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17) (2021. 4. 25 부활절 네 번째주일, 군선교주일, 노동주일)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라/ 여호수아 17:14-18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의 정복전쟁을 다 마친 후에 드디어 가나안 땅을 분배하게 돼요. 그런데 요셉의 자손인 장남 므낫세와 차남 에브라임 지파가 두 지파인데 한 분깃(지역)만 준 것에 불만을 품고요. 여호수아에게 더 큰 분깃을 줄 것을 요구하는데요. 여호수아는 그들이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갈 것을 명령하는데요. 우리도 코로나19의 이 어려운 때 어떻게 스스로 인생을 개척하며 살아갈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음(14)
여호수아 17:14 “요셉 자손이 여호수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크게) 주시므로 내가 큰 민족이 되었거늘 당신이 나의 기업을 위하여 한 제비, 한 분깃으로만 내게 주심은 어찌함이니이까 하니”


요셉 자손들인 므낫세와 에브라임 지파는 사실상 강성한 큰 민족이 되었어요. 그런데 이 두 지파는 우리가 두 지파인데 왜 한 분깃만 주느냐고 여호수아에게 항의를 한 거예요. 그러나 그것은 요셉 자손들의 잘못된 착각이었어요. 그들은 원래 12지파 중 하나인 요셉 지파, 한 지파였고요. 그들의 땅은 한 분깃이지만 유다 지파 다음으로 광활한 땅이었어요. 더욱이 므낫세 반지파는 요단 동편에서도 역시 넓은 땅을 차지했지 않아요? 적어도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분배할 때는 지파의 인원 수를 우선으로 하였고요. 또 제비를 뽑아서 분배했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반발할 수가 없었는데요(민 26:53-56). 우리는 여기 요셉 자손들의 요구들을 들으면서 더 가진 자가 오히려 더 불평하는 인간적인 욕심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러나 요셉 자손 스스로도 “여호와께서 지금까지 내게 복을 주시므로......”라고 고백하고 있어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요셉 자손들에게 큰 축복을 주셨다는 것을 인정한 거예요. 이것이 요셉 자손들이 스스로 개척을 할 수 있는 첫 번째 근거가 되었던 거예요. 우리는 사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의 축복을 너무도 많이 받았어요. 우리가 갖가지 질병이나 사고로부터 살아있는 것부터가 감사하지요. 건강한 것도 감사하지요. 암에 안 걸린 것도 감사하지만요. 암에 걸렸더라도 살아있는 것이 감사하지요. 지금까지 물질의 필요를 채워주심도 감사하지요. 더 나아가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요. 치유해 주시고요. 이 은혜롭고 행복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해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합니까?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이렇게 큰 복을 받았는데요. 우리의 신앙생활의 축복의 근본적인 문제는 주님의 이 큰 축복에 대한 감사를 잊고 살아서요. 스스로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더 큰 축복만 기대하고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낙심하고요. 주님께 대한 신앙까지 흔들릴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를 향해서 히브리서 6:13-15에 분명히 약속하시잖아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실 때에 가리켜 맹세할 자가 자기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에게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하게 하고 번성하게 하리라 하셨더니 그가 이같이 오래 참아 약속을 받았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요. 그 축복을 기대하고요. 끝까지 인내하며 간구해야 해요.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분명히 분별해야 할 것은 복을 구하는 것이 기복신앙이 아니라요. 자기 자신이나 자식들에게 다 물려주기 위해 복을 구하는 것이 기복신앙인 거예요. 그러나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들을 위해 복을 구하는 것은 복음신앙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들을 위해 하나님의 축복을 간구해야 하고요. 그 축복이 임할 때까지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응답의 때를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해요. 그런데 말세 마지막 때 대부분의 교인들이 자신만 잘 먹고 잘 살고 자식들만 잘 되기를 바라니까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는 거고요. 결국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그 큰 복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마는 거예요. 그것이 지난 날의 우리의 축복의 한계였던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치고 나누며 베풀며 살아갈 때 누가복음 6:38의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   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는 약속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문제는 이 말씀을 너무도 많이 듣고 잘 알지만요. 이 축복의 약속을 믿지 않고요. 형제나 이웃을 위한 나눔을 행하지 않으니깐요.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 주시는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거예요. 이것이 지난 날의 우리의 신앙생활의 축복의 한계였던 거예요.
예화) ‘왕의 재정학교’의 김미진 간사「왕의 재정」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아서 우리가 복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고요. 이미 우리에게 큰 복을 주시기 시작하셨고요.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리 험난한 우리의 인생이라도 지금까지 우리가 받은 이 큰 축복을 주님과 고통 당하는 형제와 이웃을 위해 사용하면서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그 큰 축복을 계속해서 부어주셔서요. 우리의 여생을 더욱 복 되게 하시고요. 더욱 귀하게 쓰시고요. 더욱 크게 영광 거둬 주실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큰 민족이 되게 하셨음(15)
수 17: 15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이르되 네가 큰 민족이 되므로 에브라임 산지가 네게 너무 좁을 진대 브리스 족속과 르바임 족속의 땅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 하니라”


요셉 자손들의 불만에 대해서 여호수아는 요단강 서편의 브리스 족속(3:10, 9:1, 11:3, 12:8)과 요단강 동편의 르바임 족속(신 3:11, 13, 수 12:4, 13:12)의 땅인 산 중의 삼림에 올라가서 스스로 개척하라고 해요. 다시 말하면 “너희들이 분배 받은 땅에 있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베어내고 새롭게 경작할 땅을 개간하라”는 의미였던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요셉 자손들이 큰 민족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는 산중에 들어가서 스스로 개척해서 토지를 확보해 나가라는 거였어요. 여러분, 우리도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고 한 가족이 되었기 때문에요. 사실 엄밀한 의미로 보면 우리 교회 안에서뿐만 아니라요. 전 세계적으로는 영적인 큰 민족을 이룬 거예요. 그런데 많은 때 우리가 왜 외로워 하고요? 왜소해 하고요? 낙심하고 좌절합니까? 나는 혼자이고요. 보잘 것 없고요. 되는 일도 없고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착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리하여 현대인의 ‘마음의 감기’라는 우울증에 걸려서요. 급기에 너무도 외롭고 힘들고 앞이 안 보이고 불행과 고통 속에 사느니 차라리 자살해 버리자는 자살충동에 빠져서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이 땅 위에 얼마나 많아요? 그래서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우리나라가 자살률은 OECD 37개 국가 중 최고의 나라라는 오명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거예요.
예화) 치유상담대학원대학교 총장이신 정태기 목사님이 쓰신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마태복음 23:8에 “그러나 너희는 랍비라 칭함을 받지 말라 너희 선생은 하나요 너희는 다 형제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시지 않으세요? 저는 그래서 목회자 사이에도 형제의 관계가 되어야 진정한 동역이 된다고 믿어져서요. 맏형으로서 부목사님들에게 영적으로 모범이 되어서요. 가르칠려고 힘을 써요. 여러분,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신앙생활의 교제의 결정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아세요? 우리 개인이나 교회나 노회, 총회나 한국교회나 진정한 형제의식이 없고요. 각자 다 잘 나서요. 따로 노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 안에서 하나 된 성도의 교제도 없고요. 행복의 감격도 없고요. 하나 된 힘의 역사도 못 일으키는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가 형제의 사랑을 못 느끼고요. 라이벌 의식이 있거나요. 심지어 원수관계가 되어버리면요. 둘 중 하나는 진정한 신자가 아닌 거예요.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을 버리지 못하고 자신의 육신을 위해 사는 사람은 이미 사탄에게 넘어간 사람들인 거예요. 그래서 물과 기름이 합해질 수 없듯이요. 그런 사람들과는 절대 합해질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 사람은 새롭게 회개하고요.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고요. 천국의 온전한 축복과 행복의 감격을 누리며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시편 133:1-3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בוֹט, 토브, good, 좋고) 아름다운고(םיעִנָ, 나임, pleasant, 즐거운가)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증거한 거예요. 우리가 주님 안에서 한 형제가 되었을 때 진정으로 좋고 즐거운 교제를 하게 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갈등과 불화만 겪다가 떠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보배로운 기름 곧 성령의 능력을 체험해야 하고요. 헐몬의 이슬 곧 말씀의 은혜를 경험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야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한 형제로서의 하나님의 복을 누리면서 영생에 이르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주님 안에서 거듭나서 큰 민족을 이루게 되어서요.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리 험난한 우리의 인생이라도 주님의 말씀의 은혜와 성령님의 능력 가운데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때 우리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영생에 이르는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께서 큰 권능을 주셨음(17-18)
여호수아 17:17-18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여호수아는 큰 권능을 받았기 때문에 땅이 비록 좁다 할지라도 삼림지대를 개척하면 넓은 땅이 될 것이고요.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아무리 강하다고 할지라도 능히 그들을 쫓아내리라고 격려하면서요. 스스로 삼림을 개척하라고 명령하세요. 그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사도행전 1:8에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의 말씀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 우리가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게 될 때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는데요. 그 성령님은 권능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성령님을 모시면 우리도 권능을 받았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주님께서 부어주신 성령님의 그 큰 권능을 왜 활용하지 못하느냐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의 일생을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가는 죄악과 상처와 질병의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거예요.
예화) 서울대 오세정 총장님과 KAIST 이광형 총장님의 “한국은 왜 미국처럼 백신을 직접 못 만드나”라는 제목의 좌담
예화) 김동희 기자가 쓴 「미국 엄마의 힘」


우리가 하나님의 권능이 주어짐을 믿을진데 더 이상 미국이나 유럽에서 백신을 구할려고 그렇게 힘들여 백신전쟁을 할 필요도 없고요. 외국 백신 못 믿어서 안 맞겠다고 할 필요도 없어요. 세계 10위 경제대국인 우리나라가 하나님의 권능에 힘입어 백신을 못 만들 이유가 어디에 있느냐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성령님의 기적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 늘 강조하지만 다른 길이 없어요. 마태복음 17:20-21에 “이르시되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 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고 강조하신 거예요.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성령님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 세 가지 단어를 주목해야 해요. 그것은 ‘믿음’과 ‘기도’와 ‘금식’이란 단어에요.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대신 지심을 확실히 믿고요. 주님의 십자가 앞에 우리의 죄악과 상처와 질병을 다 내려놓고요.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확신하고요. 믿음으로 기도하고요. 기도해서 안 되면 금식하며 매어달려야 하는 거예요.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한다고 분명히 약속하세요. 여러분, 어떠한 삶의 위기 속에서도 기도와 금식으로 끝까지 매어달릴 때 기적적인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끊임없이 일생토록 함께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성령님께서 기적적으로 큰 권능으로 역사하셔서요. 우리를 치유하시고요. 회복시켜 주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리 험난한 우리의 인생이라도 성령님께서 부어주신 큰 권능을 확실히 믿고 기도하고 금식함으로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 나갈 때 우리는 성령님의 권능 가운데 기적적인 역사를 일으키며 살아계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조혜련 집사님의 간증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고난이 없는 인생이 없고요. 실패가 없는 인생도 없고요. 불행이 없는 인생도 없어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축복을 주셨고요. 하나님께서 큰 민족이 되게 하셨고요. 하나님께서 큰 권능을 주셨음을 확실히 믿을 때 우리는 코로나19로 인해 아무리 험난한 인생이라 할지라도 능히 스스로 주님 안에서의 인생을 새롭게 개척하며 승리하며 영광 돌리는 복된 여생을 모두 다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