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22)                                                     (2019. 6. 2)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라    마태복음 20:1-16
   
우리는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69년 전 6.25 전쟁으로 인해 다 쓰러져 가는 나를 다시 일으켜 주신 주님의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치신 선조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번영한 우리의 조국이 있어요. 우리는 지난 날의 이 모든 은혜를 결단코 잊어서는 안돼요. 그런 오늘 본문에 포도원 주인의 천국 비유가 나오는데요. 이 천국 비유를 통해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1. 가장 어려웠던 때 은혜를 결단코 잊어선 안됨
본문 6-7절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여기 나오는 ‘품꾼’은 헬라어로 ‘ἐργάτης(에르가테스)’라고 해서 일용직 노동자를 말해요. 당시 사회 구조상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던 최하류층으로서 자유인이지만 실제로는 당시의 노예보다 못한 처참한 삶을 살고 있었던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을 써주는 주인이 없으면 그들은 굶어야 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포도원 주인이 이른 새벽인 제 0시 즉 오전 6시 새벽시장에 나가서 품꾼들을 모두 다 구하지 않고요. 하루에 5번이나 인력시장에 나가서 품꾼을 찾았던 거예요. 이 품꾼들은 자신들이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어려웠던 때의 바로 이 포도원 주인의 은혜를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되었던 거예요.
우리의 인생도 그러해요. 가난하여 굶주렸을 때나 직장에서 쫓겨나거나 사업이 부도가 나서 앞이 캄캄했을 때나 삶의 의욕을 잃고 죽고 싶었던 순간들이나 심지어 죽을병에 걸려서 절망 가운데 있었던 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셨고요. 구원해 주셨고요. 치유해 주셨고요. 회복시켜 주셨고요. 축복 내려 주셔서요. 오늘에 이르게 된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그 어려웠던 시절의 주님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도 다 지나간 어려웠던 시절들이 있었어요. 일본의 35년 식민지 철권압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광복의 기쁨도 잠시잠깐이고요. 5년 뒤에 1950년 일어난 6.25전쟁을 돌이켜 보세요. 전 국토의 42%가 파괴되었고요. 전 인구의 50% 이상이 전쟁 피해를 입었던 거예요. 그러니 전쟁 후에도 우리가 배고픔과 헐벗음으로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생을 했어요. 그러나 그 전쟁 후 폐아 보릿고개의 굶주림 속에서도 건져 주셨어요.
예화)지난 주 수요일 밤 헝가리 부다페스트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이 침몰사건/효도관광 교인도 있었다.


그래서 지난 날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일려고 열심히 쫓아다니던 박해자였지만 다메섹으로 가던 중 갑자기 하늘로부터 빛이 비추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기를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요. 주님의 품에 돌아와서 신약성경 27권 중 절반에 가까운 13권이나 쓰고 많은 기적의 능력을 행하면서 세계 선교의 기초를 닦았지만 그가 훗날 고린도전서 15:10에 뭐라고 고백합니까?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감사의 행복이 사라질려고 할 때 우리의 인생의 살아온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을 떠올려 보세요. 그때 자신도 모르게 그 어려웠던 시절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는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어느 순간에 우리의 두 눈에서 뜨거운 감격의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분명히 경험하게 될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지난날의 그 어려웠던 때의 주님의 은혜를 결단코 잊지 않을 때 우리는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감사하고 감격할 수밖에 없는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모든 일에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해선 안됨
본문 11-12절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이렇게 하루 종일 일을 하고요. 품삯을 줄 때 보니까 맨 먼저 오전 6시에 와서 하루 종일 일한 품꾼이나 가장 나중인 오후 5시에 온 품꾼이나 하루 일한 품삯이 똑같은 거예요. 주인이 맨 마지막 오후 5시에 와서 1시간 일한 품꾼에게 한 데나리온을 주자 다른 2시간, 4시간, 8시간, 10시간 더 일한 품꾼들은 적어도 2데나리온, 4데나리온, 8데나리온, 10데나리온을 더 주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여기 ‘더위’는 헬라어로 ‘καύσων(카우손)’이라고 해서요. 뜨거운 사막의 모래바람을 동반한 더위를 말하는 거예요. 이렇게 종일토록 무더위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고생한 품꾼들에게 어떻게 한 데나리온만 주느냐고 원망한 거예요. 그것도 이 ‘원망한다’는 단어가 εγόγγυξον(에곡귀존)’이라고 해서 미완료 과거형으로 한 두 번이 아니고요. 주인에게 계속해서 원망을 쏟아부은 거예요. 그러자 주인이 대답해요.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한 데나리온을 주겠다고 약속해서요. 일 끝나고 한 데나리온을 준 게 뭐가 잘못이냐는 거예요? 더 이상 불평이나 원망하지 말고 준 것이나 받아가라는 거예요.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주는 것은 주인 된 내 마음이라는 거예요.
우리도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주님의 뜻을 거스르고요. 불평하고 원망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불평하고 원망하라”는 말씀이 없는데도 우리가 그토록 불평이나 원망을 입에 달고 사는 결정적인 이유는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찾기 보다는 우리의 신앙생활의 3가지 대적인 자아와 세상과 사탄에 속아서 다 자신의 이해관계와 감정과 인간관계에 매여가지고 자기의 뜻을 내세우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고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순종하며 나아가면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거예요.
예화)제 8회 열린 음악회/ 청년과 장년의 경품이 효과적으로 뽑힌 뒷 이야기(경품 당첨 청년집에 TV가 고장나 있었음)


그래서 우리는 깨닫지 못해도요. 주님의 결과론적인 뜻은 이렇게 놀라운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이 우리가 아무리 우리의 뜻대로 애쓰고 수고해도 결과론적으로는 다 하나님의 뜻대로 다 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결단코 부정적이나 비판적으로 받아들여선 안돼요. 그렇게 되면 내 마음에 감정이 생기고요. 비판적인 말만 나가고 위로나 격려는 상처만 주고 서로 감정만 쌓이고 모두의 관계만 다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뜻을 다 그르치고 말아요. 그래서 빌립보서 2:13-14에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명령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주님께서 모든 일에 원망과 시비가 없게 하라고 명령하시는 데도요. 끝까지 말씀을 떠나 평생토록 불평하고 원망하면서 불행하게 살아가요.
예화)한 부부이야기/‘까불지 마라’의 아내의 이야기에 ‘웃기지마라’의 남편 이야기


그래서 주님께서 야고보서 5:9에 “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그런데도 계속해서 원망을 하면요. 죽은 다음에만 주님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라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불행과 고통의 심판을 면치 못하고요. 그토록 불평하고 원망하다가 불행하게 인생을 끝내고 말아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불평이나 원망없이 사랑으로 소통하며 살 수 있을까요?
예화)총회에서 가장 큰 서울노회 노회원 수련회에서/‘통(소통)’을 주제로 얍복나루의 야곱에 관한 말씀을 통해 은혜


그렇습니다. 우리가 깨어지고 부서지고 죽어지기 전에는 이러한 변화도 관계 회복도 감동을 주는 삶을 살아갈 수가 없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의 삶이 변화될 때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해 나갈 수 있어요.
예화)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살다가 사라져간 잊혀진 독립운동가 황기환 선생님이야기


그러므로 불평이나 원망은 주님 앞에 쏟아 놓고요. 사람들 앞에 더 이상 불평이나 원망을 입 밖에도 내지 않을 때 주님께서 다 기억 하시고요. 우리와 우리의 자녀분들의 여생을 통해서까지 다 심판하시고 채워주시고 부어주시고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성령충만함으로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함
본문 15-16절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태복음 19:30에도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고 증거하고 있듯이 본 포도밭 주인의 비유의 전후에 계속 강조된 말씀인데 바로 포도밭 주인의 천국비유를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교훈인 거예요. 사실 이른 아침에 가장 먼저 들어온 품꾼은 11시간 동안 하루 종일 그 무더운 뙤약볕에서 일할 것을 감안해서 어영부영 일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나 1시간 전에 들어온 품꾼은 주인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몇 배나 열심히 일했을 거예요. 포도원 주인은 바로 그것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주인의 판단기준에 따라 똑같은 품삯을 주었을 거예요. 그래서 주인의 선한 뜻대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인데 그것을 악하게 보면 되겠느냐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러한 믿음으로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도 왜 이렇게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되는지 아세요? 주님께서는 분명히 “서로 위로하라”고 말씀하시고요. “서로 격려하라”고 말씀하시고요.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시고요. “모든 허물을 덜어주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사탄이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시니깐요. 교만하고 강퍅해지고요. 자신의 믿음이 최고인 것처럼 착각에 빠지게 해서요. 자신의 과거의 상처받은 마음을 충동질해서요. 그런 사람은 결단코 서로 위로하고 격려하는 말을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요.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하게 해서요.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시험에 빠지게 해서요. 이렇게 주님의 선한 일들을 더 이상 못하도록 낙심하고 좌절하게 해서요. 성령님의 역사를 막도록 하는 게 말세 마지막 때의 사탄의 교묘하고 교활한 계략인 거예요.
예화)이재열 박사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정신건강의학과 신영철 교수 「그냥 살자」라는 책


심한 스트레스는 화병을 부르거나 분노조절장애로 발전해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자신의 행복과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하는데요. 그런데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감사하지 못하는 이유는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까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해지면 세가지 변화가 일어나는데요(엡 5:18). 첫째는 찬양의 기쁨이 생기고요(엡 5:19). 둘째는 감사의 행복이 넘치고요(엡 5:20). 셋째는 겸손의 섬김을 이루게 되는데요(엡 5:21). 그 두 번째 증거가 에베소서 5:20에 나와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런데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깐 감사하지 못하고요. 서로 사랑으로 용서하지 못하고 지난날의 상처가 치유 받지 못하고요. 영적으로 바로 서 있지 못하기 때문에요. 무슨 일을 겪어도 절대 사랑의 눈으로 안 보기 때문에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되어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마음 문이 닫혀있고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은 다 은혜를 받는데도 자신만은 절대 은혜를 못 받아요. 그러니까 더 이상의 하나님의 큰 축복은 못 누리고요. 그냥 먹고 살고 조금 돈 좀 모으는 재미로 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주님 주시는 행복의 감격이 없으니깐요. 주님을 위해서나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큰 헌신을 못하는 거예요. 이처럼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고 무책임한 삶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여 감사하기 위해서는 디모데전서 4:4-5에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모든 것을 감사함으로 받아들여야 하는데요. 그러한 감사의 삶을 위해 우리가 결단코 잊지 말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경건의 시간을 갖고요. 경건의 훈련을 받는 데서요. 경건의 능력을 얻을 때 가능하다는 거예요. 이렇게 성령님으로 충만하게 될 때 우리는 어떠한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고요. 어떠한 일을 하여도 보람을 느끼고요.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행복이 차고 넘치고요. 어떠한 신앙생활도 축복이 되어 버리고요. 어떠한 봉사를 해도 감격 속에 복되게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예화)칸 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최고 작품상인 황금종려상의 ‘기생충’이란 영화/블랙 코미디를 통해 상생,공생 메시지


이처럼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면서요. 서로 상생과 공생의 삶을 살아가면요. 우리 자손 대대로 복되게 쓰임 받으면서요. 인정을 받게 되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될 때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적인 승리의 영광과 축복을 누리며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