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12)                                                                                 (2019. 3. 17)
선한 목자가 되라/요한복음 10:7-12

     요즘의 세상을 보면 이 세상 어디를 둘러보아도 희망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예요. 우리 주위의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소식들이 실망과 충격이 끊이지를 않아요.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는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만 바라보고요. 우리가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언제 어디서나 선한 목자로서 살아가야 하는데요. 그렇다면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1. 선한 목자는 영혼을 구원함(9절)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예수님께서는 양의 문이 되셔서요. 양이 그 문으로 들어가야 우리 안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는 것과 같이요. 여기서 우리의 문이라고 하지 않고요. 양의 문이라고 하신 것은 양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에 강조코자 하신 거예요. 이처럼 목자는 양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요. 그것들을 지키면서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게 하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선한 목자는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생명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면서요. 그들이 구원 받도록 하고요. 들어가며 나오며 영의 양식을 얻도록 해야 해요.
예화) 현 세태 이야기
     더욱이 이렇게 어지러운 세대 가운데 우리의 젊은 자녀들은 얼마나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N포세대의 절망감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고요? 더구나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민생법안과 서민들의 경제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데요? 정작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모든 국민의 모범이 되어야 할 정치권에서는 저질적인 이념논쟁과 국가원수 모독논쟁과 친일논쟁으로 언제까지 이러한 끝없는 소모전을 되풀이해야 하는지요? 이제는 더 이상 듣기 싫은 이념논쟁은 그만하고 북한 좋아하는 사람들은 북한가고 일본 좋아하는 사람들은 일본 가서 살면 될 것 아니에요?
     그것은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일 년 내내 전도 한 명 안 하는 사람들이 사탄에게 속아서요. 온갖 거짓으로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을 음해하거나 비방하는 말이나 글들로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에게 상처를 주고 시험에 빠뜨려서 교회에서 쫓아내고요. 누가 옳고 그르니 죄인들끼리 도토리 키재기 싸움을 하면서 교회를 분쟁으로 몰고가 무너뜨리는 일들이 말세 교회마다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오죽하면 마태복음 18:6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고 분명히 경고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부활의 기쁜 소식을 온 천하게 전해야 할 이번 부활주일 새생명초청축제를 앞두고요. 이를 연례적인 행사로 맞이하고 우리끼리 부활절 축하잔치나 열고 달걀이나 삶아 먹으면 부활절이나 새생명초청축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지금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은 영원히 멸망당할 지옥 불못을 향해 떨어져 죽어가고 있는데요. 이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하는 거예요.
유머) 한치와 참돔 이야기 / 흙 돼지 이야기
     우리 인생이 한 치 앞도 못 내다보고요. 결국에는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아니에요? 그런데 뭘 내세울 게 있고요? 뭘 바랄 게 있겠어요? 그러므로 이제라도 주위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을 사랑으로 감동적으로 섬기면서요.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 1명 이상 작정하고요. 10번 이상 만나고요. 100번 이상 연락하고요. 1000번 이상 기도해서요. 부활의 기쁜 소식을 전해서요.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영혼을 살려내는 거예요. 거기에 부활주일의 의미가 있고 새생명초청축제의 기쁨이 있는 거예요.
예화) 한 손에 붕대를 감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목사님 이야기
     그러므로 이번 새생명초청축제에, 아니 우리의 남은 여생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해야 해요. 그래서 디모데후서 4:2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고 분명히 명령하고 계시잖아요? 그리할 때 우리는 선한 목자로서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려내 그 어느 해 보다도 의미있고 보람된 이번 부활주일 새생명초청축제를 맞이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선한 목자는 은혜를 더욱 풍성히 받게 함(10절)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요.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라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우리가 구원의 은혜뿐만 아니라 삶 가운데 더욱 풍성한 은혜의 삶을 누리길 원하세요. 그래서 요한복음 1:16에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고 증거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의 은혜 외에 더 깊은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야 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더하여 더욱 더 풍성한 은혜의 삶을 살아야 해요. 사실 지금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주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왔어요?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 해도 주님의 은혜예요. 건강한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암 안걸린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암에 걸렸다가 이렇게 살아난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먹고 입고 쓰고 살아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조금이라도 모을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이렇게 은혜롭고 행복한 교회에서 신앙생활 할 수 있는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큰 어려움 없이 살아가는 것도 주님의 은혜예요.
예화) 허리디스크로 인해 고생한 어는 안수집사님이야기
     우리는 지금까지 받은 은혜만 누리며 살아도 은혜롭고 행복하고 축복되게 잘 살 거예요. 그런데 이 감격스러운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살다가요. 갑자기 어려움을 당한 후에 뒤늦게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후회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많은 때 교회에서 불평과 원망에 사로잡혀 문제를 일으키는 교인들을 보면 대부분 어려울 때 그 큰 주님의 은혜를 입었던 분들이 이제 살만하니까 목을 치켜들고 세워 ‘목이 곧은 백성(?)’이 되었다가 그 큰 어려움을 겪어요. 그러니 지난 41년 동안 목회해 오면서 그러한 교인들이나 그 자손들을 보면서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지 몰라요? 그래서 우리 속담에도 “원수는 물에 새기고 은혜는 돌에 새기라”는 말이 있어요. 원수는 물에 새겨서 잊어버려야 행복하게 살지만요. 은혜는 돌에 새겨서 평생 잊지 말고 갚아야 축복 되게 산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시편 103:2 에서도 다윗왕은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고 강조하셨던 거예요.
예화) 1918년 사진사 에릭 엔스트롬(Eric Enstrom)이 찍은 The Grace 사진 이야기
     여러분, 은혜는 감사의 눈으로 바라볼 때 은혜로 느껴지는 거예요. 감사의 눈으로 바라보지 않으면 결단코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수도,  느낄 수도, 누릴 수도 없는 거예요. 이 은혜를 발견하지 못할 때는 느낄 수도 없고요. 느끼지 못할 때는 체험할 수도 없고요. 체험하지 못할 때는 누릴 수도 없는 거예요. 우리가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고 느끼고 누릴 때 비로소 우리가 아무리 못 배우고요. 가난하고요. 병들고요. 자랑할 것 없고요. 내세울 것이 없어도요. 진정으로 날마다 천국을 체험하면서요. 천국의 위로와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날마다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아가는 데에는 다른 길이 없어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충만함을 통해서만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서 5:18에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신 후에 성령 충만한 삶의 증거로 19절의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의 찬양의 기쁨과 20절의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의 감사의 행복과 21절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의 복종의 섬김을 강조하신 거예요.
예화) 포항지역 연합치유성회 이야기 / 발산교회 이종선 목사님 이야기 
     우리가 기도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나는 거예요. 기도를 안 하는 사람은 평생토록 자신의 힘이나 능력만 의지하며 사는 사람이에요. 그러나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이 땅에 끌어 내리는 사람이고요. 하나님의 권능을 이 땅에 끌어 내리는 사람이고요. 하나님의 축복을 이 땅에 끌어 내리는 사람이고요. 하나님의 행복을 이 땅에 끌어 내리는 사람이고요. 하나님의 기적을 이 땅에 끌어 내리는 사람이에요. 옛말에 “걷는 사람 위에 뛰는 사람 있고요.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고요. 나는 사람 위에 어떤 사람 있다고요?(업힌 사람 있다니깐요.) 기도하는 사람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은혜에 업힌 사람이고요.  권능에 업힌 사람이고요. 축복에 업힌 사람이고요. 행복에 업힌 사람이고요. 기적에 업혀 살아가는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내일부터 시작하는 ‘영적부흥 기도대행진’에 모두다 나아와 1시간 이상씩 기도하고요. 사순절 특별새벽기도회에 나아와 기도하고요. 평소의 새벽기도회와 금요 심야치유기도회에도 나아와 기도하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께 은혜 위의 은혜의 놀라운 기적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케 하시게 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선한 목자는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음(11-12절)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삯꾼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물어 가고 또 헤치느니라” 삯꾼은 목자도 아닐 뿐만 아니라요. 양이 제 양이 아니니깐요.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 버려요. 이리가 양을 물어가고 또 해치는데도 절대 말리기는 커녕 관심조차 없는 거예요. 그러나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위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하셨어요. 이 엄청난 사랑을 받은 자로서 우리도 우리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목장에서나 우리의 선한 목자 되시는 예수님을 닮아 그렇게 선한 목자로서 살아가야 해요. 그런데 오늘의 우리의 신앙생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말만 번지르르할 뿐만 아니라요. 삶이 받쳐주질 못하는 데 있어요. 더 나아가 삶이 받쳐주지 못하는 사람들일수록 더이상 자신을 희생하려고 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자신의 그 하찮은 자존심, 감정, 명예, 감투, 물질, 이익에 매여 살아가는 거예요. 그것은 진정으로 예수님을 믿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요. 지옥 갈까 겁이 나고요. 복을 잃을까 봐서 두려워서 하는 종교생활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한 사람들은 예수님 당시의 영원한 천국을 잃어버린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과 같은 종교인들이나 교권주의자들과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진정한 신앙생활은 무엇일까요?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그 은혜에 어떻게 보답할 것인가 하면서 기도하면서 선한 목자 되시는 주님을 닮아서요.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내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려지는 삶, 그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생활인 거예요! 여기에 어떠한 다른 의미나 의도나 감정이나 계획이나 계략이 덧붙여진다면 다 순수하지 못한 인위적인 신앙생활인 거예요.
     그래서 부족한 종도 41년 전 주의 종으로 소명 받고 늘 마음 속에 품고 도전받고 교훈 받는 사도 바울의 신앙고백이 사도행전 20:24에 잘 나와 있어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저는 주의 종으로서 주의 종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나 양떼들과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신앙을 가지고 목회를 해야 한다고 확신하지만요.
여러분이 교회나 왔다 갔다 하는 교인들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예수님의 피값으로 구원받은 성도들이라면 주님의 가정과 교회와 복음을 위해서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신앙을 가져야 한다고 확신해요. 그저 내 몸을 사리고요. 내 물질 아까워하고요. 내 생명을 두려워하고 헌신하지 못하는 신앙으로요. 입만 가지고 떠드는 사람들이 더 이상 힘을 쓰지 못하는 교회가 되어야 교회가 바로 서고요. 그러한 사람들이 힘을 쓰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야 나라도 바로 서는 거예요.
예화) 故 문동환 목사님 이야기
     여러분, 신앙은 삶이에요. 말로 떠들고 큰소리치고요. 한번 글로 쓰고 띄우기는 쉬워요. 그러나 이를 삶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목회도 힘들고요. 신앙생활도 힘들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나 우리의 삶의 자리, 언제 어디서나 목숨까지도 아끼지 아니하는 선한 목자로 살아가게 될 때 누구에게나 사랑받고 인정받고 존경받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게 되는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이시돌 목장을 개척하신 패트릭 맥그린치(Patrick McGlinchey) 선교사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일생도 이렇게 지나가요. 우리의 남은 날이 살아온 날보다 더 짧을 수 있고요.
그것도 언제 어떻게 끝이 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남은 여생,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이웃이나 교회나 목장이나 어떠한 삶의 자리에서나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고 더욱 풍성한 은혜를 나누며 목숨까지 아낌없이 드려지면서 이처럼 의미있고 보람된 선한 목자로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하고 영원히 영광스런 삶이 없는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