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복음화(42)            (2020.10.25.)

이렇게 살라(8) 도둑질하지 말라 (출애굽기 20:15)


 우리가 말세 마지막 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위해 십계명의 말씀을 계속해서 나누고 있는데요. 사람들에 대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 제5 계명은 부모 존중, 제6 계명은 생명 존중, 제7 계명은 가정 존중, 제8 계명은 물질 존중에 대해서 말씀하시는데요. 제8 계명인 출애굽기 20:15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여기 ‘도둑질한다’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בנַגָּ(가나브)’란 단어로 기록되어 있는데요. 그 단어의 뜻은 ‘몰래 가져가다’(신 24:7), ‘속이다’(창 31:27)는 등 다양한 뜻을 가지고 있는데요. 한 마디로 말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도둑질하지 않고 살 수 있는가 구약성경의 십계명을 신약성경의 복음의 말씀으로 재해석해 주시는 가운데 이 시간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의 것부터 도둑질하지 말아야 함
  먼저 말라기 3:8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요.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것은 다름 아닌 십일조와 헌금이라는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함으로 저주를 받아서요. 결국 하나님의 복을 다 잃어버렸다고 무섭게 경고하고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다가 갖가지 사고 나서 돈이 새어 나가고요. 병원에다 갖다 바치고요. 법원에다 갖다 바치고요. 세무서에다 갖다 바치고요. 돈은 돈대로 들고요. 고통은 고통대로 당하고요. 이보다 불행한 일이 어디에 있어요? 여러분,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고 소유하고 계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돈이 없으셔서 우리의 십일조와 헌금을 요구하시겠어요? 우리가 하나님의 것을 더 이상 도둑질하지 않고요. 온전한 십일조와 헌금을 드림으로 인해서요. 그 십일조 헌금으로 주님의 일도 힘 있게 이루어 나가시지만요.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 위한 거였어요.


 그래서 말라기 3:10에 계속해서 이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약속하세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여러분,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강조하실 때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세요. 더욱 강조하실 때는 “나 여호와는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말씀하세요. 그런데 가장 강조하실 때는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고 말씀하세요. 그래서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에서는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는 말씀을 19번이나 반복하시며 강조하시면서요. 우리를 일깨워주시고자 하셨던 거예요. 그러므로 지금까지 우리가 아무리 애쓰고 수고해도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복되게 살 수 없기 때문에요. 우리가 그동안 하나님의 진정한 복을 누리지 못하고 살아왔다면요. 이제부터라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십일조를 드려서요.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을 시험해 보라”고 하신 말씀이 여기에 나와 있는 것처럼 하나님을 시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는 하늘 문을 여시고요. 우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부어 주실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과 같은 이단들이나 성경에 대해 무지한 자들은 십일조 헌금은 구약의 율법이니까 지금은 안 지켜도 된다고 해요. 여러분, 우리가 구원 받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아니지만요.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지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에요. 그런데 십일조는 이미 율법 이전, 적어도 율법을 주어지기 600여 년 전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예수님을 상징하는 의의 왕 멜기세덱에게 첫 번째 십일조 헌금을 바친 데서부터 시작되었고요. 그 후 믿음의 조상들인 이삭, 야곱, 모세, 사무엘, 히스기야, 느헤미야, 아모스, 말라기 등 구약성경을 통해 신약시대에 이르기까지 계속되어 왔어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십일조를 바친다고 하면서요. 수입이 적을 때는 온전한 십일조를 곧잘 드려요. 그러나 아파트나 건물을 팔거나 퇴직금이나 큰 목돈이 생겼을 때는 거의 다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마는 거예요. 그래 놓고도 겉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처럼 큰 소리를 쳐요. 다 현대판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인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러한 외식하는 자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하고 7번이나 경고하시면서요. “맹인 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 내고 낙타는 삼키는도다”(마 23:24)고 책망하시고요.


 결론적으로 마태복음 23:23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고 명령하셨어요. 다시 말하면 이것(the latter)도 행하라는 것은 후자에 나오는 율법의 더 중한 바 정의와 긍휼과 믿음으로 행하지만요. 저것(the former)도 버리지 말라고 하신 것은 전자에 나오는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도 버리지 말고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라고 예수님께서도 강조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눅 16:13)고 분명히 경고하셨어요. 우리가 이 땅 위에 살면 얼마나 산다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 가면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더욱이 그렇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 가면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서요. 부자가 된들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결국에는 다 하나님의 심판 받을 일들이 아니에요? 그러한 여생도, 자손도 결코 하나님의 온전하신 복을 누릴 수가 없는 거예요.
예화) 안드리아스 휴브너가 쓴「기독교인이 부자 되는 비결(Presperity, God`s Will for Your Life)」란 책 이야기


  가장 먼저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고 그분만 경외하고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대로 지켜 나가고요.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간절히 간구하면서요. 온전한 십일조부터 철저히 시작하고요. 삶의 순간마다 나누고 베푸는 삶을 살아가면서요. 하나님의 축복이 지연되더라도 결단코 하나님의 축복을 포기하지 않으면요. 누가복음 6:38의 말씀처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축복이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라도 더 이상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함으로 하나님의 복을 잃어버리지 마시고요.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시고요. 말씀이 약속대로 우리에게 복 주시는 이심을 확실히 믿는다면요. 온라인 예배를 본다고 지난 날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했던 것부터 다 토해내고요. 온전한 십일조 생활부터 새롭게 시작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복을 쌓을 것이 없도록 여러분의 여생과 자손들까지도 부어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2. 사람의 것을 도둑질해서는 안 됨
  계속해서 출애굽기 22:1, 4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소나 양을 도둑질하여 잡거나 팔면 그는 소 한 마리에 소 다섯 마리로 갚고 양 한 마리에 양 네 마리로 갚을지니라, 도둑질한 것이 살아 그의 손에 있으면 소나 나귀나 양을 막론하고 갑절을 배상할지니라” 구약의 율법에서는 우리가 남의 물건을 도둑질해서요. 죽였거나 팔았으면 소는 5배, 양은 4배로 갚으라고 해요. 그러나 도둑질한 것이 살아있으면 2배로 배상하라고 엄격하게 명령하신 거예요. 그래서 여리고 세무서장이었던 삭개오가 예수님을 자신의 집에 영접한 후에 누가복음 19:8에서 뭐라고 해요?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삭개오는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을 뿐만 아니라요.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4배나 갚겠다고 했던 거예요. 한 마디로 말하면 삭개오가 예수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물질이 삶의 최우선이었지만요. 예수님을 모시고 나니까 물질이 더 이상 중요한 의미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속여 빼앗은 것은 네 배나 갚아주고요. 그 이상으로 물질을 아까워하지 않고요.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던 거예요. 그리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9)고 칭찬하시면서요. 그가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를 얻을 수 있었던 거예요. 우리도 믿음으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삶의 증거를 보여주어야 할 때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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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의 것을 도둑질한 것을 다 알고 계시기 때문에요. 우리가 돌이키지 않으면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가로막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축복의 장애물이 되어서요.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라도 사람의 것을 도둑질한 것이 있었다면 이자를 계산해서라도 갚아야 하지만요. 정 어려우면 원금이라도 갚아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시고 우리의 여생과 자손들에게까지도 차고 넘치도록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구제의 손길까지 펼쳐야 함
  마지막으로 에베소서 4:28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구약의 율법은 “도둑질하지 말라”고 명령하시고요. “도둑질한 것을 갚으라”는 소극적인 계명이라면요. 신약의 복음은 도둑질한 것을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의 손길을 펼칠 때 비로소 진정으로 도둑질하지 않는 것이라는 적극적인 계명을 강조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우리는 어짜피 빈 손으로 왔다가 빈 손으로 떠나가는 인생인데요. 지금까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베풀어 주셨고요? 얼마나 많은 은혜를 베풀어 주셨고요? 얼마나 많은 축복을 베풀어 주셨고요? 얼마나 많은 행복을 부어주셨느냐는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복음의 빚진 자로서 사도행전 2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성도들의 본을 받아야 해요. 그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서요. 서로 사랑으로 교제하면서요. 성전에서나 집에서나 음식을 나누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떡을 떼었을 뿐만 아니라요. 심지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요.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어요(행 2:42-46). 그러한 신앙의 아름다운 전통이 우리나라의 초대교회에서도 똑같은 일이 일어나서요. 평소에도 물질 아까워하지 않고 헌금하고 구제하였을 뿐만 아니라요. 성전을 지을 때는 다 논 팔고 밭 팔고 집까지 팔아서 지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어떠합니까? 옛날 우리 어렸을 때에 비하면 하나님의 축복으로 엄청나게 잘 먹고 잘 입고 잘 살고요. 더욱이 목사, 장로,  권사, 집사까지 되었다고 하면서도요. 하나님께 헌금하는 것이나 구제하는 데는 얼마나 인색합니까? 없어서 못 바치는 것은 주님도 다 이해하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치고 나누고 베풀며 살라고 그 많은 복을 주셨는데요. 자신과 자손들을 위해서만 다 쓰고요. “주님께서 쓰시겠다!”고 요청하시는데도요. 다 거절해버려요. 여러분, 거기서 하나님의 복은 멈추고 마는 거예요. 더구나 그렇게 쌓아놓고 하나도 못 쓰고 있다가 갑자기 세상 떠나버리면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 25:26, 30)고 심판하실 때 어떻게 되겠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 뜻을 깨닫지 못하고요.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요.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한 어리석은 부자들은 머지않아 어느 날 갑자기 세상 떠났을 때 성경에 나와 있는 이러한 경고가 그대로 그들 앞에 펼쳐질 거예요. 우리는 지금 IMF때보다 비교할 수 없이 더 어렵다는 코로나19의 위기의 때를 살아가고 있어요. 우리 교인들이 장사가 1/10도 안 되고요. 일거리가 없고요. 실직까지 당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당장 끼니 걱정을 하고요. 먹고 살아갈 앞날이 캄캄하고요. 죽고 싶은 심정까지 드는데요.

예화) 나훈아가 부른 ‘테스형’이라는 노래이야기


  그런데 우리가 가난과 굶주림에 시달리고 있는 형제나 이웃의 아픔을 무관심하게 지나치고요. 외면하고요. 아무런 도움도 안 준다면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한 자이고요? 형제의 사랑을 가진 자라고 할 수 있고요? 감히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마태복음 19장에 나오는 부자 청년 관리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하고 예수님께 물으니깐요. “네가 영생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고 하시니깐요. 자신은 십계명을 다 지켰다고 큰 소리를 치니깐요. 예수님께서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하시면서요.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고 하시니깐요. 그가 제물이 많으므로 근심하며 돌아간 부자 청년과 우리가 다를 바가 뭐가 있겠어요? 그래서 새벽마다 코로나19로 고통 당하는 형제나 이웃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요. 요한복음 6장에 나오는 벳새다 광야에서 예수님께서 말씀을 전하시다가요. 해가 저물어서 양식을 구할 수가 없어 모두 다 굶주리고 있을 때인데요. 예수님의 제자인 빌립은 “이 수많은 사람들에게 조금씩 나눠 줘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도 부족할 것이라”고 계산이나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 어린 아이가 도시락으로 가져온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예수님께 바쳐요. 그러자 베드로의 동생인 안드레까지도 “그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이 수많은 사람들의 누구 입에 붙이겠습니까?”하고 우습게 받아들여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감사기도를 드리시고 나서 제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는데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거예요. 남자 어른들만 오천 명이었으니깐요. 여자와 어린이를 포함하면 약 이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배불리 먹고요. 남은 조각만 열두 바구니에 가득 차게 거두었다고 안하요? 이 얼마나 놀라운 오병이어(五餠二漁)의 기적이에요? 이 말씀이 뜨겁게 감동이 되어서요. 다함께 이 어린 아이의 헌신의 믿음을 본받아 행할 때에 이 기적의 축복을 뜨겁게 체험하게 되어서요. 내년까지 계속될 코로나19의 위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가 목돈이 생길 때마다 오병이어 사랑의 헌금을 함께 나누게 될 때에 우리는 어떠한 고난도 기필코 모두 다함께 이겨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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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주님을 위해서나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헌신하고 봉사하고 구제한 것을 살아계신 주님께서 다 기억하시고요. 다 응답해주시고요. 우리의 평생토록 다 갚아 주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지 말고요. 사람의 것도 도둑질하지 말고요. 오히려 구제의 손길을 펼칠 때 만복의 근원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여생과 자손 대대로 천 배나 만 배나 차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고 부어 주시고 갚아 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