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복음화(51) 

성탄의 3대 축복 (민수기 6:22-26)
                                                            

 
오늘은 구주강림절 넷째 주일이면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성탄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성탄주일이에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죄 없으신 아들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은 우리에게 3가지 축복을 주시기 위한 거였어요. 그렇다면 이 시간도 우리가 매 주일 낮예배의 마지막에 받는 구약성경을 대표하는 아론의 축복기도 가운데 나타난 예수님의 성탄의 3대 축복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육신의 축복을 주시기 위함
본문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출애굽의 영도자인 모세에게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인 제사장들에게 다음과 같이 축복을 하라고 명령하세요. 그 첫 번째 축복은 하나님께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가장 먼저 육신의 축복을 주시길 원하신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의 육신의 축복이 없이는 이 땅 위에서 생존해 나갈 수 없기 때문에 가장 먼저 이 육신의 축복을 주신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 이 육신의 축복을 내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시고요.


에베소서 1:3에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습니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신다고 분명히 약속하고 계세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구세주)가 되셔서 이 땅에 오시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어떻게 그 복을 누릴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 우리가 왜 이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가 하는 거예요? 근본적인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지를 않아요.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해 버리는 거예요. 우리는 온라인으로 예배를 보면서 감동을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예배는 우리가 만족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해요. 하나님의 말씀 신명기에서만 해도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오늘의 교회)에서 온전한 예배를 드리라고 17번이나 강조하셨다고 말씀 드리는데도요.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나는 내가 믿는 내 신앙의 주관대로 산다는 거예요. 그것은 엄밀한 의미에서 자기 만족을 구하는 종교생활이지,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도 아니고 신앙생활도 아닌 거예요. 그래서 온라인 예배를 고집하다가 유럽교회가 이미 먼저 죽었고요. 미국 교회가 지금 죽어가고 있고요. 이번 코로나19로 인해 한국교회가 침체의 큰 시험에 빠지고 만 거예요.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믿음으로 순종하는데도 하나님의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데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는데요. 그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때까지 조금 더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데 있어요. 그래서 히브리서 6:13-15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통해서 증거하셨듯이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습니까? 중요한 사실은 아브라함이 그냥 믿음의 조상이 되어 복을 누린 것이 아니라요. 오래 참고 기다리는 가운데 축복의 약속을 받았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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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그 축복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고요. 하나님께서 축복을 내려주실 때까지 끝까지 인내하면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사명에 충성을 다하면 머지않아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육신의 축복을 자손 대대로 모두 다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영혼의 은혜도 베풀어 주시기 위함
본문 25절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일용할 양식을 포함한 육신의 축복만 주신 것이 아니라 영혼의 은혜도 베풀어 주시길 원하세요. 왜냐하면 우리 인간은 육신의 축복만으로 살 수 없는 영혼의 갈급함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 영혼의 갈급함이 채워지지 않으면 세상 그 무엇으로도 우리는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영혼의 은혜도 베풀어 주시길 원하셨어요. 그래서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의 성탄을 통해서 이 땅에 나타나신 거예요. 그리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을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육신의 몸으로 이 땅에 보내주시고요.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영원히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지만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로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된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서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 안에서 모두 다 구원 받을 수 있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는 구원에 이르게 하신 거예요.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성탄의 가장 큰 하나님의 선물인 거예요. 우리를 영원한 죄악과 상처와 질병으로부터 구원하신 이보다 더 큰 은혜가 세상 어디에 있어요? 그런데 우리는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결코 불가능하지만요. 지금까지 살아온 모든 것도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었던 거예요. 우리는 지난 날 우리가 이룬 것을 자랑하지만요. 주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는 아무 것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깨달아야 해요. 그래서 바울 사도도 고린도전서 15: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늘 강조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도,  건강한 것도,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 것도,  이렇게 은혜롭고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것도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였던 거예요.
예화)장로교회 창시자 존 캘빈(John Calvin)튤립교리(The Five Points of Calvinism: Tulip)교리


이 모든 교리를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의 은혜’였어요. 마지막 유언으로 그를 드러내는 묘비도 세우지 말라고 할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잊을 수가 없었고요. 결국 제자들은 그를 잊을 수가 없어 그의 이름 John Calvin의 약자인 ‘J.C’만 새겨 놓았지만요. 마치 Jesus Christ(예수 그리스도)의 약자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더욱 드러나 보였던 거예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지금까지 주님의 사명을 받아 복되게 살아온 것도 다 하나님의 은혜였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거절하지 않고 믿음으로만 받아들이면 하나님의 구원의 선물을 받고요. 영생에 이르게 될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평생토록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 가운데 복 되게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마음의 평강도 주시기 위함
본문 26절“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육신의 축복을 받고요. 영혼의 은혜도 받았으면서도요. 마음의 평강을 잃어버리면요. 그것은 진정한 축복도, 은혜도 아닌 거예요. 하나님의 축복과 은혜는 우리의 마음의 평강을 통해서 결론 지어지는데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탄생하시기 700여 년 전에 이사야 9:6에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고 예언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고 우리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자마다 그의 영원한 평강 가운데 살아가길 원하세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시고 우리에게 평강을 주셨는데 그 평강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가장 먼저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십자가의 용서의 사랑을 체험했다면 에베소서 4:31-32에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고 명령하셨듯이 가장 먼저 어떠한 상처의 감정도 주님의 십자가 앞에 다 쏟아 붓고 우리의 빈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해서 주님의 사랑으로 원수라도 친절하게 대하고 불쌍히 여기고 내 상처의 감정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우리를 용서해 주셨듯이 다 용서하게 되는 거예요. 그 순간 우리의 지난 날의 상처의 불행과 고통이 다 사라지고 주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 속에 임하게 되는 것을 분명히 체험하게 될 거예요. 더 나아가 우리가 주님의 평강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 요한복음 14:27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고 명령하시는데 우리의 삶의 모든 문제들조차도 주님께 온전히 맡기지 못하고 근심하고 또한 갖가지 삶을 위협하는 것들을 두려워하기 때문에요. 우리가 주님의 평강을 잃어버리고 만다는 거예요. 우리가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시 91:7)는 약속의 말씀을 확실히 믿고 하나님만 두려워하고 코로나19도, 세상의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일어서길 바랍니다. 우리가 모든 원수들도 하나님의 심판에 다 맡기고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셨듯이 다 용서하고 아무런 근심도 하지 말고 두려워하지도 않으면 주님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날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서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밖에 없는 거예요.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조차도 다 주님께 맡길 때에 주님께서 우리의 염려를 다 맡아주시고 우리의 삶 가운데 역사하셔서 주님의 평강으로 기적적으로 우리의 앞길을 열어주시고 크게 복을 주시고 귀하게 쓰시고요. 놀랍게 영광 거두어 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CBS TV의 ‘김동호의 기막힌 초대’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말레이시아 박철현 선교사님의 이야기성경


김 선교사님은 그 기적의 투병생활을 통해서 뜨겁게 체험한 찬양-“약할 때 강함 되시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삶 가운데에도 얼마나 끊임없이 불행이 닥쳐오고 고통을 느끼고 앞이 캄캄한 눈물이 흘러내릴 때가 많았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예수님을 통해서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 모든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육신의 축복과 영혼의 은혜와 마음의 평강을 부어주셨어요. 바로 이 예수님의 성탄의 3대 축복이 여러분의 심령과  가족과 기업과 온 교회와 우리 나라와 민족과  열방 가운데 충만하시길 주님의 이름 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