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6) (2019. 2. 17 주현절 후 여섯번째주일)
성령님을 뜨겁게 체험하라/ 요한복음 7:37-39             

초막절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기념하기 위해 광야에 나가서 장막을 짓고 지내면서 조상들의 신앙을 기념을 합니다. 초막절은 또한 추수절기이기 때문에 감사의 예물을 드리면서 마쳤습니다. 초막절이 끝나던 날 성령님에 대해서 하신 은혜의 말씀이 오늘 본문 가운데 나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세계 선교 주일을 맞이하면서 어떻게 성령님을 뜨겁게 체험하고 환난 많은 이 세상 가운데서도 남은 여생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함(37)
요 7: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절기의 끝날을 가장 큰 날이라고 하신 것은 초막절을 마치는 마지막 날이 제 8일째 되는 날로서 축제의 절정에 이르기 때문입니다(레 23:36, 39, 민 29:35, 느 8:18). 이 날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길고 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을 기념하면서 각자 장막을 거두고 집으로 돌아가는 날이었습니다. 이 날도 제단 주위를 일곱 번 돌면서 ‘호산나!(Save us now, 지금 구원해 주소서)’를 외쳤기 때문에 ‘큰 호산나의 날’이라고도 하고, 종려나무의 잎을 흔들어 떨어뜨리기 때문에 ‘종려나무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제단 곁에서 종려나무 가지를 쪼개기 때문에 ‘종려나무 가지를 치는 날’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기 위해 고난주간에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실 때의 장면을 연상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때 예수님께서 서서 먼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쳤습니다. 당시 초막절 기간 중 7일간 매일 아침 제사장은 금항아리에 실로암 못의 물을 길어다가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사 12:3)고 군중들이 찬양하는 가운데 제단 서편에 그 물을 부었습니다. 그것은 광야생활 중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신 것을 기념하였던 것입니다(출 17:6, 민 20:10). 이 일을 회고하면서 그들이 물을 마셨던 반석이 예수님 자신임을 깨우쳐 주시면서(고전 10:4), 예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성령님을 마실 것을 명령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교회를 다녔다거나 봉사를 많이 하거나 직분을 받았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성령님을 체험하지 않으면 자신의 아는 지식이나 경험이나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의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삶의 어떠한 변화나 감동이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옥과 같은 실패와 불행과 고통의 삶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불신앙의 죄부터 철저히 회개하고 우리의 빈 마음에 예수님을 개인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할 때에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이 우리에게 임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이 성령님을 모셔 들이는 영적인 체험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63:1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갈망하고 내 육체가 주님을 앙모한다는 뜻은 내 영·혼·육이 전인적으로 주님을 갈망한다는 뜻입니다. 여기 ‘황폐한 땅’은 광야를 말하는데, 풀 한포기, 나뭇가지 하나 없는 그야말로 황폐한 땅을 말합니다. 광야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רבָּדְמְִ (미드바르)’라고 하는데 ‘말씀으로부터’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광야에서 말씀을 붙잡고 살아갔더니 말씀으로부터 모든 필요를 공급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1의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위대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하게 될 때 누가복음 11:13에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유머) 호두과자
혹시 호두가 안 들어있는 호두과자처럼 성령님을 모시지 않은 신앙생활은 헛고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직도 미워하는 감정을 안 풀고, 내 마음속에 기쁨이 없고, 다른 사람과 화평하지 못하고, 오래참지 못하고 자신의 감정에 사로 잡혀 살아가고, 친절하지 못하고 상처만 주고, 선행을 행하지 못하고 불의한 악행만 되풀이 하고,  맡겨진 일에 충성을 다하지 못하고 불충성하고, 겸손하거나 온유하지 못하고 교만에 가득차 큰 소리만 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결국 평생 종교생활을 했어도 진정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기 때문에 성령님의 열매를 맺지 못하고 정반대로 사탄 마귀의 열매를 맺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우리의 삶 속에 모시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연스럽게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님의 열매를 믿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love)과 희락(joy)과 화평(peace)과 오래참음(patience)과 자비(kindness)와 양선(goodness)과 충성(faithfulness)과 온유(gentleness)와 절제(self-control)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잖아요? 성령님을 우리의 마음속에 모시게 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이러한 성령님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맺어지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화) 유관순 열사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의 첫 걸음인 주님부터 새롭게 만나고, 불신앙의 죄부터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함으로써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뜨겁게 체험하게 될 때 우리 자신의 성격과 행동과 삶만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관, 가치관, 세계관까지도 놀랍게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으며 위대한 성령님의 역사를 일으키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함(38)
요 7: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여기 “성경에 이름과 같이”에서 나오는 ‘성경’이란 헬라어로 ‘ἡ γραΦή(헤 그라페)’ 즉 ‘그 성경’이라고 기록된 것으로 보아서 구약성경 이사야 55:1의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는 말씀과 이사야 58:11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들을 연상케 합니다. 이처럼 넘치는 생수의 강이 그 배에서 흘러나리라고 한 것은 잠언 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말씀 하셨듯이 이는 우리의 마음 속 모든 곳에 성령님의 생수의 강이 흘러 넘칠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받아야 할 성령님의 충만함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늘 한계를 느끼는 문제는 예배를 드릴 때나, 기도회에 참석할 때나, 성경공부를 할 때나, 부흥회에 참석할 때나, 사랑의 친교를 나눌 때나, 믿음의 봉사를 할 때나,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 전도를 할 때에는 그렇게 기쁘고 행복하면서도 왜 가정이나, 직장이나, 세상에 나가서는 그 기쁨과 행복을 다 잃어버리고 살아갈까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의 충만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 가운데 “충만함을 받으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πλελύστε(플레뤼스테)’라는 단어를 쓰는데 먼저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과거에 은혜를 사모하고 체험했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삶 가운데 성령님으로 충만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수동태’로 기록된 것은 우리가 애쓰고 수고한다고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함으로 주님께서 부어주셔야 셩령님으로 충만해 지기 때문에 간구해야 합니다. 또한 ‘명령형’으로 기록된 것은 성령님의 충만을 받는 것이 우리가 받고 싶으면 받고 받기 싫으면 안 받는 취사선택할 사항이 아니라 영적인 성도라면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의무적으로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머) 꿩 사냥꾼의 꿩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가 이처럼 성령님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고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으로 충만함을 간구하며 체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거기서 우리의 인생의 모든 문제는 다 풀려지고 다 해결받고 다 앞길이 열려지기 때문입니다.
예화) 로버트 하디선교사와 길선주 목사의 회개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삶 가운데 가장 쉽게 놓치면서도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바로 이 성령님의 충만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기적의 응답을 받게 되고, 매일 성령님의 기적 속에서 살아가게 되고, 우리의 당면한 모든 문제들이 여기서부터 다 풀려지고, 우리의 모든 앞길이 여기서부터 다 열려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성령님과 함께 나아가야 함(39)
요 7:39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리라 하신 것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성령님을 받게 된 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시던 때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다가 약속하신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고 40일 동안 이 땅에 부활의 증거를 보여 주시고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후에 약속하신 성령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그때 비로소 성령님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성령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 초막절에 물을 길러다가 제단 곁에 붓는 것은 성령님을 부어주실 것을 상징하신 거였는데 요엘 2:28의 예언의 말씀이 430년 후에 그대로 성취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 2:17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말세 마지막 때에 성령님을 부어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이 땅을 떠나 하늘나라로 가셨지만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대신 보내주신 그 성령님과 믿음으로 함께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부딪혀 와도 한때는 어려움을 겪을 수 있지만 결국에는 그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능히 이겨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면 날마다 천국에서 살아가게 되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모든 기도를 가장 좋은 방법으로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삶 가운데 성령님께서 살아 역사하시게 하는 것은 결국 우리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래서 늘 강조하지만 마태복음 17:20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우리의 믿음을 그토록 강조하신 것입니다. 정정숙 사모님이 쓰신 「성서 식물」이란 책에보면 겨자씨는 들깨와 같이 너무도 작은 씨앗입니다. 그만큼 작은 믿음을 가져도 산을 옮기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화) 사모님의 허리 치료
성령님과 함께 믿음으로 살지 않는 신앙생활은 황소가 트럭을 끄는 것과 같이 자기의 힘으로 살아가려고 하는 삶처럼 너무도 어렵고 힘든 것입니다. 신앙생활 좀 하다가 스스로 지쳐 쓰러지고 마는 것입니다. 성령님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가는 삶은 트럭이 황소를 끄는 것처럼 성령님의 도우심과 주시는 복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믿음의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방법은 다른 길이 없습니다. 그 다음 마태복음 17:21에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는 너무도 많은 때 이 기도와 금식을 너무 묵혀 둡니다. 그리함으로 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스스로 잃어버리고 살 때가 얼마나 많아요?
예화) 성지 순례중에 있었던 기도의 응답
예화) 광복의 기적
이처럼 우리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하나님의 교회나 나라나 민족이나 열방 가운데 우리가 성령님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갈 때 우리의 간구에 성령님께서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날마다 순간마다 기적적인 승리의 역사속에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갈릴리 선상 예배
우리는 많은 때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성령님의 충만한 은혜를 사모하지도, 체험하지도 못하고,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지도 못하고, 성령님과 함께 믿음으로 살아가지도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주님께서 여러분 앞에 나타나셔서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뭐라고 대답하실 수 있어요? 진정으로 주님만 사랑하고,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가진 모든
 것 다 쏟으며 살고,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생명까지 아낌없이 드릴 수 있다고 고백하실 수 있으세요? 그렇게 못한다면 남은 여생이라도 성령님의 은혜를 사모해야 하고, 령님의 충만함을 간구해야 하고, 성령님과 함께 믿음으로 나아가게 될 때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을 뜨겁게 체험하며 놀라운 기적의 역사 속에 승리하며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