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복음화(47)
이렇게 성막을 만들라 (출애굽기 26:1-15)

                                                                                         

 우리는 오늘부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을 축하하며 다시 오시는 재림을 대비하는 구주강림절(대강절, 대림절)이 시작돼요. 우리가 주님의 초림을 기념하며 재림을 대비하는 구주강림절을 시작하면서요. 코로나19 이후 우리의 신앙생활에 치명상을 입히는 예배가 무너지고요. 교회가 타격을 받고 있는 현실 가운데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고 계세요. 우리는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인한 언택트(Untact)시대에 비대면(On-line)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그것은 다 비성경적이고 인본주의적이고 세속적인 신앙에서 나오는 편의주의식 주장이에요. 우리가 율법서인 신명기에서만 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를 드릴 때 택하신 곳에서 드리라고 17번이나 강조하셨어요(신 12:5, 21, 26, 14:23, 24, 25, 15:20, 16:2, 6, 7, 11, 15, 16, 17:10, 18:6, 26:2, 31:11).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 세상 애굽에서 출애굽 할 때에 성막을 만들라고 명령하셨고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를 함으로 포로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회막을 중심으로 모이도록 하셨고요. 왕정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 성전을 짓도록 하셨고요. 신약시대에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를 허락해 주시고요. 말세의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발생하게 될 텐데요(눅 21:11). 그러한 교회생활이 어려운 때일수록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히 10:25)고 강권하셨던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가 신약시대의 교회의 그림자인 하나님의 성막(교회)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하나님을 철저히 경외해야 함(1절)
 여기 ‘성막’이란 히브리어로 ‘ןכָּ֥שְׁמִּהַ(함미쉬칸)’이라고 해서요. 원래는 ‘거처(the dwelling)’라는 의미인데요. ‘하나님께서 임재하셔서 거하시는 곳’이라는 뜻이에요. 이를 영어로 ‘Tabernacle(이동식 예배소)’라고 하는데요.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40년 동안과 그 이후 가나안 정착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동이 따랐기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이러한 성막을 만들 때 가늘게 꼰 베실과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을 정교하게 수놓으라고 하셨는데요. 여기 ‘그룹’이라고 하는 것은 ‘모임(group)’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요. 히브리어로 ‘םיבִרכְּ(케루빔)’으로서 ‘천사들’이란 뜻이에요. 이것은 실제 천사가 아닌 ‘천사의 모형’을 가르키는데요. 휘장은 성막 본채를 덮는 네 개의 천막 가운데 제일 안쪽을 덮었기 때문에 성소를 출입하는 제사장들의 눈에 띄었을 거예요. 그리하여 아름다운 색실로 수놓아진 천사의 모습을 드나드는 제사장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경외심을 더하게 하고자 했던 거예요. 그래서 가장 먼저 성막을 정교하게 수놓은 천사 모양의 열폭의 휘장으로 만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철저하게 가지도록 명령하신 거예요.
예화) 캐톨릭교회나 WCC(세계교회협의회)의 비복음적인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 성경적 복음주의를 따르고 순종해야 함을 강조한
      위임목사님의 목회적 방향성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는 이 두려운 코로나19의 위기의 시대에 비대면 예배를 드린다고 하면서 하나님과 대면하지 않으면 결단코 안 되는 거예요. 어렵고 힘들수록 하나님과 언제 어디서나 대면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하고요. 특별히 하나님의 임재와 살아계신 역사를 체험하는 예배를 통해 더욱 더 하나님과 대면을 함으로써 영육 간에 새 힘을 얻고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으로 살아가야 하는 거예요. 여러분, 시대는 변하고 신학도 변하고 예배 형태도 변할 수 있지만요. 하나님의 진리는 결단코 변치 않고요. 복음도 변치 않고요. 우리의 신앙도 변치 않아야 하는 거예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살아계시기 때문에 그들의 일생을 통해 선악간에 다 심판하시고요. 죽음 후에 영원히 심판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히 믿고요. 더욱 더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교회생활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지혜서인 잠언 1:7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고 경고하시는데요. 여기 나오는 ‘경외한다’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תאַרְיִ(이르아트)’로서요. ‘두려워하며 떨림으로 섬긴다(fear)’는 의미가 있어요. 다시 말하면 여호와를 두렵고 떨림으로 섬기는 믿음이 지식의 근본인데요. 미련한 자는 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는 거예요. 그러나 잠언 3:13-15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고 분명히 강조하셨던 거예요.
예화) 목민교회의 개척당시부터 신앙의 모범을 보이며 김동엽 원로목사님을 도와 목민교회의 부흥과 사명을 위해 헌신하셨던
      김승태 장로님의 이야기


2. 사랑으로 하나 되어 교제해야 함(3절)
 휘장의 매 폭의 길이를 28규빗(12.6m) 너비는 4규빗(1.8m)로 각 폭의 장단을 같게 하고요. 그 휘장의 다섯 폭은 서로 연결하고요. 다른 다섯 폭도 서로 연결하였어요. 그래서 모든 휘장을 서로 ‘연결하였다’는 단어가 본문 가운데에만 해도 6번이나 기록 되어 있어요. 다시 말하면 성막은 서로 연결되어 하나 된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우리의 교회생활도 마찬가지에요. 주의 종들이나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이나 청년들이나 어린 학생들까지도 서로 십자가의 사랑으로 다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주님 안에서 한 마음 한 뜻으로 사랑으로 교제하고요. 하나 된 힘으로 복음도 전하고요. 영육 간에 치유도 하고요. 주님의 제자로 양육도 하고요.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도 전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탄은 우리 사이를 어떻게 해서든지 갈라놓기 위해서요. 오해도 하게 하고요. 험담도 하게 하고요. 거짓으로 비방도 하게 해서요. 어떻게 해서든지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해요. 그래서 말세의 마지막 때 우리는 에베소서 4:2-3 말씀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돼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그런데도 왜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우리가 하나 됨을 지켜 나가지 못하고요. 말세의 마지막 때 교회마다 사탄에게 속아서요. 정작 해야 할 주의 일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요. 오히려 평생토록 불화와 분쟁의 소모전만 하다가 일생을 끝내는지 아세요? 다 자기가 다 된 줄로 착각하고요. 교만에 빠져서요. 자기는 하나님의 의를 내세우고요. 교회를 바로 잡고요. 목사님을 위해서 그런다고 말로 그러면서요. 사탄의 도구로 다 이용 당하고 말기 때문이에요. 사탄이 아무리 우리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끊임없이 역사해도요. 주님의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님께서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켜 나가야 하는 거예요.
예화) 몸이 아파 걷지 못하는 남편 오광언 안수집사님을 40년 동안 마곡에서 새벽기도를 나올 수 있도록 섬긴 목민교회 권사님 이야기


3. 십자가를 함께 지고 나아가야 함(15절)
 이렇게 성막의 휘장을 다 만든 다음에 골조를 만드는데요. 조각목을 사용한 것을 주목해야 해요. 여기 나오는 ‘조각목’은 히브리어로 ‘םיטשׁ(쉿팀)’이라고 하는데요. 조각목은 주로 시내 반도에 많이 서식했는데요. 쉽게 말하면 가시나무였던 거예요. 가볍지만 내구성이 강하여서 광야의 낮의 뜨거운 열기와 밤의 찬바람도 잘 견뎌내었어요. 그래서 이 조각목으로 성막의 골조뿐만 아니라요. 법궤, 분향단, 진설병단, 번제단까지도 모두 만들었던 거예요. 이 조각목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상징하는 거였어요. 다시 말하면 우리도 주님과 함께 고난의 십자가를 지고 나아가야 할 것을 영적으로 보여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교회생활은 어떠합니까? 복되고 형통할 때는 신앙생활을 잘 해요. 그런데 육신적으로 병이 들거나요.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거나요. 마음에 큰 상처를 받거나요. 낙심되고 시험 드는 일이 생기고요. 코로나19로 온 세상이 두려움에 빠지고요. 고난의 세월이 오래 계속 되니깐요. 언제 신앙생활을 했느냐는듯이 교회를 떠나가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어렵고 힘들수록 주님 앞에 나아와 예배드리고요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코로나19를 물리쳐 주시고요. 또 경제적 위기도 오병이어 사랑의 나눔을 통해 함께 이겨내야 해요.
예화) 많은 확진자가 발생한 화곡동 에어로빅 학원에서도 기적적으로 확진이 아닌 음성이 된 판명된 치유하는교회 성도 이야기


 여러분,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이 강권해서 신앙생활을 시작했고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만 해도 주님의 은혜가 아닐 수 없고요. 앞으로 살아나갈 모든 여생도 주님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에요. 우리는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코로나와 함께)가 아니라요.
위드 예수 그리스도(With Jesus Christ,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위드 성령님(With the Holy Spirit, 성령님과 함께)’, ‘위드 십자가(With the Cross, 십자가와 함께)’가 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마태복음 16:24 말씀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해요.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우리가 주님 뒤를 따른다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요.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요. 주님의 뒤를 쫓아 나아가야 해요. 그리하면 언젠가는 부활의 영광을 누릴 날이 꼭 다가오게 되는 거예요.
예화) 친척의 보증을 잘못서는 바람에 급작스런 경제적 어려움에도 신앙의 열심으로 회복하게 된 목민교회 황인복 안수집사님 이야기


 사실 우리 치유하는교회 안에도 이렇게 신실하시고 일생을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말도 없이 헌신, 봉사, 충성을 다하시는 장로님들이나 권사님들이나 집사님들이나 성도님들이나 주의 종들이 얼마나 많이 있어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다 기억하시고요. 우리의 여생과 자녀 손들에 이르기까지 이 땅의 복과 하늘의 상으로 천 배나 만 배나 차고 넘치도록 다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양쪽 다리를 끌고 다니실 정도로 관절염에 시달리며 기도하고 심방하셨던 목민교회 김동엽 원로목사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한 교회에서 평생을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러나 우리가 평생토록 교회생활을 해나갈 때 하나님만 철저히 경외하고요. 사랑으로 하나 되어 교제하면서요. 십자가를 함께 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인생의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고요. 부활의 영광 가운데 최후의 승리를 거두면서요. 주님의 성탄을 맞이하며 주님의 재림을 예비하는 아름답고 복된 성도님들과 주의 종들이 모두 다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