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30)-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출애굽기 10:21-29


    코로나19로 인해 다 어렵고 힘든 때인데요. 이러한 때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는 주님의 뜻을 깨닫는 거예요. 우리가 주님의 뜻만 바로 깨닫고 행하면 얼마나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함
    먼저 본문 2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내밀어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 여호와께서는 모세를 호렙산에서 부르실 때 출애굽기 3:9-10에 “이제 가라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히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셨어요. 그래서 모세와 아론이 애굽 왕에게 가서 출애굽기 5:3에 “그들이 이르되 히브리인의 하나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셨은즉 우리가 광야로 사흘길쯤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가도록 허락하소서 여호와께서 전염병이나 칼로 우리를 치실까 두려워하나이다”고 분명히 경고하였어요. 그런데 애굽 왕이 이를 거절함으로 열 가지 재앙이 임하게 된 거예요. 그런데 모든 재앙에는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서 미리 경고했다는 것을 우리가 가장 먼저 주목할 수 있길 바랍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도 구약(The Old Testament, 옛 언약) 39권과 신약(The New Testament, 새 언약) 27권의 말씀을 허락하셨어요. 우리가 주님께 늘 감사해야 할 것은 불교처럼 우리에게 팔만대장경을 주셨다면 우리가 이렇게 되었겠어요? 그것을 모두 다 짊어지고 다닐 수도 있겠지만요. 그것을 짊어지고 매 주일 교회에 오기도 전에 쓰러져 죽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단 한 권의 성경책으로 요약 정리해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것을 우리는 자연을 통한 일반계시(시 19:1-4, 롬 1:20)와 구별하여 초자연적인 말씀을 통한 특별 은혜(요 1:1, 14, 히 1:1-3)라고 하는 거예요. 그런데 유대 랍비 마이모니데스(Maimonides)가 발견하기를 구약성경의 율법에 613가지 계명이 있다고 하는데요. ‘하라’는 긍정적인 계명이 248개, 즉 유대인이 생각하는 우리 인간의 몸의 지체수를 의미해요. 다시 말하면 온 몸으로 행하는 뜻이겠지요? 그리고 ‘하지 말라’는 부정적인 계명이 365개, 즉 1년 365일 이것만은 하지 말라는 말씀이겠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어요(롬 10:4). 그리고 이 땅에 오셔서 수많은 주옥 같은 말씀을 하셨지만요.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있다면 요한복음 13:34-35의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는 새 계명이예요. 그런데 어떠한 인간도 이러한 계명들을 다 지킴으로써 구원에 이룰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대신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죄의 저주의 형벌을 다 대신 져 주시고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깐요. 우리는 그의 십자가의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열심히 주님의 전에 나와서 주님의 뜻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여 듣고요. 지켜 행하며 살아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듣고 지켜 행하면 행할수록 우리가 은혜를 받고요. 축복을 누리고요. 행복해지는 거예요.
<예화: 상담소를 운영하시는 한 협동목사님에게서 감동적인 카카오톡 메시지>


    이사야 55:3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코로나19의 재앙 속에서도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나아와서요. 주님의 뜻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 있는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우리가 살아갈 때 주님의 뜻을 이루는 복된 삶을 모두 다 살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어떠한 핑계도 대서는 안 됨
    이처럼 너무도 고통스럽고 불행한 9가지 재앙을 당하면서도 애굽왕은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 하면서요. 첫째, 피 재앙, 둘째, 개구리 재앙, 셋째, 이 재앙, 넷째, 파리 재앙을 당하고요. 출애굽기 8:25에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고 첫 번째 핑계를 대요. 모세가 애굽 땅을 떠나 사흘길쯤 광야로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이를 거절하자 출애굽기 8:28에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그런즉 너희는 나를 위하여 간구하라”고 두 번째 핑계를 대면서요. 계속해서 애굽 왕이 강퍅하자 다섯째, 가축 전염병 재앙, 여섯째, 악성 종기 재앙, 일곱째, 우박 재앙, 여덟째, 메뚜기 재앙까지 내려지자 출애굽기 10:11에 애굽 왕이 “그렇게 하지 말고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이것이 너희가 구하는 바니라 이에 그들이 바로 앞에서 쫓겨나니라”고 세 번째 핑계를 대요. 결국 아홉 번째 애굽의 온 땅이 3일 동안 캄캄해지는 흑암의 재앙이 임하고 만 거예요. 그러자 오늘 본문의 출애굽기 10:24에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고 네 번째 핑계를 대게 된 거예요. 우리가 주님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가 우리 인간의 죄의 본성과 자신의 타고난 성격, 기질과 자신의 자존심과 감정과 삶의 이익이나 더 나아가 인간관계에 의해서까지도 하나님의 뜻을 다 가리우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의 뜻이 말씀 가운데 다 나아있는데도 깨닫지 못하고요. 또 깨닫는다 해도 자신이 믿음의 결단을 하지 못하고요. 실천하는 행함을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서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그 풍성한 은혜와 축복과 행복을 다 잃어버리고 사는 거예요.
<예화: 2020년 7월 19일(주일) 월북한 20대 탈북민>


    그래서 마치 누가복음 14장의 천국잔치를 베풀어 놓고 초청을 하니깐요. 한 사람은 밭(삶의 터전)을 샀으니 아무래도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양해하라고 핑계를 대고요. 또 한 사람은 소 다섯 쌍(삶의 도구)을 사서 시험하러 가야 하니 양해하라고 핑계를 대고요. 또 한 사람은 장가(삶의 행복)를 들었으니 가지 못하겠노라고 으름장까지 놓으면서 빠져나갔지만요. 결국 그들은 천국의 영원한 복은 다 잃어버리고만 거예요. 그래서 누가복음 14:24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고 경고하신 거예요. 그런데도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서 너무도 가슴 아픈 것은 온통 ‘자기중심사회(egocentered society)'라는 거예요. 다 자기중심 관점이고요. 자기 합리화를 하고요. 자기 잘못도 다 상대방에게만 투사하고요. 비난만 하고요. 갈등과 대립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고요. 불화와 고통만 겪고요. 결국 모두 다 불행하게 파멸되고 마는 거예요. 상대방을 향해 손가락질을 해보세요. 한 손가락만 상대방 탓이라고 상대방을 향하고요. 또 한 손가락만 어쩌다가 저 인간을 만나게 해주셨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만요. 나머지 세 손가락은 다 내 탓이라고 깨우쳐주고 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왜 지금 우리의 은혜가 메말라가고요. 축복을 잃어버리고요. 행복이 사라져 가고 있는가를 돌이켜 보면서요. 더 이상 어떠한 이유로라도 핑계를 대려고 하지 말고요.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회나 교회나 어렵고 힘들수록 누가복음 18:13에 나오는 주님으로부터 진정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세리와 같이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통회자복하고요. 믿음으로 결단하며 돌이킬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바로 여기에서 더 이상 핑계를 대지 말고요. 믿음으로 결단하고 돌이킴으로써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고요. 주님 안에서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의 감격 속에 남은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즉시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2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이르되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애굽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요.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기를 기뻐하지 않아서요. 애굽 왕이 모세에게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고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거절해요. 그러자 모세가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라”고 경고하고 떠나가요. 결국 애굽 왕은 하나님께서 9번의 회생의 기회를 주셨는데요. 주님의 뜻을 행하지 않음으로 인해 애굽 땅이 초토화가 되고요. 자신의 장자뿐만 아니라 애굽 땅의 모든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음을 당하고 마는 마지막 열 번째 재앙의 최악의 상황에 이르고 말아요. 이 얼마나 불행하고 저주스러운 일이예요?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예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그의 뜻 가운데 우리가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해나가길 간절히 바라시며 기다리고 계시는데요. 우리가 아무리 이것이 주님의 뜻이고요. 우리가 복 받을 일인데도 행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께서 그의 뜻 가운데 우리에게 주시는 그 놀라운 복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이것은 오늘의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사실이에요.
<예화:「전염병과 마주한 기독교(저자: 박영돈 목사) 」이야기>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계적 대유행이 장기화 되면서 감염자들이 꾸준히 늘고 있는데요. 어제 8월 1일 기준 전세계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이 17,281,214명에 이르고요. 이중 목숨을 잃은 사람은 672,867명에 이르는데요. 우리가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었는데요. 우리나라에 코로나19를 전파한 신천지 이단의 이만희 교주가 엊그제 지난 금요일 신천지 간부들과 공모해서 방역 당국에 신도 명단과 집회 장소를 축소 보고하고요. 신천지 이단의 연수원인 평화의 궁전을 신축하면서 56억 원을 횡령하고요. 2015년부터 지자체 승인 없이 공공시설에서 종교행사를 연 혐의로 구속되었어요. 이 땅 위에서의 영생불멸의 거짓교리를 외쳐온 그도 역시 앞서간 천부교(전도관)의 박태선 교주와 통일교의 문선명 교주의 죽음의 전철을 밟게 된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한 고난 속에서도 우리 주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하고 세계를 울린 3장의 감동적인 사진들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예화: 첫 번째 사진-병원에 가기 전, 마지막 키스를 나눈 노부부 이야기>
<예화: 두 번째 사진-코로나19에 걸린 할머니에게 인공호흡한 손자 이야기>
<예화: 세 번째 사진-코로나 걸린 어머니를 위해 매일 밤 병원 벽을 기어오른 아들 이야기>


    위의 3 사진의 공통점은 죽음의 전염병을 뛰어넘어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사랑한 이 사랑의 위대함을 온 인류에게 널리 전해 주고요. 모두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을 안겨다 주었어요. 우리가 흔히 말하듯이 사랑은 나중에 잘 되고 나서 할 수 있는게 결코 아니에요. 지금 여기서 사랑하지 못하면 영영 우리에게 그 사랑의 행복을 나눌 기회가 오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누가복음 10장에 보면 강도 만난 사람을 제사장(목사)도, 레위인(장로, 권사, 집사)도 돕지 않고 다 피하여 달아나 버렸는데요. 유대인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사마리아 사람은 가서 강도 만난 사람을 잘 돌봐 주고요. 치료 경비까지 다 대고요. 또 경비가 더 들면 돌아올 때 다 갚아 주리라고 해요. 이 때 주님께서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고 물으신 후에요. 누가복음 10:37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고 강조하세요.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말씀을 읽을 때마다 늘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어요. 한 교인이 평소에 성경도 안 읽고 기도도 안 하다가요. 갑자기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니깐요. 얼마나 간절해지던지요? “무슨 말씀이든지 행할테니까 주님, 말씀하여 주시옵소서!”하고 성경을 펼쳤어요. 그랬더니 “유다가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물러가서 스스로 목매어 죽은지라” (마 27:5)가 나온 거예요. “이건 아니지요!” 하고 다시 펼쳤더니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눅 10:31)가 나온 거예요. “이건 더욱 더 아니지요!”하면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삿 9:48) 그래 가지고 먼저 가고 말았다고 안하요?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도 어떻게 점쟁이들이 점괘 내듯이 믿을 수 있어요? 우리가 아무리 많은 은혜를 받고도요. 행하지 않으면요. 우리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무용지물에 불과한 거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나 주의 종들의 증거를 통해서나 영적인 장로님, 권사님, 집사님들의 권면을 통해서나 우리 주위의 환경을 통해서나 우리 삶 가운데 터져 나오는 사건을 통해서 주님의 뜻을 깨우쳐 주시면요. 겸손히 무릎 꿇고요. 즉시 행할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우리에게 주님의 뜻 가운데 새로운 은혜가 임하고요. 풍성한 축복이 임하고요. 넘치는 행복이 새롭게 임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 고창주 목사 목회 간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살아가면서요. 코로나19의 고난 가운데 느끼는 슬픔과 고통과 아픔과 눈물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그러나 그 고통 가운데서도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은 최고의 위로의 은혜요, 축복이요, 행복인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주님의 뜻이 가장 확실히 드러나 있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요. 어떠한 핑계도 대지 말고요. 즉시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행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주님의 뜻을 이루시고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차고 넘치는 복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