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음화(4)                                                                               (2020. 2. 2.)
무엇이 문제인가?(창세기 9:18-29)

 우리가 오늘 무사히 예배 드리러 나온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그렇다면 우리가 왜 계속해서 불행과 고통의 삶 가운데 헤어나오지 못할까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무엇이 문제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남의 허물을 들추지 말아야 함(21-22절)
 노아의 때 대홍수의 심판이 있었는데요. 그 홍수의 심판의 증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지금도 터키 북방의 아라랏산 정상에 노아의 방주가 빙하에 덮여 냉동 보관중인 것이 확실한 증거예요. 그런데 노아의 가족들이 방주에서 나온 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것으로 보여져요. 왜냐하면 여기 나오는 가나안은 함의 넷째 아들이었기 때문이에요(창10:6). 이때 농사를 시작했는데요. 포도나무를 심어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만들었는데요.
예화)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었을 때 사탄이 와서 동업을 하자고 하는 탈무드 이야기


 그런데 문제는 둘째 아들인 함이 그 아버지 노아가 하체를 벗은 것을 보고 가리워주기 보다는요. 밖으로 나가서 그의 형인 셈과 동생인 야벳에게 “나는 봤다! 나는 봤다!”하면서 아버지의 허물을 조롱하여 들춰낸 거예요. 그런데 이 조그마한 일이지만 아버지의 영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요. 그의 허물을 들춰내면서요. 자신이 무슨 큰 의라도 행한 것처럼요. 비난하던 이 함이라는 아들에게는 큰 저주가 임하고 만 거예요. 그래서 노아가 술에서 깨어 이 막내아들이 자신에게 행한 일을 알고요. 함에 대해서요. 본문 25절에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저주를 해서요. 26절 하반절에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라고 예언하고요. 27절 하반절에도 “......가나안은 그(야벳)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라고 예언한 거예요. 함은 그의 형인 셈과 동생 야벳의 종이 되는 저주를 받은 거예요.
예화) 인류의 삼인종의 기원 이야기


 창세기 10:6에 나오는 ‘뜨겁다’의 뜻을 가진 함의 자손들을 보면요.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라고 기록하고 있는데요. 구스는 에디오피아이고요. 미스라임은 이집트이고요. 붓은 리비아이고요. 가나안은 팔레스타인으로써요. 주로 뜨거운 북아프리카 지역에서부터 남쪽으로 퍼져나가서요. 아프리카의 흑인종이 된 거예요. 그래서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노예가 되어 끌려다니면서요. 특별히 야벳(백인종)의 종살이도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통을 겪어야 했는지 그 동안 인류의 역사를 통해 증명되는 사실 아니예요? 그들의 조상인 함의 아버지의 허물을 들추는 순간적인 실수가 그 자손들의 큰 불행과 고통이 되고 만 거예요.
간증) 위임목사님 쿠바 선교이야기
예화) ‘풍요 속에 빈곤(Poverty in the midst of plenty)’라는 주장을 한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인즈(John Keynes)박사


 부요한 환경에 감사하기보다도 내 자신의 욕구 충족이 덜 되었다고 불평과 원망을 하다 보니까 풍요 속에 빈곤에 빠지고만 거예요. 그래서 우리의 신앙생활도 보면 입만 열면 남의 허물을 들추며 비방하고 험담을 하기 때문에 평생토록 불행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것도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교인이라고 하면서 이러니 얼마나 실망스러워요? 그런 사람은 주님도, 주의 종들도, 교인들도, 세상 사람들도 안 좋아 할 뿐만 아니라요. 아마 자기 마누라나 자식들도 다 안 좋아 할 거예요. 사탄 마귀만이 좋아할 거예요. 왜냐하면 그들은 가장 먼저는 베드로전서 4:8에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a multitude of sins, 수많은 죄들)를 덮느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불순종했기 때문이에요. 주님께서는 우리와 같이 죄와 허물이 많은 자들까지도 허물을 다 덮어주시고 용서해 주셨는데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사니까 그 사람은 영적으로 바로 서지 못하고요. 곧 바로 사탄이 그들의 삶 가운데 역사하기 시작해서요. 그래서 자신의 영적인 문제가 심각한 사람일수록 사탄에 속아서요. 남의 허물을 덮지 못하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들추고 비방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지난날의 상처가 치유 받는 길이 없으니깐요. 아마 이번 설 연휴에도 그런 가족이나 친척들은 만나서요. 상처를 많이 받고 돌아오셨을 거예요. 언제까지 평생을 그렇게 상처만 주다가 자신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모두를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가는 거예요.
예화) 한 장로님이 보내주신 인도 캘커타 난민 가에서 일생을 헌신하신 테레사 수녀의 이야기


 그들의 비성경적이고 비신앙적이고 비복음적인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이 그들의 말로 다 터져나오고요. 그것이 행동으로 곧바로 굳어지고요. 그것이 습관적으로 끊임없이 그들의 삶 가운데 나오니깐요. 그것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성격으로 굳어지고요. 결국 불행과 고통의 운명의 삶을 살고 마는 거예요. 그러니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에요? 왜 이처럼 인생을 꼭 그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다가 끝내야 하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더욱 큰 문제의 심각성은 그러한 영적으로 심각한 문제가 많은 사람들은 끼리끼리 모이다 보니깐요. 주위에서 아무도 그들의 문제를 깨우쳐 주는 사람이 없어서요. 더욱 더 심각한 불행과 고통의 문제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요. 평생을 그런 불행과 고통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는 것이 더욱 더 심각한 문제이고 불행이라는 거예요.
간증) 이번에 가서 본 쿠바의 폐허 속의 행복


 목회를 하면서 이렇게 남의 허물만 들추는 교인들을 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이 성령 충만한 사랑의 성숙한 삶을 살도록 바로 잡고요.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요. 매 주일마다 강단에서 웃음과 눈물의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면서요. 그들의 신앙과 성격과 삶을 치유할려고 하고요. 또 2월 셋째 주간에 있는 치유동산을 통해서까지 자신의 신앙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결정적인 걸림돌인 지난날의 상처의 치유의 체험을 하도록 하고자 하는 거예요. 그런데 그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치유가 진정으로 필요한 사람들일수록 이러한 치유를 안 받으려고 하고요. 평생을 자신의 감정의 응어리를 풀지 못하고요. 일생을 지옥과 같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삶을 살고요. 가족과 교인들과 세상 사람들에게 상처만 주고요. 가정이나 교회나 세상에서 암적 존재로 살면서요. 이 놀라운 주님의 치유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은 다 잃어버리고 살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끝내고 마는 거예요. 그러니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이냐는 거예요. 그러므로 남은 여생이라도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셨듯이요. 상대방의 어떠한 허물이라도 다 덮어줌으로써요. 진정으로 주님의 사랑을 행함으로 지난날의 불행과 고통과 파멸의 삶의 고리를 과감히 끊어버리고요. 남은 여생이라도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서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함(23절)
 둘째 아들인 함이 영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아서요. 육신적인 마음에 사로잡혀서요. 아버지의 허물을 들추며 조롱했던 것과는 달리요. 첫째 아들인 셈과 셋째 아들인 야벳은 영적으로 성숙하고 충만했기 때문에요. 아버지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요. 아버지의 옷부터 찾아요. 당시 옷은 네모난 천으로 낮에는 내의 위에 걸치고요. 밤에는 이불로도 사용했는데요(출22:26). 셈과 야벳은 그 아버지 겉옷을 찾아서요. 자기들이 어깨에 메고요. 뒷걸음쳐 들어가서요. 그들의 얼굴을 돌이켜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도 않고요.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리고 나왔던 거예요. 그 후 아버지 노아가 술에서 깨어서요. 그 첫째와 셋째 아들의 선행을 들으시고요. 오늘 본문 26절과 27절 상반절의 축복을 하신 거예요. 셈의 하나님을 찬송하고요. 야벳은 셈의 장막(성막)에 거하게 하면서요. 셈에게는 영적 은혜를 베푸는 사명을 주셨던 거예요. 그래서 “유명하다”는 이름의 뜻을 가진 셈의 후손들이 창세기 10:21에 나오는데요.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라고 하는데요. 여기 나오는 ‘에벨(ֵ֔רבֶע)’은 히브리어로 ‘히브리(םרִ֖יבְע)’ 즉 ‘건넌 자’라는 뜻으로요. 그들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유프라테스 강을 건넜다는데서 유래된 이름인데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몸소 히브리인의 조상이 되어서요. 그의 후손 가운데 이스라엘과 이스마엘과 미디안 등이 나와서요. 오늘의 이스라엘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진출하며 아시아에 흩어져 살았던 황인종을 이루게 된 거예요. 그런데 바로 이 황인종 셈의 후손에게서 구약 성경의 유대교가 나오고요. 구약 성경의 예언대로 이 다윗의 후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셔서요. 신약 성경의 기독교가 태동하게 되었고요. 바로 온 인류가 셈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게 되고요. 가나안과 야벳의 후손들도 모두 그 주님을 섬기게 되어서요. 셈의 후손으로 하여금 은혜를 베푸는 영적 사명을 감당하는 영광을 누리게 했던 거예요.


노하기를 더디하는 것이 우리의 지혜이고요(잠언 19:11).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의 영광이 되어서요. 이번 설 명절에도 다 겪어보셨겠지만 이렇게 상대방의 허물도 덮어주는  사랑의 성숙하고 충만한 가족들이 가정에서도 다 사랑받고요. 인정받고요. 존경받고요. 다 좋아하는 거예요. 그것은 직장에서나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들을 다 좋아해요. 그래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로 영광스럽게 쓰임 받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장로, 안수집사, 권사가 되어서 교만해져 가지고요. 남의 허물이나 들추면서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는 교인들은 결국에는 모두에게 외면당하고 인생도 불행과 고통 가운데 끝이 나고 말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까지 허물을 덮어주고 사람을 살리는 은혜를 베푸는 삶을 살아가면요. 결국에는 그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평생토록 은혜를 베푸시고요. 축복을 내려주시고요. 행복하게 은혜를 베푸는 일에 쓰임 받게 하시는 거예요.
간증) 쿠바 선교에 함께 동행한 부산장로신학대학교 총장이신 허원구 목사님 이야기


 여러분, 이번 설날에도 사랑하는 부모, 형제, 자녀손들을 만나서 치유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고 오셨습니까? 여기에 ‘아멘’하고 대답하지 못하신 분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설날을 주님의 은혜의 복음의 통로로 사용하지 못한 거예요.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어요?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하니깐요. 삶의 모범이 되지 못하니까 은혜의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지 못한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며 신앙으로 살아가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인 거예요(아멘?). 그러므로 우리가 주위 사람들의 어떠한 허물조차도 사랑으로 다 덮어주고 영혼을 살리는 은혜의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될 때 우리 여생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자손들 까지도 주위의 사람들을 구원하고 치유하고 양육하는 주님의 은혜의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예화) 안드레 부목사 셋째아들 예듬 동영상


우리가 주위의 가족들이나 교인들이나 세상 사람들의 어떠한 허물조차도 다 덮어주고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을 살려 나갈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여생 뿐만 아니라 자손들에게 은혜를 베풀고요. 복음을 증거하면서 복되게 쓰임 받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축복도 함께 나누어야 함(27절)
마지막으로 셋째 아들인 야벳도 첫째 아들인 셈과 함께 아버지의 옷을 가져다가요. 아버지의 하체를 덮어드렸어요. 야벳은 창대해지는 축복을 받고요. 셈의 장막(성막)에 거하면서요. 그에게서 신앙을 배우면서요. 함의 자손인 가나안이 그의 종이 되게 하면서요. 야벳은 창대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는데요. 창세기 10:2에 이 “확장하다”는 뜻을 가진 야벳의 후손들을 보니깐요. 고멜은 러시아 남쪽 흑해 지역에 살았고요. 마곡, 두발, 메섹은 터키 동부지역에서 살았고요. 마대는 메데(미디안)로써 카스피해 남부지역에서 살았고요. 야완은 그리스에 살면서요. 야벳의 자손들은 주로 소아시아, 지중해 연안을 통해 북쪽인 유럽으로 퍼져 나갔어요. 그들은 유럽을 거쳐 미주, 오세아니아주에까지 퍼진 백인종을 말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들은 셈의 신앙 즉 기독교 신앙을 받고요. 그리스도의 교회에 거하면서요. 그들이 신앙을 통해 받은 축복을 함께 나누면서요. 전 세계를 향한 복음 선교의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게 되었던 거예요.
간증) 쿠바 선교중 바라데로에 있는 도라기념교회를 방문한 이야기
간증) 멕시코에서 어머니와 함께 한 살 만에 쿠바로 이민을 떠났던 임천택 성도님 이야기


 그래서 잠언 12:13에 “악인은 입술의 허물로 말미암아 그물에 걸려도 의인은 환난에서 벗어나느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어떠한 환란 속에서도 남들을 비방하지 않고요. 끝까지 인내하면서요. 사랑으로 섬기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러한 종들이나 성도들의 여생 뿐만 아니라 그 자녀손들까지 천 배나 만 배나 하나님의 축복으로 갚아 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간증) 8년 동안 충성을 다하셨던 최종배 목사님 이야기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해 나갈 때 우리의 문제가 무엇이에요? 그것을 이 시간 깨닫고 변화 되어야 해요. 이제는 더 이상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고요. 주님의 치유의 은혜를 베푸는 삶만 살고요. 주님의 축복도 함께 나누면서 살아갈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여생 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도 참으로 은혜롭고요. 축복되고요. 행복하게 쓰시고요. 우리를 통해 크게 영광 거둬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