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23)  (2019. 6. 8)

성령님의 하나됨을 지키라 마태복음 20:20-28


오늘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하늘나라로 떠나가시면서 성령님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 하신 후 불과 10일 후인 오순절에 성령님을 보내주신 것을 기념하는 성령강림절이에요. 마가 다락방에 모인 약 120명의 성도들이 성령님의 강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 성령님이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고 또한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임하는 것이 보이고 그들이 성령님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는 언어의 하나 됨이 이루어 졌어요. 그것은 성령님 안에서 일어난 하나 됨이었고 여기서부터 오늘의 교회가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약한 것이 있다면 이미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하나된 것을 지켜 나가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날 성령님을 모신 우리가 우리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나 민족의 하나 됨을 지켜 나가야 할 때에 오늘 본문의 예수님의 제자들 간의 갈등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켜 나가야 하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어떠한 고난도 각오해야 함
본문 2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하루는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찾아와 절하면서 예수님께 부탁을 하는 거예요. “나의 이 두 아들을 위하여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하나는 주님의 우편에, 하나는 주님의 좌편에 앉게 해 주소서” 한 마디로 말하면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한 아들은 우의정이 되게 해 주시고 한 아들은 좌의정이 되게 해 달라고 청탁을 했던 거예요. 바로 이렇게 자기 자식들만 높이려고 함으로써 예수님의 제자들 간의 하나 됨은 무너지기 시작한 거예요. 그때 예수님께서는 오늘 본문 이전에 “(예수님을)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마 20:19)고 벌써 세 번째 말씀 하셨지만 계속해서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십자가의 고난의)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하고 물으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고난의 잔을 마셔야 하지만 주님의 좌편, 우편에 앉게 하시는 것을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세요(마 20:23).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의 고난 뒤의 부활의 영광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요. 영광의 자리만을 구했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신이나 자식들에게 이익이 되고 자신들을 높이려고 하는데서 혼신의 힘을 다 쏟으면서도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서는 고난을 당하는 일에는 어떻게 해서든지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면 편하고 안락하고 복 받는 길만 찾지 말고요. 우리의 삶 가운데서 내가 져야할 십자가가 무엇인가, 내가 각오해야 할 고난이 무엇인가, 내가 감당해야 할 희생이 무엇인가를 결단코 회피하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우리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결코 헛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화)지갑을 안가져와서 외상 하겠다는 한 사람을 보증해주고 3만프랑의 건물을 선물받은 웨이터 이야기/나폴레옹


우리가 사람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선행을 베풀어도 이런 엄청난 복이 임하는데요. 하물며 살아계신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고난을 당한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사탄 마귀는 우리의 가정이 평안한 것을 보지 못하고요. 우리의 직장도 평안한 것을 보지 못하고요. 우리나라도 평안한 것을 보지 못하고요.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도 평안한 것을 보지 못해요. 그러나 지난날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십자가의 고난을 결코 회피하지 말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여 주셨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께서도 고난당하시고 돌아가신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나요? 그 고난을 끝까지 인내했더니요.


빌립보서 2:9-11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함께 동참하며 나의 인생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도 각오할 때 우리의 수고가 주님 안에서 결단코 헛되지 않아서 우리에게 다시 한 번 로마서 8:18에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고 분명히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계신 놀라운 영적 성령님의 위로를 받고요. 새 힘을 얻고요. 보상을 받으며 어떠한 고난도 각오할 때 더 이상 우리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을 놀랍게 체험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세상 사람과 성별 되어야 함
 본문 26-27절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이렇게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 살로메가 치맛바람을 불러일으킬 때 나머지 예수님의 열 제자들도 듣고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하면서 함께 동고동락한 두 형제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두 형제에 대해서 분노하면서 그 동안 주님의 나라가 임할 때 한 자리씩 차지하길 원했던 다른 제자들과의 관계가 확 무너져 버리고 말아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모두 다 불러 모아놓고 이방인의 집권자들은 이방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은 이방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로 알지만 그러나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주님의 제자들은 세상 집권자들이나 고관들처럼 권위를 내세우거나 군림해서는 결단코 안 된다는 거였어요. 오히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26-27)고 지금까지 제자들이 알아왔던 상식과는 완전히 다른 역설적인 교훈을 말씀하신 거예요. 오늘의 우리의 현실도 섬기는 종으로서가 아니라 권위를 내세우며 군림 하려고 하고 자리다툼을 하며 싸울 때가 얼마나 많아요? 세상의 정치판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직장에서도 그렇고 심지어 가정 안에서도 이러한 세력 다툼이 끊임이 없는 거예요.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거꾸로 살아가면 계속해서 불행하고 평생이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화)부부간의 장단점 쓰기에서 부인과 달리 남편은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생각나지 않는데...”


오늘날 많은 아내들이 기대하는 남편이 이런 남편이 아닐까요? 우리가 이제는 더 이상 세상과 같이 권위적이거나 군림 하려고 하지 마시고 언제 어디서나 섬김 받으려는 마음을 다 십자가에 못 박고 예수님처럼 섬기는 종으로 세상과 성별되어져야 해요.
예화)세계적인 마케팅 전문가 조지 바나(george Barna)가 쓴 「주전자 안의 개구리(The Frog in the kettle)」


이것은 마지막 때 말세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가 진정한 크리스천이라면 세상과 성별되어서요. 이제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로서 더 이상 기득권을 내세우며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내세우는 자가 아닌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고요. 언제 어디서나 아무런 자기 소유나 욕구나 주장에 대해서 죽어진 하나님의 종으로서 살아가야 해요. 그래서 에베소서 5:8-9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증거하지 않습니까?


적어도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착하고 의롭고 진실해야지요. 사탄의 어두움의 자식들처럼 악하고 불의하고 거짓되어서는 결단코 안되는데요. 우리가 아무리 착해 질려고 하고 의로워 질려고 하고 진실해 질려고 하고 세상과 성별 되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그냥은 절대로 변화가 안 일어난다는 거예요. 내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접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에 감격하면서 그분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그분을 닮아가게 되고요. 내가 애쓰고 수고하지 않아도 그 분을 닮아 착해 지고요. 의로워 지고요. 진실해 지는 거예요. 이것이 한 마디로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복음의 변화인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세상의 소금과 빛으로서 성별 되어서 낮아지고 섬기고 죽어지는 종이 될 때에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을 지켜 나가면서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충만하게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아야 함
본문 28절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오신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섬기는 정도만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수 많은 사람들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신 대속물을 주려 하셨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자신의 목숨까지 바쳐서 희생하시면서 까지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의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구원해 주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드려져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떠하나요? 자기 자신과 자식들과 손주들과 자신의 가정이나 직장에만 매여 살아가고 있지는 않아요? 고통당하는 이웃에 대해서 얼마나 관심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풍요 속의 빈곤의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예화)송호근 교수가 쓴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란 우리시대 50대 인생 보고서


「그들은 소리내 울지 않는다」는 책 제목부터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삶의 애처로움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였어요. 그래서 요즘 은퇴를 앞둔 50대 중반에서 60대 초반까지의 남성들이 현실의 고통을 이기지 못해서 자살률이 급증하고 잇다는 거예요. 나눔과 베풂의 섬김이 그 어느 때 보다도 절실한 거예요.
그래서 지난 2019년 5월 25일(토) 제 72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란 영화는 우리 사회에 교훈하는 바가 너무도 커요. 우리가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도 “아, 이런 재미있는 영화도 있구나!”...하고 감상하고 끝나선 안돼요. 이러한 영화를 보면서 “주님께서 내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가? 나의 남은 여생의 사명이 무엇인가?”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해요. 우리가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복 받고 잘 산다고 이렇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끝내선 안되는 거예요. 나도 이제는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남은 여생 무엇을 하면서 의미 있고 보람되고 여생을 살 것인가 하고 믿음으로 결단할 수 있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섬기시러 이 땅에 오셨고요. 목숨을 바쳐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기 전에 요한복음 12:24에 우리를 향하여 뭐라고 분명히 약속하십니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오늘 마침 순교자 기념주일로 함께 지냅니다만 그동안 사탄의 세력들이 기독교를 말살 하려고 지난 2000년 동안 7000만 명이 순교 당하는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께서 한 알의 밀알이 되셔서 죽어짐으로 현재 77억 1천만 명의 인구 중에 1/3인 25억 7천만의 크리스천을 낳게 하고요. 세계 최대 교회를 이루게 하신 거예요. 우리 기독교가 가장 다른 종교와 다른 점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와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기 위해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려졌기 때문에 가능한 기적의 열매였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과 순교자의 신앙을 본받아서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우리의 신앙생활을 해 나가서 목회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예화)파주에 있는 세계로 금란교회의 여리고 기도회를 인도하러 가서 느낀 이야기


오늘 저의 초등학교 동문들이 2부 예배에 참석했습니다만 부족한 종도 목사가 된다는 것은 꿈에도 상상을 못할 정도로 전혀 뜻하지도 않게 죽음의 고비에서 주의 종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요. 지난 42년 동안 오로지 주님만 바라보면서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목숨 걸고 목회해 오는 가운데 오늘에 이르게 되었어요. 그랬더니 주님께서 부족한 종에게 지금까지 변함없으신 사랑을 부어 주셨고요. 놀라우신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요. 부족함이 없는 축복을 쏟아 주셨어요. 그래서 이 모든 주님의 사랑과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고 감격 하면서요. 목숨을 걸고 목회해오는 가운데 이렇게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체험하게 되었어요. 부족한 종이 이러한 영적인 체험을 하고 확신을 갖게 되니깐요. 함께 동역하는 부목사님이나 전도사님들에게도 목숨 걸고 목회하라고 강권적으로 권고하고요. 또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하라고 강력히 권면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목숨 걸고 신앙생활을 할 때 사탄이 아무리 우리를 쓰러뜨리고요. 우리의 가정을 허물고요. 직장을 뒤엎고요. 주님의 교회를 뒤흔들려고 달려들어도요. 우리의 관계를 무너뜨리려는 사탄이 한 길로 왔다가 일곱 길로 달아나게 되어서요.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심을 힘써 지켜 나가게 하여 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김봉래 목사님이 쓴 「갇힌 자들과 함께 부르는 희망의 노래」라는 자서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지난 날의 삶은 어떠하였어요? 또 남은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겠어요? 이제 우리의 남은 여생이라도 어떠한 삶의 고난도 각오하고요. 세상 사람과 성별 되어서요. 목숨을 걸고 신앙생활을 할 때에 우리가 언제, 어느곳에 있든지 우리와 세상 끝날 까지 항상 함께 하시는 성령님의 하나 되게 하심이 주님의 교회로부터 시작하여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이웃이나 온 세상에 이르기 까지 행복하고 축복되게 펼쳐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