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29)                                                       (2019. 7. 21)
    마지막 때 구할 것
    마태복음 21:18-22


  고난주일에 예수님께서는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성에 입성하셔서요. 감람산 정상으로 올라가셔서 머지않아 멸망 당할 예루살렘성을 바라보시며 눈물로 기도하시고요. 월요일에 가장 먼저 성전을 개혁하셨는데요. 같은 사건을 다루고 있는 마가복음 7:12-14, 20-24 말씀을 종합해 보면 예수님께서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다음에 성전개혁을 하신 것으로도 봐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잎사귀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을 보면서 마지막 때 우리가 구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 이 시간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삶의 열매를 구해야 함
먼저 본문 1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아마 예수님께서 주일에 금식하시고요. 밤에 감람산에서 철야기도하시고요. 월요일 아침식사도 잡수시지 않으시고 떠나셔서요. 성전개혁까지 하셨다면 얼마나 피곤하시고 시장하셨겠어요? 그런데 길가의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열매를 구하셨는데요. 잎사귀만 무성하지 열매를 찾을 수가 없었어요. 여기 ‘잎사귀 밖에’라는 단어를 강조하시는데요. 헬라어에는 ‘εἰ μὴ φύλλα μόνον(에이 메 필라 모논)’ 영어로 ‘but leaves only(오직 잎사귀 밖에)’으로서 더욱 강조하신 거예요.


이를 마가복음 11:13에서는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고 해명하고 있는데요. 무화과 추수기가 6-7월인데요. 이 때는 유월절로서 예수님께서 4월에 무화과나무에게서 열매를 찾으시고요. 열매를 못 맺는다고 저주하신 것은 너무 심하신 것이 아닌가 하고 우리는 의아해 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원래 성지에서의 무화과나무는 유월절이 있는 4월부터 초막절이 있는 10월까지 모두 5번 열매를 맺는다고 해요. 유월절에 맺는 ‘첫 열매인 무화과’는 히브리어로 ‘הגפ(파게)’라고 하고요. ‘그 이후에 열리는 무화과’는 ‘הנאת(테에나)’라고 하는데요. ‘무화과 열매’를 헬라어 성경(συκῆ 쉬케)이나 영어 성경(fig)이나 한국어 성경(무화과)에서 동일하게 번역을 해놓으니깐요. 이런 오해가 생긴 거예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4월 그 때가 아닌 그 이후에 열리는 무화과인 ‘테에나’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요. 4월 유월절 그때의 첫 열매인 ‘파게’를 찾으셨던 거예요. 그런데 맺혀 있어야 할 무화과열매는 맺지 못하고요. 잎사귀만 무성했던 이 무화과나무를 예수님께서는 저주하셨던 거예요.
예화) NATO족/ ‘No Action Talk Only(행동은 없고 말만 많은 사람)’
예화) 보신탕집에 간 목사님 다섯 명 & 삼계탕과 보신탕을 같이 하는 집에 간 장로님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도로서, 직분자로서 무언가 본이 되는 삶의 열매를 맺어야지요. 아무리 보신탕이 좋다지만 모두 다 개가 돼서 되겠어요? 이제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무엇이 문제이고요. 무엇이 부족하고요. 무엇이 걸림돌이 있는가를 하나님 앞에서 냉철히 돌이켜 보아야 하고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음성이 안 들리면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귀를 기울여야 하고요. 그 말씀도 안 들리면 마누라의 잔소리라도 귀 기울여 들어야 하고요. 마누라의 잔소리도 안 들리면 자식들의 볼멘소리라도 관심 있게 들어야 하고요. 그것도 안 들리면 나를 옥죄는 주위의 환경과 사건을 통해서라도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해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음성은커녕 사탄의 시기하고 질투하고요. 비방하고 험담하고요. 거짓으로 음해하고요. 불화하고 분쟁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요. 우리의 신앙도 흔들리고요. 시험에 빠지고요. 사탄의 계략에 의해 다 무너지고 말아요. 말세의 마지막 때의 사탄의 계략은 일제시대와 6.25전쟁 때와 같이 외부의 핍박에 의해서가 아니라요. 내부의 분열에 의해서 우리를 무너뜨리려고 해서요. 결국 말세의 마지막 때 얼마나 많은 교회들이 이렇게 흔들리고 깨어지고 무너지고 있어요? 우리가 과거의 어떠한 원수라도 다 용서하고 치유 받지 못했으면요. 상처받고 시험 들고 불평하고 원망하고 감정을 풀지 못하고 어떻게 이렇게 살아 있겠어요? 이미 저는 정신병자가 되어버렸든지요. 쓰러졌겠든지요. 혼자라도 살겠다고 교회를 떠났든지 했을 거예요. 그러나 다 용서 하고 믿음으로 치유 받고 나니깐요. 아무리 험담하고 비방하고 고소하고 죽일려고 달려들어도요. 어떠한 환경에서도 주님 바라보고 감사하면서요. “내 영혼 평안해” 하며 이렇게 살아 있고요. 건강하고요. 더 젊어지고요. 더 행복해지고요. 더 축복 받고요. 더욱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예화) 목사님의 젊음의 비결/ 구약과 신약


  그래서 에베소서 5:8-9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이제는 빛의 자녀로서 날마다 성령 충만함을 간구해서요. 영적 민감성을 회복하고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요. 철저히 나 자신부터 통회자복하면서요. 새롭게 변화된 착하고 의롭고 진실한 삶의 빛의 열매를 맺어나가야 해요.
  예화) 신앙이 흔들리는 한 젊은 안수집사님 사업체 심방
  예화) 심방 후 전해온 카톡 메시지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보여 주어야 해요. 우리가 믿는 자로서 무언가 열매를 맺고요. 모범이 되고요. 감동이 되는 삶을 살아갈 때 마지막 때 주님께서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삶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삶을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믿음을 구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2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예수님께서 “이제부터 영원토록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저주하시는 순간 무화가나무과 곧 마르고 말아요. 그러자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서 예수님께 묻습니다.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이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믿음을 일깨워 주시는 말씀을 하신 거예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하지 아니하면 이 무화과나무에게 된 이런 일만 할 뿐 아니라 이 산더러 들려 바다에 던져지라 하여도 될 것이요” 그러면 왜 열매의 말씀을 하시다가 갑자기 산을 옮기는 기적에 대해서 말씀 하시면서 믿음에 대해서 언급하시고 계실까요? 우리가 삶의 열매를 맺고 기적을 일으키려면 믿음이 근본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고요. 믿음이 없이는 결단코 진정한 기적의 삶의 열매를 맺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 말씀은 어디서 많이 듣던 말씀 아니에요? 하루는 한 아들이 귀신에 들려서요. 간질로 인해 심히 고생하여서요. 자주 불에 넘어지며 물에도 넘어지니깐요. 아버지가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찾아왔는데 못 고치니깐요.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꿇어 엎드려 사정을 하니깐요. 예수님께서 귀신을 꾸짖으셔서 나가게 하자 이 아이가 깨끗이 나은 거예요. 그러자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조용히 찾아와서요. “우리는 왜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하고 물었을 때에 마태복음 17:20에서도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고 증거하시지 않으세요?


한 마디로 이 아들의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제자들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라고 깨우쳐 주셨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많은 때 주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면서요. 우리의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와 육신의 질병의 치유의 기적을 “다 이루었다”(요 19:30)고 선언하셨는데도요. 우리가 이러한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이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우리 자신이나 우리 자녀들이나 기적을 체험하는 데는 다른 길이 없어요. 믿음을 갖는 거예요. 그러기 위해서는 로마서 10:17의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부귀나 명예나 향락을 구하며 헛되게 쫒아 다니기보다도 열심히 예배나 기도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고요. 목장모임이나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하고요. 집에서도 시간만 나면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야 하고요. 시간만 나면 기독교TV나 라디오방송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해요. 그래서 믿음이 자라나면요. 어떠한 말이나 글에 상처를 받고요. 시험이 오고요. 역경이 닥쳐오고요. 환난이 닥쳐와도요. 주님만 바라보면서 흔들림이 없는 거예요.
예화) 교회 앞에 돈가스 가게를 오픈한 젊은 집사 부부
예화)「하나님의 임재연습(The Practice of the Presence of God)」의 저자 로렌스 형제


  그러므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 믿음을 구하실 때 이제는 우리가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보여드려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의 삶 가운데 믿음의 기적적인 역사가 계속해서 불일 듯 일어나게 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기도로 구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2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예수님께서 믿음에 대해서 말씀하시다가 왜 또 기도에 대해서 말씀 하실까요? 기도를 하지 않으면 믿음도 안생기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시험에 빠지지 않고 더욱 굳세지고 충만해지도록 기도해야 하는 거예요. 이처럼 오늘 본문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열매를 구해야 하고요. 그 다음에 믿음을 구해야 하고요. 더 나아가서 기도로 구해야 할 것을 말씀하세요. 여기 나오는 열매와 믿음과 기도는 삼위일체의 주님과 같이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떼어놓을 수 없는 삼위일체의 중대 요소로서요.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믿음을 가져야 하고요. 믿음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기도로 구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무엇이든지 믿고 기도로 구하면 기적적으로 다 받으리라고 약속하신 거예요. 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약속이에요?
예화) 담낭염 시술하는 과정에서 패혈증 증상이 나타난 윤건상 장로님
예화) 안수기도 후 쪼그라든 폐가 펴진 한 권사님


  왜 이러한 기적의 응답이 가능했을까요? 우리는 주님의 영혼을 가장 소중히 여기고요. 주님의 뜻이 이뤄지길 바라고요. 주님의 영광만 드러나길 원하는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에 이러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그런데 어떤 분의 기도생활 가운데에는 그토록 믿고 기도하는데 왜 응답이 없느냐는 거예요. 우리가 아직도 깨닫지 못한 것도 많고요. 모르는 것도 많고요. 알지 못한 것도 많은 거예요.
예화) 한 성도님이 보내주신 카카오톡 “다시 한번 되새겨야 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재미있는 글


   그렇다면 우리의 기도가 기적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의 뜻과 주님의 뜻이 다른 데 있다는 거예요. 우리의 뜻은 주로 우리의 건강과 축복과 행복과 형통과 성공에 있어요. 영광에 있어요. 그런데 주님의 뜻은 이러한 것들을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그 무엇보다도 온유와 겸손과 섬김과 봉사와 고난과 인내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해요. 우리가 이러한 덕목에 갖춰지지 않고 기도의 응답으로 건강과 축복과 행복과 형통과 성공과 영광을 얻는다면 그것을 결단코 우리에게 진정한 은혜도, 축복도, 행복도 되지 않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를 교만하게 하고요. 주님의 사역에 걸림돌만 되게 하고요. 하나님의 영광 다 가리우고요. 그것이 우리의 인생을 결국 패망과 파멸에 이르게 하고 말기 때문이에요.
예화) 최운규 넥스트리인터넷(주) 대표가 쓴「하늘에 계신 하지 말아라」는 책에 나오는 ‘반 주기도문’


  그래서 우리가 이제는 주님의 뜻을 구하며 살면서 기도해야 가장 기적적인 응답의 역사를 일으키는 능력있는 기도를 드리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가장 먼저 마태복음 6:10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이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고요. 요한 사도도 요한일서 5:14에서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여 말씀하셨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만 구하고 살아가면 다 응답받기 때문에요. 우리의 기도가 늘 새벽마다 암송하는 주님 가르치신 기도인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를 이제는 입술로만 암송하지 말고요. 마음으로 진정으로 그렇게 원하며 기도하고요. 그 결과에 대해서까지도 주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할 때 우리는 어떠한 결과에도 실망치 않을 뿐만 아니라요. 기필코 주님께서 우리를 광야의 연단을 마치고요. 정금과 같은 믿음으로 나와서요. 주님의 나라를 위해 더욱 귀하게 쓰임 받고요. 더욱 크게 영광을 돌리게 되는 거예요. 그리하여 세상적으로 볼 때는 실패 같은 진정한 성공이요. 인간적으로 볼 때는 불행 같은 진정한 행복을 누리고요. 영적으로 볼 때는 응답 받지 못한 것 같은 진정한 기적의 응답을 받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박누가 선교사님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아픈만큼 사랑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일생을 살아 보면요. 실패 같은 성공이 있고요. 불행 같은 행복이 있고요. 불응답 같은 진정한 응답의 삶이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진정으로 구해야 할 것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삶의 열매를 구하고요. 믿음을 구하고요. 기도로 구하면서 살아갈 때 이 짧은 인생 가운데에도 가장 의미 있고 보람되고 복된 생애를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