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17) (2019. 4. 21)
나사로야 나오라(요한복음 11:33-44)
                                                                                          


       오늘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부활주일이에요. 이 죽은 자의 부활은 우리 기독교에만 나타나는 기적의 사건인 거예요. 오늘 본문에도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부활의 사건이 나오는데요. 예수님께서는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시는 동안 세 사람을 죽음에서 살리셨는데요. 첫째는 회당장 야이로의 딸은 소녀로서 죽은 직후에 “소녀야 일어나라(달리다굼)”고 외치심으로 다시 살리셨고요(마 9:25). 둘째는 나인성 과부의 독자는 청년으로서 장례 도중에 관에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외치심으로 다시 살리셨고요(눅 7:11). 셋째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나사로는 청장년으로서 죽은 지 나흘 만에 “나사로야 나오라”고 큰 소리로 부르심으로 기적적으로 다시 살아나요. 그렇다면 어떻게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다시 살아날 수 있었는가 이 시간도 하나님께서 들려주시는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서로를 불쌍히 여겨야 함(33절)
       부모님 없이 마르다, 마리아, 나사로 3남매가 살았는데요. 막내 동생 나사로가 먼저 세상을 떠났으니 그 누나들의 심정이 어떠했겠어요? 마리아가 집 안에서 뛰어나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 “주님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제 동생이 죽지 않았을텐데요...”하면서 슬피 우는 것과 조문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예수님께서 보시고요. 마음에 비통히 여기시고요. 불쌍히 여기셨어요. 여기 예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는 데서부터 나사로의 부활의 사건이 시작된 거예요.
예화) ‘긍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어려운 삶의 이야기들
유머) 세월의 흐름속에 감퇴하는 기억력과 치매로 인해 생겨난 웃픈 이야기들


       여러분 주위 분들을 한 번씩 둘러보세요. 세상에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가 힘들고 지쳐 주님 앞에 나온 분들 아니에요?! 서로에 대해서 마음 속 깊이 불쌍히 여기면서요. 미소 한 번 지어주고요. 손 한번 따스하게 잡아주고요.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주고요. 사랑으로 포근하게 안아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된 일이예요. 예수님께서도 살아 생전에도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4-35)”고 말씀하셨고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고 명령하셨어요. 또한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돌아가시면서도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24)”고 그를 죽이려던 모든 원수들까지도 다 용서하시고 떠나 가셨어요. 그래서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만 베드로전서 3:8-9에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을 괴롭히는 어떠한 원수 같은 인간을 만나도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요. 사랑으로 섬기며 인내할 때에 기적적인 놀라운 복을 누릴 수 있었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원수라도 서로를 불쌍히 여길 때 죽은 자를 살려내는 위대한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함께 눈물 흘려야 함(35절)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분명히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나사로의 죽음을 애도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요. 사실 성경에서 가장 짧은 절로 헬라어로서 관사까지 포함해서 우리말과 같이 세 단어예요. “Ἐδάκρυσεν ὁ Ἰησοῦς(에타크뤼센 호 이에수스)” 영어로는 우리말과 마찬가지로 두 단어로 “Jesus wept”예요. 그러나 인간의 가장 심오한 슬픔의 감정을 잘 표현하는 단어예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얼마나 나사로를 사랑하셨으면 그렇게까지 눈물을 흘리셨겠어요? 바로 이 뜨거운 사랑의 눈물이 부활의 기적을 일으키시는 또 하나의 힘이 되신 거예요.
예화) 어려서부터 ‘남자가 울면 안돼!’ 라는 말로 눈물을 참게 만드는 폐쇄적 문화이야기
유머) ‘예수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나누는 경상도 할머니 이야기


       이런 우스운 이야기를 듣고 활짝 웃는 분들은 마음 문이 열려 있으시고요. 정신적으로 건강하시고요. 영적으로 충만할 수 있는 분들이세요. 그런데 이렇게 웃다 만 분들은 마음 문이 아직 덜 열려 있고요. 정신적으로 우울증이 오기 시작하고요. 영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한 분들이세요. 그런데 얼굴표정 하나 안변하고 끄덕도 안하시는 분들은 마음 문이 완전히 닫혀 있고요. 정신적으로 완전히 병들고요. 이미 영적으로 강퍅하고 완악해지기 시작된 거예요. 여러분, 웃음과 눈물이 우리의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치유에 얼마나 소중한 요소인지 몰라요? 웃음이 우리의 닫혔던 마음 문을 열어 준다면 눈물이 우리의 마음의 감정들을 다 씻어 주는 거예요. 그래서 상담치유학적으로 볼 때 웃음과 눈물이 놀라운 치유의 자원인데요. 웃지 말고 울지 말라고 해서요. 이 웃음과 눈물이 메마르니깐요. 우리의 마음이 점점 굳어지고요. 강퍅해지고요. 완악해져서요. 말씀을 들어도, 기도를 해도, 찬양을 불러도 어떠한 감동도 없고요. 그것이 신앙생활의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어버리고요. 마지막에는 사탄의 도구로 전략해서요. 결국 일생이 너무도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끝이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2:15에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명령하였던 거예요. 우리가 예배드리러 나와서 한번 활짝 웃고 감동의 눈물을 흘릴 때마다 엔돌핀의 4,000배 되는 다이돌핀이라는 호르몬이 나와서 우리를 영육간에 다 치유해 주는 거예요.
간증) 8-9가지의 질병으로 고통받던 성도가 위임목사님의 눈물어린 안수기도를 통해 치유받고 회복된 이야기


       그러므로 여러분, 서로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우는 자들과 함께 울며 아픔을 나눌 때 성령님께서 강하게 역사하셔서요.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가 영육간에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눈물을 흘릴 때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 죽은 자를 살리는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부활의 권능을 믿어야 함(40절)
       예수님이 너무도 사랑하던 자의 죽음에 그 유가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요. 눈물만 흘리신 것이 아니었어요. 당시 유대의 장례법은 자연 또는 인공 동굴에 시신을 베로 싸서 그 안에 넣고요. 그 돌덩어리로 동굴을 막았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친히 나사로의 무덤에까지 가셔서요.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세요. 그러자 나사로의 큰누나인 마르다가 팔레스타인 지방의 무더운 날씨에 시신이 이미 부패해서요. 썩은 냄새까지 난다고 걱정하니깐요. 예수님께서는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고 선언하세요. 그러자 마르다가 죽은 동생 나사로의 부활을 믿고요. 사람들을 시켜서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해요. 그때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하나님께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 그러나 이 말씀을 하옵는 것은 뜻하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은 그들로 믿게 하려 함이니이다”고 말씀하신 후에요.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Lazarus, come out!)”하고 외치시니깐요. 죽었던 나사로가 손과 발이 베로 동여진 채로 나오는데요. 얼굴까지 수건에 싸여 있었어요. 그 누나들이나 주위 사람들이 얼마나 깜짝 놀랐겠어요? 그때 예수님께서 “나사로를 풀어놓아 다니게 하라”고 명령 하세요. 이처럼 죽은 동생의 나사로를 살릴 수 있다는 마르다의 부활의 권능을 믿는 믿음이 이 부활의 기적을 가능케 하셨던 거예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확신을 갖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예수님의 부활이에요. 인간의 이성이나 지식이나 경험으로는 도저히 믿을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러해요.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고 말씀하셔요. 구약성경에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약 4,000년 전부터 예언하신 대로(창 3:15)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감당하시고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던 거예요(사 53:4-5). 그런데도 예수님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여인들까지도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여 낙심과 절망 가운데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왔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구약성경에 수천 년 전부터 예언해 오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던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증거가 무엇일까요? 
 

      첫째, 예수님의 빈 무덤이에요.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의 무덤은 시신이나 분골이나 사리가 있지만요. 오직 예루살렘의 골고다 언덕의 예수님의 무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나라로 떠나가셨기 때문에 빈 무덤으로 남아 있는데요. 이 빈 무덤은 1883년 팔레스타인에 파견 받았던 영국의 찰스 고든장군이 발견하게 된 거예요.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첫 번째 증거예요.


둘째, 예수님의 성의예요. 예수님의 시신을 둘러쌌던 수의를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VP-8 특수화상분석기로 분석해 보니깐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빛을 발하심으로 머리의 가시관 자국, 양손목과 발목의 못 자국, 등의 채찍질 자국, 더 나아가 쓰러지면서 생긴 왼쪽 무릎의 피가 난 자국, 심지어 돌아가신 후 로마 군인들이 옆구리를 찔러 죽음을 확인했던 피 흘리신 자국까지 모든 흔적이 이 수의에 다 남아있었는데요. 그 성의가 이탈리아의 토리노 교회에 보관 중이예요. 이 성의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두 번째 증거예요.


셋째, 빌라도 보고서예요. 예수님에 대해 사형선고를 했다가 양심의 가책 속에 번민하던 유대 총독 빌라도가 예수님의 부활을 확인하고 진상을 파악하여 로마 황제에게 보낸 「예수의 체포와 심문 및 처형에 관하여 로마 황제에게 보낸 빌라도의 보고서」란 원제목의 공문서가 발견되어 현재 터키의 소피아 교회에 보관 중인데요. 이것이 예수님의 부활의 세 번째 증거인 거예요.


넷째, 제자들의 순교예요.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 사도 요한을 제외하고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던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하고 믿음의 담대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순교하였을 뿐만 아니라요. 2,000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7,000만 명이 순교한 것은 바로 예수님 부활의 네 번째 증거인 거예요.


다섯째, 우리의 변화된 삶이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구원 받고 이전과는 다른 변화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 안에서 살아 계셔서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계신다는 예수님의 부활의 또 하나의 확실한 다섯 번째 증거인 거예요.


여섯째, 믿는 자의 축복이에요. 지금까지 부활의 예수님을 믿는 이스라엘로부터 시작해서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미국, 캐나다, 한국, 중국에 이르기까지요. 예수님을 믿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나 민족이나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복을 누리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의 여섯 번째 증거인 거예요.


 일곱째, 전 세계의 선교예요. 기독교 2,000년 역사 가운데 온갖 박해와 7천만 명의 순교 속에서도 주님의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 되어서요. 세계 인구 77억 명 중에 1/3인 무려 25억 7천만 명이 크리스천이 되고 2000년 만에 세계 최대종교가 되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부활의 일곱 번째 증거가 아닐 수 없어요.
예화) 부활의 권능을 믿고 일생을 아프리카 선교지에서 섬긴 마릴린 먼로의 라이벌인 여배우  콜린 에반스(Colleen Evans)
간증) 갑작스런 죽을병에 걸려 성령님의 불같은 역사로 치유받고 목회자로 서게 된 위임목사님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의 생과 사와 화와 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떠나가면 우리의 생명도, 수고도 다 헛될 수밖에 없지만요. 우리가 오늘이라도 주님의 따스한 사랑의 품에 돌아와서요.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 함께 눈물을 흘리면서 부활의 권능을 믿을 때 나사로가 살아나는 부활의 기적의 역사가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온 세상 가운데 불일듯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