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복음화(48)                                                                                 (2019. 12. 15)
요한복음13:34-35 /

새 계명을 주노라

 예수님께서는 고난 주간 목요일의 깊은 밤에 마가의 다락방에서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면서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팔아 넘길 것을 예언하시고요. 가룟 유다가 밖으로 나간 후에요.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31-32)고 말씀하시면서요. 이제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떠나가실 때가 가까이 왔음을 예고하신 후에요. “새 계명을 주노니”라고 하시면서 하신 말씀 가운데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서로 사랑할 때까지 사랑해야 함(34절 상반절)
 먼저 본문 34절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계명(Command, 명령)을 주셨는데요. 이 율법의 말씀은 크게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즉 모세 오경에 기록되어 있어요. 이중에서 하나님께서 ‘하라’고 명령하신 긍정적인 계명이 유대인들이 인간의 몸에 지체수인 248가지이고요. ‘하지 말라’고 명령하신 부정적인 계명이 1년 365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로 365가지예요. 그래서 이 계명을 모두 합하면 613가지예요. 그 중에 핵심적인 계명이 앞에 하나님께 지켜야 할 계명 4가지와 뒤에 나오는 인간에 대해 지켜야 할 계명 6가지를 합해서 10계명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 모든 율법의 핵심이요 요약은 “너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그 다음에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마 22:37-40)는 이 두 계명인 거예요. 이처럼 주님께서 구약 성경에서부터 많은 계명들을 주셨는데요. 이제 진정한 주님의 제자들을 떠나시면서 주님께서 친히 새 계명을 주신다는 거예요.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라”는 거였어요.


 이처럼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실 것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13:13)고 강조하셨는데요. 사실 말세 마지막 때 “불법이 성행하고 사랑이 식어 지리라”(마24:12)고 경고하셨듯이요. 저희 어렸을 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가 복을 받았지만요. 그래서 우리 자신이나 우리의 가정으로부터 사랑의 행복이 점점 메말라 가고 있어요. 그래서 아들을 낳았을 때 이촌이 되고요. 사춘기가 되면 사촌이 되고요. 군대에 가면 팔촌이 되고요. 장가를 가면 사돈의 팔촌이 되고요. 애를 낳으면 동포가 되고요. 이민을 가면 해외동포가 된데요. 그래서 잘난 아들은 국가의 아들이고요. 돈 잘 버는 아들은 사돈의 아들이고요. 빚진 아들만 내 아들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장가 간 아들은 ‘옛 사랑의 그림자’이고요. 시집 간 딸은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이라는 거예요. 그런데도 자식들에게 기대를 갖는 여자를 ‘정신 나간 여자’라고 하는데요. 며느리의 남편을 아직도 자신의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이고요. 며느리를 딸로 착각하는 여자이고요. 사위를 아들로 착각하는 여자라고 해요.


 늘 강조하지만 사람은 사랑해야 할 존재이지요. 사랑 받기를 기대할 존재가 아니에요. 우리가 사랑 받기를 기대할 대상은 주님 밖에 없는 거예요. 심지어 사랑이 가장 뜨거워야 할 교회까지도 주님의 공중 재림이 가까워짐으로 인해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인 사탄이 점점 밀려서 지상 교회에서 얼마나 극렬하게 역사하는지 몰라요? 그래서 가정마다, 직장마다, 심지어 사랑이 가장 뜨거워야 할  교회까지도 불화와 분쟁에 휩싸여서요. 사랑이 극도로 식어가고 있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강조하신 말씀이 “사랑하라”는 것인데요. 사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지 않으시면 우리의 헌신도, 봉사도, 충성도 다 알고 보면 다 자기 자신의 명예나 이익이나 인간관계를 위한 것이 되고 말아요. 진정한 사랑이 동기가 되질 않아요. 그래서 “사랑하라”고 하시면서요. 그것도 “서로 사랑하라”고 강조하신 거예요. 그런데 서로 사랑이 안 되는 것은 상대방에서 상처를 받고요. 감정이 생기고요. 감정의 응어리가 남아 있기 때문에요. 평생을 감당해야 할 사명에 충성을 다하지는 않고요. 서로의 발목을 붙잡고 감정 싸움하느라 인생을 끝내버리는 거예요.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들이에요.

예화) 임형택 박사의 책 「나는 왜 자꾸 화가 날까?」 이야기


 그래서 요한일서 4:7-8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고  강조하신 거예요. 다시 말하면 내 감정으로는 사랑하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믿는 자의 ‘서로 사랑’은 우리의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 요건인 거예요.
예화) 성경에서 강조하는 ‘서로’에 관한 성구


 이처럼 사랑은 혼자만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서로 하는 거예요. 한 쪽에서 일방적으로 하다 보면요.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지쳐 버리고요. 더 이상 사랑할 힘을 잃어버리고요. 결국 포기하고요. 돌아서게 되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사랑으로 끝까지 사랑하게 될 때 언젠가는 그 상대방도 그 사랑에 감동 받을 때 서로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예화) 어느 집사님의 칠순 감사예배 이야기


 그래서 우리의 사랑이 덜 전달되고요. 덜 느껴지고요. 변화가 안 일어나도요. 우리의 사랑이 변함이 없고요.
꾸준히 사랑하고요. 끝까지 인내하면요. 언젠가는 그 사랑의 진실이 전달이 되어서요.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대로 서로 사랑함으로 그 사랑의 축복과 행복을 함께 풍성히 나누게 될 날이 꼭 다가오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해야 함(34절 하반절)
 계속해서 본문 34절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우리가 서로 사랑해 나가는데 원동력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의 육신의 사랑이 아니에요. 인간의 사랑은 자신의 감정이나 이해관계나 인간관계가 뒤틀리면요. 언제든지 싫어질 수 있고요. 변할 수 있고요. 사라질 수 있어요. 그래서 우리에겐 주님의 변함없이 희생적인 영원한 십자가의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예요. 그것은 사랑하고요. 섬기고요. 희생함으로 행복한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인 거예요.


 그렇다면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해 주셨어요? 영광스런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요. 낮고 천한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요. 죄악의 수치스러운 삽자가 형을 받으시면서요.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죽기까지 사랑해 주셨어요. 이처럼 주님께서는 죽으시면서 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시고요.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서로 우리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결코 힘이 들지 않고요. 기쁨으로 사랑하고요. 또 행함으로 행복해지고요. 축복된 거예요.
예화) 박항서 감독 이야기


 여러분, 우리의 감정만으로 절대 사랑을 못해요. 그래서 주님 주시는 사랑으로 사랑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요한복음 15:12에서도“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 이니라”고 강조하시고요. 에베소서 4:32에서도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   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강조하신 거예요. 우리도 모든 사랑도, 용서도, 위로도, 섬김도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강권하여야 우리의 예배도 진정으로 은혜롭고요. 봉사도 진정으로 행복하고요. 선교도 진정으로 축복된 거예요.
예화) 총회 농어촌선교회 후원의 날 일화


 우리가 사랑 받은 대로 사랑하고요. 은혜 받은 대로 은혜 갚고요. 축복 받은 대로 그 축복을 나눌 때에 주님께서 계속해서 복을 부어 주셔서요.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대로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함으로 넘치는 주님의 사랑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분명히 뜨겁게 체험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주님의 제자임을 알도록 사랑해야 함(35절)
 마지막으로 본문 3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는 흔히 교회를 다니면, 오랫동안 예수님을 믿으면,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우리가 주님의 제자인 줄로 알리라고 착각을 해요.
 그러나 세상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교회 안에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아요? 그러한 직분들은 우리가 주님의 제자라는 것을 알려주는 필수요건이 아니에요. 그 필수조건은 단 한가지뿐이에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는 거예요.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서요. 말이나, 행동이나, 모든 신앙생활을 통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느냐는 거예요. 그렇게 사랑이 메말라가다 보니까 우리 주위에서 사랑의 행복을 누리기는커녕 입만 열면 비방하고 글만 쓰면 험담을 하니 그럴 사람이 성령의 사랑의 성도냐는 거예요. 평생을 마귀의 하수인 노릇하다가 비참하게 인생을 끝내 버리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 자신부터 시작해서 가정도,   교회도, 우리 사회도, 세상도 다 불행과 고통 가운데 무너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다른 길이 없어요. 마태복음 5:44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 사랑이 안 되면 주님의 사랑을 구하며 기도하고요. 기도해도 안 되면 금식하면서라도 내가 죽어짐으로 주님의 사랑을 회복해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랑을 행하게 되고요. 우리 주위에 가족이나 교인들이나 직장 동료들이나 이웃까지도 “역시 예수님 믿는 사람들은 다르구나”하고 사랑의 감동을 주고요. 변화시키고요. 구원과 치유와 양육의 열매를 맺어 나가야 해요.
예화) 서부제일교회 어느 안수집사님 이야기


 그래서 마태복음 5:16의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치게 하며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는 말씀처럼요. 우리가 그렇게 믿음으로 일어서고요. 주님과 주의 종의 사랑을 받으면서요. 엄청난 축복을 받고 살아가니깐요. 이제는 온 가족들이나 주의 사람들까지도 “예수님을 믿는 삶이 이렇게 복 되구나!” 하고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이 되고요. 복음 증거의 통로로 쓰임 받고요. 주님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는 열매를 맺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늘 강조하지만요. 신앙이란 말이 필요 없어요. 따지고 달려드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요? 그저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신앙으로 축복을 누리고요? 행복하게 쓰임 받는 사람들을 보셨어요? 자신의 신앙도 제대로 주체하지 못하고요. 하나님의 복을 다 잃어버리고요. 주위의 손가락질과 외면만 당하다가요. 불행과 고통 가운데 인생을 끝내버린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러니 그러한 교인들의 말로가 뻔한데 그걸 바라봐야하는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이나 가족들의 심정이 어떠하겠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요. 주님과 주의 종들로부터 인정을 받고요. 주의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듣고요. 복되게 살아갈 때 그때 비로소 우리가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행하는 주님의 제자인 것을 다 알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고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번 왔다가 떠나가는 인생이지만요. 우리 주님께서 주신 새 계명을 기억하시면서요.
서로 사랑 할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하고요. 주님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고요. 주님의 제자인 것을 알도록 사랑하게 될 때 진정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계명을 다 행하고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 듣는 주님의 제자들이 모두 다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