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음화(3)                                                                         (2020. 1. 19)
                                        그 날이 올 때까지(창세기 6:1-8)

                                                                                         
 우리가 새해 ‘세계 복음화’의 주제 아래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 있는데요. 최초의 복음 증거가 오늘 본문 가운데 나와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지난 날의 그 축복되고 행복했던 시절을 추억하면서 많은 후회와 한탄 속에서 살아갔을 거예요. 그런데 그 후손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보면서요. 하나님의 심판의 그 날이 오기까지 우리의 남은 때를 어떻게 복음증거 하며 살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세속적 가치관과 구별되게 살아야 함(1-2절)
 당시 사람들은 아담이 930세를 살 정도로 장수했고요. 따라서 인구도 급속히 증가하면서요.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여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오는데요. 아담의 큰 아들 가인(‘얻음’이란 뜻)이 둘째 아들 아벨(‘허무’라는 뜻)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받아들였지만요. 자신의 제사는 하나님께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 분노하면서요.


동생 아벨을 죽이는 이 땅의 최초의 살인자가 되어서요. 끝없이 유리 방황하는 불행과 고통의 삶이 시작된 거예요. 그런데 그 이후에 태어난 아담의 세 번째 아들인 셋(‘대신한 자’라는 뜻)의 아들들이 ‘하나님의 아들들’로서의 영적인 계보를 이어갔는데요. 전설에 의하면 가인, 아벳, 셋 이 후 아주라, 아완 등의 자녀들도 있었다고 하는데요. 이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인 셋의 아들들이 육적인 사람의 딸들인 가인의 딸들의 아름다움에 빠져서요. 아내로 삼은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요. 이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육적인 딸들을 아내로 삼는 일부다처제까지 시작된 거예요. 그리하여 이것이 유행처럼 퍼져 가면서요. 오늘날의 중동의 이슬람교의 일부다처제 문화를 이루고요. 세속적 가치관이 팽배한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만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세상 속에서 살아가도요. 결단코 세속적인 가치관에 따라 살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세속적 가치관은 무엇일까요? 세속적인 가치관은 항상 크고요. 많고요. 높고요. 아름답고요. 힘 있는 것을 최고로 여겨요. 그래서 사탄의 사람들은 항상 사람들의 감정을 충동질하고요. 수를 모으고요. 세를 과시하고요. 힘 있는 사람들에 달라붙고요. 자기들이 최고인 것처럼이요.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고 몸부림을 치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탄의 세력들이 한 때는 득세하는 것 같지만요. 마지막에 보면 자신의 인생의 마지막은 말할 것도 없고요. 자식들의 장래까지 다 무너지고 말아요. 그런데 이와 반대인 성경적 가치관은 어떠한가요? 작은(small) 것도 소중하고요(마11:42, 18:3,6). 적은(few) 것도 충성을 다해야 하고요(마25:21,23). 낮은 것이 더 복된 것이고요(눅18:14). 추해 보여도 한 생명이 소중하고요(마16:26). 힘없는 자의 편에 서서 돌봐주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님의 사람들은 지난 날 목회를 돌아보거나 또 우리 영적인 삶을 죽 돌이켜보면 무엇이 주님이 기뻐하시고요. 무엇이 교회에 유익하고요. 무엇이 복음인지를 더 힘써 전하고요.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가에 혼신의 힘을 다 쏟는 거예요. 그리하여 영적인 성령님의 사람들은 한 때는 비방도 당하고요. 모험을 겪고요. 핍박을 당하고요. 무너져가는 것 같지만요. 하나님께서 항상 함께 하시고요. 뒤에서 지켜 주시고요. 끝까지 붙들어 주시니깐요.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내고요. 복되게 일어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세속적 가치관과는 달리 구별 되어서요. 우리의 적은 시간, 적은 재능, 적은 물질을 소중히 여기고 드릴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간증) 성전건축을 위해 자신이 모은 적은 저금통을 헌금하여 교회와 자신까지도 놀라운 축복을 경험한 어느 목사님 딸의 이야기


2. 응답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함(3절)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육적인 사람의 딸들의 비성경적인 결혼이 결국 하나님의 영이 그들을 영원히 떠나게 되고요.
그들은 육신의 삶에 빠져 살아가게 되고요. 그 결과 그들의 생명의 연수가 믿음에 조상들은 아담이 930세, 셋이 912세, 에노스가 905세, 게난이 910세, 마할랄렐이 895세, 야렛이 962세, 므두셀라가 969세까지 갔다가요. 갑자기 120년으로 확 줄어들게 돼요. 역으로 말씀드리면 그들이 앞으로 살 수 있는 120년 동안 노아는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했어요. 그러니 1, 2년도 아니고요. 10, 20년도 아니고요. 120년이라는 세월이 얼마나 길고 힘들게 느껴졌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과 심판의 때를 기다리는데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인지 아세요?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며 인내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인내를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생명과 건강과 물질과 행복이 달린 심각한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도 그 인내의 한계만 넘어서면 기적적인 치료가 일어나고요. 생명이 살아나고요. 기적이 일어나고요. 주님의 놀라운 영광이 나타나게 되는 거예요.
간증) 인내하며 새벽마다 안수기도 받으며 신장을 제거하지 않고도 신장암을 회복하게 된 권사님의 이야기


 이번 설 명절에도 가서 본가나 처가나 처가 식구들을 만나보면 별의 별 사람을 다 만나게 되요. 믿는 사람들도 있지만 안 믿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안 믿는 사람들은 우리와 완전히 삶의 스타일이나 차원이 달라요. 그래서 성경적인 욕심이나 욕망, 자기 자랑과 교만, 그리고 호기심과 혈기가 가득 차 있어서요. 대화가 되질 않고요. 부딪치고 힘들 때가 많고요. 마음에 많은 상처와 고통을 안겨다 줄 거예요. 그때에도 우리는 어떻게 이겨내라고 했어요? “주여! 주여!......”하고 주님을 바라보고요. 주님께 하소연하고요. 주님의 도우심을 구하면서요. 예수님처럼 “사흘만 참자! 사흘만 참자!......”하다 보면요. 시간이 금방 지나가 버리고요. 우리는 주님 주시는 사랑으로 인내하면서요. 어떠한 상처의 위험과 고통도 다 이겨내고요. 승리하고 돌아오게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더욱이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과 모든 계략을 다 내려놓고요. 가장 손쉽고 힘 있고 기적적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는 기도와 금식으로 매어 달리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안하니까. 말세에 믿음으로 기도하며 금식하며 매어 달리지 않으니깐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18:8)는 주님의 탄식의 말씀이 그대로 재현되는 거예요. 그래서 주의 종들이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 교인들에게서 이런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인내를 참으로 찾아보기 어려운 말세의 마지막 때예요. 더욱이 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것, 자기 이름을 내는 것, 자기를 행복하고 축복되게 하는 것을 위해서는 열을 내고 인내해요. 그런데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요. 고난을 겪고요. 고통 가운데 인내하는 것에 대해서는 다들 회피해 버리고요. 편안한 길을 찾아가 버려요. 더 이상 인내하길 원치 않는 거예요.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성령님의 사람이라면요. 말씀 일고 듣는 것, 기도하는 것, 예배드리는 것, 사랑으로 섬기는 것, 영혼을 살리는 것, 하나님의 기적의 응답을 구하는 것만은 인내하며 기다려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인생 가운데 가장 큰 고난을 당했던 욥을 잊지 말아야 해요. 그는 동방의 제일가는 부자로서 그 많은 재산을 벼락과 강도들에게 다 잃어버려요(욥2:7-8). 몸에 피부 종양이 생겨 그릇 조각으로 몸을 득득 긁어야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러웠겠어요?(욥2:7-8) 그러나 마누라라도 와서 위로해 주면 새 힘을 얻을 수 있을 텐데 “그래도 네 믿음을 지키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려라!”고 비난하지요(욥2:9-10). 더구나 마누라와 아무리 사이가 안 좋아도 친구들에게라도 마지막 위로를 받을 수 있는데요. 세 친구가 욥에게 와서 “네가 하나님께 이 큰 죄를 짓지 않고 어떻게 이 엄청난 고난을 당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욥4-25장). 그런데 욥이 모든 시험을 이겨내고요. 최고의 축복을 회복하고요. 입지전적인 신앙의 인물로 서게 된 것은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욥1:21)의 청지기 신앙에 근거한 신앙의 인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서 5:11에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고 강조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든지 전도를 하든지 기도의 응답을 기다리든지 끝까지 주님만 바라보면서요. 10년이고 20년이고 100년이고 120년이고 아니 우리의 생명 다할 때까지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인내하며 주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 주님께서 부르시는 그 날까지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될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의 은혜를 먼저 체험하고 나누어야 함(8절)
 하나님께서 당시 사람들의 수명을 120년으로 급 단축시키시고요. 그들이 살아있는 동안 노아를 통해서 끊임없이 인내하며 복음을 전했는데도요. 당시의 땅에 ‘떨어진 자, 타락한 자’라는 뜻의 ‘네피림’이라는 대장부 거인들이 있었고요. 그 후에도 영적인 하나님의 아들들과 육적인 사람의 딸들에게서 용사들이 태어나서요. 네피림에 대항하여 명성을 얻고 있었어요. 다시 말하면 사람들의 이름을 내는 데만 관심이 있었지요. 그들은 전혀 복음 신앙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어요. 결과적으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고요. 그들의 마음에 모든 계획이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항상 악한 것뿐이었어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던 것을 한탄하시고요. 오죽하시면 저렇게 살다가 어떻게 될까하고 근심까지 하시고요. 모든 인간들을 동물들과 함께 지면에서 쓸어버려야겠다고 최후의 결단까지 하신 거예요.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그 수많은 사람 가운데 노아만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는 거예요.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 중에도 마지막 긍휼의 구원의 길이 열렸던 거예요. 오늘날 말세 마지막에도 마찬가지예요. 사탄이 판치는 세상이 사악하고 타락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심지어 가장 영적으로 깨어 있고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면서요. 어떻게 해서든지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할 말세 교회 안에서도 자기 이익을 추구하고요. 명예를 앞세우고요. 끝까지 자기 뜻을 관철하고요. 과시하려고 모의하고요. 끊임없이 발목을 잡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복음전파를 막으려는 세력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왜 그런지 아세요? 한 마디로 그들은 주님과 고통당하는 영혼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요. 교회에 와서 큰소리만 치고요. 자기 뜻만 내세우고요. 자기 이득을 챙기고요. 자기 이름만 내는데 앞장서는 예수님께서 그토록 진노하셨던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똑같은 종교생활을 해왔기 때문이예요. 어떠한 인간도 복음을 통해서 성령님의 은혜를 체험해야 변화하는 거예요.
예화) 누군가의 화해를 시도하기 이전에 상처받고 미워했던 나 자신과의 화해를 강조한 신경정신과 오은영 박사의 책 「화해」
예화) 양어머니의 눈물의 기도와 인내의 사랑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하며 고아의 아픔을 치유받은 홀트아동복지회 박요한 목사 이야기
예화) 결혼후 급작스럽게 어려워진 환경에서 금식하며 기도하여 은혜를 체험하고 사역을 시작한 청주금식기도원 원장 백효선 목사 이야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또 다시 설 명절을 맞이하게 돼요.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 손주들을 만나게 될 텐데요.
그들에게 결단코 세상의 세속적 가치관과 구별하고요. 응답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면서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끝까지 섬기고 나누며 승리하고 돌아올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의 온 가족을 구원하는 그 어느 해보다도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의 감격이 넘치는 설 명절을 맞이하게 될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