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35)  현대인의 신앙의 오류 마태복음 22:23-33 

 

예수님께서 고난주간 셋째날인 화요일에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문답하시고요. 비유를 통해 깨우쳐 주시지만요. 지난 주일에는 바리새인들과 헤롯 당원들이 납세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시비를 걸고요. 오늘은 사두개인들이 시비를 걸며 달려 들어요. 그런데 사두개인의 그릇된 신앙을 보면서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신앙의 오류를 범하면서도 깨닫지 못하는 것들이 무엇이며 어떻게 극복해야 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부활을 확실히 믿어야 함
 먼저 본문 2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그 날 예수께 와서 물어 이르되” 예수님 당시에 유대에는 4개의 종교 정파가 있었는데요. 이 종교 정파는 정치와 종교와 일치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오늘날의 정당과 같은 개념이었고요. 마치 우리나라 조선시대의 사색 당파를 연상케 하는 거였어요.


첫째, 우리가 잘 아는 바리새파(Pharisees)는 율법 준수에 심혈을 기울였지만 사실은 복음에 영의 눈이 가리워지고 외식주의자들 둘째, 에세네파(Essenes)는 세례요한처럼 광야로 나가 금욕적이고 신비적이며 진보적인 신앙공동체
셋째, 열심당(Zealot)은 무력 봉기만이 이방의 압제에서 벗어나 메시야(구세주)의 임재를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 사람 넷째, 사두개파(Sadducees)는 다윗시대의 대제사장 사독의 후손으로서성전에서 드리는 희생제사의 회복을 가장 중시하던 사람들 그리스, 로마와 같은 이방문화와 권력에 개방적이어서 적극적으로 협력한 정치적 현실주의자들이었어요. 이처럼 형식주의자인 극우파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대한 공격에 실패하자 이번에는 현실주의자인 극좌파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과 논쟁을 하러 나선 거예요.


 그런데 이 사두개인들의 첫 번째 신앙의 오류는 부활을 믿지 못한 거예요. 부활의 때에 이 아내가 일곱 형제 중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거예요. 그들은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 곤란하도록 괴롭히기 위해 이런 유치한 질문을 하였던 거예요. 영이나 천사나 부활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자체를 믿지 못하고 이를 부정했던 거예요. 이것이 당시 사두개인들의 근본적인 신앙의 오류였던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에도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고요. 눈에 보이는 것만 믿게 하려고 해요. 주님이 눈에 안 보이지만요. 주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시고요. 인도해 오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부활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겠어요? 그래서 부활장인 고린도전서 15:13, 17-19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 증거하였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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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함
 계속해서 29절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성경도......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사두개인들의 두 번째 신앙의 오류는 성경을 바로 알지 못하고 오해한 거예요. 그들은 성경을 지적으로 알았을 뿐 영적으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그들의 메시야(구세주) 되신 것도 모르고요. 이처럼 부활에 대한 의문을 가졌던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에 우리도 성경 말씀을 듣지도, 읽지도, 배우지도 않아서요.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많은 때 은혜와 행복과 축복도 누리지 못하며 살아갈 때가 너무도 많아요.


 성경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요한복음 5:39에 잘 나와 있어요.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어야 하고요. 우리의 구주 되시는 예수님을 증언하기 때문에 그 주님을 만나야 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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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우리가 삶의 성공이나 형통할 때도 그러해야 하지만요. 삶의 실패의 불행이나 고통가운데 있다면 더욱 더 통회 자복함으로 묵은 마음밭부터 기경을 해야 해요. 성경 속에서 주님을 만나게 되고요. 그 때 비로소 우리는 성경을 바로 알게 되고요. 그 영적인 말씀의 은혜 가운데 지난 날의 우리의 신앙의 오류를 극복하게 되고요. 우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고요. 삶이 새로워지고요. 놀라운 축복과 행복의 열매들을 풍성히 맺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능력을 뜨겁게 체험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29절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살아있는 자의 하나님이시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셨는데도요. 그런데 여기 ‘이요’ ‘이로다’ ‘이시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εἰμι(에이미)’라는 현재형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을 주목해야 해요. 다시 말하면 현재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부활하여 살아 있다는 뜻이고요. 하나님께서는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으로서 부활의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사두개인들의 마지막 신앙의 오류는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믿지 못하는 거였어요. 그렇기 때문에 부활은 더더욱 믿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4:20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아무리 자신이 성경을 잘 알고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큰소리를 쳐도요. 어떠한 능력의 역사도 나타나지 않는다면 얼마나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신앙이에요? 그러니까 불의한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불행하게 인생을 얼마나 살고요.주위에 어떠한 감동도 줄 수가 없는 거예요.

<예화> 「반일종족주의」공동저자 이우연 연구원, 충청북도 보은 군수의 친일 극우주의 발언


그렇다면 우리에게서 어떻게 기적의 능력의 역사를 일으킬 수 있을까요? 늘 강조하지만 마태복음 17:20-2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세 단어가 있는데요. 먼저 ‘믿음’을 가지고요. 다음 ‘기도’하고요. 기도해도 안 되면 ‘금식’하면서라도 매어 달릴 때 우리는 틀림없이 기적을 체험하게 된다는 거예요.

<예화>「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임현수 목사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가 보면 낙심되고 좌절되는 일이 얼마나 많이 있었습니까? 앞이 캄캄한 절망의 순간에도 인생의 절망이 하나님의 희망임을 기억하면서요. 우리가 주님의 부활을 확실히 믿고요. 성경도 바로 알고요. 하나님의 능력도 뜨겁게 체험하게 될 때 지난날의 어떠한 신앙의 오류조차도 다 극복하고요. 남은 여생 살아계신 하나님의 기적적인 승리 가운데 영광 돌리며 복되게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