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45) (2019. 11. 24 해피데이)
주님을 사랑한 여인/ 요한복음 12:1-8             

주님을 사랑하는 여인인 마리아가 비싼 향유를 예수님께 드린 사건을 통해서 이 시간도 우리 모두에게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자신이 드려져야 함
요 12:3상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주님을 사랑한 마리아가 인도산 식물에서 짠 아주 비싼 나드 향유를 예수님께 바쳤다고 했는데요. 마리아가 드린 향유는 적어도 오늘날 3000만원에 해당되는 우리의 1년 연봉이나 다름이 없었어요. 그러면 왜 마리아는 왜 가룟 유다의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처럼 한 입술만의 고백이 아니라요. 그 값비싼 향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지 않고 예수님께 바쳤을까요? 본문 7-8절에 말씀하고 있듯이 가난한 사람들은 평생 도와줄 수 있었지만요.
예수님께서는 며칠 뒤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텐데요. 그 크신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그녀는 아무리 값비싼 향유도 결코 아깝지 않았던 거예요.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요. 인간을 지으시고요. 한없는 복을 내려 주시고요. 영원히 행복하게 살길 원하셨지만요. 우리 인간의 죄악된 삶으로 인해 영원한 지옥의 심판을 면치 못하고요. 상처의 불행에서도 헤어 나오지 못하고요. 질병의 고통에서도 떠나지 못하고 살아가니깐요. 한 분뿐인 죄 없으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요. 십자가에서 우리 인생에 말로 다할 수 없는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고요. 죽게 하면서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요. 영원한 구원과 행복과 축복의 문을 열어 주셨는데요.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에요? 우리가 세상의 그 무엇으로 그 빚을 갚을 수 있겠어요? 우리의 한해 연봉이 아니라 평생 연봉을 다 드려도 못 갚고요.
일생토록 그 빚을 갚을려고 해도 다 못 갚을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내 자신을 드려 일생토록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리하여 지난 날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그들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심지어는 논과 밭과 땅과 집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드려졌어요.
유머) 흥해라 흥해!
예화) 세계 12위 경제대국


그러므로 우리도 선조들의 신앙을 따라 주님을 사랑하여서요. 로마서 12:1-2의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는 말씀처럼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주님께서 자신이 드려진 헌신한 우리를 더욱 복되게 하시고 더욱 귀하게 써 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자아가 깨어져야 함
요 12:3중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으니......”
오늘 본문과 같은 사건을 다룬 마가복음 14:3에 보면 주님을 사랑한 마리아는 값비싼 나드 향유를 담은 석고로 만든 항아리인 옥합(alabaster jar)을 깨뜨렸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더구나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발을 닦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자존심을 다 버리고요. 철저히 낮아져 예수님을 섬겼던 거예요. 이것은 영적으로 우리의 자아가 깨어지지 않고는 불가능한 사랑의 섬김이었던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주님을 사랑하며 자신을 드려 헌신한다고 하면서도요. 자신의 자존심, 기질, 감정, 혈기가 살아서는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주고받고요. 시험에 빠지고요. 신앙까지 흔들리고 말아요. 말로 다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를 못해요.
유머) 묻지 말아야 할 질문


왜 그럴까요? 그만큼 우리가 지난 날 상처를 많이 받고요. 치유를 못 받아서요. 그만큼 자신이 살아 있기 때문에요. 어떠한 성격도, 행동도, 신앙도 변화가 안 일어나고요. 평생토록 상처의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2:20에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고백했던 거예요. 내가 죽어지면 죽은 사람은 말이 없고요.


어떠한 감정도 없고요. 반응도 없는 거예요.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주여! 주여!” 하면서요. 내 자아가 죽어져야 주님이 진정으로 우리의 삶을 주장하시고요. 역사하셔서요. 주님이 기뻐하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자아가 교회에 와서만 죽어지고요. 은혜 받을 때만 죽어지고요. 모든 일이 내 뜻대로 될 때만 죽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을 바라보면서요. 주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고요. “주여! 주여!”하고 그 십자가에서 죽어져야지요.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 충만한 가운데요. 성령님이 우리의 삶 가운데 살아 역사하셔서요. 주님의 뜻을 이루고요.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15:31에서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했던 거예요. 그리할 때 우리가 평생토록 결심하고 노력하고  몸부림을 쳐도요. 변하지 않던 내 성격이나 기질이나 행동이나 신앙조차도 주님 안에서 기적적으로 치유되고요. 회복되고요. 변화가 일어나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치유하는 교회인데요. 우리의 영혼의 죄악만 치유하는 것이 아니라요. 마음의 상처도 치유하고요. 육신의 질병까지도 치유하는 거예요. 그래서 매 주마다 치유의 기적이 끊임없이 일어나요. 그 비결이 무엇인가하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심을 확실히 믿고요. 날마다 순간마다 저희는 죽고요. 주님께서 살아 역사하시도록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드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우리가 새벽마다 합심기도함으로 기적적인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는데요.
예화) 추병호 선교사님의 담낭 종양 치유


그러므로 이렇게 우리가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내가 죽어졌음을 입술로 고백하고요. 마음으로 확신하고요. 삶으로 체험하면요. 우리는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고요. 주님의 뜻을 이루면서요. 주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기적적인 복된 삶을 평생토록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사랑의 감동을 남겨야 함
요 12:3하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니라”
순전한 나드 향유를 마태와 마가는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기록한 것은 살아계신 예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라면요. 요한 사도는 마리아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었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의 고난을 더욱 더 강조해서 예수님의 시신에 바를 향유를 상징적으로 미리 보여준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마리아가 그녀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자 향유냄새가 거실에서 침실과 식당에 이르기까지 다 퍼져 나갔다는 거예요. 그 뿐만이 아니라요. 마가복음 14:9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러한 주님을 사랑한 마리아의 이러한 아름다운 선행이 지금 우리들에게까지 감동적으로 전해오고 있는 거예요.
예화) “그리고 그 다음엔(Tunc Proxime)”


우리도 한번 왔다가 언젠가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가야 할 인생인데요. 우리의 가족들이나 친척들이나 교인들이나 이웃들에게 사랑의 감동을 주는 신앙생활을 하다가 떠나가야 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입만 열면 불평과 원망이나 하고요. 험담이나 비방이나 하고요.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다가 인생을 끝내버린다면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이에요? 그런 사람은 무언가 인생을 잘못 살고 있고요.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한참 사탄에게 속아서요. 잘못하고 있는 거예요. 적어도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으로 살아간다면요.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라요.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지만요. 주위 사람들에게 신앙의 본을 보이고요. 사랑의 감동을 주고요. 신앙의 열매를 맺으면서요. 모두의 마음을 훈훈하고 행복하게 해 주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2:15-16에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라고 분명히 증거 하시는 거예요. 우리가 구원받은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도 복음을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되지만요. 그리스도의 향기를 맡고 복음을 받아들이는 구원받은 자들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가 된다는 거예요. 누가 이런 일과 동일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Who is equal to such a task?). 우리의 삶이 이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거예요.
예화) 해남군 복음화 대성회


이처럼 우리가 남은 여생이라도 우리의 가정에서나 교회에서나 직장에서나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의 향기를 날리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리할 때 진정으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요 주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고요. 일생토록 복되게 사용하실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위임목사님이 치유의 간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떠한 인생의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의 품에 돌아와서요. 자신이 드려지고요. 자아가 깨어지고요. 사랑의 감동을 남기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남은 여생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너무도 은혜 받고 축복 누리고 행복한 삶을 모두 다 살게 하여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