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27)                                                       (2019. 7. 7)
    주가 쓰시겠다 하라 마태복음 21:1-11


  오늘 우리는 치유하는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는 복된 주일을 맞이하게 되었는데요. 우리가 ‘교회 창립’이라고 하지 않고 ‘교회 설립’이라고 한 것은 몇 가지 의미가 있는데요. 천지창조(창 1:1)나 에덴동산 창설(창 2:8) 교회 창립(행 2:1-13)등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새롭게 만드실 때 ‘비롯할 창(創)’자를 넣어서 ‘창립(創立)’이라 하고요. ‘설립(設立)’은 근원적인 시작의 의미가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님에 의해 창립된 초대교회로부터 시작하여 각 지역에 복음이 전파됨으로 한 뿌리에 나와 한 몸으로 세워진다는 의미이기 때문에 ‘베풀 설(設)’자를 넣어 ‘설립(設立)’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들이 처음 만든 것처럼 회사나 어떤 단체나 창립이라고 하지만요. 처음 ‘창립’은 하나님께서만이 하실 수 있기 때문에 영적으로 볼 때는 우리가 세운 교회는 다 ‘설립’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여서요. 우리 교회는 ‘교회 설립 50주년’이라고 하는 거예요.
예화) 희년의 의미를 담은 영세교회 김충렬 원로목사님의 책「희년이 무엇인가요?」


  오늘도 우리가 예수님의 복음 전도의 발자취를 순서대로 따라가는데요. 이 땅에 메시아(구세주)로 오신 예수님께서 드디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위해 감람산으로 가세요. 감람산은 예루살렘 동쪽 기드온 시내를 건너 남북으로 약 4Km나 되고 해발이 약 815m높이인 이 동산에는 감람나무(올리브나무)가 많아 ‘감람산(올리브산)’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요. 예수님께서는 감람산에 있던 작은 동네인 벳바게에 이르러서 두 제자를 보내는데요. 늘 관례적으로 베드로와 요한 사도가 아니었나 여겨져요(행 3:1, 4:1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하신 본문 2-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하면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 말씀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 700여 년 전에 예언하신 이사야 62:11의 말씀과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주전 520년경에 스가랴 9:9의 말씀이 기적적으로 응답 되어서요. 본문 5절에 “시온(예루살렘 남쪽 언덕) 딸(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고 증거 하였던 거예요. 이렇게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실 때 본문 9절에 “(예수님)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고 찬양하였어요. 여기 ‘호산나는’ 시편 118:25에 나오는 히브리어로 원래는 ‘호쉬아 나(אנָּ֑ העָ֥ישִׁ֘והֹ)’인데요. 끝에 나오는 ‘나’는 ‘지금’이란 뜻으로 앞에 나오는 ‘호쉬아’는 ‘호세아’나 ‘여호수아’에서 온 말로 ‘구원하소서’라는 뜻이고 ‘호산나’는 ‘지금 구원하소서(Save us now!)’란 뜻이에요. 그들의 구호 속에 그들이 얼마나 메시야(구세주)를 갈망 했는가를 알 수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바라던 로마제국의 압제에서 해방시켜줄 ‘정복의 왕’이 아니라요. 그들에게 진정으로 영원한 평화의 구원을 전해 주시기 위해 ‘섬김의 종’으로 오셨던 거예요. 그래서 그들의 기대가 허물어지자 그들이 돌변하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했던 거예요.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이 영원한 구원을 위해 섬김의 종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나귀가 필요하셔서요. 두 제자에게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고 하셨는데요. 여기 ‘주’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Ὁ Κύριος αὐτῶν(호 퀴리오스 아우톤)’ 이라고 해서 직역하면 ‘그것들의 주인’이란 뜻이에요. 우리의 인생 가운데 우리가 주인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요. 주님께서만이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심을 증거 하신 거예요. 그렇다면 교회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면서 지난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요. 앞으로 함께 하실 주님의 50주년의 비전을 바라보면서요. 우리의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주가 쓰시겠다” 하실 때 우리가 어떻게 응답해야 하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주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우리의 마음부터 드려야 함
“세상의 모든 일이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옛말이 있고요. 인지치료에서 “마음이 바뀌면 세상이 달라진다”는 말이 있듯이요. 잠언 4:23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우리의 마음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의 마음이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고요. 사람들에 대해 감정을 안 풀고 살면요. 점점 그 마음이 병들고요. 고통과 불행 가운데 죽어가고 말아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면 우리의 마음부터 아낌없이 드려질 수 있어야 해요. 우리는 흔히 교회는 항상 개혁 되어야 한다고(Ecclesia semper reformanda) 개혁자의 신앙을 외치는데요. 가장 위대한 개혁은 다른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요. 나 자신부터 개혁하는 거예요. 자신이 먼저 변화 되지 않으면 아무리 개혁을 외쳐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뿐만 아니라요. 아무도 인정을 해주지 않아요. 특별히 나 자신의 변화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부터 변화가 일어나야 해요.
예화) 윌리엄 보세이(Wiiliam Beausay)박사의 책「예수님께 배우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법(The people skills of Jesus)」


  그렇다면 우리의 마음이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할까요? 마태복음 22:37-40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예수님께서 강조하신 거예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 즉 구약성경의 핵심이라는 거예요. 사실 유대인들이 어렸을 때부터 이러한 쉐마(들으라)의 가정교육을 잘 받음으로써 오늘날 전 세계에 1,400만 명이 흩어져 살아가는데요. 세계인구의 약 0.2%에 불과하지만 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국방, 외교에 이르기까지 각 분야에서 다른 어떠한 민족도 따라갈 수 없는 독보적인 민족을 이루고요. 노벨상의 수상자만 해도 우리나라는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1명뿐이지만요. 지난 2014년까지의 통계에 따르면 195명으로 전체 수상자의 22%가 유대인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사실이 아닐 수 없어요. 우리의 마음으로 부터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의 마음을 회복해야 할 결정적인 이유가 바로 어기에 있는 거예요. 지난 50년의 우리의 교회 역사 가운데에서도 마음이 거짓되고 불의하고 사악한 교인들도 있었지만요. 그러나 당시 절대 다수의 교인들이 착하고 의롭고 진실했어요. 그래서 그들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요. 끝까지 우리의 마음은 변함없이 주님 사랑하고요. 형제를 사랑하면서 모든 시험을 이겨 내온 거예요.


“어려울 때 친구가 참된 친구라(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는 말이 있듯이 제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참 고마운 교인들이었어요. 그래서 제 마음 속에는 항상 우리 교회가 시골 같은 도시의 교회였고요. 고향 같은 서울의 교회였어요. 그리하여서 아무리 괴롭히고 힘들게 하고 음해하고 고소하는 교인들이 있어도요. 주님만 바라보며 다 이겨냈어요.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분별력을 분명히 가져야 할 중요한 사실은 주님의 몸된 교회 안에는 결코 여당과 야당은 존재하지 않아요. 하나님 편과 사탄 편만이 존재하는 거예요. 이것을 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운다는 미명아래 사탄에게 다 속아 넘어가서요. 자기 의만 내세우고요. 불화와 분쟁을 일으켜서요. 결국 주님의 교회를 다 무너뜨리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다 가리우고 마는 거예요. 이것이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이 한국 교회를 공략하는 주요한 계략인 거예요. 그런데도 이러한 사탄의 교묘한 계략을 깨닫지도 못하고요.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끝내버리는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아요? 결국 자신이 심은 대로 다 거두는 거예요. 자신의 생애뿐만 아니라 자손들의 앞날까지도 다 막아버리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는 동안 두렵고 떨림으로 믿음으로 살아야 하고요.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운데요. 어떠한 사탄의 궤계라도 영적으로 분별하며 물리치고요. 끝까지 이 사탄과의 영적 싸움을 승리해 나가야 하는 거예요.
  예화) 따로국밥교회와 김밥교회와 비빔밥교회
  예화) 전남 곡성군 연합성회에 참석하신 80이 넘으신 어르신의 대답 “ 이젠 다 죽었어! ”


  여러분, 원수를 죽여서 없애지 마시고요. 예수님께서 나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고요.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사랑하고요. 예수님께서 나를 오래 참으신 것 같이 오래 참으시면서요. 내 마음 속의 원수를 다 지워버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상한 마음이 놀랍게 치유 받고요. 평안해지고요. 건강해지는 거예요. 그리함으로 요한삼서 1:2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고 다시 한 번 증거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실 때 우리의 사랑의 마음부터 드려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마음이 건강해짐으로 범사에 잘되고 육신도 강건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실 때 우리의 몸도 드려야 함
그러나 우리가 마음만 앞서선 안돼요. 야고보서 2:17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증거 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면 행함 있는 믿음으로 우리의 몸조차도 아낌없이 다 드려질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말세 교인들을 보면 “우리 먹고 놀고 우리에게 이익이 되고 우리 이름을 냅시다!”하면 “내가 먼저! 내가 먼저!”하고 달려들어요. 반대로 “우리가 힘들고 고생되지만 희생하며 섬깁시다!”고 하면 “네가 먼저! 네가 먼저!”하면서 다 빠져나가요. 그것은 세상의 안 믿는 사람들이나 하는 거예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해 주신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들이라면 결코 그럴 수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신앙생활이 말로만 해서는 안돼요. 말로만 해서는 아무런 감동도 없고요. 변화도 없고요. 열매도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믿음이 몸으로 드려져야 해요. 그래서 로마서 12:1-2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분명히 강조하지 않습니까? 우리의 몸을 드리면서요. 시간도, 재능도, 우리의 일생의 수고가 다함께 따르게 되는 거예요. 주의 일을 해 보면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는 말로 큰 소리 치고요. 떠들고요. 혼자만 의로운 체 하는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하고요. 봉사하고요. 충성을 다한 분들에 의해 이뤄지는 거예요.
예화) 지난 50년의 교회 역사 가운데 기억되는 충성스런 교회의 일군들(김병호 부목사, 윤대원 장로, 방일수 안수집사)
예화) 영국 런던 웨스터민스터 교회 예배당 밑 묘지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주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과 봉사와 충성을 다한 성도들을 주님께서 다 지켜보시고요. 우리의 여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녀손들에게까지도 천 배나 만 배나 넘치도록 영육간에 다 값아 주시는 거예요. 그래서 신앙생활을 해 오면서 보면 지난 날 신실하게 충성을 다했던 목사님,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 자녀손들이 부모님, 조부모님의 뒤를 이어 신실하고 충성스럽고 복되게 쓰임받는 거예요.
예화) 증경총회장 이성희 목사님과 아버지이신 이상근 목사님


  그래서 고린도전서 15:58에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주위의 환난과 핍박과 역경 속에서도 결단코 흔들리지 않고요.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어야 할 거예요. 이처럼 주께서 쓰시겠다 할 때 우리의 몸까지 아낌없이 드려질 때 주님께서 우리를 기뻐 받으시고요. 귀하게 쓰시고요. 크게 영광 거둬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주가 쓰시겠다 할 때 우리의 물질도 드려져야 함
목회를 하면서 보면요. 우리가 마음과 몸은 드려질 수 있지만 물질까지 아낌없이 드려진다는 것이 최고의 믿음이라고 믿어져요. 왜냐하면 많은 교인들이 물질 앞에서 다 무너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마태복음 6:20-21에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하느니라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고 예수님께서 증거 하시는 거예요.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나갈 인생인데요. 성도의 마땅한 본분인 십일조 헌금은 말할 것도 없고요. 우리의 가진 모든 것조차도 주님께서 쓰시겠다 하면 다 내놓을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예화) 세계선교공동체 국제대표인 이용남 선교사님이 쓴 책「복음에 미치다」
예화) 간암 투병 중인 가정에 심방 간 교구 권사님의 간증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많이 벌고 많이 모아 두고 많이 쌓아 놓아도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오늘 밤에 우리의 생명을 거둬 가시면 그 많은 물질이 누구의 것이 되겠어요? 더구나 그 많은 축복을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들을 위해 다 쓰지도 못하고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고 주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면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어요? 그날에 주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며 책망하실 말씀이 마태복음 25:26,30에 그대로 경고되어 있어요.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부모도 그렇게 못썼는데 그 자손들이 부모가 남긴 유산을 주님 위해 의미 있고 보람되게 잘 쓸 것 같아요? 그런 가정을 본 일이 없어요. 그러니까 평생 고생만 하다가 다 헛수고하고 떠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9:6-7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고요. 우리의 여생뿐만 아니라 자녀손들에게 하나님의 복으로 다 갚아 주시는 거예요.
예화) 정병택 원로장로님과 김양자 명예장로님 가정의 간증
예화) 치유하는교회 20년 목회 중 가장 감동적인 헌금을 한 집사님 간증
예화) 지난 20년 동안 묵묵히 치유목회의 한 우물을 파온 위임목사님의 은혜의 간증


  그러나 여러분, 우리의 영적 싸움은 지나간 50년의 역사로 다 끝난 것이 결코 아니에요. 베드로 전서 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말씀하셨듯이요.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요. 마지막 사명을 위해 충성을 다하고요. 하나님 아버지께 큰 영광을 돌리려고 하면요. 사탄이 우리를 결단코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아요. 틈만 나면 우리를 여지없이 공격해서 쓰러뜨릴려고 달려들어요. 그래서 부족한 종이 금년 연초에 경고한 적이 있지요? 금년이 교회 설립 50주년의 이 뜻 깊은 해에 우리가 새로운 도약과 비전의 열정을 불태우자 할 때 사탄의 무리들이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 기필코 마지막 총공세를 펼칠 테니까 단단히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해요. 그리하여 임전무퇴의 각오를 다지고요. 혼신의 힘을 다해 다시 한 번 필사적으로 우리의 생의 마지막 전투에 임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실 때 우리의 마음부터 다 쏟고요. 몸을 아낌없이 드리고요. 물질조차도 아까워하지 않고요. 특별히 우리에게 맡겨주신 치유의 사명에 주님 부르실 때까지 충성을 다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여생도 승리케 하시고요. 자손들까지도 다 복되게 하시고요. 더욱 더 귀하게 쓰시고요. 더욱 더 크게 영광 거두어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