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31)                                                                                   (2019.8.4.)
두 아들의 비유를 교훈 삼으라
마태복음 21:28-32


  지난 주일의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 즉 당시 이스라엘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들과의 문답에 이어서 오늘은 예수님께서 한 비유를 들려주세요. 그 비유가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아들 비유’인 거예요.
이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당시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만 깨우쳐 주는 것이 아니라요. 말세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어떻게 영적으로 깨우쳐 주시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교훈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각 사람에게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함
  먼저 본문 28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기 두 아들의 비유가 나오는데요.여기 ‘아들(들)’이란 단어가 헬라어 원어성경에 보면 ‘τεκνα(테크나)’라고 기록된 것으로요.‘아이(들)’라고 언급한 거예요.어른이 된 아들(들)을 ‘아이(들)’이라고 부른 것은 아들들을 향한 아버지의 사랑 때문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기를 “애(τεκνoν 테크논, 아이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하세요.여기 포도원은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장소의 비유로 사용되곤 했어요.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사명의 장소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하신 거예요.
그것도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하세요.


  주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들에게도 자신에게 허락하신 사명의 자리에서 오늘 헌신하고요. 오늘 봉사하고요. 오늘 충성을 다하길 원하세요. 여기에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돼요. 우리에게 내일은 주님께서 허락해 주실 때에만 가능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의 문제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요.  자신의 사명의 자리가 어디인지도 모르고요.  자신의 사명의 시간이 언제까지인지도 몰라요. 그러니 어떻게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사명(Mission)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위해서 부르신 ‘하나님의 소명(God’s Calling)’에 대한 우리의 응답을 말하는 거예요. 그 사명은 우리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이고요.  우리가 가장 기쁨으로 할 수 있는 것이고요. 더 나아가 우리가 평생토록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 3가지 조건을 충족할 때 그것은 틀림없이 우리 각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사명(God’s Mission)’임에 틀림없어요.  고린도전서 4:1-2에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강조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에 있어요? 충성을 다해야 한다는 것은 다 알면서도 막상 바쁘다, 피곤하다, 할 일 많다고 핑계를 대면서 충성을 다하지 못하는 데 지난 날 우리의 신앙생활의 한계가 있었던 거예요.

(예화) 유학왔다 소명 받은 일본 요한 선교회 소속 선교사님들 이야기
(예화) 일본 니카타 박춘국, 김은영 선교사님. 츠쿠바 채연배, 김미경 선교사님 소명 받은 이야기
 
  여러분, 무엇이 이 모든 고생과 희생의 사명을 가능케 하였을까요?
고린도후서 5:13-14의 바울 사도의 고백과 같이 그들을 향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이 그들을 강권하시기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원수와 같은 일본 사람들을 사랑하고요. 그들의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고요. 끝까지 사랑으로 섬기고요.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까지 다 바쳐서 선교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러한 그들의 사명에 대한 충성스런 헌신이 있었기에 가장 선교가 힘들다는 그 열악한 일본 열도에서 요한선교회가 수 십 명에서 수 천 명에 이르는 입지전적인 선교의 기적을 이루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사명은 커녕 자신의 신앙 하나 주체하지 못하고요. 내게 일생 주신 사명 하나 깨닫지 못하고요. 다 놓고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갈 물질 아까워서 주님의 사명 감당 못하고요. 그렇게 하루 하루 살면서 젊은 세월 다 보내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의 종말을 맞게 된다면 우리의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고요?  무슨 보람이 있고요?  무슨 행복의 감격이 있겠어요?

(예화) 새언약 교회 정성철 목사님의 「복음에 미친 놈 소리 한번 들어봤으면」 간증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라도 나의 인생의 포도원에서 맡겨주신 사명이 무엇인가를 찾고요. 우리에게 주신 시간과 재능과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요. 맡겨진 사명을 위해 헌신하고 충성을 다할 때 놀라운 기적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이 차고 넘치는 여생이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율법을 뛰어 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야 함
  계속해서 본문 2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맏아들은 아버지가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하셨을 때 “아버지, 가겠나이다”라고 분명히 대답하고는 가지 않았어요. 그것도 ‘ἐγώ’(에고, I will go) 1인칭 대명사로서 아버지의 명령에 바로 자신이 순종하겠다는 자발적 의지가 담겨 있었는데요. 행동은 정반대였어요.당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잘 순종하는 줄 알았지만요. 사실은 영적 교만에 빠져서요.창세기로부터 말라기에 이르기까지 39권에 이르는 구약성경의 수많은 예언대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실제로 이 땅에 오셨는데도요.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깨닫지 못하니깐요. 바로 믿지도 못하고요. 바로 순종하여 행하지 않았던 거예요.


여기 나오는 맏아들로 상징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의 근본적인 영적 문제는 그들이 율법주의에 사로 잡혀 있으니깐요. 율법을 통해서 우리의 죄인 됨을 깨닫게 하고요. 복음의 핵심이신 예수님을 믿도록 하시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당시 유대 교권주의자들은 껍데기인 율법을 붙잡고요. 복음의 핵심인 구세주 예수님을 배척하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만 거예요.  부족한 종이 지난 한 주간 일본에 가서 이 두 아들의 비유의 말씀을 붙잡고 묵상하는 가운데 이 맏아들이 일본을 경고하고 있음이 강렬하게 느껴지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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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율법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해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2:16 말씀에 분명히 증거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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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서 갈라디아서 5:6, 14-15에 경고하신 거예요.이처럼 우리가 율법주의 신앙에서 벗어나서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서로를 끌어안을 때 사탄은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의 가정과 하나님의 교회와 나라와 민족 사이까지 다 갈라놓고 무너뜨릴려고 하지만요. 율법을 뛰어 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 지금까지도 인내하며 승리해 왔듯이 앞으로의 어떠한 고난과 역경도 능히 끝까지 인내하며 이 모든 시험을 다 이겨낼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성령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30-3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기 나오는 둘째 아들은 아버지께서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고 명령하셨을 때 처음에는 “싫소이다” 하고 거절했다가요. 뉘우치고 포도원에 가서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해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고 물으시면서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고 경고하세요. 여기 둘째 아들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방인이 아니라요. 바로 이 세리들과 창녀들을 상징하고 있음을 밝혀주신 거예요. 맏아들로 상징되는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율법주의의 영적 교만에 빠져서요. 세례요한이 의의 길로 그들에게 와서요. 그들이 회개할 것을 강구하였는데요. 세리들과 창녀들은 회개하고 돌아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가져서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었는데요. 그들은 끝내 뉘우치고 믿지 아니함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는 말씀은 헬라어로 “προάγουσιν ὑμᾱς(프로아구신 휘마스, enter ahead of you)”라고 번역되어 있지만요. 이것은 신약성경이 기록되었던 당시 일반 상용언어였던 아람어를 헬라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생긴 잘못인데요. 원래 아람어에는 비교급이 없어요. 이러한 번역상의 오류는 과거 개역판 성경의 누가복음 18:14의 번역에서도 나왔는데요. “이 사람(세리)이 저 사람(바리새인)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잘못 번역을 했던 거예요. 그런데 개역 개정판 성경에서는 “......이에 저 바리새인이(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고 이 사람(세리)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고 바로 잡았어요.


따라서 오늘 본문 말씀의 원래의 뜻은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니라”가 아니라요.
“세리들과 창녀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들어가지 못하니라”로 바로 잡아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들어가지 못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 세리와 창녀들이 어떻게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다시 마태복음 3:11의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쳤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해요.여기서 우리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내 개인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시게 되는데요. 이것을 ‘성령 세례(Baptism by the Holy Spirit)’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렇게 ‘성령 세례’를 받은 자들이 지난 주일에 말씀드렸듯이 로마서 6:3-4의 ‘물 세례(Baptism with water)’를 받아서요. 우리가 지난 날의 자신의 죄에 대해서 죽고 주님과 함께 의에 대해서 다시 살아남을 주님과 모든 사람들 앞에서 첫 번째 고백하고 앞으로도 평생토록 증거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이 여기서 그쳐 버리는 거예요.그러나 또 하나의 세례가 있으니 그것은 마지막으로 우리가 불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이 우리를 쓰러뜨릴려고 얼마나 간교하게 우리를 유혹하고 시험합니까?
이러한 사탄이 모든 유혹과 시험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한 믿음을 만들기 위해서요. 우리가 온갖 죄악을 성령님의 불로 태우는 ‘불 세례(Baptism by Fire)’가 절실한 거예요. 그래서 히브리서 12:28-29에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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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본문에 나오는 둘째 아들과 같이 우리가 어떠한 시련과 역경이 우리의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나 나라와 민족 가운데 닥쳐온다 할지라도 주님의 품에 돌아와서요.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면서요. 성령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하고요. 믿음으로만 일어서면요. 우리에게 닥친 모든 어려움들을 앞으로도 능히 이겨내고 승리하며 주님께 영광 돌리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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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자를 찾으면서요.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나 우리나라와 민족까지 무너뜨릴려고 달려들지만요. 우리의 마지막 때 우리에게 맡겨 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면서요. 율법을 뛰어 넘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고요.성령님의 은혜를 뜨겁게 체험하면서요.
우리에게 맡겨주신 선교적 열정을 불태울 때 바로 여기에 이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두 아들의 비유의 영적 교훈의 깊은 은혜가 있는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