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40)-인자의 임함은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9-28


 전전 주일에 예수님께서 말세의 징조들을 말씀하셨어요. 오늘은 ‘인자’ 즉 사람의 아들로 오신 예수님께서 심판하러 다시 오실 때 어떠한 징조들이 나타나고 영적으로 베드로전서 4장과 연결되어 만물의 마지막 때 인자의 임하심이 가까울수록 우리가 어떠한 신앙을 가져야 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결단코 사랑이 식어서는 안 됨
 먼저 본문 12-1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말세의 마지막 때에는 사람들이 우리를 환난에 넘겨주고요. 죽이려고 해요. 특별히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에게 미움을 받게 되리라는 거예요.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서요. 서로 미워하고 서로 잡아 죽이려고 한다는 거예요. 이처럼 말세 마지막 때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는 거예요. 사랑은 언제 어디서나 우리의 마음을 훈훈하게 하고요. 감동시키고요. 그 행복이 눈물 흘리게 해요.
<예화: 로맨스 드라마의 사랑이야기(파리의 연인, 다모, 태양의 후예 등)>


 이처럼, 말세의 마지막 때 사탄은 사람들의 마음을 강퍅하고 완악하게 해서요. 가장 먼저 사랑이 식어지게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증거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사탄은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이 사랑이 식어지게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를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하고요. 우리 사이를 불화하고 분쟁하게 하고요.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파멸로 몰고 가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4:8에“(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이 사랑을 강조하신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사탄에게 속아서 이 사랑 하나 행하지 못하고요. 서로의 수많은 죄(a multitude of sin)를 덮기는커녕 누구 말이나 행동에 허물이 없는가 하고 그것을 찾아 헤매고요. 그것을 들추느라고 일생을 다 보내고요. 어느 날 갑자기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뭐라고 대답할 거예요? 결국 우리의 악의에 찬 말이나 글들이 결국은 살인 행위가 되고 말아요.
<예화: 유명 연예인 설리 자살과 악성 댓글, 거짓 루머들>


        우리가 적어도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사랑을 한다면 수많은 죄도 다 덮는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것이 바로 말씀대로 살아가는 성령님의 사람인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먼저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그 사랑을 회복해야 해요.
<예화: 이어령 교수의 ‘아버지 손님’이란 글에서>


        말세에 사랑이 메마를 대로 메마른 가정의 슬픈 이야기였던 거예요. 사실 오늘의 우리의 가정의 불행이 물질이나 지위나 세상의 그 무엇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요. 다름 아닌 이 사랑을 잃어버린 불행인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바로 이 사랑만 회복하면 지난날의 어떠한 상처도 치유 받고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미국에 가있는 동안에도 이 땅이 보수와 진보로 쫙 나누어져서요.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교계마저도 쫙 갈라져 있네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면 다 해결될 문제인데요. 왜 그 감정의 벽들을 못 뛰어 넘고요.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좁은 소견으로, 그 무지한 율법의 잣대로 서로를 헐뜯고 비난하고 싸우고들 있는지요? 그것도 교회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까지 동원되어서 싸우니까 더욱 가관이에요.


이처럼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소중한 바로 이 주님의 사랑이 식어가기 때문에 교인들의 마음은 점점 피폐해지고요. 가정은 점점 불행해지고요. 교회들마다 불화와 분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요. 결국 사탄에게 다 속아 무너져 가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바로 이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부터 회복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이처럼 자신의 판단에 의해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만 사랑하는 인간적인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요.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하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행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간구해야 해요. 그리함으로 로마서 5:5 말씀처럼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져요. 아무리 원수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달려들어도요. 인생을 살다보니까 우리가 언제 어떻게 될지를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어떠한 원수라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며 로마서 12:18 말씀처럼 “할 수 있거든(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는 거예요. 그리할 때 이처럼 “끝까지(이 사랑을 행하며)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잖아요? 그것은 사랑장인 고린도전서 13:4, 7에 “사랑은 오래참고...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 증거하는 바와 같이 사랑은 한 마디로 인내이기 때문이에요.
<예화: 2019년 노벨평화상 수상자 에디오피아 아비 아미드 알리 총리>


 이처럼 사탄에 의한 역사는 누가 옳고 그르냐, 누구에게 이익이 되느냐 마느냐, 누구의 감정을 받아 주느냐 마느냐만 따지면서 싸우다가요. 끝없는 분쟁의 파멸을 가져오지만요. 성령님에 의한 사랑은 어떠한 허물을 다 덮어 주면서요. 이 땅에 진정한 평화의 행복을 가져주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의 마지막 때 인자의 임하심이 가까울수록 아무리 우리를 죽일려고 험담하고 비방하고 공격하며 달려드는 어떠한 원수들까지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사랑하게 될 때 순간마다 주님의 위로 가운데 승리하며 천국의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1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세 마지막 때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고 인자의 임하심을 예언하고 계세요. 실제로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복음이 온 유대를 덮고요. 로마를 통해서요. 독일로, 프랑스로, 영국을 거쳐서요. 미국의 청교도들이 우리나라에게까지 복음을 전해 주어서요. 중국과 동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서요. 중동을 지나 이스라엘을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이를 선교학에서는 ‘Back-to-Jerusalem Mission Project(예루살렘 회귀 선교 프로젝트)’라고 불러요. 이는 성경의 예수님의 예언대로 말세 마지막 때가 너무도 가까웠음을 선교의 역사를 통해서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4:9-10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강조했는데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청지기적 봉사 중 가장 소중한 것이 복음을 전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지옥 불못에서 구해내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앞서 말씀드린 대로 사랑이 식어지니까 영혼 구원에 대해서는 더더욱 사랑의 관심을 갖지 못하는 거예요. 오히려 지난 기독교 2000년 역사 속에서 기독교를 멸종시킬려고 얼마나 극심한 박해와 핍박을 가했어요? 오죽하면 7000만 명이나 순교당하는 피 흘린 발자취를 남겼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은 순교의 피를 먹고 자라서요. 더욱 더 힘 있게 전파된 거예요.
<예화: 무신론자였던 철학자 볼테르의 이야기>


 우리는 복음도, 교회도, 주의 종들도, 교인들도 절대 핍박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언젠가는 이 땅 위에서도 다 심판하셔서요. 불행과 고통 가운데 죽어갈 뿐만 아니라요. 그 자손들의 앞날까지 다 막아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남은 여생 주님 오실 날을 예비하면서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마가복음 16:15에 “또 이르시되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한 달 후 추수감사주일 해피데이축제를 앞두고요. 적어도 우리가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했고요. 성령님의 권능을 받았다고 한다면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로부터 시작해서요. 친척들, 친구들, 이웃들, 더 나아가 땅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해요. 그런데 매번 하는 전도축제인데요. 한 명 이상 작정하고요. 열 번 이상 만나고요. 백 번 이상 연락하고요. 천 번 이상 기도하자고 매주일 구호는 외치지만 그렇게 하고들 계십니까?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영혼은 한 명도 살리지도 못하면서 무슨 예수는 혼자 다 잘 믿는 것처럼 큰 소리를 치고 그래요? 결국 마태복음 23:13에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진노하신 것처럼 평생 전도 한 명 못하고 영혼만 쫓아내다가 인생을 끝내고 말아요. 그러니 이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한 신앙생활이에요? 그러나 여기서만 그쳐서도 안돼요. “우리끼리만 좋사오니 우리만 복 받고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하면 좋사오니 우리 교회만 부흥하고 잘 되면 좋사오니......”하는 변화산상의 제자들과 같이 이기적이고 기복적이고 편협한 신앙생활을 해선 안돼요. 그 벽을 뛰어 넘어야 보다 더 넓은 영적인 세계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세요.
<예화: 용기 전체에 성구가 새겨 진 인 앤 아웃(In & Out)햄버거 가게 이야기>


 사실 부족한 종도 우리 치유하는 교회의 목회만 하면 제일 편해요. 그런데 크리스찬치유상담연구원과 치유상담대학원에 가서 많은 목회자들과 교인들에게 제가 먼저 경험한 치유의 은혜를 나누고요. 책도 펴내서 전하고요. 기회만 닿으면 한국 교회와 이민 교회와 세계 선교지에까지 나아가서요. 이 치유의 복음을 전하다 보니깐요. 1인 6역을 할려고 하니까 얼마나 피곤하고 힘이 들겠어요? 이번에도 미주성회 가보니깐요. 40대 때 가는 것 하고 50대 때 가는 것 하고 60대 때 가는 것 하고 시차 적응부터 더 힘들어지고요. 더 피곤이 느껴지고요. 더 체력의 한계가 느껴져요. 그런데도 왜 가야 하느냐는 거예요.
<예화: LA 아름다운 교회, 세계선교 교회 치유성회 이야기>
<예화: 대전 태평양 교회 치유성회 이야기>


 비록 육신은 피곤해도 영적으로는 보람과 감격을 안고 목요일 밤 늦게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제발 건강 좀 돌보라”는 우리 교우들과 마누라의 잔소리마저도 외면한 채 저도 피곤하고 힘들지만 뛰어다니는 것은 이 일이 주님의 사명이고 주님의 명령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메뚜기도 한철 이라는데 하나님께서 저를 앞으로 80살까지 기껏 쓰셔야 20년도 못 남았는데요.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생애 열정을 쏟아 치유의 복음을 전하다가요. 언젠가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하는 주님의 칭찬과 영광의 존귀를 누려야 하지 않겠어요?
<예화: 하용조 목사의「나는 선교에 목숨을 걸었다」책(유고작)에서>


 그러므로 우리는 인자의 임하심이 가깝고 우리가 세상 떠날 날이 가까울수록 우리의 육신이 피곤하고 힘들어도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우리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까지 다 쏟아서요. 땅끝까지 이르러 천국 복음을 전할 때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의 일생이라 할지라도 참으로 의미있고 복되게 쓰임 받으며 주님께 크게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항상 깨어 기도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20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말세의 마지막 때 다니엘 선지자를 통해 다니엘서 9:27, 11:31, 12:11에서 예언하신 바와 같이 ‘멸망의 가증한 것’즉 우상숭배하는 것들이 ‘거룩한 곳’ 즉 성전에 세워진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신앙생활이 아니라요.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 신앙에 빠지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말세 마지막 때 영적인 산으로 피신하여 환난을 피하라고 말씀하시면서요. 유대인의 지붕은 평평하게 만들어져서 거기서 기도도 하고요(행 10:9). 먼 곳을 전망할 수도 있었는데요(삼하 11:2). 환난의 때에 거기서 집 밖으로 바로 통하는 계단이 있으니깐요. 그 계단으로 곧 바로 집 밖으로 피신을 하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환난을 면한 사람은 집 안에 들어가서 물건을 가지러 가지도 말고요. 밭에 있는 자는 밭머리에 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라고 한 것은 롯의 처(부인)처럼 세상 물질의 욕심에 빠져서요. 그것을 붙잡을려고 하다가는 멸망을 당하고 만다는 거예요. 더 나아가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과 같이 자녀들에게 매여서 신속히 피하기 힘든 것도 우리에게 결코 복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화가 되어버리고 만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겨울은 춥고 비가 오기 때문에 피신이 어렵고요. 안식일에는 5리(880m) 이상 가지 못하고 낙타나 어떠한 운송 수단도 사용할 수가 없기 때문에 피난이 어려웠어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가 피신하는 일이 겨울이나 안식일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는 거예요. 실제로 사탄의 조종 아래 일어난 제2차 세계대전의 독일의 침공도, 일본의 진주만 폭격도, 우리나라의 6.25 전쟁도 다 주님께 예배 드려야 할 주일에 기습공격을 해왔던 거예요. 이렇게 말세 마지막 때 사랑이 식어지고 전도도 어려워지고 사탄이 극렬하게 역사하는데요. 사탄이 역사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온갖 거짓말을 하면서 비방하여서요. 우리에게 상처를 주고 시험에 빠뜨려서 결국 교회를 떠나게 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는 거예요.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지 우리를 해하고 죽일려고만 하고요. 말로만 큰소리를 치지요. 결코 그들은 깨어 기도하지를 않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지도 못하고요. 자신의 신앙의 삶만 무너져 버리는 것이 아니라요. 주위에 어떠한 감동도, 모범도, 열매도 없는 거예요. 하나님의 교회만 뒤흔들고요. 하나님의 영광만 다 가리우고 마는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의 마지막 때 이 사탄의 궤계를 영적으로 분별하고요. 대적하고요.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인데요. 그중의 강력한 공격용 무기로서 에베소서 6:17-18의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명령하시는데요. 말세 마지막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붙잡아야 할 두 기둥은 말씀과 기도뿐이에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깨어 기도하는 길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가 지난 20년 전 영적 싸움을 할 때에도 우리는 아무런 힘이 없었어요. 그러나 주의 종들과 함께 영적인 성도들이 새벽이나 낮이나 밤이나 간절히 합심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승리케 해 주시고요. 오늘 이렇게 은혜롭고 행복한 교회를 이루게 되었어요. 그것은 앞으로의 우리의 일생의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예요. 이처럼 우리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 승리의 기적의 역사들이 불일 듯 일어나게 되는 거예요.
<예화: 범양선교회 황상호 목사의 기도와 종양 수술>


 우리는 기도를 우습게 생각하고요. 근심, 걱정은 수없이 하면서도 기도는 안하니깐요. 우리 생애에 기적은 안 일어나고요. 그 기도의 응답의 기적의 그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도 다 잃어버리고요. 나 혼자 애쓰고 수고하고 힘쓰며 살아가니 얼마나 팍팍하고 힘들고 지치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이제라도 기도하면 기적은 일어나는 거예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4:7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이 기도를 가장 먼저 그토록 강조했던 거예요.
<예화: LA 아름다운 교회 석점정 장로님의 딸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삶의 위기 가운데서도 인자의 임하심이 더욱 더 가까울수록 깨어서 부르짖으며 안 되면 금식하면서라도 매어 달려서요. 날마다 우리를 해하고 무너뜨리려는 사탄의 역사를 물리치고 승리하고요. 기적이 상식이 되어 일어남으로써 성령님께서 살아 계셔서 충만하게 역사하시는 능력을 날마다 순간마다 체험하며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기도로 살린 딸(김안나) 이야기, 날마다 숨 쉬는 순간마다 찬양>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사랑이 없으면 복음을 전할 수도 없고요. 간절한 기도가 나올 수도 없어요. 그러나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안고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부터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고요. 그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할 때 말세 마지막 때에도 성령님의 기적적인 응답의 역사를 불일 듯 일으키면서요. 인자의 다시 오심을 예비케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