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3)-진정으로 의로운 자
누가복음 18:9-14(2019. 01. 13)

     우리가 금년표어인 민족복음화를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 복음서의 말씀을 계속해서 나누는데요. 작년 송년주일 억울한 과부와 불의한 재판장의 비유에 이어 오늘 계속해서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의 말씀을 들려주세요. 그런데 주님께서 이 비유와 말씀을 들려주신 대상이 누구냐 하면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음 사람들 멸시하는 자들에게 하신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에 이러한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아요? 남 탓할 것 없이 우리 자신의 모습임을 기억 하면서요.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진정으로 의로운 자가 어떠한 사람인가 이 시간도 들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말아야 함
    먼저 본문 11절의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여기 바리새인은 서서 기도 했는데요. 당시 유대인들의 정상적인 기도 자세였어요.(삼상1:26, 왕상 8:22, 마 6:5, 막 11:25) 그런데 우리는 본문을 깊이 묵상해야 되는 것은 이 바리새인이 서서 기도 했다는 서서는 13절에 나오는 세리가 서서 기도했다는 ‘서서’가 ‘ἐσtώς (헤스토스)’로서 능동태로 자발적으로 서서 기도했던 것과는 달리 여기서 바리새인은 헬라어로 ‘σταθείς (스타테이스)’로서 수동태로 쓰여 졌다는 것은 그가 자신을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의도적으로 서서 기도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어요. 감사기도 역시 유대인들의 기도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그들은(랍비) 첫째 이방인으로 태어 나오지 않는 것, 둘째 야만인으로 태어 나오지 않는 것, 셋째 여자로 태어나지 않는 것을 감사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는 진정으로 자신의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감사가 아니라요.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감사였어요. 그래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도둑질),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했어요. 여기 토색, 불의, 간음하는 자도 고린도전서 6:9-10의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행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자들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 주님이 이 바리새인을 의롭다 하시지 않고 책망하는 이유는 자신만 믿음으로 바로 서면 되지 왜 다른 사람들을 걸고 넘어지느냐는 거예요. 이 기도는 많은 사람을 비판하기 위한 기도지 결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가 아니었던 거예요. 이것이 벌써 마지막 때에 사탄이 교묘하게 우리를 무너뜨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에 가장 먼저 책망하시고 경계하게 하신 거예요. 왜 자신만 믿음으로 살면 되지 남의 허물을 들추면서까지 비판하느냐는 거예요.
<예화: 미국 건국 초기에 의회 이야기(조지 워싱턴)>
     그래서 마태복음 7:1-3, 5에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책망하시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도 깨닫지 못해요” “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만 보고 비판하느냐?”는 거예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려면요.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부터 빼어 내라는 거예요. 그리하면 형제가 감동을 받고 눈물을 흘릴 때에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자연스럽게 빠져 나온다는 거예요. 더욱이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고 기도했던 거예요. 사실 당시 세리들도 로마제국에 고용되어서요. 유대인동족들로부터 로마제국에서 원하는 세금만 거두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영리를 위해 세금 외의 돈을 뜯어 갔기 때문에 그들도 ‘토색(도둑질)’ 뿐만 아니라 ‘불의’하기까지 하였어요. 그들은 십계명 중 제 8계명 도둑질 하지 말라 제 10계명 네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라에 다 걸리는 사람들이었어요. 설령 걸렸다 할지라도 그러면 세리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일이지 왜 자신이 하나님이나 된 것처럼 영적인 교만에 빠져서 남을 정죄하느냐는 거예요. 그러니 그 세리가 바리새인의 기도를 들었다면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율법대로 돌로 쳐 죽이려는 사람들을 향해 뭐라고 하세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요 8:7)하시고요. 그 여자에게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권면 하세요. 여러분, 예수님도 율법대로(레 20:10, 신 22:22)하면 돌로 쳐 죽여야 할 간음한 여인을 용서 하시고 정죄하지 않으신데요. 자기가 원래 비난하고 정죄하고 다녀요. 이러한 사람들은 이미 영적 교만에 빠져서요. 사탄의 속임에 넘어가서요. 사탄의 도구로 이용당하면서요. 교회를 불화와 분쟁으로 몰아가고 있는 거예요. 이것을 우리가 영적으로 잘 분별하고 물리쳐야 그때 비로서 진정으로 주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요. 주님의 도구로 복되게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문제가 없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않는데요. 자신의 영적인 문제가 심각한 사람들일수록 교회 개혁을 운운하며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는 거예요.
<예화: 한국교회의 개혁을 외치던 비판적인 두 목사>
     사실 우리가 개혁을 외치며 큰소리치기는 너무도 쉽지만요. 내가 먼저 실천하며 모범이 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래서 개혁이 어려운 거예요. 그런데도 이 사실을 모르는 우매한 교인들은 그 개혁을 부르짖는 목사들만 선한 목자라고 보는 거예요. 저는 그 후로 지금까지도 개혁을 외치는 목사나 교인들은 안 믿어요. 개혁을 하려면 말없이 자신의 신앙과 삶부터 개혁 하라는 거예요. 사실은 그게 가장 힘든 거예요. 그런데 왜 자신의 신앙과 삶을 개혁하지 못하면서 다른 교회나 다른 목사들을 비판하느냐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보다는 자신부터 개혁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러할 때 진심으로 주님으로부터 의로운 자라고 인정받게 됨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지 말아야 함
     계속해서 본문 1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원래 유대인의 금식은 모세의 율법(레 16:16, 민 29:7)에 따르면 일 년에 한번인 속죄일에 금식을 하였구요. 포로 귀환기에 가서 연 4회로 증가 되었고요.(슥 8:19) 그 후 유대인의 유전은 이를 다시 증가시켜서요. 한주에 두 번씩 다시 말하면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간 목요일과 시내산에 내려온 월요일에, 또한 소득의 십일조는 율법의 요구로는 주 경작물(옥수수, 포도주, 기름, 짐승 등)이었으나 유대인의 유전은 이를 확대하여 채소에 까지 이르게 되어서요.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3:23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강조하였던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이 바리새인의 본색이 다 드러나는데요. 그가 왜 그토록 다른 사람들을 비판하고요. 그 곁에서 기도하던 세리까지 정리해야 했는가 하는 이유가 다 드러나게 된 거예요. 결국에 바리새인은 자기 자신의 의를 드러내고 싶었던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 수많은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요.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할는지 모르지만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시니까요. 하나님의 의를 알 수가 없고요. 자기 의만을 세우려고 하고요. 결국에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거예요.
<예화: 마하트마 간디의 대학시절 에피소드>
     그래서 로마서 10:2-3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경고하였던 거예요. 그래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해도 헛수고를 한 거예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의 뿐만이 아니라요. 자기 부요, 자기 명예, 자기 기득권, 자기 세력, 자기 영광을 위해 신앙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다 헛고생을 한 거예요. 그런 사람은 아무리 평생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해도요. 하나님께서 인정을 안 하실 뿐만 아니라요. 함께 사는 가장 가까운 가족들부터 인정을 안 하고요. 주의 종들도 인정을 안 하고요. 영적인 성도들로 인정을 안 하고요. 세상 사람들도 인정을 안 해요. 그러니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신앙생활을 한 거예요.
<예화: 출산으로 오해한 어느 임산부>
     우리는 많은 때 그 얇고 좁은 지식을 가지고 아는 체 하면서 자기 의를 내세울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학교에 가면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고요.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듯이요. 교회에 오면 주의 종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자기 의는 다 버리고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분별하고요. 하나님의 의에 편에 서서 바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뿐만 아니라 주의 종들이나 영적인 성도들이나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세상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진정으로 의로운 자들이 모두 다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말세의 마지막 때 수많은 교인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요.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으니깐요. 자신은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착각할지 모르지만요. 하나님의 의를 알 수가 없고요. 자기 의만을 세울려고 하고요. 결국에는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0:2-3에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고 경고하였던 거예요. 그러니 평생 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헛수고를 한 거예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의 뿐만이 아니라요. 자기 부요, 자기 명예, 자기 기득권, 자기 세력, 자기 영광을 위해 신앙생활을 해 왔기 때문에 다 헛고생을 한 거예요. 그런 사람은 아무리 평생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했어도요. 하나님께서도 인정을 안 하실 뿐만 아니라요. 주의 종들도 인정을 안 하고요. 영적인 성도들도 인정을 안 해요. 더 나아가 주위의 가족들도 인정을 안 하고요. 세상 사람들도 인정을 안 해요. 그러니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신앙생활을 한 거예요?
<예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방문>
     여러분의 주인은 주님이십니까? 여러분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체의 주인은 주님이십니까? 여러분이 속해 있는 우리 치유하는 교회의 주인은 목사도 아니고, 장로도 아니고, 권사도 아니고, 집사도 아니고, 교인도 아니고, 주님이심을 확실히 믿으십니까? 적어도 우리가 이처럼 자기 의, 자기 명예, 자기 이익, 자기 영광을 다 버려야 진정으로 존경받고요. 사랑받고요. 귀하게 쓰임 받고요. 영광 돌리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이처럼 자기 의는 다 버리고요.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분명히 분별하고요. 하나님의 의에 편에 서서 바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뿐만 아니라 주의 종들이나 영적인 성도들이나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는 진정으로 의로운 자들이 모두 다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죄인 됨을 고백하며 살아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바리세인은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성전 가까이서 기도했겠지만요. 아마 이 세리는 성전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요. 멀리 서서요. 당시 유대인들은 기도할 때 하늘을 우러러 보는 것이 정상적인 자세였는데요(시40:12, 123:1, 스9:6, 요11:41).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요. 다만 가슴을 쳤는데요. 이 ‘가슴을 쳤다’는 단어가 헬라어로 ‘ἔτυπτεν(에튑텐)’인데 미완료과거형으로 기록된 것을 보아서요. 한두 번 가슴을 친 것이 아니라요. 통회하고 자복하는 심정으로 계속해서 가슴을 쳤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세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 대해서는 생각할 여유가 없어요.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통회 자복한 거예요. 원래 헬라어 원문에는 ‘하나님이여, 죄인인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하고 간구했던 거예요.
이 참회의 기도는 신구약 성경 속의 영적인 사람들의 기도 가운데에도 계속 되풀이되었던 기도였어요(시25:11, 40:12, 스9:6, 단9:8, 딤전1:15 등). 사실 이렇게 참회 기도를 드리며 참회적인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말세가 되면 사탄에게 속아서요. 교만해져서요. 자기가 다 최고인 줄로 착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기도 가운데 가장 메말라가는 기도가 바로 참회 기도예요. 다른 사람만 바로잡아 달라고 기도하고요. 정작 자신의 죄와 허물은 통회 자복을 안 해 버려요.
<예화: “사랑한다!” 고백 못하시는 경상도 목사님>
     우리도 우리 죄를 고백하기가 이렇게 어렵진 않나요? 그러니 무슨 삶의 은혜가 있고요? 기쁨이 있고요? 감격이 있고요? 변화가 있고요? 축복이 있겠어요? 그래서 요한일서 1:8-9에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라고 교훈하시며 권면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죄가 없다고 하고 의로운 체 하면 스스로 속이고요.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주님은 믿음직스러우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요.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에요. 우리는 항상 고백적인 참회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우리 그리스도인은 의인이 동시에 죄인이라고 했어요. 영으로는 의인이 되었지만 아직도 죄인 된 육을 입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는 엄밀하게 말하면 다 죄인이에요. 성경에서도 로마서 3:10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가 의인이고 다른 사람은 죄인인 것처럼 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죄인이 죄인에게 뭐라고 할 수 있겠어요? 불쌍히 여기는 길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지난 수요일 제직헌신예배에 작년 8월에 부흥회를 인도했던 남양주 주평강교회 정귀석 목사님이 오셔서 저희에게 필요한 너무도 귀한 말씀을 주셨는데요. 그 중에 우리가 은혜롭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평소에 불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옆에 계시는 남성들에게 엄지 척 하면서 해 보세요. “멋져부러!” 여성들에게도 엄지 척 하면서  해 보세요. “이뻐부러!” 다함께 쳐다보며 엄지 척 하면서 해 보세요. “좋아부러!” 맘에 들지 않는 분들이 있으면 그러세요. “괜찮아부러!” 그것도 안 되고 열 받게 하는 분들에게는 그러세요. “은혜 받아부러!” 이제는 우리가 치유의 은혜를 받아서요. 주님 앞에서 통회 자복하면서요.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예화: 외국어에 능통한 작은 아버지> <예화: 목포창조교회 김경윤 목사님> <예화: 영국 웨일즈 부흥운동>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고 살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진정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고 위하게 쓰시고 복되게 영광 거두어주실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영화 ‘말모이’>
     우리 말 사전이 나오기까지 조선어학회 대표를 비롯한 여러 한글 학자들이 있었지만 이렇게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한 김판수 같은 무명의 사환이 있었기에 결국 해방 후 우리 말 사전은 이 땅 위에서 빛을 보게 된 거예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많이 배우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돈을 많이 벌고 교회에서까지 중한 직분을 맡았다고 그 사람이 진정으로 의로운 자는 아니에요.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셨듯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아니하고요. 자기 의를 드러내지 아니하고요. 자신이 죄인 됨을 고백하며 참회하는 삶을 살아갈 때 진정으로 주님으로부터 인정받고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주의 종들로부터도 인정받고 교인들로부터도 인정받고 세상 사람들에게까지도 인정받는 진정한 의로운 자라 인정받으며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릴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