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6)                                                                                     2020.2.16.
복이 될지라(창세기 12:1-4)

 모든 인간은 복 받기를 간구해요. 특히 우리 조상들은 복을 많이 간구했어요. 그래서 어렸을 때 보면 숟가락에도 복자, 젓가락에도 복자, 밥그릇에도 복자, 국그릇에도 복자, 이불에도 복자, 장롱에도 복자, 병풍에도 복자, 기둥에도 복자, 대문에도 복자, 온통 ‘복’자 투성이었어요. 그렇다면 그렇게 ‘복’자를 많이 썼다고 해서 복을 누렸느냐는 거예요.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지기 전에는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저는 우리나라의 선교의 기원을 1885년 미국의 언더우드,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입국보다 20년 전인 1866년 영국의 로버트 토마스 선교사님의 대동강변 순교로 봅니다만 아무튼 이 땅에 복음이 전해진 후에 우리나라는 진정으로 복을 누려서 개화가 되고 근대화가 되고 민주화가 되고 복지화가 되고 오늘의 세계화가 된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복둥이)이 될지라(you will be a blesssing)”고 선언하시는데요. 과거 개역판 성경에는 “복의 근원(the foundation of a blessing)이 될지라”고 잘못 번역이 되었지만은 복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 밖에 없는 거예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셔야 우리가 진정으로 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진정으로 복(복둥이)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상의 죄악된 삶을 떠나야 함(1절)
 원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갈대아 우르에서 살고 있었는데요. 당시 그가 살던 갈대아 우르는 해신, 달신, 별신 등 자연신을 섬기고 있었어요(수24:2). 그래서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요.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명령하신 거예요. 더 이상 우상 숭배를 하지 말고 고향을 떠나 그에게 보여줄 약속의 땅으로 가라는 거였어요.
 지난 주일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고고학자들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5000년 전인 주전 3000년경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아 우르는 티그리스강와 유프라테스강의 하류 지역으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달해서요. 세계 최초의 도시국가를 형성하고요. 최초의 문자를 사용하고요. 최초의 법전이 제정되고요. 최초의 학교교육이 시작될 정도로 최고의 문명을 누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시골에서 도시로 이사를 가라고 하면 쉽게 떠나겠지만요. 그 편리한 도시에서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사막길로 떠나라고 했을 때 그것은 결코 쉬운 결단이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그 어려운 결단을 하였던 거예요. 왜냐하면 더 이상 우상숭배를 하는 죄악된 곳에서 살 수가 없어서요. 살아계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으로 결단을 하고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나갔던 거예요(히11:8).


 우리도 복(복둥이)이 되려면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 막는 우상숭배부터 과감히 버리고 떠나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골로새서 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분명히 경고하시지 않습니까?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땅에 있는 육신에 얽매여서 살다 보니깐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에 빠져 살아가요. 그런데 이처럼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탐심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라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고요. 우리가 주님보다 명예를 더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고요. 우리가 주님보다 세상 향락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고요. 우리가 주님보다 남편이나 자식들을 더 사랑하면 그것이 바로 우리의 우상이고요. 우리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든지간에 우리의 우상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러한 우상들을 버리고 포기하지 않는 한 이러한 우상들이 주님과 우리 사이 복을 가로 막는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고 마는 거예요.


 여러분도 세상을 살아갈 때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돈이나 명예나 향락의 유혹이 많이 있으시겠지만요. 주의 종들도 그러한 시험들이 많이 있어요. 특별히 목회를 하다 보면 어렸을 때 부모님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결혼해서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한 교인일수록 목사님을 그렇게 의지해요. 그런데 목사님이 말씀의 은혜나 기도의 능력이 있으면 더욱 더 매어달리네요. 그런데 목사님이 인물까지 뛰어나봐요. 막 달려드네요. (그러니 저나 우리 부목사님들이 목회하기가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지난 날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제라도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베드로전서 4:1-2에 있어요. 우리가 지난 날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우상이 있었다 할지라도 이제라도 돌이키고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면요.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요. 치유의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요. 우리의 위로의 평안을 부어 주시고요. 우리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시고요. 건강도 붙들어 주시고요. 삶의 축복을 부어 주시고요. 더욱 크게 사명을 감당하게 해주시는 거예요.

간증)위임목사님 쿠바 선교 보고


 우리의 삶의 불행과 고통도 삶이 부요하지 않고 풍요롭지 못해서가 아니라요. 우리가 과거보다는 대부분 잘 살지만요. 이러한 주님보다 더 사랑하며 붙잡고 있는 우리 삶의 우상 때문에 이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의 장애물들이 되어서요. 우리의 진정한 은혜가 점점 메말라가고요. 축복도 점점 잃어버리고요. 행복이 점점 사라지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우상의 죄악된 삶조차도 과감하게 믿음으로 결단하고요. 버리고 떠나갈 때에 우리가 진정으로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새롭게 회복하게 될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함(2-3절)
 여기 본문 2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고 선언하시는데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고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라고 약속하셨던 거예요. 아브라함이 히브리어로 ‘히브리’란 뜻인 ‘건너온 자’ 즉 히브리인의 조상이 되었고요. 축복 받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세워졌을 뿐만 아니라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영적 자손이 되는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예언하듯이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교회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이 된 거예요. 우리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됨으로서 이미 복을 받아서 복둥이가 된 거예요. 여러분, 옆 사람에게 말해 보세요. “장로님은 복둥이입니다! 권사님은 복둥이입니다! 집사님은 복둥이입니다! 성도님은 복둥이입니다!” 저희 부모님이 살아생전에 서로를 향해 늘 그렇게 고백하곤 하셨는데요.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당신은 복돌이요!”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당신은 복순이요!”라고 하시곤 했어요. 집에 가셔서도 그렇게 고백해보시기 바랍니다.

예화)앗시시의 ‘성 프랜시스’의 이야기


 여러분, 복을 가진 성도는 말이나, 행동을 안 해도 여러분이 여러분의 가정과 직장과 이웃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복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복을 가지고 사는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그로 인해 복을 받았고요. 야곱이 외삼촌 라반의 집에 가니까 외삼촌 집이 복을 받았고요. 요셉이 애굽 보디발 장군 집에 팔려갔을 때도 그 집이 요셉으로 인하여 복을 받아서 보디발 장군이 집안 살림을 모두 요셉에게 맡길 정도였어요.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을 축복의 통로로 세워 주신 거예요. 그러나 반대로 오늘 본문 3절 하반절에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약속하시는데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에게도 많이 듣기도 하였지만요. 목회를 하면서도 많이 경험한 놀라운 사실은요. 신실한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을 괴롭히고요. 교회를 어지럽힌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나요. 복 받고 잘되는 사람을 보지를 못했어요. 또한 그 자손이 잘 되는 것도 보지를 못했어요. 결국 다 안 되고 망해 버리고 죽어버리더라고요. 그러니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인 인생이에요? 그래서 주의 종들은 그렇게 고통을 겪으며 망하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요. 사랑으로 권면하고요. 끝까지 영적으로 바로 세워 나갈 수밖에 없어요.
 
예화)지난 15년간 우리나라에서 기자 생활을 한 영국의 ‘마이클 브린’이 쓴 「한국인을 말한다(The Koreans: Who They are, What they want, Where their Future Lies)」라는 책 이야기
예화)중국의 시나 닷컴이 발표한 한국의 5대 국보와 봉준호 감독의 아카데미 시상식


 그런데 이것이 바로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주님의 가르치심인 거예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고 신앙생활을 해보면요. 복을 못 받고 못 누리는 사람과 복을 받고도 못 누리는 사람 복을 받고 누리는 사람으로 크게 삼등분이 되는데요. 진정으로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사람은 우리 자신만 복을 받고 자손들에게 다 물려주는 사람이 아닌 거예요. 진정한 복둥이는 복을 받고 복을 누리는 사람인 거예요. 그렇다면 왜 이렇게 우리에게 많은 복을 주셨을까요? 많은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복 받기만을 기대해요. 그리고 이 땅에 사는 동안 돈을 얼마나 많이 벌고 쌓아놓는데만 급급해요.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세상 복은 받았을 줄 모르지만 진정한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아닌 거예요. 예수님을 믿고 우리만 복 받고 잘 사는 것은 세상의 기복 종교와 다를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거예요. 우리가 먼저 복을 받고 이 복이 절실한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친척, 친구, 이웃, 나라, 민족, 열방을 향해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에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제라도 예수님을 믿고 나만 복 받고 잘 살고 내 자식들, 손주들만 잘 되면 된다는 생각이나 삶이 얼마나 복음을 벗어난 비복음적인 삶을 살고 있는가를 심각하게 깨달아야 해요.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복을 쌓는 것이 아니라 화를 쌓고 있는 삶이예요. 그래서 기독교 국가인 미국이나 캐나다나 유럽의 재벌들은 복을 나누는데 크게 쓰임 받고 그 복이 이어지는 것과는 정반대로요. 우리나라 재벌들을 보세요. 행복하게 그렇게 재산을 많이 모아서 자손들에게 물려준 집안 치고 형제 사이가 좋고요. 그 복을 이어가는 가문을 우리가 거의 찾아볼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삼성, 현대, SK, 롯데, 한진, 금호, 효성, 대림......(제가 오늘 하루 종일 세고 있어야 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재벌들의 부자간에, 형제간에 화목한 집안이 어디 있어요? 다들 원수처럼 지내고 있잖아요? 우리가 받은 물질의 복을 축복의 통로로 잘 사용하지 못할 때 오히려 그러한 물질의 복이 자신이나 자손들에게 큰 해가 되고 만 거예요. 그뿐만이 아니에요. 저나 여러분이 머지않아 언젠가는 한번은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 아니에요? 그런데 더욱 두려운 것은 우리가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지 않으면요. 마태복음 25:26-30에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도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흩으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심판하실 것을 분명히 경고하시고 계시잖아요?


 여러분, 지금 우리 주위에 가난과 질병과 불행과 고통 가운데서 우리의 사랑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형제나 이웃이나 북한 동족이나 오지에 죽어가는 생명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주의 종들이나 선교사님들이나 교인들에게 한 주간 다 나눠주고 나면요. 지갑이 비어 있어요. 그런데 주일에 우리 성도님들이 놀라울 정도로 그 액수를 기적적으로 다 채워 주세요. 그래서 계속해서 매 주일을 이러한 축복의 통로의 기적 속에 살아가고 있어요.


예화)신종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격리되었다가 집으로 돌아간 중국 우한 교민 이야기
 이처럼 우리의 일생이 축복의 통로로 쓰임 받아야 하는 거예요. 어차피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떠나갈 터인데요. 우리가 남은 여생 봉사와 구제와 선교의 사명을 깨닫고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과 잘 나누고 베풀고 섬기면서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면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우리의 여생과 자손 대대로 믿음의 복을 누리지만요. 어느 날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때 마태복음 25:21, 23에 다섯 달란트 맡은 자나 두 달란트 맡은 자에게 액수의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똑같이 약속하셨듯이요. “......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고 증거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의 남은 여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의 축복들을 통해서 우리가 이렇게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축복의 통로가 될 때 우리의 여생도 복되고 자손들도 잘될 뿐만 아니라 주님 앞에 서게 될 때 하늘의 상과 면류관을 모두 다 누리게 될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함(4절)
 아브라함은 목적지도 확실하지 않았고요. 가는 방법도 몰랐고요. 걸리는 시간도 예측할 수 없었어요. 아무것도 확실한 것이 없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 바를 알지 못하지만요. 살아계신 하나님만 믿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요. 순종하며 나아갔던 거예요. 그 결과 독자 이삭을 믿음으로 바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번성하리라”(창22:17)고 약속하듯이요. 아브라함의 자손대대 뿐만 아니라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인 우리에게까지 기적적인 축복의 응답을 받았던 거예요. 우리는 사실 장래를 결코 알지 못하는 미지의 시간 속에서 미지의 공간 가운데 미지의 인생을 살아가요.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고요. 붙잡을 수 있는 것도 아무것도 없고요. 따라 갈 수 있는 것도 아무 것도 없어요. 그러나 그렇게 불확실한 시대일수록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확실한 약속인 구약(Old Testament, 오래된 언약), 신약(New Testament, 새로운 언약)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화)설교를 잘 듣는 한 집사님 아들 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 하고 열심히 읽고요. 읽지 못하면 열심히 나아와 듣기라도 하고요. 모르는 것은 치유, 양육, 사역훈련 성경공부를 통해서 배워야 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복을 다 잃어버리고 자신의 힘만으로 살아가는 불행한 교인들의 공통점은 한 주일에 한번밖에 말씀을 안 듣는다는 거예요. 더욱이 성경공부에도 안 나와요. 그러니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요.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달을 수 있고요?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겠어요? 더욱이 기도까지 안 해요. 일 년 내내 새벽기도도 안 나와요. 그러니 무슨 기적을 체험할 수 있겠어요? 심지어 가정예배도 안 드려요. 그러니 어떻게 영적으로 더 이상 성장을 하고요? 충만할 수가 있고요? 진정으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어린 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입만 열면 불평, 불만이고요. 온갖 거짓으로 남을 험담하고 비방하고요. 거짓의 아비인 사탄의 도구로 전락해 버려서요.  하나님의 교회에 해악만 끼치고요. 걸림돌만 되고요. 암적 존재로 살아가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그러니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냐는 거예요? 그래서 주의 종들은 너무도 안타까운 심정으로요. 그들이 진정으로 은혜롭고요. 축복되고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도록 위해서요.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고요. 혼신의 힘을 다 쏟아 깨우치고자 하는 거예요. 그래서 회개하고 돌아올 때까지 끝까지 강단에서 외치는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만 회복되면 틀림없이 복된 삶을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간증)쿠바의 아바나제일장로교회 이유밀라 목사님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면 틀림없이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한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래서 말씀장인 시편 119:67에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고 고백하고요. 계속해서 시편 119:165에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고 분명히 약속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 살아가면요. 날마다 순간마다 은혜를 받고 축복을 누리며 행복하게 사명을 담당하며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간증)치유 · 양육 · 사역훈련 성경공부 수료식때 한 집사님의 간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복둥이로 불러주시고요. 이 복을 온전히 누릴 수 있도록 믿음으로 나아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계세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우상의 죄악된 삶을 떠나고요. 축복의 통로가 되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갈 때에 우리의 여생 뿐만 아니라 자손 대대로 진정한 복이 되며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의미 있고 보람되고 복되게 살아가는 복둥이들이 모두 다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