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12)

복음을 받아들이라 (창세기19:12-26, 37-38)


 말세 마지막 때 우리는 코로나 19로 인해 온 세계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병)에 빠져 있는 때를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가 이 모든 환난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복음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불행과 고통 가운데 멸망 당한 사람들이 나와요. 이러한 롯의 가정을 보면서 우리의 남은 때를 어떻게 복음으로 살아야 하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복음을 거절하면 멸망하게 됨 (14절) 
  두 천사는 롯에게 그의 사위들과 딸들과 그에게 속한 가족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고 하면서요. 소돔의 죄악에 대한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게 이름으로써요. 여호와께서 소돔을 멸망시키실 것을 경고하세요. 그래서 롯은 다급한 마음으로 나가서요. 그의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여호와께서 소돔 성을 멸망시키실 테니 너희는 빨리 일어나 이곳을 떠나라고 외쳐요. 그런데 문제는 롯의 사위들이 이를 농담으로 여겼다는 거예요. 말세의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셨으니깐요. 다 회개하고요. 용서하고요. 믿음으로 받아들여서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롭고 축복되게 살도록 열을 내어 복음을 전해도요.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요. 여전히 죄악과 상처와 질병 가운데 멸망당하고 마는 거예요.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로마서 1:16-17의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외쳤듯이요. 우리는 오직 복음을 믿음으로 살 때 복음이 진정으로 우리를 은혜롭고 축복되게 살게 하는 거예요. 정부에서는 코로나 19의 확산을 막는 데만 주력하고요. 세상 사람들은 신천지 이단 집단과 하나님의 교회를 구분하지 못하고요. 교회에게 문을 닫으라고 그토록 강요를 해요.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창세 이래로 어떠한 환난이나 핍박 속에서도 문을 닫은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너무 큰 두려움에 빠져 있어요.
예화) 독감보다 조금 더 센 코로나19의 치사율
예화) 각종 운동경기 공들의 불평
예화) 0.0001%도 안되는 확진자가 나온 교회를 향한 세상의 박해와 비판의 목소리


왜 정부나 언론이 교회를 집중해서 공격하는지 아세요? 오늘의 코로나 19는 의술이나 방역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요. 진정한 치료자가 되시는 하나님께서만이 치료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우리나라가 이렇게 효과적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대처하게 된 것은 우리 정부의 발빠른 대처와 의료진의 헌신적인 수고와 온 국민의 자발적인 협조도 소중하였지만요. 새벽마다, 모일 때마다 간구하는 믿음의 성도들과 주의 종들의 합심기도가 있었기 때문에 그나마 우리나라는 오늘의 놀라운 치료가 가능했던 거예요. 그런데 세상의 논리로만 하나님의 교회를 문을 닫으라고 하니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께서만이 치료하신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인 거예요. 우리가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교인들을 무시하거나 외면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예요. 그러나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열정이 있으신 분들은 믿음으로 나아올 수 있도록 교회의 문을 닫아서는 안되는 거예요. 또 우리가 교회 문을 언제까지 닫아야 하는가 하는 거예요? 교회의 문을 오래 닫아놓을수록 교인들의 신앙의 회복은 더뎌지는 거예요. 더구나 우리 교회도 정부의 행정명령에 맞추어 방역에 힘쓰면서 예배를 드리는데요. 무엇이 그토록 문제가 되느냐는 거예요. 이러한 노력마저도 무시하고 교회의 문을 닫으라는 것은 하나님의 음성보다 세상 사람들의 말을 따르는 것이고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보다 사탄이 기뻐하는 일인 거예요. 더욱이 이 땅에 코로나 19가 가장 창궐할 때도 우리는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이겨내었는데요. 이제 와서 교회의 가장 소중한 절기인 고난주일과 부활주일을 앞두고 교회의 문을 닫자는 것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예요.
예화) 무신론자 이탈리아의 북부 롬바르디아 주의 의사 울리안 우르반(Iulian Urban)박사의 고백


우리가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절대 교만해서는 안돼요. 우리는 하루살이 인생들이에요. 우리가 부르짖어 주님께서 우리를 기적적인 치료를 하시기 전에는 길이 없어요. 그래서 출애굽기 15:26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
간증) 의사도 포기했지만 죽음의 위기 앞에서 기적적으로 회복되신 어느 집사님의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떠한 질병이나 사고 등 죽음의 위험이 갑작스럽게 닥칠지 모르지만요. 이 치료의 복음을 거절하지 않고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유를 체험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물질의 축복도 다 잃어버림 (26절)
  결국 동이 틀 때 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서요. 소돔성이 곧 멸망당하니까 그의 아내와 두 딸을 빨리 이끌어내라고 해요. 그러나 롯은 이를 확실히 믿지 못해서인지 지체해요. 그때 천사들이 롯의 가족들을 강제로 성 밖으로 피신시킨 후에요.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물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고 외쳐요. 그런데 롯은 나이가 들고요. 산까지 거리가 멀어서요. 무리하게 가다가는 산에 이르기 전에 재앙을 만날까 두려워해요. 그러자 ‘작음’이란 뜻의 소알은 멸망한 소돔과 고모라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이고요. 작은 성읍이므로 멸망시킬 가치가 없지 않느냐고 거기로 피신하겠다는 거예요. 그러자 천사들은 소알을 멸하지 않을 테니까 속히 도망하라고 해요. 그래서 소알에 이르렀을 때 해가 돋아요. 그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부터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 성에 비 같이 쏟아 부으세요. 그래서 그 성들과 온 들과 거주하는 모든 사람과 땅에 난 식물까지도 다 엎어 멸하신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롯의 아내가 두고 온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요. 미련을 가지고 뒤를 돌아본 순간 소금 기둥이 되어 버리고 만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에도 우리가 욕심을 부린다고 물질의 축복을 받는 것이 결코 아닌데요. 롯의 아내처럼 물질의 욕심 때문에 자신의 신앙도 못지키고요. 결국에는 가진 물질까지도 다 잃어버리고요. 불행해진 사람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17:32-33에, “롯의 처를 기억하라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신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복음으로 살아가지 않으면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가장 먼저 우리 마음의 구원의 감격을 잃어버려요. 또한 건강도 잃어버리고요. 가정의 행복도 잃어버리고요. 갖가지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여 물질의 축복까지도 다 잃어버리고 말아요.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셔야 할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복 주시지 않으면 어떠한 인간도 결코 복되게 살아갈 수가 없다는 사실이예요. 더욱이 우리가 결코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예화) 「2020-2040 한국교회 미래지도」의 저자인 미래학자 최윤식 목사님의 경고


그래서 주의 종의 한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말세 마지막 때 철저히 주님 앞에 엎드려 목숨 걸고 몸부림치면서요. 목회해 나가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도 우리 한국교회가 지난 날 1900년대의 20세기처럼 부흥할 줄로 착각을 하고요. 인본주의 신앙을 가지고 여론몰이나 하고요. 세력 다툼(Power Struggle)이나 할 때가 아니에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가 가까워 올수록 우리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요. 복음주의 신앙으로 살지 않으면요. 하나님께서 더 이상 복을 주시지 않고요. 더 이상 귀하게 쓰시질 않고요. 그러면 하나님의 교회까지도 다 죽고 마는 거예요. 부족한 종은 지난 42년 동안 목회를 해오면서요. 이번 코로나 19 사태처럼 교회 안팎으로 예배에 대한 박해를 받아 본 적이 없어요.
예화) 기드온과 양털 이야기


오죽하면 “우리 가운데 확진자라도 나오면 교회 문을 닫는 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알겠습니다. 그러나 확진자가 안나오면 계속 성전 예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순종하겠습니다!”라고 기도했겠어요? 그런데 코로나 바이러스의 극심한 위험 가운데서도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요. 코로나 바이러스에 이렇게 우리의 신앙이 위축 되고요. 하나님 아버지의 성전에 나오지 못하면요. 만약에 김정은이가 쳐들어오면 어떻게 신앙을 지킬 수 있겠어요? 우리의 신앙은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창궐해도 우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에 나아와서요. 기적적인 하나님의 치유를 체험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왜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눈치는 그렇게 잘 보고요. 세상 사람들의 말을 그렇게 잘 들으면서도 왜 하나님의 눈치는 안보고요. 왜 하나님의 말씀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요. 왜 하나님께는 철저히 의지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예화) 창궐한 흑사병 앞에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의 권면


그래서 히브리서 10:23-25에 “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고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분명히 독려하시지 않아요. 여기서 우리가 먼저 믿음을 가져야 하고요. 소망을 움직이지 말아야 하고요. 서로 사랑으로 격려하여 하면서요. 모이기를 폐하는 사람들을 따라가서는 결코 안된다는 거예요. 모이기를 폐할수록 주님의 은혜를 메마르게 하고요. 주님의 축복을 잃어버리게 하고요. 주님의 행복이 다 사라지고 마는 거예요. 여러분, 성전 예배보다 영상 예배를 드릴 때 가슴이 더 뜨거워지고요. 더 헌신적이 되고요. 더 충성이 되고요. 더 주님께 영광이 돌려집디까? No way(절대 그럴 수 없어요)! 우리 신앙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더웁지도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한국교회가 온라인 동영상 예배에 재미를 붙여 놓으면 똑같은 시험에 빠지고 마는 거예요. 조금만 바쁜 일 생기고요. 몸 아프고요. 기분 나쁜 일 생기면 교회 안 나와 버려요. 그래서 주의 종으로서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하고요. 복되게 하길 원하고요. 마지막 때에 감당해야 할 사명이 있기에 끊임없이 환난의 때 일수록 주님의 전에 모여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하고 기도할 것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우리가 복음을 철저히 믿고 살아가면 틀림없이 우리의 삶 속의 어떠한 고난이나 오늘의 코로나 19의 재난도 이겨내고요. 물질의 손실까지도 다시 회복하고요. 오히려 더욱 믿음으로 축복되게 일어서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자손들의 앞날까지 다 막아버림 (37-38절)
  사실 아브라함의 중보적 기도가 있었기에 소돔과 고모라 성의 그 무서운 심판 속에서도 롯의 가정이 구원을 받을 수 있었는데요. 처음부터 육신의 눈으로 소돔과 고모라 성이 그 풍요로운 여호와의 동산 같고요. 그 기름진 애굽 땅과 같아서요. 롯의 가정은 믿음으로 출발하지 못했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동성애까지 난무한 소돔과 고모라 성에서 겨우 목숨만 건져 살아나왔지만요. 아내는 잃어버리고요. 두 딸만 남았는데요. 다 멸망하고 그들에게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까요. 후손을 이을 수가 없어서요. 세상에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게 하고요. 첫날밤에는 큰 딸이 동침하고요. 그 다음 날 밤에는 둘째 딸이 동침해서요. 아들들을 낳았는데요. 그들이 모압과 벤암미로서 이방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의 조상이 되고 만 거예요. 결국 롯의 가정은 신앙의 대가 끊어지고 다 무너지고 만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왜 이렇게 고생을 하면서 사는가 물어보면요. 모두 자식들 잘 되게 하기 위해서라고 말해요. 그러나 과연 우리 자녀들이 우리가 기대한 대로 잘 자라고 있느냐는 거예요. 
예화) 한 엄마의 방학 생활규칙
예화) 극악무도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의 두 얼굴


여러분, 이렇게 불의하게 돈 많이 벌어 봐야 뭐 하겠어요? 우리는 이런 사회적 문제가 터질 때마다 그토록 순수하던 자녀들이 언제부터 저렇게 변질되고 말았는가 하는 거예요. 우리가 부모로서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자녀 양육의 성공은 우리 자녀들이 세상적으로 잘 되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거예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자녀들 가운데에도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자녀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것이 사실 말세의 한국교회가 무너지고 있는 결정적인 원인인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의 이것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요. 금방 포기해 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누가복음 23:28에서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강조하시지 않으셨어요? 여러분, 코로나 19는 언제 끝이 날지 아무도 모르고요. 또 이번 코로나 19가 끝난다고 끝이 아니에요. 말세의 마지막 때에는 누가복음 21:11에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셨듯이요. 부족한 종도 목사로서 바쁘고 피곤하게 뛰어 다니다가요. 혹시 코로나 19에 감염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독감보다 조금 더 심하다는 코로나 19는 절대 겁이 안나는데요. 저로 인해 교회가 문 닫게 될 것이 걱정되어 기도로 매어달리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오늘도 이렇게 건강한 모습으로 여러분 앞에 서게 된 거예요. 그래서 성경은 끊임없이 이사야 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 자신부터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고요. 우리 자녀들에게 이러한 불굴의 전천후 신앙을 심어주어야 하는 거예요.
예화) ‘교회 폐쇄’ ‘예배 금지’ ‘구상권 청구’ 등의 말로 교회를 겁박한 서울시 & 총리
예화) 제주도청에 찾아가 교회탄압에 관하여 항변한 한 집사님 이야기


우리는 “안식일을 기억하며 거룩하게 지키라”(출20:8)는 하나님의 십계명 하나 못 지키면서요. 세상 사람들의 눈치가 뭐가 그렇게 무서워요? 어떻게 세상을 향해서 담대히 복음을 외칠 수 있겠어요? 왜 살아계신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예배는 ‘강행’한다고 하세요? 언제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해 줘요. 오히려 우리의 믿음을 위축시키고 복음만 가로 막지요. 벌금이 두려워서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거룩한 주일 만민이 예배드려야 할 예배당에서 예배를 못 드리게 막는 것은 지난 날 일제의 총칼 앞에서 무너지고 신사참배를 하였던 자들이나 다를 게 뭐가 있어요?
예화) 유럽교회와 미국교회가 죽어가는 이유


이제는 코로나 19가 뭐가 그렇게 무섭다고 교회 문 닫고 영상 예배 드리라는 그럴듯한 주위에 말에 결코 넘어가서는 안돼요. 그렇게 길들어 놓으면 이제 조금만 어려운 일이 생기면 교회 안나와요. 온라인 예배를 드릴 수 있는데요. 결국 말세 때 한국교회가 유럽 교회나 미국 교회를 따라 다 무너져가고요. 문 닫게 되는 거예요. 우리의 자녀들에게 어떠한 신앙을 물려줄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의 남은 여생 철저히 복음을 받아 들이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적인 신앙으로 복음대로 살아가게 될 때 자손 대대로 믿음의 복을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귀하게 쓰임 받으며 크게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희생적인 어머니의 신앙과 사랑을 평생 잊지 않았던 영국의 제34대 총리 데이비드 로이드 조지(David Llyod George)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