 덕민교회 쵝덕신목사, 오경아사모 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가 정말 신실한 신앙인이라면 아무리 억울하고 원통해도요. 남의 잘못까지도 자신의 잘못으로 받아들이고요. 참회하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가장 먼저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요. 다음은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이 존경하고요. 그 다음은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인정하고요. 더 나아가 세상 사람들까지도 다 알아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참회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해요.
그런데 우리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자기 자신이 항상 최고인 것처럼 착각하면서 사는 데 있어요. 솔직히 말해서 우리가 좋은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은 집안이고요? 많이 배웠으면 얼마나 많이 배웠고요? 돈을 많이 벌었으면 얼마나 많이 벌었고요? 높은 지위에 올랐으면 얼마나 올랐고요? 신앙의 체험을 깊이 했으면 얼마나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옛말에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있듯이요. 조금 많이 배우고 조금 많이 벌고 조금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조금 영적인 체험을 하면 교만에 빠져서요. 큰소리를 치면서요. 불평하고 원망하고요. 비판하고 험담하고요. 비난하고 정죄하면서요. 스스로의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여러분,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그것이 바로 지난 날 우리의 신앙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한계였던 거예요. 이처럼 우리는 겸손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아면서도 그렇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처럼 통회자복하고요. 온유하고 겸손하게 살기 위해서는요. 늘 강조하지만 저는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신앙의 위인들의 기도들보다도요. 누가복음 18:13에 나오는 세리가 멀리 서서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요. 다만 가슴을 치면서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드린 기도가 가장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아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자기 자신을 한껏 내세웠던 교만한 바리새인보다도 겸손히 엎드려 통회 자복한 바로 이 세리를 의롭다고 하시잖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회개만이 살 길이라는 심정으로 통회 자복하면서 엎드릴 때 거기서부터 우리의 인생의 문제는 풀려지고요. 앞길은 열려지고요.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을 닮아 모두에게서 인정받고 존경받는 감동적인 신앙생활을 해 나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브라질 김철기 선교사님이 쓴 「가슴 찢는 회개」라는 참회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비단 브라질 아마존 밀림에서 일생을 선교하시는 김철기 선교사님만의 경험일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 모두의 신앙생활의 실패의 경험이었던 거예요. 그러나 이제라도 죄를 지으면 고통이 따르지만요.
죄가 많다고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고요. 우리 자신을 돌이켜보면서 회개만이 살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때
거기서부터 우리 인생의 문제가 풀려지고요.  앞길이 열려지고요. 남은 인생 진정으로 참된 성도와 주의 종의 삶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