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14)                                                                                (2019. 3. 3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 / 요한복음 11:1-4

     우리 인생 가운데 신앙 다음에 가장 소중한 것을 꼽는다면 그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건강이에요. 건강이 무너지면 우리의 인생이 다 무너지므로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그런데 말세가 될수록 갖가지 희귀병들이 터져 나오고 있어요.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의 건강이 점점 무너지고요. 건강을 지켜 나가기가 참으로 어려운 현실이에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에도 그러한 갑작스런 질병으로 죽음에 이르는 고통 가운데서도 이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으로 어떻게 예수님의 최후의 표적이요 최대의 표적이었던 부활의 생명에 이를 수 있었는가 이 시간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 헌신해야 함(1-2절)
“어떤 병자가 있으니 이는 마리아와 그 자매 마르다의 마을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라 이 마리아는 향유를 주께 붓고 머리털로 주의 발을 닦던 자요 병든 나사로는 그의 오라버니더라” 베다니라는 마을에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3남매가 살고 있었어요. 여기 ‘오라버니’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ἀδελφός(아델포스)’라고 해서요. 영어로 ‘brother(형제)’로 번역했는데요. 우리말로는 ‘오빠’라는 뜻으로 잘못 ‘오라버니’라고 번역 되었는데요. 그러나 지난번 개역 성경의 ‘오라비’ 즉 손아래 ‘남동생’이라고 한 것이 오히려 더 정확한 번역이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본문 5절에 당시 혹독한 남성 위주의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도 형제의 순서가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로 되어 있는 것만 봐도 바로 알 수 있고요. 이 전의 사건인 누가복음 10:38-42에 나사로가 나타나지 않은 것은 그가 어렸기 때문으로 보여져서 나사로가 막내 동생이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개혁신앙을 가지고 지금까지 잘못 배우고 알아왔던 전통적인 고정관념을 깨뜨려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3남매가 부모님이 없이도 다 신실한 믿음으로 살았지만요. 특별히 마리아는 값비싼 향유를 주님께 붓고요.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았다고 하는데요. 이 사실은 본문 다음장인 12장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만요. 사건이 일어난 다음에 성경을 기록하다가 보니까 오늘 본문이 먼저 나오는 것으로 보여져요. 중요한 것은 마리아가 예수님께 부어드린 향유 곧 순전한 나드는 당시 인도산의 식물로서 거기서 짜낸 아주 비싼 귀한 수입 향유로서 그것도 순수한 원액 향유였던 거예요. 그것도 한 근이나 되니깐요. 당시 ‘한 근’은 헬라어로 ‘λίτραν(리트란)’이라고 해서 대략 340g(12온스)으로서요. 그 값이 삼백 데나리온이나 되었으니깐요. 데나리온은 당시 근로자의 하루 품삯으로 우리나라 돈 10만원으로 계산한다면요. 약 3,000만원에 이르는 거액이었어요. 그러자 예수님을 팔아넘긴 물질에 눈이 어두운 가룟유다가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고 여기다 허비하느냐?”고 야단을 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의 이러한 헌신이 있었기에 동생 나사로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에서 기적적으로 살려낼 수 있었던 거예요.
     여러분, 목회를 하면서 보면요. 진정으로 헌신하는 교인들이나 주의 종들은 말이 없어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하는 거예요. 우리 성도들도 마찬가지예요. 그들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이라면 불평, 불만을 가져도 할 말이 없지만요. 그들이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들이라면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 봉사, 충성만 다하는 거예요.
예화) 이영표 전 축구 국가대표 이야기    
     여러분, 이것이 바로 헌신된 믿음인 거예요. 헌신된 자는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에 주님을 최우선으로 모시고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요. 주님을 위해 사는 거예요.   여러분, 지금 우리에게 간절히 요청되는 것은 말이 아니라 헌신이에요. 우리가 말이 없어서 주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고요. 돈이 없어서 주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에요. 힘이 없어서 주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에요. 우리의 믿음의 헌신이 없어서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분명히 증거 하는 거예요.
예화) 발목 골절을 당한 어느 권사님의 이야기
     그래서 저도 이 말씀을 통해 주의 종으로 부르심을 받고 헌신했습니다만 로마서 12:1-2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명령하고 계시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헌신할 때 내가 희생하고 고통당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요. 거기서부터 우리의 인생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되고요. 우리의 삶이 새로운 비전을 바라보게 되고요. 거기에 우리의 모든 열정을 쏟고요. 우리의 앞길이 열려지고요. 복되게 쓰임 받고요.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거예요. 바로 이러한 누나 마리아의 헌신으로부터 실마리가 풀려져서 동생 나사로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나 주님께 큰 영광을 돌렸듯이 우리의 헌신을 통해서도 이러한 기적이 놀랍게 일어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 간구해야 함(3절 상반절)
 “이에 그 누이들이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주여 보시옵소서......” 동생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자 누이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예수님께 사람을 보내요. 그때 마르다와 마리아는 베다니 서쪽에서 살았고요. 예수님께서는 베다니 동쪽에 머무셨으니깐요. 이 거리는 약 25마일(42km)로서 하룻길이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보내어 “주여, 보시옵소서!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하고 사정을 하게 된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에 걸린 나사로에게 살 수 있는 길을 여시게 된 거예요. 우리도 죽음에 이르는 병이나 인생의 어떠한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주님께 간구해야 해요. 그것만이 우리가 주님의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나게 되는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약해지기 쉬운 것이 기도인데요. 그것은 참으로 앞뒤가 뒤바뀐 어리석은 신앙생활을 하는 거예요. 우리는 기도를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고 부담스러워 하며 소홀히 하는데요. 여러분, 헌신하고요. 헌금하고요. 치유하고요. 양육하고요. 봉사하고요. 전도하고요. 심방하고요. 충성을 다하기가 얼마나 어려워요? 거기에 비하면 기도는 돈 드는 것도 아니고요. 힘 쓰는 것도 아니고요. 백 쓰는 것도 아니에요. 사실은 성경읽고 기도하는 것처럼 쉽고, 힘 있고, 복된 것은 없어요.
예화) 허리디스크와 척추측만증 치유를 받은 어느 권사님 이야기     
     사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제목들이 꼭 질병뿐이 아니에요. 삶의 갖가지 문제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도 우리에게 기적이 안 일어나는 이유가 야고보서 4:2-3 에 나와요.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우리가 기도하지 않을 때 내 힘과 의지와 능력으로 살아가게 되니깐요. 그렇게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할 때 그때 주님께서는 살아계셔서요. 우리의 기도에 기적적으로 응답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해도 안될 때는 금식하면서라도 매어 달려야 해요. 그래서 빌립보서 4:6-7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지 않으세요?
예화) 일산 세광교회 황해국 목사님 이야기     
     요즘 우리 교회가 ‘영적 부흥 기도대행진’을 통해 매 시간 중보적기도실에서 온 성도님들과 주의 종들이 릴레이기도를 하고 있는데요. 우리가 다른 때는 몰라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시기 위해 마지막 이 땅 위에서 보내신 이 사순절에 기도하지 않으면 언제 하겠어요? 더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고난 주간에도 금식 안하고 언제 하겠어요? 더욱이 금식한 한 끼 5,000원을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는데 사용한다면 얼마나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키고요. 그 금식기도가 위력이 있겠어요? 그리하여 이번 사순절 기간의 우리의 기도와 금식을 통해서 얼마나 놀라운 기적의 응답과 치유가 일어나고 있어요? 그러므로 이렇게 누나 마르다와 마리아의 사람을 보내서라도 예수님께 간구하는 믿음이 결국 동생 나사로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에서 살리는 기적을 행하셨듯이 이번 사순절 우리의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주님의 기적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여생을 주님께 사랑을 받아야 함(3절 하반절 - 4절)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 하니  예수께서 들으시고 이르시되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시더라” 나사로의 누나들인 마르다와 마리아가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께 동생 나사로의 병을 고쳐 달라고 할 때 “사랑하시는 자가 병들었나이다”라고 고백한 거예요. 그리고 본문 다음 5절에도 “예수께서 본래 마르다와 그 동생과 나사로를 사랑하시더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잖아요? 그만큼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3남매는 평소에 너무도 신실한 신앙생활을 하였기에 예수님께서 사랑하셨다고 기록하신 거예요. 그 사랑이 결국 예수님을 강권하여서요. 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이라고 말씀하시고요. 하나님의 아들이 이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게 하게 함이라고 하시면서요. 나사로를 기적적으로 살려 주신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도 어떻게 하면 주님의 사랑받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에 대해서 성경에 세 군데 언급하시는데요. 먼저는 잠언 15:9에 “악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미워하셔도 공의를 따라가는 자는 그가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롭게 살아가는 자를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좀 손해보고 희생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악인의 길을 따르지 않고 공의를 따라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요한복음 10:17에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말씀하세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목숨을 버리심으로 부활의 생명을 얻고 수많은 열매를 맺음으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맡겨진 사명에 목숨바쳐 충성을 다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고린도후서 9:6-7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세요. 우리가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는 못 바쳐도요.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고요. 하나님께 즐겨내고 나누고 베풀며 사는 거예요. 목회를 하면서 보면 진정으로 십일조헌금도 제대로 안 하는 교인들이 교회가 왜 이런 일을 하느냐, 왜 이런데 헌금을 쓰느냐고 곧잘 따지네요. 그러면 그들의 영적 상태나 헌금 내역을 훤히 알고 있는 목사의 입장에서는 열불이 나는 거예요. 그래도 목사는 말을 못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양떼들을 위해 목을 내놓고 사는 사람이라서 목사라고 하잖아요?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다 심판하시니깐요. 주님께 다 맡기고요. 말없이 묵묵히 목회적 사명을 감당할 뿐이에요. 그런데 진정으로 믿음의 정성을 다해서 헌금을 하는 성도들은 말없이 믿음으로 헌금하고요. 신앙의 모범을 보이고요.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에게 큰 감동을 주면서요. 신앙의 큰 축복의 열매를 거두는 거예요.
예화) 청량리중앙교회 선임 장로님 이야기      
     여러분, 우리가 돈이 없어서 주의 일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십일조 헌금을 드리지 않고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까지도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들을 하기 때문이에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물질조차도 아까워서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가게 되면요. 유산이 많을수록 자식들은 장례에 정성을 쏟기보다 유산 쟁탈전에 들어가는 거예요. 그리고 자식들 사이의 의를 다 갈라놓고 떠나는 거예요. 더 나아가 물려받은 그 재산을 자식들이 과연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유익하게 사용하나요? 그리하여 우리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는 마태복음 25:26, 30에 “그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경고하고 계세요. 그러나 어짜피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갈 인생인데요. 이 물질을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사용하다가요.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마태복음 25:21, 23말씀과 같이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라고 약속하세요. 더 나아가 우리의 믿음으로 나누고 베풀고 섬기면요. 나만 손해보고, 희생당하고, 망하고 끝나는 줄 알지만요. 사실은 주님께서 우리의 여생과 자손들에게까지도 하늘의 상과 이 땅의 복으로 천 배나 만 배나 기필코 채워 주시고, 부어 주시고, 갚아 주시는 거예요.
예화) 「세브란스 드림 스토리」에 나오는 이야기     
     이처럼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 3남매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공의를 행하고요. 목숨을 바쳐 주님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요. 가진 것조차도 즐겨 바치고 나누고 베풂으로 주님의 사랑을 받으시는 자가 되었기 때문에요. 주님께서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에서 기적적으로 살려 주셨듯이 말세 마지막 때에 주님의 사랑받는 자가 되어 생명의 기적을 일으키며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세례 간증 이야기     
     여러분, 목회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요. 멀고 험난한 십자가의 고난의 가시밭길이라고 해도요. 이런 성도님들을 한 분씩 만나면요. 그동안의 상처도 눈물도 한 순간에 다 사라져 버리고요. 감사와 감격의 행복의 눈물만 앞을 가려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이 땅에 살지는 아무도 몰라요.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우리가 우리의 일생을 주님께 헌신하고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께 간구하고요. 여생을 주님께 사랑받는 삶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병에서 우리를 기적적으로 다 치료해 주시고요. 하나님 아버지께 크게 영광 돌리는 복된 생애를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