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23)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 창세기 37:1-11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하면서요. 아무리 어려운 남북관계 속에서도 우리는 복음으로 조국의 평화통일의 꿈만은 저버려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꿈꾸는 자가 오는도다”하고 그의 형들이 그토록 비아냥거리는 가운데에도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 꿈꾸는 자인 야곱의 아들 요셉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신앙이 성숙해야 함

 먼저 본문 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방 땅 세일로 간 형 에서와는 달리 동생 야곱의 가족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 거주하게 돼요. 그런데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17살이 되었는데요. 심리사회적 발달이론을 내세웠던 세계적인 심리학자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이 청소년기에 내가 누구인가를 깨닫는 ‘자아정체성(Ego Identity)’만 확립된 것이 아니라요. 영적 분별력(Spiritual Discernment)까지 있어서요. 야곱의 첩인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이 아버지 야곱을 속여서요. 아버지의 양을 팔아먹는 비행을 저지른 것을 발견하고요. 형들의 죄악에 물들지 않고요. 오히려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께 말씀 드려서 바로 잡길 원했던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요셉은 어렸을 때부터 영적으로 충만했기 때문예요. 이미 신앙으로 성숙해져 있었던 거예요.


 늘 강조하지만 우리도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으로 충만해지지 않으면요. 영적으로 결코 바로 설 수도 없고요. 성숙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한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의 모든 미성숙의 근본적인 원인은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의 시간을 갖지 못하니깐요. 우리가 영적으로 나태하고 침체되어서요. 결국에는 성령님으로 충만할 수도 없고요. 신앙이 성숙하기는 더더욱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식사를 하고요. 운동을 해야 신체적으로 건강하듯이요. 영적으로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의 훈련을 하면서요. 신앙의 기본기를 다지지 않으면요. 어느 누구도 결코 영적으로 성숙한 신앙을 가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래 예수님을 믿느냐의 문제가 아니고요. 얼마나 중한 직분을 갖느냐의 문제도 아니고요. 얼마나 나이가 되느냐의 문제도 더더욱 아닌 거예요.
(예화) 33살에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를 담임하셨던 위임목사님 이야기


 그러니 우리가 어렸든지 젊었든지 늙었든지 상관이 없이요. 우리의 신앙이 영적으로 성숙해져서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요. 영적 판단을 말하고요. 영적 결단을 하면서요. 영적으로 어떠한 고난도 헤쳐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디모데전서 4:12-13에 “누구든지 네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고 오직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과 정절에 있어서 믿는 자에게 본이 되어 내가 이를 때까지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고 명령하신 거예요. 우리가 젊었을 때라도 성경을 읽고 권하고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면요. 주님께서 다 기억하시고요. 하늘의 상과 이 땅의 복으로 다 갚아주시는 거예요.
(예화) 한 흑인 소년 앤토니오 그윈 Jr의 선행에 감동한 마을 사람들


 그렇습니다! 신앙은 삶인 거예요. 아무리 자기 혼자 의로운 것처럼 큰 소리를 치고요. 말로 옳은 것을 떠들어도요. 성숙한 신앙의 삶의 모범이 안되면요. 가까운 주위사람들부터 삶의 감동이 안되고요. 인정을 못 받게 되어서요. 결국 그 신앙은 죽은 것이고요. 아무런 쓸모가 없는 거예요. 특별히 말세 마지막 때가 되고요. 사탄은 코로나19를 통해서 이 땅의 최후의 영적 보루가 되었던 한국교회를 무너뜨리기 위해서요. 온라인예배를 계속해서 주장하는 목회자들과 교인들이 있는데요. 교회는 눈에 보이는 유형교회 즉 예배당 안에 모이는 교회와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교회 즉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성도들이 있는데요. 성경도 이 둘을 똑같이 강조하고 있지만요. 장로교회 창시자 존 캘빈도 유형교회와 무형교회로 조직된 교회와 영적 교회로 둘 다 중시하고 있어요. 그러나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인본주의 목회자들과 세속주의 교인들은 유형교회를 소홀히 하고 무형교회만을 강조해요. 그래서 결국 유형교회의 중요성을 인정하지 않고 무교회주의자로 타락하고 마는 거예요. 그러나 말세 마지막 때 유형교회가 중요한 이유는 이 예배당에 모여서 가장 먼저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요. 또한 세례와 성찬을 행하는 거예요.(무형교회를 주장하는 이들이 이번에도 이러한 성례도 각 가정에서 행할 수 있다는 스스로 큰 모순과 영적 함정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러나 우리가 이 유형교회에 모여서 말씀도 나누고 합심해서 기도하고 찬양하고요. 영적인 훈련을 받고요. 서로의 교제도 나누고요. 하나 된 힘으로 세상을 향해 나가서 봉사하고요. 소금과 빛의 사명을 감당하면서요.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성숙한 신앙의 열매요, 마지막 때의 우리의 중대한 사명인 거예요.


 그러므로 진정한 성숙한 신앙이란 인간의 편의를 우선으로 하는 인본주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최우선으로 하는 신본주의 신앙이고요. 자신의 명예나 유익만 구하는 기복주의 신앙이 아니라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복음주의 신앙이고요. 세상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세상의 흐름을 따라가는 세속주의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어떻게 친히 말씀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가를 가장 중시하는 성경주의 신앙이 확고한 거예요. 그리하여 세상과 그 유행 풍조가 아무리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과 우리가 믿는 복음주의 신앙은 결코 영원히 변함이 없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연소함을 업신여기지 못하게요. 우리의 말과 행실과 사랑과 믿음의 정절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은혜 받은대로 행하는 성숙한 신앙을 가지면요.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틀림없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요. 우리의 꿈을 이루도록 귀하게 쓰시고요. 먼 훗날 하늘의 상으로 다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시기와 질투를 이겨내야 함

 계속해서 본문 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요셉은 성숙한 신앙으로 거짓된 형들의 잘못을 바로잡을 뿐만 아니라요. 아버지 야곱의 노년에 사랑받는 아내 라헬의 큰아들이었기 때문에요. 다른 어떤 아들보다 더욱 사랑을 받아서요. 채색옷을 지어 입혔어요. 여기 ‘채색옷’이란 히브리어로 ‘םיסִּֽפַּ תנֶתֹ֥כְּ(케토네트 팟씸)’이라고 해서요. 원래는 ‘손바닥(발바닥)을 덮는 긴 겉옷’이라는 뜻이에요. 그런데 여기 나오는 ‘םיסִּֽפַּ’(팟씸)을 헬라어 70인역 성경에서부터 ποικίλον(포이킬론) 즉 ‘채색(many colors)’이라고 번역하면서요.‘채색옷’이라고 번역하였지만요. 당시 일반적인 겉옷은 일하기 편리하게 소매가 없고 무릎까지 나오는 짧은 옷이었는데요. 사랑하는 야곱에게만 관리하는 사람들이 입는 소매가 길고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을 입혀서요. 특별한 사랑을 베푼 거예요. 그러자 요셉의 형들이 아버지가 요셉을 더 사랑함을 보고요. 요셉을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여 그에게 편안하게 말할 수 없었다는 거예요. 본문을 직역하면 ‘םלֹֽשָׁלְ(레솰롬)’ 즉 “샬롬하고 인사말조차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예요. 그만큼 형들과 요셉과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생각해보세요. 잘못은 편애를 한 아버지 야곱에 있었던 것이지요. 성숙한 신앙으로 그들의 잘못을 깨우쳐 주어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고 해서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해서야 되겠어요? 그리하여 바로 이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진정으로 아껴주고 사랑해주어야 할 동생에 대한 미움으로 변해버리고 만 거예요. 우리도 성숙한 신앙으로 은혜받고요. 축복 누리고요. 행복에 감격하면서요. 남들보다 더욱 더 열정적으로 헌신하고요. 봉사하고요. 충성을 다하면요. 주위 사람들에게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충동질해서요. 여지없이 여러분을 비난하고 험담하는 말을 듣게 돼요. 특히 새신자들에게 여지없이 그런 말이 들려와요. 그 근본적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우리가 열정적으로 헌신하고요. 봉사하고요. 충성을 다하면요. 사탄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좌절이 되겠어요? 그래서 바로 그 사탄이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이 미숙한 교인들을 충동질해서요. 어떻게 해서든지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고요. 시험에 빠뜨리고요. 주의 일을 못하도록 막는 거예요. 그때 신앙이 성숙하지 못한 교인들은 바로 그 사탄의 계략에 빠져서요. 결국 상처를 받고요. 시험에 빠져서요. 주의 일을 다 내려놓고요. 심지어 교회까지 떠나고 말아요. 결국 누구만 손해 보는 거예요? 시험에 빠진 사람이 가장 큰 손해를 보고요. 그 다음에 교회도 손해를 보고요. 마지막으로 주님까지도 손해를 보시게 하고 말아요.
(예화) 서울 아산병원 정신의학과 김병수 박사님이 쓴 「이상한 나라의 심리학」


 그래서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기 전에 좋은 땅 마음 밭을 회복하도록 치유부터 받아야 하는데요.
(예화) 제주 영락교회 심상철 목사의 대관령 젖소 이야기


 우리의 지난 날의 상처가 치유되어야 우리 마음이 넓어지고요. 다 용서하고요. 다 포용하고요. 다 양보하게 되어서요. 다 행복해지는 거예요.
(예화) ‘젖소 장로’인 총회 부총회장님 전계옥 장로님 이야기
(예화) 소인과 대인의 차이라는 글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우리를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며 공격해오는 사탄의 역사를 이겨낼 수 있는 길은 다른 데 있지 않아요. 로마서 12:19-21에 잘 나와 있어요. 아무리 우리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원수라고 해도요. 원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고요. 우리는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그들에게 사랑만 베푸는 거예요. 그리함으로 그 숯불사랑을 그들이 받아들이고요. 그 사랑에 녹아 변화되면요. 그들에게 우리가 경험한 주님의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그들도 누리지만요. 끝까지 그 마음의 감정을 버리지 않으면요. 그 숯불이 진노의 심판의 불이 되어서요. 그 원수들을 다 멸망시키고 파멸시키고 심판하시고 말아요. 그렇게 끝까지 사랑으로 섬기는 삶이 바로 결단코 우리가 악에게 지지 않고요. 우리의 꿈을 이루며 선으로 악을 이기게 하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주님 안에서 꿈을 가져야 함

 마지막 본문 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요셉은 형들과 다른 신앙의 성숙함을 가지고 있어서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아 형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요. 그가 꿈을 꾼 것을 형들에게 말하니까 더욱 요셉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 꿈이란 본문 6절 이하에 나와 있는 바와 같이 요셉의 형들이 밭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는데요. 요셉의 단은 일어서고요. 형들의 단은 요셉의 단을 둘러서서 절을 하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그의 형들이 “네가 참으로 우리의 왕이 되겠느냐? 힘으로 우리를 다스리겠느냐?”고 반발하면서요. 그 꿈으로 인하여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돼요. 더욱이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나서요. 아버지와 형들에게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하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자 이번에는 아버지 야곱까지도 “네가 꾼 꿈이 무슨 뜻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네게 절하겠느냐”하고 꾸짖어요. 그러나 형들은 요셉을 시기하였으나 그의 아버지는 요셉의 꿈 이야기를 마음에 간직해 두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요셉이 17살의 어린 나이에 형들의 미움으로 이방땅인 애굽으로 팔려갔지만요. 불과 13년 후인 30세에 당시 전세계를 지배하던 애굽의 총리(오늘날 같으면 미국의 국무장관)가 되어서요. 9년 뒤인 39세에 흉년으로 고생하던 아버지와 형들을 구원해서 애굽의 기름진 땅 고센으로 인도해요. 그리고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과 71년을 행복하게 살다가요. 110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서요. 요셉이 주님 안에서 꾼 꿈이 그대로 다 이루어졌던 거예요.


 우리도 주님 안에서 꿈을 가져야 해요. 그 꿈은 신구약 성경에 나온 바와 같이 밤에 육신의 꿈으로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심리학의 아버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igmund Freud)는 오늘날 정신의학의 기초가 되는 정신분석학을 창시하였는데요. 그의 이론 가운데 꿈의 분석은 정신의학계의 큰 공헌 중의 하나였어요. 그것은 우리가 잠을 자면서 (저 아닌)의식이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 무의식 가운데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나 소원이 꿈을 통해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런데 때로는 성령님께서 우리의 꿈 가운데 역사하시는 거예요. 그뿐만 아니라 우리가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거나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어떠한 계기를 통해서 그 꿈을 가질 수도 있어요. 그것은 주님과 나만의 영적인 체험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성령님이 이 땅에 강림하실 것을 연대가 확실치 않지만 주전 800-440년경에 예언하신 요엘 2:28의 말씀을 인용하여 수백 년 후 예루살렘의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님이 임하셔서요. 사도행전 2:17에 그대로 성취됨을 증거하시면서요. 여기에 말세 마지막 때 성렁님이 우리 가운데에도 충만하게 임하셔서요. 우리의 자녀들은 예언 즉 하나님의 맡겨주신 말씀을 선포하고요. 젊은이들은 환상(비전)을 보고요.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고 예언을 한 거예요.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성령님을 받은 우리 모든 성도들이 남녀노소를 불문하고요. 남은 여생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요. 환상 즉 비전을 보고요. 주님 안에서 이루어야 할 복음의 꿈을 갖게 되는 거예요.
(예화) 제주지역 목사 사모세미나를 연 김광식 목사님 이경희 사모님의 ‘제주복음화’의 꿈 이야기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선한 뜻을 가지고 꿈을 가지면요. 그 꿈은 기필코 이루어져요.
(예화) 6 · 10 민주항쟁으로 인한 문민정부의 탄생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여생에도 주님 안에서 복음의 꿈을 가지고요. 선한 뜻을 가지고 끝까지 인내하며 부르짖으면요. 주님께서 우리의 남은 여생 계속해서 은혜를 베푸시고요. 능력을 부어주시고요. 축복을 내려주시고요. 행복의 감격 속에서요. 그것이 우리 자신의 일생이나 가정이나 직장이나 교회에서나 더 나아가 나라와 민족과 열방의 선교의 어떠한 꿈이라도 그 꿈이 꼭 이루어질 날이 오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숙명여자대학교의 초대 총장이 된 임숙재 선생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갈려고 하면 주님께서 먼저 걸어가셨듯이요. 십자가의 짐 같은 고난이 꼭 닥치게 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과 같이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고요. 온갖 시기와 질투도 다 이겨내고요. 주님 안에서 꼭 꿈을 가지고 일어설 때에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하나님의 교회나 나라와 민족과 열방을 향한 복음의 꿈을 기필코 실현하고 마는 의미 있고 보람되고 복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