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28) (2020. 7. 19 오순절 후 일곱 번째 주일)
여호와 신앙/ 출애굽기 3:13-22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불안한 시대를 살아가면서요. 우리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주님이 계신다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와 힘과 복이 되는지 몰라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430년의 그 기나긴 종살이에서 해방시키는데 큰 힘이 되었던 여호와 신앙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믿고 살아가야 하는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여호와께서 스스로 계신 분임을 믿어야 함
출 3:14상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제 가라......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3:9-10)고 말씀하시니깐요. 모세는 “나를 보내신 하나님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3:13)라고 물었을 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고 말씀하세요. 여기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는 말씀이 히브리어로 “היהאֶ רשֶׁאֲ היהאֶ(에흐예 아쉐르 에흐예)인데요. “나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이다"는 뜻이에요. 여기에서 원래 하나님의 이름이 ‘הוִהֹיְ(야훼)’라고 계시되었는데요. ‘홀로 존재하시는 분’ ‘영원한 존재’라는 뜻이에요. 창세기에 나오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야훼’라는 이름을 알고 있었어요(창 4:26, 12:8). 그 이름을 확인시켜 주면 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것을 확신하리라는 거였어요.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를 ‘ינָדֹאֲ(아도나이)’라고 읽었는데요. 야훼의 자음 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여 중세부터 ‘여호와’(הוִהֹיְ)라고 부르기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우리말 성경 공동번역에서는 ‘여호와’대신 원래의 발음인 ‘야훼’로 번역하기도 했어요. 이 ‘여호와’를 영어성경에서는 ‘Lord(주님)’이라고 번역되었는데요. 바로 이 여호와가 바로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이고요. 그의 표호(ירִכְזִ, 지크리, 기억할 칭호)라는 거예요. 그것은 한 마디로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신 분이시라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이 만든 세상의 종교들과는 완전히 다른 거예요. 사실 기독교는 세상 종교의 범주에도 넣을 수 없는 스스로 계시는 하나님의 복음과 진리와 생명을 전하기 때문에 세상 종교와 차별이 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구태여 인간이 만든 ‘종교’로 구분한다면 이러한 세상 종교들의 공통점은 죄인 된 인간이 수양과 선행과 고행을 통해 신의 경지에 이르려는 땅으로부터 하늘에 이르라는 수도종교인 거예요. 그러나 인간의 어떠한 힘으로도 죄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고 죽음 앞에서 다 무너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외아들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게 하심으로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에 이르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하늘로부터 땅에 임하신 계시종교라고 하는 거예요.
예화) 포괄적 차별금지법


하나님께서는 갈라디아서 3:28에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세요. 다시 말하면 유대인이나 헬리인의 종간에나 종이나 자유인의 신분간에나 남자와 여자의 성별간에 차별이 없다고 말씀하셨지요. 진리와 비진리, 복음과 비복음, 선과 악의 차별이 없다고는 결코 말씀하지 않으셨어요. 이처럼 말세 마지막 때 모든 주위의 환경들이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로 믿을 수 없도록 우리를 몰고 가요. 그리하여 사람은 점점 우리의 여호와 신앙을 무너뜨리고 인본주의 세속화 시킬려고 하는 거예요.
예화) 담임목사 청빙 광고


이렇게 이 어두워가고 썩어가는 세상을 치유하고 개혁해야 할 교회가 먼저 이렇게 육신적이고 세상적이고 인간적으로 무너져가니 세상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더구나 요즘 온 국민들이 힘을 합해 퇴치해야 할 코로나19를 놓고도 결정적인 치유를 하시는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께 매일 간절히 기도하고 예배하는 교회를 오히려 핍박하고요. 지난 주간 경기도의 한 지방 단체장은 “기독교 소모임 고발시 포상한다”는 발표까지 하고요. 또한 교육부에서는 초 · 중 · 고 각급 학교의 학생들에게 교회를 가지 말라고 가정 통신문까지 보냈다고 하니 귀가 막히고 코가 막히고 입이 막히는 일 아니에요? 이처럼 우리는 이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이 얼마나 사악하고 교활하게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해도요. 여호와께서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심을 확실히 믿는 여호와 신앙으로 살아갈 때 우리의 일생토록 복음 신앙을 사수하며 여호와 하나님의 복을 누리며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내심을 믿어야 함
출 3:14하 “......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자신의 힘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430년 애굽 종살이에서 건져낼려고 한 것이 아니라요.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져내시기 위해 모세를 보내셨다고 전하라고 하신 거예요. 그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신 분도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요. 우리를 예수님을 믿게 하신 분도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요. 우리를 목사, 장로, 권사, 집사, 성도로 세우신 분도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고요. 우리를 예수님의 부활의 증인으로 세상에 복음을 전하러 보내신 분도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결단코 잊어서는 안돼요. 그러므로 우리는 일생토록 어느 곳에 가든지 십자가의 사랑과 공의의 복음을 전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의 우리의 현실을 보면요.


말세 마지막 때가 되어서 특별히 사랑이 메마를 대로 메말라 있고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공의보다도 자기를 내세우며 모든 사람들을 재단하고요. 정죄하고요. 심판하는 세상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가정이나 이웃이나 세상이나 하나님의 교회까지도 영적인 사람과 육적인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불화가 끊이지 않아요. 더욱이 정치인 등 사회를 이끌어가는 사람들까지 자신들의 이념과 당리당략에 사로잡혀서 살아가니 그들에게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어요?
유머) “법대로 해봐!”
예화) 故 백선엽 장군과 故 박원순 서울시장


인간은 누구에게나 예외없이 흉허물이 다 있기 때문에요. 아무도 비판하거나 정죄할 수 없고요. 지난 날의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 통회하고 자복하며 참회하는 심정으로 살아가야 해요. 누가 누구를 향하여 돌을 던질 수가 있겠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모든 일에 입장을 바꾸어서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심정으로 서로를 대해야 해요. 그것이 바로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서로를 돌보는 ‘예수님의 마음’인 거예요. 그러므로 이 어둡고 썩어가는 세상의 영적 모범이 되고 감동이 되어야 할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로부터 시작해서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엎드려 통회자복하면서요. 여호수아 1:7의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고 말씀을 기억하면서요. 신앙의 우파인 율법주의나 신비주의나 좌파인 자유주의나 세속주의, 더 나아가 우익인 보수나 좌익인 진보의 어느 한쪽에 치우지지 말고요. 늘 강조하지만 우리는 주님께서 보실 때나 사람들이 볼 때나 가슴에 와 닿는 중도 합리적인 복음주의 신앙과 삶을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주위에 어떠한 불의한 자가 있다고 할지라도 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지 않고요. 증오심을 갖고 비방하고 불화하는 것은 분명히 사탄의 역사이고요. 성령님의 역사는 모든 것을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요. 사랑하고 용서하고 인내하며 살아가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1:22에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준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준엄하심이 있   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머물러 있으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 바 되리라”고 경고하신 거예요. 우리가 하나님의 준엄하심의 공의만 외치면요. 다 넘어지고 깨어지고 나눠질 수밖에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그 준엄하심의 공의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사랑을 더하여서요. 서로 용서하고 허물을 덮어주고요. 붙들어 주고 세워가면요. 우리가 사는 가정도, 직장도, 이웃도, 사회도, 교회도 금방 다 천국으로 변하고 말거예요. 그리하여 이처럼 먼저 변화가 되어서요. 우리의 삶 가운데서 십자가의 사랑과 공의의 복음을 평생토록 전해야 하는 거예요.
예화) 최요나 선교사님의「네가 내 영광을 짓밟았다」


여러분,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스스로 계시는 분이신 줄 확실히 믿고요. 그의 아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신 줄 확실히 믿는다면요. 이제는 우리가 천국의 소망 가운데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도록 세상에 보내심을 받은 줄 확실히 믿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이스라엘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이탈리아 로마,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을 거쳐 우리 대한민국에 까지 이르게 되었는데요.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을 거쳐 이스라엘에 이르러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지게 될 때 주님의 재림이 임하시게 될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라도 우리가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여호와 신앙으로 살아갈 때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으로 온 세상을 섬기면서요. 삶으로 복음을 전함으로 우리의 삶의 현장을 천국으로 변화시키고요.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여호와께서 대적을 물리치심을 믿어야 함
출 3:20 “내가 내 손을 들어 애굽 중에 여러 가지 이적으로 그 나라를 친 후에야 그가 너희를 보내리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얼마간 살다가요.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요셉이 죽기 직전에 창세기 50:24에 “요셉이 그의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 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라고 분명히 예언하였듯이요. 모세는 이 하나님의 출애굽의 명령을 먼저 이스라엘의 장로들에게 전하는 일이고 다음에는 애굽 왕에게 그들을 보내줄 것을 요구하는 두 가지 사명이 있었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의 여러 신들과 구별되는 스스로 계시는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5번이나 강조하면서요(5:3, 7:16, 9:1, 10:3 등). “사흘 길을 광야로 가서 예배 드리기를 허락하소서” 하고 애굽왕에게 사정을 하라고 하신 거예요. 그런데 애굽 왕이 완강하게 7번이나 거절하니깐요(8:15, 19, 32, 9:12, 35, 10:20, 27 등). 그 애굽을 10가지 재앙의 기적으로 칠 것을 경고하시면서요. 하나님께서 강한 손으로 내리치심으로 그들이 애굽 사람에게서 오히려 수많은 금은 패물을 받아 떠나게 될 것을 예언하신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보면 아무리 우리가 수많은 계획을 세워도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어요. 다 주님의 뜻대로 되는 거예요. 다만 우리의 뜻이 주님의 뜻과 일치가 될 때 우리는 응답의 기적을 체험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 선조들의 헌신의 신앙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의 기적적인 조국의 번영과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왔음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돼요.
예화) 꼰대의 세대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일생을 희생하신 우리 부모님들의 노고로 오늘의 우리가 존재한다고 기억한다면요. 우리가 코로나19를 통해서 두려움과 부자유와 경제적 손실과 불행과 고통 등 잃는 것도 많지만요. 코로나19를 통해서 우리가 회복해야 할 신앙과 감사와 청결과 청정과 행복과 축복도 많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되요.
예화) 빌 게이츠(Bill Gates)의 ‘아름다운 성찰’


코로나19는 우리 인간 외에는 모두에게 유익했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서 코로나19 이전의 지난 날 날의 주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놀라왔는가 깊이 감사하면서요. 더 나아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더욱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요. 간구하지 않을 수 없고요. 인내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 91:2-3에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아요?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려고 삶의 올무와 심한 전염병으로 내리치실 수도 있지만요. 우리가 기적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는 분이시라는 여호와 신앙을 확신하며 살아갈 때 우리의 남은 여생이 더욱 더 신실하고 충만하고 복되게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故 정승택 은퇴장로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언젠가는 그토록 그립고 사모했던 여호와 하나님을 뵈올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 어떠한 코로나19의 위험과 어떠한 고난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스스로 계신 분임을 확실히 믿고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보내신 줄도 확실히 믿고요. 여호와께서 기적으로 대적을 물리치심도 확실히 믿는 여호와 신앙으로 살아갈 때  코로나19의 어떠한 고난도 능히 이겨내고 마지막 때 사명에 충성을 다하며 크게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