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37) 이렇게 살라(3)-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말라 출애굽기 20:7


 우리는 계속해서 ‘이렇게 살라’는 주제를 가지고요. 십계명의 말씀을 나누고 있는데요. 제1계명이 우리의 예배의 대상인 유일하신 하나님을 증거하시고요. 제2계명이 우리의 예배의 방법에 있어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고요 오늘 제3계명에서는 우리의 예배의 참된 신앙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있음을 강조하고 있어요. 오늘도 제3계명의 말씀을 통해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여호와는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고 명령하세요. 그것도 ‘אלֹ(로)’라는 단어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세요. 그러면서 “그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고 심판을 경고하세요.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지도 쓰지도 않아요. 그래서 성경에 ‘여호와 하나님’이란 말씀이 나오면 ‘주 하나님’이라고 읽었어요. ‘여호와’란 이름은 대제사장만이 1년에 한번, 속죄일에 지성소에서 속죄제물을 바친 후에 부를 수 있었다고 해요. 그렇다면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거예요. 히브리어 원어성경에 보면 여기 나오는 ‘망령되게’라는 ‘אוְשָּׁ֑לַ(랏솨웨)’라는 단어를 쓰고 있어요. 그렇다면 이 ‘망령되게’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기도하는 가운데 성경에 나와 있는 ‘망령되게’라는 단어를 다 찾아서요. 그 가운데 깊으신 뜻을 깨닫게 되었어요.


1.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아야 함
 먼저 시편 31:6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허탄한 거짓을 숭상하는 자들을 미워하고 여호와를 의지하나이다” 여기 ‘거짓’이란 단어가 ‘망령되다’는 단어와 같은 ‘אוְשָּׁ֑(솨웨)’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요. 그것은 신명기 32:21에는 ‘허무한 것’, 열왕기상 16:13에는 ‘헛된 것들’로 번역되는데요. NIV 영어성경에 보면 계속해서 ‘idols(우상들)’이라고 번역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믿음도 없으면서도 그냥 의지할 사람이 없으니깐요. 마지못해서 신들 중 하나를 우상으로 믿고요. 마치 점쟁이들에게 찾아가서 좋은 운세나 바라보고 무당을 데려다 굿을 하면서 복을 구하듯이요. 우상 섬기듯 하나님을 믿거나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라는 거예요.
<예화: 제2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 수상 이야기>


 세상 사람들이 그래요. 다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돌변하는 세상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는 확실하게 ‘예’ 아니면 ‘아니요’하는 신앙을 가져야 해요. 절대 믿는 둥 마는 둥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주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복도, 세상 낙도 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늘 강조합니다만 말씀을 받을 때나 기도를 할 때나  찬양을 할 때나 성도의 교제 가운데도 ‘아멘’으로 화답하는 것도 “진실로 그렇게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하는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거예요. 그래서 전 세계 어디를 가보아도 영적인 성도들이나 주의 종들이나 성령 충만한 교회들을 보면요. 다 ‘아멘’의 믿음으로 충만한 거예요. 그러니까 성령님께서 말씀 가운데도 은혜를 부어주시고요. 기도 가운데도 능력을 부어주시고요. 찬양 가운데도 기쁨을 부어주시고요. 교제 가운데도 사랑을 부어주시는 거예요. 결국 우리 믿음대로 되는 거예요.
<책 소개:「0점의 가치」를 쓰신 하근수 목사님 이야기>


 주님께서 우리에게 은혜 베푸시지 않으셔서 은혜를 못 받는 것 아니고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능력 부어주시지 않으셔서 능력을 못 얻는 것도 아니고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감격을 부어주시지 않으셔서 감격을 못 누리는 것도 아니고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부어주시지 않으셔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요. 우리가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막 4:40) “네 믿음이 너를 구원 하였느니라”(마 9:22) “네 믿음이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막 9:2) “너희 믿음대로 되라”(마 9:29)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 20:27)고 우리의 믿음을 강조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코로나19의 대환란으로 인해 우리는 당장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것부터 제한을 받고 있어요. 그러니까 코로나19 바이러스도 쉽게 잡지도 못하고요.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 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노환으로 인해 건강이 걱정이 되어서 못 나오시는 어르신들도 계시고요. 직장에서는 월요일에 출근을 하면 “교회에 나갔냐?”고 물으며 압력을 가해서요. 교회에 못 나온다고 호소하는 젊은 교인들도 많아요. 그러나 우리의 생사화복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을 확실히 믿는다면요.


  복의 근원되시는 살아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책임지심을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나아와야 해요. 그래서 코로나19 바이러스뿐만 아니라 안팎의 어떠한 대적이라도 우리 믿는 자들을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갈려고 할 때에도 사무엘상 17:45에 나오듯이요. 갓 20살도 안 된 청년 다윗이 갑옷으로 완전무장을 한 여섯 규빗 한 뼘(2m83cm)의 거구인 블레셋 장수 골리앗을 상대하며 나갈 때 외쳤듯이요.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라는 믿음으로 나아가야 해요. 다윗이 무슨 힘이 넘치는 것도 아니고요. 전투 기술을 익힌 것도 아니고요. 완전 군장을 한 것도 아니고요. 큰 창과 칼을 가지고 나간 것도 아니에요. 단지 물매와 돌 다섯 개 가지고 나아가도요.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가니까 기적의 승리를 일으킬 수 있었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삶 가운데 어떠한 고난이 닥쳐도 우상을 섬기듯이 불신앙을 가지고요. 결단코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말고요.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여호와의 이름에 대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때 코로나19나 어떠한 거대한 인생의 대적도 능히 승리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지 말아야 함
 계속해서 시편 12:2-3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모든 아첨하는 입술과 자랑하는 혀를 끊으시리니“ 여기도 ‘거짓’이란 단어가 히브리어로 ‘אוְשָּׁ֑(솨웨)’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요.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는 말씀을 보충해 주세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요. 거짓으로 말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겉으로는 아첨하는 입술로 다가가면서요. 속으로는 자기 자신을 자랑하는 혀를 가지고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남에게 아첨하는 입술과 자신을 자랑하는 혀를 다 끊어버리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면서도요. 겉과 속이 다르게 이중적으로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불러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우리 주위에 보면 겉과 속이 다르고요. 앞과 뒤가 다르고요. 전과 후가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해할려고 얼마나 온갖 거짓으로 달려들어요?
<예화: 미국의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의 후보시절 이야기>


 아무리 우리 주위에서 우리를 온갖 거짓으로 비방을 하고 험담을 해도요. 거짓은 진실을 결코 이기지 못하고요. 언젠가는 진실이 다 밝혀지고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거짓되고 불의한 자들은 하나님께서 선악 간에 다 심판하세요. 그래서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거짓되고 불의하고 사악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 심판하시니깐요. 다 하나님의 심판에 맡기고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거짓된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고요. 진심으로 사랑으로 섬기고요. 끝까지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리하면 언젠가는 그들도 진실을 깨닫고요. 변화되고요. 주님 품으로 돌아오게 될 뿐만 아니라요. 결국에는 모두 다 복을 누리고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요즘 코로나19로 자녀들까지 학교에 못 가고요. 동영상 강의를 듣다 보니깐요. 부모님이 돌보지 않으면 자녀들이 강의를 틀어놓고 게임을 즐기면서요. 게임중독에 빠져든다고 해요. 또한 청년세대는 코로나19로 인해 취직이나 진로의 실패를 겪으면서요. 온 나라를 이념분쟁으로 두 동강 낸 기성세대에 대해서 원망하고 반항하고요. 지난 날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의 눈물의 기도와 희생으로 이루어진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에 대해서는 감사하지 못하고요.
오히려 자신의 삶에 불성실한 자녀들에 대해서 안타까운 심정으로 “나 때에는 말이야!”하고 권면을 하면요. “라떼는 말이야!”라고 비꼬면서 꼰대 취급을 한다고 해요.
<예화: 한국기술연구원(KAIST)의 이병태 교수님의 “젊은이들에게 가슴에서 호소합니다”는 제목의 글>


 얼마나 감동적인 강렬한 외침으로 들려오던지요? 그의 삶이 진실하니까 독자들로부터 큰 감동과 반향을 불러일으킨 거예요.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가면을 쓰고 의로운 체 하지 말고요. 더 이상 말로만 큰 소리 치지 말고요. 더 이상 사탄에게 속는 거짓된 삶을 살지 말고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우리의 남은 여생이라도 예수님처럼 온유하고요. 겸손하고요. 진실한 모습으로 주님 앞에서 새롭게 일어서서요. 진실되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수 있길 바랍니다. 그것이 조용한 고백이고요. 사람들의 귀에 안 들려도요. 아무리 여호와의 이름을 소리치며 부르는 거짓된 자들보다도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요. 변화를 일으키고요. 열매를 맺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여호와의 이름을 범죄하며 부르지 말아야 함
 마지막으로 이사야 5:18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거짓으로 끈을 삼아 죄악을 끌며 수레 줄로 함 같이 죄악을 끄는 자는 화 있을진저” 여기 ‘거짓’이란 단어가 ‘אוְשָּׁ֑לַ(랏솨웨)’라는 단어로 기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이 거짓으로 끈을 죄악을 끌 때 수레 줄로 함같이 죄악을 끄는 화가 있다는 거예요. 결국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거짓된 믿음이고요. 다 자신의 의를 위한 것이고요. 부를 위한 것이고요. 복을 위한 것이고요. 다 사탄에게 속아서 거짓으로 주의 이름을 부르고요. 죄악을 끌여들여서요. 결국 죄악의 심판만이 있을 것을 경고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범죄하며 부르지 말라는 거예요.
<예화: 미국의 빌 클린턴(Bill Clinton) 대통령이 재선 도전 이야기>


 우리가 남은 여생 더 이상 부질없이 싸울 필요가 없고요. 하나님의 뜻대로만 행하면 아무런 문제될 것이 없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은 행하지 않고요. 사탄의 시험에 빠져서요. 계속해서 육신적이고 인간적이고 세상적인 것만 따라가는데 우리의 신앙의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 7:21에서 예수님께서도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습니까?
<예화: 아침마당에 출연하신 강남 베이직교회 조정민 담임목사님>


 여러분, 교회만 나온다고 구원 받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평생토록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를 다니고요. 봉사를 많이 하고요. 목사, 장로, 권사, 집사가 되었다고 구원받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거예요. 오히려 자신의 종교적인 믿음으로 인해서 자신도 구원 받지 못하고요. 주위 사람들의 신앙의 걸림돌이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경우가 얼마나 많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7번씩이나 저주하시면서 그토록 격노하셨던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마 23:13, 15, 16, 23, 25, 27, 29)이 되어가고 있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평생을 아무리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도요. 자신이 사탄에게 속고 있는 줄도 모르고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요. 하나님의 복음을 가로 막고요. 하나님의 영광을 다 가리우며 범죄하는 교인들이 이 땅에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고린도전서 10:31-33에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유대인 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으세요? 그러므로 그러한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속히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고요. 죄악 된 길에서 돌이키고요.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복된 삶을 회복해야 하는 거예요.


  우리는 지난 9개월 동안 안팎의 온갖 환난과 핍박 속에서 성전예배를 계속해서 드려 왔어요. 더욱이 지난 한 달 동안은 정부가 교회집회를 금지시킨 상황 속에서 더욱 더 그 박해가 극심했어요. 여러분, 집단감염이 일어나는 병원이나 관공서나 마트나 식당은 문을 다 열고요. 더구나 천주교 성당이나 불교 법당은 다 집회를 하도록 하면서요. 왜 몇몇 교회에 감염이 있었다고 진정으로 코로나19를 치유해야 할 교회만 예배를 못 드리도록 하느냐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기독교를 박해하는 사탄의 계략이요, 말세 마지막 때의 우리의 현실이라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영적 분별력도 없이 거기에 넘어가면 안 된다는 거예요. 심지어 우리 치유하는교회만은 계속해서 예배를 드리니깐요. 강서, 양천지역에서 우리 교회가 주타겟이 되는 거예요.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살아계신 하나님만 바라보며 예배를 드리니깐요. 지난 주일에는 사탄이 더욱 더 극심하게 역사를 해서요. SBS TV에서 또 다시 나와서는 교회 사방에 몰래 카메라를 설치하고 촬영까지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성령님의 역사가 얼마나 놀라운지 아세요? 선임 부목사님이 교회 주위를 돌다가 우연히 그 카메라들을 발견한 거예요. 그래서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 교인들이 안전하게 귀가 할 수 있었어요.


 정말 말세 마지막 때가 되어서요. 사탄이 범죄하는 자들과 함께 우는 사자와 같이 더욱 더 삼킬 자를 찾으려고 달려들어도요.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교회를 영적으로 죽이는 비대면예배에 결코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러자 이러한 우리의 신앙중심을 하나님께서 다 보시고요.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님들과 주의 종들을 다 지켜 주시니깐요. 이렇게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신앙을 끝까지 지키고요. 온전한 예배를 드리고요. 하나님의 성전을 사수할 수가 있었던 거예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성령님의 역사요, 기적적인 승리의 열매였던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 아무리 사탄에게 속은 죄악 된 자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침범하고요. 예배를 가로막고요. 우리의 신앙을 허물어 뜨릴려고 달려들어도요. 우리는 결단코 여호와의 이름을 범죄하며 부르지 말고요. 순결하고 온전하고 충만한 믿음으로 주님만 바라보고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낼 때 기필코 최후의 승리를 거두게 해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김의식 위임목사님의 아버지 장로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머지않아 예외 없이 다 떠나가게 돼요.
<예화: 목사님의 신학동기 목사님께서 보내주신 우리네 인생이라는 글>


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여생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진정한 신앙의 유산은 무엇일까요? 적어도 여호와의 이름을 헛되이 부르지 않고요. 여호와의 이름을 거짓되게 부르지 않고요 여호와의 이름을 범죄하며 부르지 않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않고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여생을 자손 대대로 이어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