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32)-홍해를 가르라출애굽기 14:10-14


    오늘 우리는 현실을 앞뒤, 양옆까지도 꽉 막힌 절망의 상황이에요. 코로나19만해도 이겨내기 버거운 현실 속에서 지난 주간에도 하구핏(Hagupit), 장미(Jangmi)에 이어 메칼라(Mekkhala)라는 태풍이 연거푸 한반도를 덮치고요. 이처럼 사상 초유의 54일에 이르는 집중호우의 장마로 인해 산사태와 1,000여건에 이르러서요. 지금까지 사망 33명, 실종 9명, 이재민이 78,000여명에 이르러서요.
<예화: 구조된 엄마 소와 두 송아지>


    그래서 오늘 우리가 사랑의 수해구호헌금을 바치고자 합니다만 고통당하는 형제나 이웃을 볼 때 큰 도움이 되어 주지 못해 눈물만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서도 그러한 절망적인 상황이 나와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서요. 2-3일 정도 지났을 거예요.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출애굽을 마지못해서 허락했다가요. 60만 명의 장정들과 200만명에 이르는 백성들과 그 재산까지 다 잃어버릴 것을 생각하니깐요. 며칠 전에 그 엄청난 장자의 죽음의 재앙을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요. 왕의 경호부대의 바퀴가 둘 달린 군사용 마차 600대와 애굽의 모든 군사용 마차와 군지휘관들과 병사들을 이끌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게 된 거예요. 그리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혀 있지요. 양 옆은 피할 수 없는 사막이지요. 뒤에서는 애굽 군대가 잡으러 오니 이 사면초가의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홍해를 가르는 기적을 이루게 되었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여호와께 부르짖어야 함
    먼저 본문 10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눈을 들어보니깐요. 애굽 왕의 군대가 자기를 뒤에 바짝 뒤쫓아 온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러자 그들은 심히 두려움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요. 여호와께 살려달라고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어요. 히브리 속담에 “앞이 막히면 옆을 보고 옆이 막히면 뒤를 보고 뒤도 막히며 위를 보라”는 말이 있어요. 앞이 캄캄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결국 우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고요. 주님만 의지하지 않을 수 없고요. 주님께 간구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간절히 부르짖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우리는 오늘의 절망적인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똑같은 심정이에요.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두려움에 빠져 있지요. 경제 위기에 봉착해 있지요. 실패한 부동산 정책에 의해 주거가 불안하지요. 태풍과 홍수의 피해까지 덮쳤지요. 사면초가의 오늘의 절망적인 현실이에요.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어요? 하나님께 살 길을 열어달라고 부르짖는 기도 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떤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 가운데 그러는 교인들이 있어요. “주님이 귀머거리냐? 조용하게 기도해도 다 알아들으실 텐데 왜 그렇게 천박하게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하느냐?”하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렇게 말씀하시면요. 마태복음 6:8에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고 증거하시는데요. 우리가 기도할 필요도 없어요. 우리의 필요를 주님께서 다 아시고 채워주시는데 무슨 기도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요? 그러나 구약성경부터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기적의 응답을 일으키는 기도는 부르짖는 기도라고 계속해서 강조하신 거예요. 그래도 우리 치유하는교회는 영적으로 깨어 있어서요. 오늘 예배뿐만 아니라요. 매일 새벽이나 금요심야기도회 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요. 본당이 가득 차게 나와서 부르짖음으로 얼마나 많은 기적을 체험하고 있어요? 그러나 수없이 걱정하고 염려하고요. 낙심하고 좌절하고요. 앞이 캄캄하고 절망하면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으면요. 삶의 불행과 고통과 절망은 더욱 깊어만 가는 거예요. 어떠한 주님의 기적의 역사도 결단코 일어나지 않는 거예요.
<예화: 청주금식수양관 여름 산상 수련회, 명성교회 여름 산상 수련회>


    우리가 부르짖는 기도를 계속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무엇보다 신 · 구약성경에서 계속해서 강조하시는 부르짖는 기도를 깨닫지 못하고요. 자신의 부르짖는 기도의 기적을 체험하지 못하니깐요. 부르짖는 기도를 드리지 않음으로 인해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요. 무기력한 신앙생활의 악순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면서 부르짖으며 기도하면 기적의 역사가 기필코 일어나는 거예요.
<도서: 「숨 쉬지 못해도 괜찮아」산소주머니를 단 김온유 자매>


    그러므로 이 어려운 코로나19와 태풍의 수해 가운데서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가 살아날 수 있는 길은 지금가지도 그렇게 이겨내 왔듯이요. 부르짖는 길밖에 없어요. 그래서 부족한 종이 참으로 즐겨 암송하고 확신하고 체험하는 말씀이 시편 50:14-15의 말씀이에요.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리며 지존하신(가장 높으신) 이에게 네 서원(약속한 것)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우리의 인생 가운데 앞으로도 코로나19나 그 어떠한 태풍이 불어닥쳐도요. 우리는 인간의 생(生)과 사(死)와 화(禍)와 복(福)을 주관하시는 여호와 하나님만 믿고요. 의지하고요. 간절히 부르짖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오늘날에도 홍해를 가르시는 하나님의 기적이 새롭게 시작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2.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아야 함
    우리의 인생은 순탄하고 형통할 때 다 자신들이 잘해서 그러는 줄 알고요. 무언가 일이 제대로 안되고 어려워지면 그때부터 모든 일에 대해 남의 탓을 해요. 그래서 본문 11-12절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의 소리를 다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불과 2-3일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모세의 인도를 따라 430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때의 감격을 기억하세요. 우리는 35년의 일재의 식민통치에서 해방이 되었어도 그렇게 감격하고 지금도 그 감격을 잊지 못하는데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리보다 10배가 넘는 기나긴 세월이었으니깐요. 그 해방의 감격이 우리보다 적어도 10배가 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얼마나 시간이 지났다고요. 조금 어렵고 힘들어졌다고요. 불과 2-3일 만에 모세를 향해서 달려들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을 보세요. 부르짖어 기도를 하지 말든지 불평이나 원망을 하지 말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더더욱 기가 막히는 것은 조금 전에는 여호와께 간절히 부르짖고도요. 언제 부르짖었느냐는 듯이 금방 돌변하여서요. 불평하고 원망하는 말 좀 들어보세요.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렇게 광야에서 비참하게 죽게 하느냐?” 그런데 그 다음 말을 더욱 주의 깊게 들어야 해요.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지 않았느냐?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그들이 언제 모세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출애굽기 이전의 성경을 눈이 빠지도록 훑어봐도 이런 말을 했다는 기록을 찾을 수가 없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주의 종 모세 앞에서 버젓이 거짓말까지 해가면서 불평하고 원망하는 모습을 보면서요. 우리는 무엇을 느끼세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아요? 우리도 조금만 마음이 안들고 못마땅하고요.  자존심이 상하고 상처가 되고요. 조금이라도 물질적으로 손해를 보는 것 같으면요. 엊그제까지 가까이 지내고 순종했던 사람들까지도 금방 돌변해서요. 어제의 친구가 오늘의 원수로 변하고요. 등을 지고 칼을 꽂는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아요? 이것이 인간 세상인 거예요. 그래서 불평과 원망을 끊이지 않고 살아요. 지난 주간에 서울 시내 아파트 시세 평균가가 최초로 10억 원을 돌파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아파트를 가지고 계신 분들은 너무도 좋아하겠지만요. 전세 사시는 분들은 앞이 캄캄해요. 그러나 지금 아파트 시세가 절대 정상가격이 아니에요. 언젠가는 최종 상한가에서 가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집 없으신 분들은 그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아파트 몇 채씩 가지신 분들은 부동산세를 내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예화: ‘우리의 인생’이란 제목의 재미있는 글>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요. 주님께서 지금까지 역사하심을 믿고요. 주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하심을 믿는다면요. 우리가 좀 더 인내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요. 함께 대화하고요. 함께 뜻을 합하고 함께 힘을 합해서 이겨나가야지요. 세상 사람들처럼 불평하고 원망하고요. 다투고 싸우며 살아서는 결단코 안되는 거예요.
<예화: 찬양사역자 최용덕 집사의 ‘오늘 나는’>


    그래서 에베소서 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고 분명히 명령하시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려면요.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하고요. 시기하고 질투하고요. 험담하고 비판하는 거짓된 더러운 말들은 우리의 입 밖에도 내면 안돼요. 그러한 사람들은 이미 사탄이 역사하기 시작했고요.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요. 사탄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멸망당하고 말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이처럼 불평과 원망이 결코 우리에게 영적으로 유익하지 못한데도 계속 되풀이되는 결정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아세요?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성령님이 충만하지 못하니깐요. 육신의 혈기만 터져 나오고요. 불행과 원망의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나만 불행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하나님의 교회까지도 일생토록 모두 다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하고 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성령님의 충만함을 간구하고요. 성령님으로 사로잡혀서요. 우리의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모든 것이 예수님의 사랑으로 위로하고 힘이 되고요. 사랑하고 용서하고요. 칭찬하고 격려하는 선한 말을 하여서요.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고요. 주님의 영광만 드러내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는 내부의 성령님이 하나 된 힘으로 외부의 어떠한 사탄의 대적이라도 다 분별하고요. 물리치고요. 승리하게 되고요. 이 말세의 마지막 때도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3.여호와께서 행하시는 구원을 바라봐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3-1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모세는 이렇게 하나님의 기적이 출애굽의 은혜를 금방 잊어버리고요. 불평하고 원망하며 달려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서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요 가만히 서서요.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하면서요.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외쳐요. 이것은 한마디로 구약의 복음 선포(The Proclamation of the Gospel)이고요. 이러한 복음의 말씀은 구약성경에 이어서 신약성경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증거되고 있는 거예요. 그리하여 결국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바다 위의 손을 내밀어 큰 동풍이 밤새도록 불어서요.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셔서요. 바다가 마른 땅이 되어서요. 홍해가 기적적으로 쫙 갈라지게 되어서요. 20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감격 속에 홍해를 건너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나서 애굽 왕의 병기들과 마병들이 그들의 뒤를 추격하니깐요. 새벽녘 바다 가운데쯤 왔을 때 여호와께서 불과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요. 어지럽게 하셔서요. 조금 전 주의 종 모세의 복음의 선포처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싸워주셔서요. 바닷물이 다시 덮쳐서요. 애굽 군대를 한명도 남기지 않고 다 홍해해서 수장시키시고 기적의 승리를 거두게 하신 거예요(출 14:21-28).
<예화: 내셔널 그래픽의 홍해실험, 애굽 전차 잔해, 홍해의 기적을 믿지 못한 전도사>


    하나님의 기적은 아무리 인간의 이상이나 지식이나 경험으로 증명할 수 없고요. 신앙의 세계는 이를 모두 다 초월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번에 코로나19에 이어 3번에 걸친 우리가 과거에 경험해 보지도, 상상조차도 못했던 릴레이 태풍과 집중호우를 겪으면서요. 인간의 한계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요. 이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이고요. 사실은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나 우리는 흔히 우리의 힘으로 신앙생활도 하고 헌신도 하고 봉사를 하고 충성을 다하는 것 같지만요. 주님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우리의 생명도, 수고도 다 헛되고 마는 거예요. 오히려 우리의 힘으로 율법적인 신앙생활을 할려고 하면 할수록 힘이 들고 지치는 거예요. 그래서 대부분의 이러한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이 즐겨 부르는 찬송이 338장의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찬송가는 마지막 인간의 한계에 부딪혀 죽음 앞에 나아가는 소망의 찬송일 거예요.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죽어지고 주님 주시는 힘으로 복음주의 신앙생활을 하는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은 찬송가 430장의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찬송가와 같이 우리의 삶 가운데 모든 문제를 주님께 맡기고요.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시도록 내어드리고요. 성령님이 역사하시도록 자신의 일생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거예요. 그리하면 우리를 통해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고요. 무한한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고요.  기적적인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갈라디아서 2:20의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는 이 복음의 말씀을 우리가 확실히 깨닫고요. 이제는 더 이상 내 힘으로 하는 율법주의 신앙생활을 멈추고요. 나는 이제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었는데요. 내가 무얼 내세울 것이 있고요? 내가 무얼 욕심 부릴 것이 있고요? 내가 살아서 무얼 고집 피울 것이 있겠어요? 다 주님께서 권능으로 살아 역사하시고요. 가장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요. 크게 영광 거둬 주시고요. 오늘날에도 홍해를 가르는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마커스 워십팀 소진영 간사. ‘오직 예수뿐이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험난한 인생길을 살아가는데 때로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어요? 때로는 얼마나 앞이 캄캄하고 낙심되었어요? 때로는 얼마나 절망이 되고 죽고 싶은 순간들이 많이 있었어요?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아무리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만 바라보며 부르짖고요. 불평이나 원망을 결단코 입 밖에도 내지 말고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일을 인내하며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이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의 일생토록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의 역사가 우리의 삶 가운데 불일 듯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