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33)-나는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출애굽기 15:22-27


지금 우리나라는 그 기쁜 광복절에 온 나라가 보수와 진보로 쫙 갈라서서고요. 더구나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해서 서로를 비방하고요. 공격하면서요. 오늘까지 그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로 문제의 실마리가 풀릴 기미가 보이지를 않아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수르광야로 들어가서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얻지 못하다가요. 마라에 이르러서요. 우물을 만났는데요. 물이 써서 마실 수가 없었어요.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모세에게 “우리가 무엇을 마실 것인가?”하고 원망할 때에 모세는 또 다시 여호와께 부르짖어요.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한 나무를 가리키시며 그것을 물에 던지라고 해서요. 그래서 그 나무를 물에 던지자 그 쓰디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초대교회 사도들이 하늘나라로 떠나간 후 주후 2세기 이후부터 기독교신학을 이끌어온 고대 교부들은 쓴 물을 단 물로 고친 이 나무가 바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한다고 해석하였어요. 그런데 예수님의 탄생 700여 년 전 이 십자가의 치유를 가장 잘 예언하신 이사야 53:4-5에 이 십자가의 기적의 치유에 대해서 너무도 구체적으로 잘 말씀하고 계세요. 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오늘도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을 대신 지심
    먼저 이사야 53:5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 인간은 죄악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멸망 당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어떠한 인간도 스스로 죄악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을 대신 지게 하실 것을 예언하셨던 거예요. 그러므로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세상 것을 다 잃어도 예수님을 믿고 구원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것보다 귀한 것은 없어요. 그런데 40여 년 전 저희 신학생 때만 해도 한국교회가 구원의 복음을 소홀히 했어요. 더구나 말세 마지막 때 점점 교회가 세속화가 되다 보니깐요.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종교다원주의를 외치면서요. 또 다시 구원의 복음의 선포가 드물어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까 교인들까지도 구원의 감격이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그러나 저는 구원의 확신을 얻었던 그 날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상경해서요. 그 외롭고 힘들던 시절인 1976년 8월 5일은 저의 일생에 놀라운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신 감격의 날이었어요. 오죽하면 그 날짜까지 못 잊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구원의 확신을 얻은 날짜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구원의 감격은 우리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남아 있어야 하는 거예요.
<예화: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놀라우신 은혜)’ 존 뉴튼(John Newton) 목사>


    우리는 어느 쪽에 해당될까요? 2,000년 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대신 져 주심을 믿으십니까? 우리는 바로 그 믿음으로 우리의 지난날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고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고요. 천국의 소망 가운데 살게 된 거예요. 이 얼마나 크신 십자가의 사랑이고요? 놀라운 주님의 은혜입니까?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인간의 생사화복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면, 코로나19가 두려워서 주님 앞에 못 나올 수 있겠어요? 성경에서도 수없이 강조하지만요. 일찍이 스위스 개혁교회 목사이며 21세기의 대표적인 신정통주의 신학자인 칼 바르트(karl Barth) 목사님도 “예배는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중에서 가장 중대하며 가장 긴급하며 가장 복되고 가장 영광스러운 일이다”고 강조하였던 거예요. 그런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이 하나님께 드리는 중대한 예배를 가로막는 중대한 범죄자들이 되어 있으니 이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그런데도 코로나19로도 못 깨닫고요. 최장기 장마로 인한 홍수로도 못 깨닫고요. 계속되는 폭염으로도 한국교회가 정신을 못차리니깐요. 이제는 일제시대 때나 6. 25전쟁 때 공산당이 그러했듯이 코로나19 방역을 이유로 이 정부까지 나서서 예배를 못 드리게 하고요. 벌금형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데요. 우리에게 어떠한 벌금이나 처벌이 주어진다고 해도요. 그래서 오늘 예배에 나오신 여러분들은 지난날 순교자의 신앙을 따라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지러 오신 영광스럽고 축복된 분들인 거예요. 우리가 무엇이라고 이렇게 큰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를 입을 수 있겠어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24-25에서 베드로 사도는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너희가 전에는 양과 같이 길을 잃었더니 이제는 너희 영혼의 목자와 감독 되신 이에게 돌아왔느니라”고 감격의 선언을 하였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의 죄악을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셔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담당해주심을 믿음으로 말미암아서요. 지난날의 모든 죄악이 용서함을 받고요. 천국의 영생의 소망과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십자가에서 우리의 상처를 대신 지심
    계속해서 이사야 53:4 하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전통적으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악만 대신 지신 것으로 알아왔습니다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모든 마음의 상처의 슬픔까지도 대신 지신 것을 결단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지난날 우리 한국교회의 목사님들이 강단에서 “(영적으로) 은혜 받아라” “(육적으로) 축복 받아라”만 강조했어요. 그래서 우리가 지금까지 영적으로 얼마나 많은 은혜를 받았고요. 육적으로 얼마나 많은 축복도 누리게 되었어요? 그리하여 받은 은혜와 축복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열심히 헌신하고요. 봉사하고요. 충성을 다하여서요. 우리가 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까지 되었어요? 그런데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구원의 감사가 넘치십니까?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가진 모든 것도 아까워하지 않고 다 바칠 만큼 감격스럽습니까? 여기에 ‘아멘’하고 응답하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신앙의 한계인 거예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을 소망을 주셨는데요. 왜 그렇게 감사하지 못하고요. 감격하지 못하며 사느냐는 거예요. 43년 전 부족한 종이 주의 종으로 소명 받고 목회를 하면서요. 가장 충격 받은 목회의 회의가 무엇인지 아세요? 왜 그렇게 주님의 큰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았다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 그렇게 율법적이고요. 기복적이고요. 인본적이고요. 세속적인 신앙 생활을 하고 있던지요? 그러다 보니까 무엇이 진정으로 십자가의 복음을 위하고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고요. 궁극적인 주님의 영광을 위하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요. 하찮은 자신의 자존심이나 명예욕들이나 물질욕이나 육적인 인간관계에 매여 살던지요? 그래서 그런지 상처도 쉽게 받고요. 안 믿는 사람들보다 감정은 더 안 풀고요. 그 응어리진 감정으로 당회나 제직회나 공동의회 때 어떻게 해서든지 감정을 풀면서요. 그들이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했다는 사람들이 안 믿는 사람들보다 더 치졸하게 싸우는 것을 보면서요.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님께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시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하고 7번이나 진노하셨던 일들을 그대로 되풀이 하면서요.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다가 인생을 끝내는 거예요.
<예화: 제75주년 광복절 기념행사장에서의 김원웅 광복회 회장과 광화문 집회 현장에의 사랑제일교회 전광훈 >


    이러한 끝없는 이념논쟁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 자신의 지난날의 상처가 치유 받지 못해 놓으니깐요. 신앙이 부정적이고 비판적으로 형성이 되어서요. 자신만 평생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 뿐만 아니라요. 그들의 마음 속에는 미움의 증오가 가득 차 있어요. 그래서 그들의 말이나 글을 보면 섬뜩할 정도의 증오의 독기가 가득 차 있고요. 같은 동족끼리 원수도 그런 철천지 원수들이 없어요. 그러면 그렇게 비방하고 공격해서 상대방이 지거나 죽을 줄 알아요? 절대 안지고 안 죽어요. 우리가 자식을 낳아 길러봐도요. 내가 낳은 자식도 내 마음과 같지 않고요. 내 말을 안 듣는데요. 그런데 하물며 우리와 아무런 피도 섞이지 않고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자라났고요. 그것도 다 커버린 어른들이 상대방의 말이나 주장을 들을 것 같아요? 다 평생토록 헛고생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게 아무리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하고요. 큰소리치고요. 심한 욕설을 퍼붓고요. 상대방을 죽일 듯이 달려들어도요. 절대 안변하는 거예요. 오히려 서로의 감정만 쌓고요. 서로간의 높은 담벽만 쌓아서요. 영영 원수처럼 등을 진채로 상태로 인생 끝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부족한 종은 “우리의 신앙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가?” 저 자신부터 시작해서 양떼들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하고 고민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다가요. 우리의 마음이 문제라는 것을 발견하고요(잠 4:23, 요삼 1:2). 상담치유학을 전공하고요. 미국에까지 가서 석사,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요. 배웠던 상담치유학의 이론들을 이민목회 현장에 적용하던 중에 성령님께서 깨우쳐주신 말씀이 에베소서 4:31-32이었어요.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을 날마다 교인들의 삶 가운데 적용하는 가운데 수많은 치유의 행복의 감격을 회복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지난날의 상처부터다 내려놓고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용서하면요. 성령님을 통해 기적적으로 치유되고 회복되어서요. 서로를 진정으로 사랑함으로 용서하고요. 포용하고요. 감격 속에 화목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상처를 대신 지시게 하셨는데요. 우리가 우리의 모든 상처를 주님의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도 어떠한 원수라도 용서하는 순간부터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나 세상이나 모두 다 천국의 행복의 감격을 회복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십자가에서 우리의 질병도 대신 지심
    마지막으로 이사야 53:4 상반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영혼의 죄악과  마음의 상처만 대신 지신 것이 아니라요. 우리의 육신의 질병도 대신 지셨다고 증거하신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인간의 인류의 흥망성쇠와 생사화복을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고 그렇게 말도 잘 하고요. 기도도 잘 하지만요. 막상 질병이 닥치면 약국이나 병원부터 찾아요. 더욱이 이번에 코로나19 전염병이 닥치니깐요. 감염이 두려워서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 받으시고요. 우리에게 내려주시는 가장 큰 축복의 통로인 예배를 드리러 못 나오는 것 보세요. 이것이 바로 신앙인의 불신앙이고요. 우리의 믿음의 한계였던 거예요.
<도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안영로 원로목사님>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고요. 그분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고요. 죽은 자도 살리시는 분이심을 믿고요. 어떠한 병도 고치시는 분이심을 믿는다면요. 우리와 자녀들까지도 마스크를 다 쓰고요. 정부의 방역수칙 철저히 지키면서요. 왜 교회에 못 나오느냐는 거예요. 이것이 말세 마지막 때 우리 한국교회에 닥친 큰 시험인 거예요. 그런 믿음으로 살면 무병장수할 줄 아세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하면서 지켜본 바로는요. 자신의 몸을 사리지 않고 주님과 고통당하시는 이웃을 위해서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하신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이 건강하고요. 장수하시면서요. 큰 영광 돌리시더라고요.
<예화: 노량진교회 림인식 목사님, 평촌교회 림형석 목사님 부자>


    우리의 생명과 건강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조차도 대신 지심을 확실히 믿고요.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얼마나 많은 치유의 기적들이 우리 치유하는 교회를 통해 일어났는지 몰라요.
<예화: 암 투병중인 협동목사님>


    무슨 능력으로 큰 암덩어리가 없어지겠어요?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 믿음 가운데 역사하여 부족한 종의 안수기도를 통해서까지 나타나셨던 거예요. 그래서 야고보서 5:15-16에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질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질병을 대신 지게 하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치료를 뜨겁게 체험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월이 흐르면 사랑하는 아버님도, 어머님도, 사랑하는 남편도, 아내도, 그토록 사랑했던 아들도, 딸까지도, 심지어 우리 자신들까지도 어느 날 갑작스럽게 떠나가요. 그러므로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만 믿으며 십자가를 붙잡고 살아가야 해요.
<예화: 교회 예배 금지 명령과 남편을 암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젊은 권사님의 헌신과 예배에 참석하신 성도님들의 감동과 주님의 위로의 음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우리를 치료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한분 밖에 없는 아들인 죄 없으신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온갖 모진 멸시와 고통가운데 죽게 하면서까지 사랑해주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까지도 대신 지시게 하셨는데요. 우리가 이를 확실히 믿는다면 어떠한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진정으로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은혜와 평강과 축복을 누리면서요. 우리의 남은 여생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하여 의미 있고 보람되고 복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