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40)            (2020.10.11.)

이렇게 살라(6) 살인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3)


 우리가 ‘이렇게 살라’는 주제로 십계명의 말씀을 함께 나누고 있는데요. 제 1-4계명은 하나님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 제 5-10계명은 사람들을 어떻게 섬길 것인가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오늘 인간관계의 두 번째 계명으로 본문 출애굽기 20:13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살인하지 말라”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말세의 마지막 때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의 경시 풍조가 너무도 극심한 이때에 제 5계명에서는 부모님을 공경하라고 말씀하시고요. 제 6계명에서는 생명을 중시하라고 말씀하시는데요. 하나님께서는 여기 ‘살인한다’는 히브리어가 ‘חצַרָ(라차흐)’라고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것은 단순한 육체적인 생명만 빼앗는 것이 아니라요. 그의 인격과 더 나아가 그가 가진 하나님의 형상까지도 무참히 짓밟는 행위를 의미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불의한 세력을 멸하는 전쟁을 허락하셨고요(민 31:3-4). 불의한 살인을 한 자를 죽이도록 명령하셨지만요(민 35:16-21).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생명이기 때문에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과 요즘 국회에서 법 개정을 앞두고 상당한 저항에 부딪히고 있는 낙태와 자살까지도 막고자 하셨던 거예요.
예화) ‘자살 공화국’ 오명을 쓴 대한민국


그만큼 우리 사회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뿐만 아니라요.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치유의 관심과 돌봄이 약하다 보니깐요. 이 땅의 젊은이들이 삶의 한계를 느낄 때 쉽게 자살을 택하고 마는 현실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항상 구약의 율법의 말씀을 보다 더 구체적으로 보완하시고 완성하면서 말씀하시는데요. 이 시간 이 ‘살인하지 말라’는 제 6계명의 말씀을 산상보훈(마태복음 5-7장) 가운데 마태복음 5:21-26에서 더욱 보강하여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분노하거나 미워해선 안 됨
 먼저 마태복음 5:21-22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십계명 중 제6계명에 “살인하지 말라”(출 20:13, 신 5:17)고 말씀하셨는데요. 당시 살인한 자는 각 성의 7명의 연로하신 장로로 조직된 재판정에서 재판을 하여 사형에 처했어요(출 21:12, 레 24:17, 민 35:30-31, 신 35:30-31). 그런데 인류 최초의 살인자 가인으로부터 모든 살인의 근원은 분노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근원적으로 치유하길 원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강조하시면서요. 마음에서부터 형제에게 분노하는 자마다 재판을 받게 되고요. ‘라가(Raca, 멍청이)’라고 욕하며 마음에 상처를 주면 당시 각 지파에서 6명씩 뽑힌 72명의 제사장, 장로, 서기관, 바리새인들로 구성된 당시 예루살렘의 최고의 법정이었던 공회(συνέδριον, 쉬네드리온)에 잡혀가고요. ‘미련한 놈’이라고 전 인격을 모욕하면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무섭게 경고하셨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리 잘못한 것이 있어도요. 모든 허물을 다 덮어주고요. 용서하고요. 다 지나가요. 그런데 마음 속에 미운 사람이 있으면 별로 잘못한 것이 없는데도요. 다 거슬러 보이고요. 못 마땅하고요. 분노하면서 시비를 걸며 달려들어요. 문제는 우리의 마음이에요. 그런데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을 주님의 사랑의 눈으로 보니깐요. 어떠한 원수도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모든 사람들을 미움의 눈으로 보니깐요.원수는 커녕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입만 열면 매사가 부정적이고 비판적이고요. 험담하고 비방하고요. 죽이려고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니 자신의 속은 속대로 썩어가지요. 육신은 육신대로 병들어가지요. 영혼은 영혼대로 피폐해지고 마니깐요.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러한 사람은 사탄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어서요. 평생 교회를 다녀도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요한일서 3:15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고 분명히 경고하시면서요. 우리의 미움의 마음에서 분노가 터져 나오고요. 분노가 결국에는 살인에 빠지게 하고 말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그 마음을 어떻게 사랑으로 바꾸냐는 거예요? 그래서 요한복음 4:19-20에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고 분명히 강조하시잖아요? 인간의 사랑은 언제든지 식어지고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다가도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사랑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해서요. 그 주님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에요. 성경에서는 항상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강조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때 어떠한 원수라도 사랑하게 되고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한 사람은 결코 진정한 사랑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예화) 강력한 정적이었던 에드윈 스탠턴을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한 에이브러햄 링컨(Abraham Lincoln) 대통령이야기
예화) 초대교회 순교자의 고백


이 얼마나 놀라운 사랑의 승리의 선언입니까?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자만이 이 주님의 사랑을 베풀고 나누며 섬기며    끝까지 인내하며 살아갈 수가 있어요. 그래서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사람들만이 사탄의 어떠한 살인의 마음도 이겨내고요. 더 이상 마음으로부터 분노하거나 미워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 십자가의 사랑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의미있고 보람되고 행복한 여생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어떠한 원수와도 화목해야 함
 계속해서 마태복음 5:23-24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사실 예수님께서 지금 이 산상보훈의 말씀을 하신 곳이 신약의 시내산이라고 불리우는 ‘핫틴산(Horns of Hatin)’으로서요. 갈릴리 지역에 위치했는데요. 갈릴리에서 예루살렘까지 서둘러 가도 사흘 길이었어요. 그래서 갈릴리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까지 너무나도 멀어서 갈려면 큰 마음을 먹어야 했어요. 그리하여 일 년에 절기 때 한두 번 올라가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더욱이 예물도 흠이 없는 짐승으로 드릴려고하니 정성이 이만 저만 드려지는 게 아니었어요.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의 제단 앞에 나아가 제물을 드릴려다가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생각나면요.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사흘 길 걸려 갈릴리로 돌아와서 형제와 화해하고요. 다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가서 예물을 드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렇게 형제와 화목하라고 명령하고 계세요. 왜냐하면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드리는 예배나 예물은 하나님께서 받으시기 때문이었어요. 그 정도로 형제 화목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예배 드리고 오면서요. 부부간에 싸우고요. 부모님과 다투고요. 자식과 언쟁을 하고요.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심지어 주의 종들과 교인들과도 감정을 안 풀고요. 예배 드리고 헌금을 바칠 때가 얼마나 많았어요? 그동안 신앙생활 한 것 다 헛수고를 한 거예요. 그토록 주님께서 우리의 화목을 중시하시고 강조하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우리의 가정이나      교회나 세상 가운데서 얼마나 화목한 삶을 살고 있느냐는 거예요.
예화) OECD통계발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막대한 경제적 손실


특별히 우리는 요즘 이념논쟁으로 인해 불화와 분쟁이 끊이지 않는 세상을 교회가 나서서 화해시키고 화목케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는데요. 이렇게 사랑과 화평의 모범이 되어 분열하고 분쟁하는 세상을 치유해야 할 한국교회가 지금 위기의 시대를 맞이하였어요. 오히려 세상 이상으로 불화와 분쟁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이에요. 말세 마지막 때가 되어서 영적으로 불화할 뿐만 아니라 이념 간에 분쟁이 끊이지 않고 사안별로 갈등을 불러 일으켜서요. 교회마다 불화와 분쟁이 없는 교회가 드물 정도에요. 그리하여 교회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사명인 복음전도와 치유와 양육과 구제와 봉사와 선교는 하나도 하지도 못하고요. 오히려 불화와 분쟁의 소모전만 일삼으면서요. 세상의 걱정이 되고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현실이에요? 더구나 코로나19의 고난으로 직격탄을 맞이하였으니 이 얼마나 더욱 가슴 아픈 현실이에요? 그렇게 불화와 분쟁을 일삼는 자들은 이 땅 위에서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자손들까지도 절대 복을 누리지 못하고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 냉혹한 심판을 면치 못할 일이에요.
예화) 유은정 박사가 쓴「상처받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기」


그러므로 먼저 자신의 상처부터 치유 받고요. 건강한 자존감을 회복하고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치유되고 회복되어야만 우리가 더 이상 불행과 고통의 상처를 받지 않고요. 끝까지 원수라도 사랑하면서요.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고린도후서 5:18-19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 강조하셨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와 화목하게 하셨고요.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과 말씀을 주셨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의 남은 여생이 언제 어디서나 ‘화목하게 하는 자’로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예화) ‘화목하게 하는 자’로 살아온 한 권사님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요.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받았고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받았기 때문에요. 남은 여생 우리의 사랑하는 형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어떠한 원수와도 화목하게 될 때에 우리는 결단코 어떠한 원수도 살인할 수가 없고요. 오히려 모든 사람을 화평케 하는 자의 사명을 잘 감당하며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불쌍히 여기고 용서해야 함
 마지막으로 마태복음 5:25-26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길에 있을 때에 급히 사화하라 그 고발하는 자가 너를 재판관에게 내어 주고 재판관이 옥리에게 내어 주어 옥에 가둘까 염려하라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한 푼이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제단에서 통회자복하고 화해하지 못하면 우리를 고발하는 채권자와 함께 재판정에 끌려갈 때 길에서라도 급히 ‘사화하라’는 거예요. 그런데 이 ‘사화하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유노온(εὐνοῶν)’으로서 분사형으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직역하면 ‘좋은 생각을 가지라’는 뜻이고 ‘좋은 관계를 회복하라’는 의미에요. 즉 고발한 채권자와 화해하라(settle matters)는 거예요. 이 기회마저도 놓치고 화해하지 못하고요. 결국 재판정에 이르러서 처벌을 받아 감옥에 갇히게 되면 어떻게 되겠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본문 처음에 말씀하셨던 “나는 네게 이르노니”보다 더욱 강조하여서요.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시면서요. 여기 나오는 ‘한 푼’은 헬라어로 ‘κοδράντης(코드란테스)’로서 로마 동전의 가장 작은 단위의 돈 즉 당시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1/60로서 과부 두 렙돈에 해당할 정로도 아주 미미한 화폐 가치인데요. 직역을 하면 “부채의 마지막 한 푼이라도 청산하기까지는 감옥에서 나오지 못한다”는 뜻이고요. 의역을 하면 “아주 사소한 일일지라도 형제와 화해하기 전에는 장차 하나님의 심판에서 놓일 길이 없다”고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을 경고하셨던 거예요.


 이처럼 어떠한 관계든지 우리가 화평케 되는 것은 너무도 중대하고요. 절실하고요. 소중한 것인데요. 우리가 이 사실을 너무도 많이 들었고요. 너무도 잘 알고 있으면서도요. 그런데도 왜 우리는 이 화평의 관계를 회복하지 못하느냐면요. 결정적인 장애물이 바로 용서가 안 되는 데 있어요. 그러나 복음의 치유는 한 순간에 철천지 원수와 같았던 관계가 눈 녹듯이 녹고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더 친밀한 사랑의 형제관계를 회복하게 돼요. 세상의 심리치료와 약물치료는 결정적인 치유력이 있는 용서가 빠져 있는데요. 복음의 치유의 핵심에는 이 폭발적인 치유력이 있는 용서가 있었던 거예요. 거기서 우리는 용서의 치유력이 얼마나 놀라운가를 깨닫게 된 거예요. 그런데 에베소서 4:32에 이 용서에 대한 명령과 더불어서 용서의 방법을 가르쳐주고 계세요.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용서를 그토록 강조하신 거예요. 그것도 내 감정으로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어떠한 원수라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의 아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얼마나 처참하게 죽게 하시면서요.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용서하라고 명령하신 거예요. 그렇다면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우리가 용서 못할 원수는 이 땅 위에 없고요. 우리가 치유받지 못할 상처도 없다는 결론이에요. 용서야 말로 모든 상처의 치유와 모든 문제의 화해의 완결판이라는 것을 결단코 잊지 마시고요. 우리의 삶 가운데 체험하여 천국의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갈 수 있길 바랍니다.
예화) 실수한 부목사를 용서한 이야기


여러분, 우리가 살다보면요.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면서요. 이해 못할 문제들이 얼마나 많아요? 더구나 “저 사람만은 용납이 안돼!” 하고요.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함으로 인해서요. 그것이 우리의 가슴 속에 감정의 응어리로 남아서 우리를 괴롭힐 때도 얼마나 많아요? 그 결과 그것이 우리를 괴롭히고 스스로 고통과 불행 가운데 헤어 나오지 못하고요. 결국 끝내 감정을 안 풀고 세상을 떠나서요.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면 이보다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 어디에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18:35에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시잖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생전에 기필코 어떠한 원수라도요. 그들이 왜 저런 성격이고요? 저런 행동을 하고요? 저런 개떡 같은 신앙으로 살고요? 또 죄 없는 나에게 왜 이렇게 상처를 주고요? 불행과 고통에서 못 헤어 나오게 하고요? 평생을 이러한 원한 속에서 살게 하느냐고 원망만 하시면서 결단코 불행과 고통 가운데 인생을 끝내지 마시고요. 이제라도 그들도 지난 날 그의 원수에게서 상처를 받고 치유를 받지 못한 상처의 피해자요, 희생자임을 기억하면서요.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지난 날의 우리의 모든 상처가 치유를 받고요. 우리의 모든 관계가 회복이 되어서요. 이 땅에 사는 동안 남은 여생도 은혜롭고 행복하고 축복되게 살 뿐만 아니라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때에도 주님의 위로와 평강과 상급을 모두 다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이 쓴 「주는 나의 피난처(The Hiding Place)」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주위에도 죽이도록 미운 원수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요?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은 그 십자가의 사랑으로 어떠한 원수라도 더 이상 분노하거나 미워하지 않고요. 그들과 화목할 뿐만 아니라요. 그들이 마음 문을 안 열어도 끝까지 불쌍히 여기고 용서하게 될 때에 우리는 남은 여생 결단코 어떠한 원수도 더 이상 살인하려고 하지 않고요. 지난 날의 상처부터 치유 받고요. 내 자신부터 영적으로 일어설 뿐만 아니라요. 모든 관계가 회복되는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