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26)                                                     (2019. 6. 30)
     몇 므나를 남겼는가    누가복음 19:11-27


우리 치유하는 교회가 설립 5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주간 선교부흥회와 선교대회를 마치고 오늘은 우리가 파송한 100명의 선교사님들 가운데 88분의 선교사님을 모시고 함께 예배를 드리고 있어요. 특별히 이 뜻깊은 오늘 2부 예배에 우리에게 153년 전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님을 통해 순교의 복음을 전해 주었던 영국 웨일즈의 하노버 교회의 유재연, 전영숙 선교사님과 업퍼 킬레이 교회의 박헌영, 허수미 선교사님을 파송하게 된 것은 우리 교회로서 무한한 영광이요 축복이 아닐 수 없어요. 이러한 영광스럽고 복된 날 왜 오늘 본문의 말씀을 전할 차례가 되었는가 지난 한 주간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주님께서 공평하게 주신 재능을 기억해야 함
문 13절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여기 나오는 ‘귀인’이라고 하는 것은 헬라어로 ‘Ἄνθρωπός εὐγενής(안드로포스 유게네스)’로서 한 ‘고귀하신 분’을 의미하는데 그는 바로 우리 주님을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 주님께서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시려고 먼 나라로 가실 때에 열 명의 종을 부르시고 은화 한 므나씩 주시면서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고 하신 거예요. 여기 나오는 ‘므나’는 헬라와 로마의 은화로서 약 20데나리온인데 한 데나리온이 노동자 하루 임금인 즉 일당을 10-20만 원 정도로 계산한다면 한 므나 즉 20데나리온은 현재 원화로 200-400만 원 정도 되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그것을 가지고 주인이 다시 올 때까지 잘 활용할 것을 부탁하신 거예요. 이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는 다른 내용인데 달란트 비유는 주인이 타국에 갈 때에 세 명의 종들에게 5, 3, 1달란트를 맡깁니다만 여기서는 이 고귀하신 분이 떠나가시면서 똑같은 한 므나씩을 맡긴 것을 주목할 수 있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도 우리 각 사람을 더 사랑하시거나 덜 사랑하시는 것이 없이 각각 재능은 다 달라도요. 공평하게 똑같은 므나의 재능을 나눠 주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공부로, 어떤 사람은 문학으로, 어떤 사람은 예술로, 어떤 사람은 체육으로, 어떤 사람은 봉사로, 어떤 사람은 주의 일로 각자의 재능에 따라 주님의 사명을 감당케 하신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2:3에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명령하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지난날의 상처와 사랑의 결핍으로 인해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게 되요. 그래서 자신에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나은 것이 있을 때 금방 우월감에 빠지고요. 그것을 남들이 알아주길 바라고 반대로 자신에게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이 있을 때 금방 열등감에 빠져서 우울증에 걸리고 심하면 자살충동에까지 빠져요. 최악의 경우는 영적인 큰 시험에 빠져서 자기보다 나은 사람만 있으면 감정을 풀지를 못하고 시기하거나 질투하고 미워하고 증오하다가 결국 스스로 불행과 고통 속에서 멸망당하고 그러므로 우리는 결단코 하나님께서 주신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을 품지 말고 우리의 믿음의 분량대로 감사하고 만족하면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우리 자신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인 자존감(Self-estee m)을 회복해야 해요. 그리하면 틀림없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재능을 따라 우리를 귀하게 쓰시고 크게 영광 거둬 주시는 거예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의 재능을 따라 사명을 주신 것은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10)고 말씀하셨듯이 궁극적인 사명이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실현됨으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 사명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자신에게 주신 재능에 불평하면서 원망하면서 충성을 다하지 않고 자신의 신앙도 지키지 못하고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끝내 버려요. 그러나 바로 이 사명을 깨달은 사람은 자신에게 주신 재능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 그것이 재능이든지 물질이든지다른 것이 다 없어도 새벽마다 선교사님,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가면서 먼저 기도하면서 충성을 다하면서 귀하게 영광 돌리게 되는 거예요. 바로 이러한 사명자들은 먼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재능이 무엇인가를 발견하시고 주님의 은혜에 감격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헌신하고 열정을 다 쏟으며 충성을 다하면서 봉사하고 주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치유도, 양육도, 봉사도 아니고요.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이라는 것을 잊어선 안돼요. 그런데 말세 교인들은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에 관심이 없어요. 자신들의 자손들만 복 받고요. 자기 사업만 잘 되고 자기 교회만 부흥하길 원해요. 그러나 전도와 선교는 교회가 감당해야 할 최대의 지상명령이요. 최고의 사명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그 어려웠던 시절을 결단코 잊어선 안돼요. 50여 년 전만 해도 얼마나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어요? 그런데 우리 나라가 이렇게 세계에서 제일 잘 먹고 잘 입고 잘 놀고 잘 돌아다니고 잘 쓰는 복 받은 나라가 된 것은 이 땅에 복음을 전해주신 선교사님들과 그들을 파송하고 후원한 교회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예화)웨일즈 출신의 스텔라 프라이스 선교사님이 개신교 최초의 순교자인 토마스 선교사님 순교 150주년 기념으로 펴낸 「조선에 부르심을 받다(Chosen for Chosun)」이란 책에 나온 이야기- 한국의 근대화에 미친 영향


이처럼 대동강변에서 개신교 최초의 순교의 피를 뿌리고 조선 선교의 문을 열고 부흥운동의 씨앗이 되었던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님이 9살 때 아버지가 부임하셨던 교회가 영국 웨일즈에 있는 하노버 교회였는데요. 3년 전 종교개혁 성지순례때 영국 웨일즈에 있는 하노버 교회를 방문했다가 유재연, 전영숙 선교사님 내외분을 만나게 되었어요. 우리 치유하는 교회가 하나님께서 주신 선교적 사명을 따라 그 교회에 유재연, 전영숙 선교사님 내외분을 파송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스러운 축복이예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신 공평하신 재능에 감사하면서 주님의 선교적 사명을 따라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잘 활용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기뻐 받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청지기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해야 함
본문 16, 18, 20절 “그 첫째가 나아와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그 둘째가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또 한 사람이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보소서 당신의 한 므나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수건으로 싸 두었었나이다” 여기서 세 번이나 계속해서 되풀이 되는 단어가 있는데 ‘당신의 한 므나(헬라어로 ἡ μνα σον 헤 므나 수)’ 라는 단어예요. 즉 다시 말하면 세 종들이 공통적으로 고백한 것은 그들이 받은 한 므나가 자신들의 것이 아니라요. 귀인(주님)의 것이라는 청지기 신앙을 강조한 거예요. 그런데 열 명의 종들 가운데 대표적으로 세 명의 종들에 대해서 다루는데요. 그런데 첫째 종은 열 므나를 남겼고요. 둘째 종은 다섯 므나를 남겼고요. 셋째 종은 한 므나를 그대로 싸 두었던 거예요. 각자가 담당한 청지기의 사명이 다 달랐어요. 사명감에 뜨겁게 불타올랐던 첫째 종은 10배(4000만원)를 남겼고요. 사명감이 있었던 둘째 종은 5배(2000만원)를 남겼고요. 사명감이 전혀 식어있던 셋째 종은 그대로 보관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렇게 자신의 사명감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결과를 낳은 거예요.


우리가 같은 재능을 받고 살아도요. 사명감에 따라 결과가 그렇게 달라질 수가 없어요. 그것은 선교도 마찬가지예요. 확장하는 선교에도 뭔가가 있고요. 확장이 안 되는 선교에도 뭔가가 있어요. 세상에 그냥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길 원하고요. 성공한 사업도 이루길 원하고요. 부흥하는 목회도 하길 원하고요. 확장하는 선교도 하길 원하면서요. 어떠한 헌신도 없고요. 열성도 없고요. 희생도 없어요. 그러니까 안되는 거예요. 목숨 걸고 해서 안 되는 일이 어딨어요? 목숨도 안 거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로 복 받고 잘 살게 되면요. 우리만 복 받고요? 자손들만 잘 되길 바라신 거예요? 결코 아니에요(No way). 우리를 통해서 무언가 이루길 원하시는 사실이 있으신 거예요.


예화)이용남 선교사님이 쓴 「복음에 미치다」라는 책에 보면 교인들이 제일 싫어하는 설교 1위가 “헌금하라”는 것이고요. 2위가 “선교하라”는 것인데요. 가장 듣기 싫어하는 설교가 “선교헌금하라”는 것이래요. 우리 교회나 우리나라나 선교해서 이렇게 큰 시험을 이겨내고요. 이 놀라운 복을 받았는데요. 무지해도 너무 무지한 신앙이에요. 그러나 절대 신앙생활도, 목회도 절대 그렇게 해선 안 돼요. 그것은 선교도 다 마찬가지예요.
예화)교회설립 50주년 기념 선교대회-선교보고를 통해 들은 목숨을 건 선교의 현장 이야기


그때 저의 마음속에 문득 바울사도의 사도행전 20:24의 고백이 떠올랐어요.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바로 이 사명감에 불타는 순교의 신앙의 실천이 있었기 때문에요. 우리는 지난 날 기독교 역사 2000년 동안 7,000만 명에 이르는 순교자를 냈듯이요. 우리 선교사님들 가운데서도 많은 순교자를 낳게 되었어요.
예화)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에서 22년 선교사역을 했던 허윤석 선교사님의 「내가 왕 바리새인입니다」라는 참회록/ 남편 김철기 선교사님 「가슴 찢는 회개」라는 책 이야기


이제는 우리도 이러한 선교사님의 순교적 신앙을 따라 우리의 각자의 삶의 현장 속에 순교적 선교신앙을 가지고요.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길 원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되게 쓰시고요. 우리를 통해 큰 영광 거둬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분명히 믿어야 함
본문 17, 19, 22절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 하고…주인이 이르되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오늘 본문의 므나의 비유와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와 또 다른 차이가 있다면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에서는 다섯 달란트를 맡아 다섯 달란트를 남긴 자나 두 달란트를 맡아 두 달란트를 남긴 종의 칭찬이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고 철자 하나 다르지 않고 똑같았어요. 그런데 므나 비유에서 달란트 비유와 같은 칭찬뿐만 아니라요. 파격적인 결산을 해요. 10므나(4000만원)를 남겼다고요. 어떻게 10고을을 맡기시고요? 5므나(2000만원)를 남겼다고요. 어떻게 5고을을 맡기실 수 있느냐는 거예요? 여기 고을이란 헬라어로 ‘πσεων(플레온)’으로서 영어로 city, 즉 도시라는 뜻인데요. 어떻게 4000만원 남겼다고 10개 성읍(city)을 주고요. 2000만원 남겼다고 5개 성읍(city)을 줄 수 있느냐는 거예요.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애쓰고 수고하여 얻은 결실과 비교할 수 없는 파격적인 축복의 결산을 하신다는 거예요.


그런데 한 푼도 남기지 못한 종에게는 “…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심판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로 알았느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돈을 은행에 맡기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이자와 함께 그 돈을 찾았으리라…”(:22-23)고 하시면서요. 그가 가지고 있던 한 므나까지도 빼앗아서요. 열 므나 남긴 종에게 주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릇 있는 자는 받겠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26)고 그 악하고 게으른 종에 대해서 심판하세요. 더 나아가 그 귀인을 미워하며 사람을 보내어 그를 음해하며 왕이 되지 못하게 할려고 했던 불의한 자들에 대해서는 “…내가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던 저 원수들을 이리로 끌어다가 내 앞에서 죽이라…”(:27)고 하시면서 지옥의 영원한 심판을 경고하신 거예요.
우리의 모든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이처럼 하나님의 심판이 꼭 있다는 것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돼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시지 않아요?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기필코 우리가 심은 대로 심판하세요. 그것은 어느 누구도 예외가 없어요. 그리하여 가장 먼저는 우리가 이 땅 위에서 심판을 받는 거예요.
예화)방파선교회 전 사무총장이셨던 김영곤 목사님이 「일청 김영곤 목사가 걸어온 길」이라는 회고록


그러나 우리는 이 땅 위에서 뿐만 아니라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요.
예화)강재원 안수집사님 천국본 이야기


이처럼 부족한 종은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62년 신앙생활을 하고요. 42년 목회를 하면서요. 이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너무 많이 보아왔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의 생전이나 사후에 분명히 있음을 잊지 않고요.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을 해야 해요. 그리하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은혜롭고요. 축복하고요. 행복한 신앙생활 자손 대대로 이어가게 될 뿐만 아니라요. 머지않아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모두 다 누리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방파(邦播)선교회’의 정성균 선교사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렇게 오지에서 젊음을 바치고요. 일생을 쏟으면서 선교하시는 선교사님들이 계시는데요.
우리는 어떠한 믿음으로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후원하며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고 계세요? 우리가 이 땅에 천년 만년 살 줄 알지만요. 우리의 인생도 머지않아 한번은 다 떠나가요. 그러나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주님께서 우리에게 공평하게 주신 재능이 있음을 기억하고요. 복음 선교의 청지기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요. 머지않아 이 땅 위에서와 죽음 후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확실히 믿을 때 우리는 어떠한 고통과 불행 가운데서도 더욱 더 주님의 위로를 받고요. 새 힘을 얻으면서요. 마지막 때 선교적 사명을 땅 끝까지 이르러 더욱 더 힘 있고 충성스럽게 감당하며 영광 돌리는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된 여생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