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48)                                                                          (2018. 12. 23)
                               무엇을 드리렵니까?(마태복음 2:1-12)
                                                         
  
우리는 오늘 구주강림절 넷째주일이요 성탄주일을 맞이했는데요.오늘 본문에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러 수만리 사막길을 보배합에 귀한 선물을 안고 찾아 온 동방박사 세 사람의 이야기가 나와요. 헤롯왕 때였는데요. 교회의 오랜 전설에 의하면 그 세 사람은 실존했던 인물로서 그들의 유골이 4세기에 성 헤레나에 의해 발견되어 오늘날 이스탄불의 성 소피아 교회에 안치되었다고 해요. 

1. 우리의 믿음을 드려야 함
    먼저 본문 11절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교회의 오래토록 전해지는 말에 의하면 이 황금을 바친 동방박사는 멜키올(Melchior)로서 유럽에서 온 백인 노인이었는데요. 동방박사 멜키올은 보석 상자를 열어 교부들(이레니우스, 저스틴)의 해석과 같이 아기 예수님의 만왕의 왕으로 오심을 증거하기 위해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던 거예요. 이처럼 황금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값비싸고 귀중한 가치를 상징했어요. 그러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의 해석처럼 이 황금은 영적으로 베드로전서 1:7의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연단 받은 믿음을 상징하였던 거예요. 
    우리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질 때 믿음장인 히브리서 11:1-2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고 증거하듯이요.우리가 믿음을 가지면 미래의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이루어지고요. 과거의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를 보게 되는데요. 지난 날 우리의 신앙의 선진들이 이 믿음을 가짐으로 수많은 믿음의 증거를 얻었던 거예요.그런데 말세의 마지막 때일수록 이러한 기적의 믿음을 찾아보기가 너무도 힘들어요.오죽하면 예수님께서도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고 말씀하셨겠어요?

(예화) 할아버지와 손자가 길 가다 만난 담임선생님 이야기
그래서 우리는 믿음장인 히브리서 11:6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는 말씀과 같이요.
우리가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데요.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요.우리의 억울함과 원통함도 다 풀어주시지만요. 자신을 믿음으로 찾는 자들에게 이 땅의 복도 주시고요.
하늘의 상을 주신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하는 거예요

(예화) 새벽기도에 빠지지 않는 91세 은퇴권사님과 84세 은퇴권사님 이야기
     그런데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이러한 믿음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수많은 인생의 실패와 좌절과 불행과 고통과 눈물의 연단 속에서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아오는 거예요.

(예화)  교회 나가는 것을 반대하는 한 여집사님의 남편 이야기
(예화) 고훈 목사 의 신앙시
     그러므로 첫 번째 성탄절에 동방박사 멜키올이 아기 예수님께 황금을 드렸던 것처럼 우리가 일생토록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지지 않을 금보다 더 귀한 믿음으로 나아올 때 우리도 또 다시 성탄주일을 맞이하면서 아기 예수님께 가장 값비싸고 존귀한 믿음의 황금을 드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사랑을 드려야 함
     계속해서 본문 11절 중반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유향을 드린 동방박사는 카스팔(Caspar)로서 그는 아시아에서 온 황인종 청년이었어요. 이 유향은 아라비아지방의 관목에서 나오는 송진으로 향로냐 분향에 사용하였는데요.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사용하였던 거예요. 그래서 동방박사 카스팔은 보석 상자를 열어 예수님의 신성을 상징하고자 유향을 드렸는데요. 고린도후서 2:14-15에 증거하고 있듯이요. 이 유향은 영적으로 말세의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가장 향기롭게 뿜어내야 할 사랑을 상징하였던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가 되어서요. 마태복음 24:12에 예언하였듯이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서 가장 약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사랑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매일 새벽기도회 때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를 암송하면서요.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수없이 기도하면서도 또 돌이켜보면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부끄러운 모습이 바로 이 사랑이 안 되고요. 아무리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거액의 돈을 벌었다고 해도요. 바로 이 사랑에서 우리의 신앙생활의 진정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1-3에 분명히 경고하지 않아요?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그 믿음도, 헌신도, 봉사도,  순교도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거예요.

(예화) 아담과 하와의 부부싸움
   그렇게 사랑이 메마른 사람일수록 스스로 불행과 고통을 느끼고요. 연자 맷돌을 매고요.                          파멸과 멸망의 심판을 자초하는 거예요. 그런데 말세의 마지막 때가 되니까 사랑이 메마를 대로 메마른 세상과 달리 사랑이 넘쳐야 할 교회마저도 주님의 사랑이 메말라 버렸으니 세상 어디에 가서 인정을 받고요.                     희망을 찾을 수 있겠어요? 

(예화) 은퇴하는 목사님 이야기
     그래서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경고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도 마음 속에 용서하지 못하고요. 사랑하지 못하고요. 감정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요.
지난 날의 시기와 미움의 감정을 통회자복하고요.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러 오신 예수님을 오늘 내 삶 가운데 모셔 들이고요. 그 분을 본받아 진정으로 변화된 사랑의 삶을 살아가게 되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라도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면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시고요. 다음에는 우리 주위 사람들도 우리를 인정하고요.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의 감격이 넘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예화) 한홍 목사 저  「아멘 다음이 중요하다」
(예화) 박항서 감독의 리더쉽 이야기
(예화) 새벽기도 오다 다친 권사님을 돌봐준 한 집사님 이야기
  아무리 목회가 어렵고 힘들어도요. 말로만 떠들고 큰소리치지 않고요. 말없이 묵묵히 사랑으로 섬기는 이러한 젊은 집사님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이 되는지 몰라요.그러므로 첫 번째 성탄절에 동방박사 카스팔이 아기 예수님께 유향을 드렸던 것처럼 오늘 우리도 성탄주일을 맞이하면서 일생토록 진정한 주님의 사랑의 향기를 날리게 될 때 우리의 가장 향기롭고 소중한 사랑의 유향을 아기 예수님께 드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우리의 소망을 드려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1절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아기 예수님께 몰약을 바친 동방박사는 발타살(Balthasar)인데 그는 아프리카에서 온 흑인 장년이었어요. 이 몰약은 송진으로 사형수에게 마취제로 쓰고요(막15:23). 시신에 발라 방부제로 사용했어요(출30:23, 요19:39).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의 인성을 상징하기 위해 이 몰약을 아기 예수님께 드렸는데요.우리에게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 너머의 영원한 천국의 소망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예화)  제주도 성산읍의 일출랜드의 날씨를 알려주는 신비한 돌멩이
   우리의 삶을 돌이켜 보면 우리의 종말이 언제 어떻게 닥칠지도 깨닫지 못하고요. 우리가 건강을 자신하지만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요. 그러면서도 세상 물질에 대한 탐욕에 빠져 살고요. 그러다가 갑자기 세상을 떠나가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에요? 그래서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 향락을 다 누렸던 다윗왕은 결론적으로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라고 확신을 가지고 고백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그저 주님께 대한 소망보다도 결국은 다 무너지고 말 세상의 욕심과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 자신의 불행과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다 고생시키고 희생시키고 마는 거예요.

(예화) 태안 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 청년 이야기
    너무도 감사하는 것은 우리 치유하는 교회 성도님들이 어떠한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더 이상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요.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을 볼 때마다 얼마나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지 몰라요.

(예화) 고 백정현 은퇴권사님 이야기
    이처럼 우리의 인생이 살았다 할 것이 없네요.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때 이 땅에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착각을 하며 살아가네요.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가요. 그러니 얼마나 어리석은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나 우리는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에요. 우리의 수고가 결단코 헛되지 않을 거예요.
   그러므로 첫 번째 성탄절에 동방박사 발타살이 아기 예수님께 몰약을 드렸던 것처럼 우리도 일생토록 머지않아 주님을 뵈오리라는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아갈 때 우리의 소망이 결단코 헛되지 않아서 아기 예수님께 우리의 소망의 몰약을 드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40년 전 전도하다 만난 주님 환상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래서 주님께서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이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25:40)고 하신 말씀처럼요.오늘 우리가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한 식수대 설치를 위해 부스러기 동전을 모으는데요. 우리가 사랑하는 가족들부터 시작하여 불우한 이웃들과 주위의 원수에 이르기까지 사랑으로 섬길 때 그것이 바로 주님께 대해 한 것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 뜻깊은 성탄주일에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 낮고 천한 몸으로 우리를 구원하시러 이 땅에 오신 우리 주님께 우리가 무엇으로 보답하며 드려져야 할까요?

(예화)  세계비전교회 김영빈 목사님 시 ‘난 난, 무얼 드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