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2) - 민족 복음화
로마서 9:1-5(2019. 01. 06)

     2019년 새해 첫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새 성전에 입당하면서 새로운 ‘영적사역’을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2012년 기독교 문화의 정착(신 6:4-9) 2013년 사회복지의 실천(마 25:40) 2014년 세계 선교의 실현(행 1:8)의 목표를 세웠고요. 새로운 ‘영적인 삶’에 대하여 3년 동안 2015년 영적 비움(빌 2:6-8) 2016년 영적 채움(시 81:10) 2017년 영적 나눔(마 25:40)을 실천했고 그리고 더 나아가 ‘영적비전’을 실천하기 위해 3개년 2018년 지역 복음화(마 9:35)에 이어 2019년 새해에는 ‘민족 복음화’(골 9:1-3)로 정했어요.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03회 총회에서는 금년 주제를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 되게 하소서”로 정하였는데요. 우리 교회의 금년 표어 ‘민족 복음화’와 어쩌면 그렇게 딱 들어맞는지요? 이것이 성령님의 역사인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민족 복음화’를 이룰 수 있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동족을 위한 슬픔과 고통을 느껴야 함
     먼저 본문 1-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을 아니하노라 나에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와 더불어 증언하노니”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진심으로 고백하는데요. 그에게 큰 근심이 있고요.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그의 양심이 성령님 안에서 그와 더불어 증언하신다는 거예요. 여기 그의 마음 속에 동족을 위한 큰 근심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다고 고백했는데요. 여기 ‘근심’은 헬라어로 ‘λύπη(뤼페)’로서 걱정, 염려보다는 ‘슬픔, 비애(sorrow)'를 의미하고요. ‘고통은 헬라어로 ‘ὀδύνη(오뒤네)’로서 신체적 고통(pain)보다는 ‘마음의 고통(anguish)’을 의미하는데요. 바울 사도의 마음 속에 동족을 위한 큰 슬픔과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었다는 거예요. 우리도 남한의 대한민국과 북한의 조선인민공화국, 두 나라로 나뉘어져 있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한민족인 거예요. 그러므로 대한민국의 복음화도 중요하지만 남북한 우리 민족의 복음화는 더욱 절박한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많은 때 북한을 생각하면 6·25전쟁을 떠올리면서 그들에 대해 증오와 경계의 대상으로만 받아들이기 쉬워요.
   <예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6·25전쟁 피해 현황 통계>
   <예화: 김정일 위원장과 수행원과의 대화>
   <예화: 중국의 김정일 위원장을 소재로 한 유머>
     그러나 목회를 하면서도 보면요. 이번 신년축복성회에 오셔서 큰 은혜를 끼쳐 주신 송용걸 목사님이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먼 거리는 머리부터 가슴까지의 30cm라고 하지 않아요? 우리가 머리로 차갑게 알 때는 매사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일 수밖에 없지만요. 가슴으로 뜨겁게 느낄 때는 그들이 우리의 동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느끼면서요.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랑의 방법들을 찾지 않을 수 없어요.
   <예화: 영화 ‘안시성’>
     북한 사람들이 아무리 우리를 죽이려고 해방 이후 지난 74년 동안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혀 왔지만요. 왜 우리가 그들에 대해 큰 슬픔과 그치지 않는 고통을 느껴야 하느냐는 질문에 분명히 이렇게 대답하고 싶어요. “그들도 우리 동족이니깐요!” 여러분, 우리가 이러한 철천지원수 관계에 있을지라도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어요? 고통 가운데서 가장 먼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겠어요? 다윗왕의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켜서 아버지를 죽이려고 하고요. 부하들이 배신을 하여 그들과 함께 자기를 죽이려고 할 때도 다윗은 시편 31:9에 “여호와여 내가 고통 중에 있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내가 근심 때문에 눈과 영혼과 몸이 쇠하였나이다”라고 그의 솔직한 심정을 주님께 다 고백해요. 그리고 마지막 24절에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all you who hope in the Lord, 여호와께 소망을 두는 너희 모든 자들아) 강하고 담대하라”고 외쳤던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서로 같은 동족이라는 것을 느끼는 순간 지난날의 모든 적대적인 감정들은 다 사라지고 그들의 아픔에 크게 슬퍼하고 고통을 느끼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형제와 동족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함
     계속해서 본문 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바울 사도는 그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라고 해요. ‘골육의 친척’은 헬라어로 ‘συγγενών kατα σάρκα(슁게논 카타 사르카)’라고 해서 ‘육신의 친척(즉 동족, 유대인)’이라는 거예요 바울 사도는 그의 형제 곧 육신의 친척(즉 동족, 유대인)을 위해서 자신이 영원한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서 지옥을 가더라도 원하는 바라고 선언하였어요. 그만큼 바울 사도는 형제와 동족에 대한 애끓는 사랑을 가졌던 거예요. 그것은 구약의 모세도 시내산으로 십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에 우상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출애굽기 32:32에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구했던 거예요. 그만큼 진정한 신앙의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해서 뿐만 아니라 동족에 대해 애끓는 사랑이 있었던 거예요.
   <예화: 로버트 박 선교사 이야기>
     우리 치유하는 교회가 민족의 평화 교류와 통일을 위해 ‘여리고성 3개년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벌써 금년이 마지막 해가 되었어요. 이 기도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것은 미국 얼바인 베델교회와 정동제일교회와 저희 치유하는 교회가 탈북민 여성을 치유하기 위한 ‘힐링 킹덤(Healing Kingdom)'을 진행하면서 탈북민 여성들이 생명을 걸고 탈북을 하는 과정에서 성폭행과 인신매매와 폭력으로 인해 죽음에 이르는 차마 귀를 열고 들을 수 없는 처참한 상황을 들었는데요. 그들의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과 불행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끼면서요. 그러나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능력의 한계에 절망했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대한 여리고성을 매일 한 번씩 엿새 동안 돌고 마지막 일곱째 알에 일곱 번 돌고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크게 성벽을 향해 소리쳤는데요. 뭐라고 소리쳤을 것 같아요? “여리고성아 무너져라!”고 외쳤을 것 같아요.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표현으로 한다면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여리고성아, 무너질지어다”라고 외쳤을 거예요. 그랬더니 그 큰 성읍이 무너져서요. 3,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무너진 채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요. 이번 제1코스 3차 이스라엘, 요르단의 성지순례 때 분명히 확인하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여리고성을 무너뜨리는 심정으로 새벽마다 간절한 기도부터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기적의 기도 응답은 기도를 시작한 지 1년 2개월이 되어갈 때 일어났어요. 작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이 열리면서 갑자기 3차에 걸친 남북정상회담과 1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면서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남북대화가 급진전 되었어요. 우리는 매일 새벽마다 전율하면서 감격했고요. 우리의 기도에 기적적으로 응답하시는 주님의 기적의 역사에 날마다 감사드리면서 계속해서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이렇게 우리의 동족들의 불행과 고통 가운데 견디다 못해 탈북을 시도하며 30만 명에 이르는 탈북민들이 중국을 비롯한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각 나라에 흩어져 살고요. 우리나라에 입국한 탈북민이 3만 2천 명에 이르고 있어요. 우선적으로 그들을 돌보고 또 차후에 남북 간의 평화교류가 허용된 후의 복음증거를 위해서요. 우리 교회에서는 재작년에 탈북민교회를 시작했습니다만 당장 눈앞의 탈북민뿐만 아니라 평화 교류 후의 통일 사역을 위해서요. 황해도에서 피난 내려오신 이강익 장로님을 중심으로 우리 교회는 북한전도 위원회를 통해 지난날 20억 원에 가까운 북한선교헌금을 적립해 왔고. 탈북민 치유하는 교회를 통해서 40여 명의 통일 사역자들이 모여서 기도하면서요. 남북 교류의 길만 열리면 우리가 올라가서 교회부터 세워서 복음을 전하고요. 농장과 빵공장을 세워서 북한 주민들의 감당키 어려운 생활고를 해소해 주면서 마을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거예요.
   <예화: 소련의 스탈린에게 도움을 요청한 김일성>
     그러나 중요한 것은 야고보서 2:15-17의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는 말씀처럼 형제와 동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그들을 불쌍히 여기면서요. 그들과 나누고 베풀며 섬길 때 주님께서는 잠언 11:25에 분명히 약속하세요. 그리고 잠언 28:27에 계속해서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자는 궁핍하지 아니하려니와 못 본 체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크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시는 거예요. 이 축복의 말씀대로 우리 치유하는 교회에 하나님이 복을 부어 주시는데요. 한국 교회들이 모두 다 침체되어 수가 줄어들고 재정이 줄어들고 후원하는 선교사 수가 줄어든다는데요. 우리 치유하는 교회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로 이렇게 예배가 초대교회와 같이 성령 충만을 간구하며 너무도 은혜로워서요. 매 주일 교인 수가 늘어가고 매년 재정이 늘어 가는데요. 작년만 해도 일반회계 2억, 특별 회계 2억 해서 4억이나 늘고요. 금년 선교사 파송도 8가정을 늘리고요. 선교사 후원도 3가정을 늘릴 수 있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와 동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실천할 때 우리에게 더욱 더 큰 복을 부어주시고요. 우리를 통해서 민족복음화가 더욱 더 기적적으로 놀랍게 이뤄질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광 돌려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4-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들에게는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는 만물 위에 계셔서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바울사도의 고통은 단순한 동족애에서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놀라운 특권 때문이었어요.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의 양자 됨과 하나님의 영광과 믿음의 조상을 통하여 주신 언약들(아브라함, 모세, 다윗, 새 언약 등)과 시내산에서 주신 율법과 레위기에 규정된 예배와 조상들도 이스라엘의 사람들의 것이라는 거예요. 육신으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에게 나셨으니 그는 만물위에 계셔서 세세에 영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께 이렇게 택함을 받고도 특권에만 사로잡혀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들에게 주어진 진정한 영광과 특권은 우리에게까지 복음이 전해져서요. 우리가 구원 받고요. 치유 받고요. 양육되어서 주님의 제자가 되어서요. 우리 모두 다함께 진정으로 하나님의 택함 받고 영광 돌리는 특권이 있다는 거예요. 특별히 이 마지막 때에,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여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가 되어서요. 이 땅의 복음화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민족 복음화를 이룰 때에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고 크게 영광 거두시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16-17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는 말씀과 같이 우리가 복음을 통해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해 나가야 하는데요. 우리의 동족들부터 시작해서 세계 열방을 행해 나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할 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면서요. 구원의 믿음으로부터 행함의 믿음으로까지 성숙하여져서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이요. 남은 여생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특별히 우리는 올해 2019년 기해년(己亥年), 60년 만에 돌아오는 ‘황금돼지의 해’를 맞이했어요. 지난 송구영신예배 때 돼지가 우리에게 주는 복에 대해서 자세히 말씀드렸습니다만 더 나아가 ‘영적인 돼지’의 의미를 살려서요. 연하장카드에 나온 바와 같이 다함께 읽어보십시다. “새해에는 더욱 건강해야 돼지, 사랑해야 돼지, 행복해야 돼지, 소망을 이루어야 돼지”가 다 이루어져서요. 우리 남북한 한민족이 동족으로서 선교하는 민족이 되어서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말세 마지막 때인 오늘의 현실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이 예수님의 재림에 쫓겨서요. 점점 지상교회 특히 복음의 열정이 불타는 한국교회를 융단폭격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외부의 환난이나 핍박보다는 내부의 불화와 분열에 의해서 다 무너지고 있어요. 그 근본 원인은 사탄에게 다 속아서요. 우리의 마음이 강퍅하고요. 완악하고요. 거짓되고요. 교만해져서요. 자신의 그 하찮은 자존심, 감정, 이해관계, 인간관계에 얽매여서요. 주위사람들에 대해서 칭찬은 못해주고 사탄에게 사로잡혀서요. 오해하고 불신하고요. 온갖 거짓으로 비방하고 험담하고요. 우리를 공격하고 끌어내리려고 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세상이나 교회나 평안한 데가 없고요. 온갖 불화와 분열의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해서요. 정작 우리의 이 땅위에서의 절대 절명의 사명인 전도와 치유와 양육과 봉사와 구제와 선교는 행하지를 못하고요. 입만 열면 “왜 우리 교회는 그렇게 전도밖에 모릅니까? 치유가 그렇게 중요합니까? 우리가 꼭 양육에 힘써야 합니까? 왜 자주 나와서 봉사하라고 합니까? 왜 우리 교인들도 어려운데 밖의 구제를 그렇게 많이 해야 합니까?  왜 북한이나 세계 선교지에 그렇게 헌금을 많이 써야 합니까?......”하고 불만과 불평을 터뜨리면서 주의 일을 방해하는 거예요. 언뜻 듣기는 그럴 듯 하지만 여기서 꼭 기억해야 할 중요한 사실은 정작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전도나 치유나 양육이나 봉사나 구제나 선교에 헌신하고 헌금하고 열정을 쏟는 사람들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이에요. 그들은 헌신한 일군들이 아니라요. 그러나 진정한 일꾼들의 공통점은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하는 자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금요일부터 글로리아채플에 작년보다 두 배 가까이 모여서 1,2부가 통합된 매일 새벽기도회로부터 시작해서 금요심야기도회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나오기 시작해서요. 예배나 성경공부나 부흥성회에 까지도 열심히 나오지요. 주님의 일에 헌신하지요. 물질 아까워하지 않고 헌금하지요. 몸 사리지 않고 봉사하지요. 목숨을 바쳐 열정을 쏟아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그러니 그들의 일생에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위로를 받고요. 새 힘을 얻고요. 복을 누리고요. 귀하게 쓰임 받고요.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되는 거예요. 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여생이에요? 그래서 베드로 전서 4:11에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이라고 강조 하지 않아요? 우리가 작년까지는 마을 목회를 통해 지역 복음화에 힘썼지만요. 금년에는 온 교회가 영적 부흥으로 민족의 동반자가 되어 민족 복음화에 힘쓰게 될 때 우리를 통해 민족을 구원할 뿐만 아니라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송용걸 목사님 간증 “북한 동족에 대한 사랑의 열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난 74년 동안 남북이 원수처럼 대적하며 살아 왔어요. 그 동안 동족상잔의 피눈물 나는 고생도 너무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이제는 그들이 우리와 한 피로 나눈 동족이기에 우리의 동족을 위한 슬픔과 고통을 느껴야 하고요. 형제와 동족에 대한 사랑을 가져야 하고요. 모두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될 때 우리의 꿈에도 소원인 통일과 민족 복음화의 꿈이 우리 세대에 기필코 이루어 질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