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복음화(49)                                                                                (2019. 12. 22)
누가복음 2:8-11/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인가

 2000년 이 땅에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가장 먼저 예수님의 탄생 소식이 알려지고 아기 예수님을 가장 먼저 찾아뵌 사람들은 동방박사들이 아니라 밤중에 밖에서 양떼를 치던 이름 없는 무명의 목자들이었어요. 오늘 본문 10-11절에 그들에게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오늘 다윗의 동네(베들레헴)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선포하세요. 구세주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하시는 데도요. 한 개인에게만 해도 감사할 일인데요. 온 백성(for all the people)에게 미치는 것이고요. 기쁨을 안겨다 줘도 감사한 일인데요. 큰 기쁨(great joy)이 되는 것이고요. 우리 주위에 나쁜 소식도 많은데요. 좋은 소식(good news)즉 복음(εὐαγγέλιον, 유앙겔리온)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성탄 주일을 맞이하면서도요. 성탄의 기쁨과 감격이 과거의 비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거리의 성탄 캐럴도 잘 안 들리고요. 데코레이션 장식도 줄어들고요. 성탄절 카드나 선물도 약해지고요. 성탄절의 감동과 감격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어요. 그렇다면 왜 예수님의 탄생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되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영혼의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오심(누가복음 19:10)
 먼저 누가복음 19:10의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가장 먼저 영혼의 죄악으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영광을 버리시고요. 종의 몸으로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요.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을 다 대신 져주셨어요. 우리의 목숨만 살려 주어도 평생의 은인인데요. 우리의 영혼이 영원히 멸망당할 죄악에서 구원해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할 일이고요? 이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죄악으로 인해서 지옥 불못에서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는데요. 이 지옥의 심판을 결코 심각하게 믿지도 않고요. 생각하지도 않고요. 느끼지도 못해요. 그래서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이 영원히 소금 뒤치는 듯한 불속에서요(막9:49). 영원히 꺼지지 않고요. 죽고 싶어도 죽을 수도 없는 지옥에서요. 영원히 고통을 당할 텐데요. 우리가 이러한 지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니깐요. 구원에 대한 감사도, 감격도 안하고요. 기도도 잘 않고요. 하다가도 포기하고요. 전도도 잘 안하고요. 하다가도 포기하고 말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온전히 누리지도 못하고요. 전하지도 못하고요. 나누지도 못하는 거예요.
유머) 지옥 불구덩이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척이나 친구나 이웃 그 어느 누구도 그 고통스러운 지옥 불못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해야 하고요. 전도해야 하고요. 인도해야 하고요. 주님 앞으로 안 나오려고 해도 강권해야 하는 거예요. 왜냐하면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을 구원하시는 일이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기도 하지만요.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평소에 전도를 못해도요. 우리 치유하는 교회가 일 년에 두 차례 부활주일 새생명초청축제와 추수감사주일 해피데이축제를 하지 않아요? 그때라도 복음을 전해서 강권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일 년 내내, 아니 평생토록 전도 한 명 못하는 벙어리 교인도 있고요. 앉은뱅이 교인도 있고요. 전신마비 교인도 있어요. 그래서 지난 새생명초청축제나 해피데이축제의 전도 현황을 보면요. 그들의 영적 상태가 다 드러나는 거예요.
예화) JOY 4U(당신을 위한 기쁨)의 콘서트 최인혁 전도사님과 안재우 소장님 이야기


 우리가 아무리 혼자 예수님을 잘 믿는 것처럼 큰 소리를 쳐도요. 일 년 내내 아니 평생 가도록 전도 한 명 못하는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제자도 아니고요. 주님의 성도도 아니고요. 주님의 자녀도 아닌 거예요.
왜냐하면 마태복음 18:14의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고 강조하시기 때문이에요. 부족한 종이 새생명초청축제나 해피데이축제 전도자 명단을 늘 성경책 사이에 끼워 놓고 잊지 못하고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그 중에도 특별히 은퇴하신 한성기 협동원로목사님의 부인 되시는 김춘자 사모님을 뵐 때마다 감탄하는 것은 매번 전도축제 때마다 100명 안팎의 사람들을 전도하고요. 매번 많은 분들이 등록하는 것을 보면서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가 따라 갈 수 없는 얼마나 감탄스러운 복음 전도의 열정이에요? 사탄은 복음 전도를 어떻게 해서든지 막을려고 하고요. 훼방할려고 하고요. 방해하려고 해요. 그러나 우리가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복음 전도만은 멈춰서는 안돼요. 이처럼 인생의 근본적이고 중대한 문제인 우리의 영혼의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우리가 회개하고 믿음으로 받아드리게 될 때 우리는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복음전도자로서의 가장 중차대하고 가장 영광스러운 사명을 모두 다 충성스럽게 감당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시기 위해 오심

(마태복음 11:16-17)
 계속해서 마태복음 11:16-17의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 세대를 무엇으로 비유할까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제 동무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슬피 울어도   너희가 가슴을 치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우리가 많은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만 오신 줄 알아서요. 말세의 마지막 때에 사람들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안되니깐요. 점점 강퍅하고 완악해지고 있어요. 그래서 잔칫집에서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고요. 상갓집에서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며 함께 울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만큼 감정이 무뎌져 버린 거예요. 그러니 무슨 주님의 평안을 얻고요? 기쁨을 얻고요? 행복을 누릴 수 있겠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의 모든 상처를 치유해 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으니 이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에요? 그런데 우리의 지난날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가 안되니깐요 우리의 성격도 변하지 않고요 행동도 변화가 안되고요 신앙도 변화가 안되고요 주님 주시는 참된 평안과 행복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거예요. 더 나아가 자신만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 뿐 아니라요. 자신의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그릇된 신앙에서 나오는 말이나 행동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어서요. 그러한 사람이 우리의 우리의 가정안에 있으면 가정을 불행의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러한 사람이 우리의 직장안에 있으면 직장을 불화의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려요. 그러한 사람이 심지어 교회안에 있으면 교회를 고통의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고 말아요. 결국 평생을 주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다 잃어버리고요. 불행과 고통의 연자 맷돌을 매는 주님의 심판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더구나 말세 마지막 때 한국교회가 “영적으로 은혜 받으라”  “육적으로 축복 받으라”만 강조해서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못한 채 은혜 받고 축복 받고 교회의 중한 직분을 맡은 자들이 겸손하게 충성을 다하면 더할 나위 없이 은혜롭고요 축복되고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게 되는데 오히려 영적 교만에 빠져서요. 교회의 영적 부흥과 선교에 걸림돌이 되는 일들이 말세 마지막 때 한국 교회 안에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예화) MBN TV의 ‘우리 다시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프로그램의 싱글 맘들의 이야기


 그러므로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도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지난날의 상처의 치유를 받아야 해요. 그래서 우리의 모든 상처가 치유 받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주님께서 다른 어떠한 치유서보다 에베소서 4:31-32에 잘 밝히고 계세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명령하고 계세요. 이 치유의 말씀대로 우리의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과 모든 악의 등 모든 상처의 감정들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요. 그 빈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해서요. 주님의 사랑으로 어떠한 원수라도 그들의 상처의 피해자요, 희생자임을 기억하면서요. 친절하게 하고요. 불쌍히 여기면서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용서해 주셨는가를 기억하면서요. 우리도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는 거예요. 그리하면 우리의 지난 날의 상처가 모두 다 치유 받고요. 날마다 순간마다 천국의 기쁨과 행복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가 가진 것 없고요. 누리는 것 없고요. 내세울 것 없어도요.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된 삶이에요?
예화) 미국의 작가 오 헨리(O, Henry)의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단편 소설 이야기


  우리가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산다고요? 서로 용서하고 용서 받음으로 가장 먼저 우리의 상한 마음이 치유 받고요. 하루를 살아도 이렇게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렇게 예수님의 사랑을 통해 지난 날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 받은 사람들은 미국 예일대 영성심리학자였던 헨리 나우웬(Henri J.M. Nouwen)박사가 그의 명저인 「상처 입은 치유자(The Wounded Healer)」에서 강조하듯이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상처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셔서요. 상처 입은 치유자의 모범이 되셨듯이요. 우리의 지난날의 상처가 치유의 자원이 되어서요. 우리 주위에 우리보다 더 큰 상처의 고통과 불행 가운데 살아가는 우리의 가족과  친척과 교인과 이웃들까지도 치유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악 이상으로 중대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받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게 될 때 우리는 그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상처 입은 치유자로서의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여생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해 오심( 마태복음 8:17 )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8:17의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우리가 전통적으로 이해하고 있듯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만 대신 지시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요. 이사야 53:4의 말씀인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를 인용해서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한 상처를 친히 담당하셨고요. 우리의 질병까지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오셨다는 거예요. 그러니 질병으로 죽음의 위기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는 얼마나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이예요. 많은 때 우리는 건강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살다가요. 건강을 잃은 다음에 가슴을 치고 후회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아요? 큰 병을 앓지 않아도 감기 몸살만 앓아도 만사가 귀찮고 다 싫어지는데요. 불치의 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고 투병하시는 분들은 어떠하겠어요?


 그래서 시카고에 유학시절 어느 보신원 앞에 써 붙은 글귀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아요. “물질을 잃는 것은 조금 잃는 것이요.  명예를 잃는 것은 많이 잃는 것이요.  건강을 잃는 것은 전부 잃는 것이니 흑염소 개소주 드세요!” 이렇게 건강이 중요하고요. 건강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요. 그래서 대한자연치료의학회 이사이자 국제기능의학회 정회원이며 히포크라타 의원 정가영 원장이 쓴 「면역력을 처방합니다」라는 책이 최근에 나왔는데요. 약만 먹으면 나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서요. 이제는 기능의학으로 병이 싫어하는 몸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것은 몸의 면역력을 강화하는 것인데요. 그래서 면역력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첫째, 몸에 좋은 영양소를 찾고요. 둘째, 질 좋은 수면과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하고요. 셋째, 사방에 퍼져 있는 화학물질을 조심하고요. 넷째, 꾸준한 운동으로 몸을 가볍게 하라는 거예요. 그러나 그 어떠한 치료법도 중요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에서 우리의 질병을 대신 지시고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주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우리의 건강을 잃는 것은 질병의 치료를 위해 간구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야고보서 5:15-16의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   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라는 약속의 말씀처럼 우리 교회의 이름 그대로 우리 치유하는 교회를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적적인 치료가 매 주마다 불일 듯 일어나고 있어요?


 지난 주일 2부 예배가 끝난 후에도 암이라고 해서 안수 기도해 드렸던 한 집사님이 나오시면서요. 기쁨이 가득한 표정으로 “목사님, 저 암이 아니래요!”라고 하면서 그렇게 감사하며 소리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하셨어요!”하고 속으로 대답했어요. 이처럼 안수기도를 받고 병이 나았다는 성도님들이 매 주마다 적어도 2-3명 이상은 있으니깐요. 여러분, 의사도, 한의사도 못 고치는 병들을 우리가 어떻게 고쳐요? 부족한 종은 아무런 능력도 없고요. 병 고치는 신유의 은사도 받은 것이 없지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대신 지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불치의 병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께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줄 확실히 믿어요. 그러므로 우리가 육신이 병들었을 때 의사나 한의사나 약사를 찾아가기 전에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거예요. “왜 이런 질병이 저에게 생겼습니까?  이 고통 가운데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습니까? 이 인생의 고난 속에서 주님을 새롭게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과의 처음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이번 기회에 영적으로 뜨거운 주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체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엎드릴 때에 주님께서 우리가 통회 자복해야 할 죄악을 깨닫게 해주시고요. 우리가 풀어야 할 감정의 응어리도 풀어 주시고요.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도 되찾게 해 주시고요. 우리의 어떠한 질병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깨끗이 치료해 주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 이상으로 중대한 우리의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치료 받게 될 때 우리는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질병의 치료자로 복되게 쓰임 받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예화) 창원 양곡 교회의 부흥 성회 이야기
예화) 난소암 말기로 위중한 어느 집사님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 죄악으로부터 구원과 상처로부터 치유와 질병으로부터 치료의 손길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의 죄악의 구원과  마음의 상처의 치유와 육신의 질병의 치료를 이루시기 위해 오셨는데요. 우리에게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어디에 있겠어요? 이제는 우리의 남은 여생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의 복음 전도자가 되고요. 상처입은 치유자가 되고요. 질병의 치료자가 될 때에 비로소 이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의미 있고 보람 되고 복된 여생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