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21)-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사사기 2:11-17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나라로 올라가신 후 약속하신대로 이 땅 위에 성령님을 보내주신 성령강림주일이에요. 지난 날 초대교회와 같이 우리도 불신앙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게 될 때에 성령님이 임하시게 되는데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에도 고난이 끊이지 않지만요. 많은 때 우리가 성령님으로 충만하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하나님의 교회까지 얼마나 많은 고난을 겪어야 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에도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 인도했던 신앙의 여호수아와 그 시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고요. 그들의 자손인 새로운 세대가 신앙을 떠남으로 인해 고난이 시작돼요. 그리하여 사사기에 계속해서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난을 보면서 우리도 앞으로의 고난을 어떻게 미리 대비하며 계속되는 인생의 고난까지도 이겨낼 것인가 오늘 성령강림주일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랍니다.


1. 하나님의 품을 떠나 범죄하지 말아야 함
 먼저 본문 11-1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들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의 주위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따라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조상을 애굽 땅에서의 430년에 이르는 그 엄청나게 길고 긴 고통의 종살이에서 해방시켜주신 여호와의 사랑과 은혜를 저버리고요. 하나님의 품을 떠나서요. 심지어 여호와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여 바알 신들을 섬겼어요. 여기 ‘바알들’ 즉 히브리어로 ‘םילִֽעָבְּהַ(합베알림)’이라고 하는데요. ‘주인’ 또는 ‘남편’이라는 뜻인데요. 바알은 가나안과 베니게의 주신(主神)이고 최고의 남신(男神)이었고요. 농사와 풍요의 신이었어요. 가나안 땅의 지형과 메마른 기후가 이런 바알신의 숭배를 흥왕케 했던 거예요. 여기에 복수형을 쓴 것은 바알종교의 혼합성을 말하는 거예요.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스다롯 신들도 섬겼는데요. 여기 아스다롯도 히브리어로 ‘תרֶתֹּשְׁעַ(아쉬타로트)’라고 해서요. ‘여주인’ 또는 ‘아내’라는 뜻으로서요. 풍요와 번식의 신이었는데요. 베니게와 앗수르와 바벨론의 최고의 여신(女神)이었어요. 아스다롯은 항상 바알과 함께 하면서요. 그들의 성적 행위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도덕적으로 크게 문란케 하였어요. 여기 아스다롯도 ‘복수형’으로 쓴 것은 역시 혼합종교로 타락하였음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러한 세속종교의 쾌감에 빠져들어서요. 바알 신들과 아스다롯 신들에게 절하며 우상숭배를 함으로써 하나님을 크게 진노하게 하였던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에도 눈에 보이는 이러한 유형 우상을 만들어 섬기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무형 우상들이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이 있어요? 결국 이러한 것들이 우리의 신앙생활을 멸망의 길로 끌고 가는 거예요. 그런데도 지난 주간에도 LH(한국토지주택공사) 간부가 아파트 투기로 걸려들고요. 역세권 투기를 한 강원도 양구군 간부 공무원들과 제21 사단장에 이르기까지 수사에 들어갔고요. 관세청 산하 관세평가분류원 등 세종시로 이전한 공무원들이 청사 신축 및 아파트 특별공급을 통해 시세 차액을 몇 배나 얻었는데요. 이에 대해 취소 가능 등 위법 행위에 대한 법적 조치를 하라고 했다고 하잖아요? 언제까지 이렇게 세상 욕심에 빠져 살다가 인생을 망쳐야 하겠어요? 먹고 살며 주의 일을 하면 됐지 그렇게 쌓아 놓아서 무얼 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골로새서 3:5에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고 명령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가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에 대해서 날마다 순간마다 십자가에 못 박으며 죽어져야 하고요. 이러한 욕심과 욕망을 철저히 부인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이러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나 물질이나 명예가 결국에는 우리의 신앙을 흔들어 놓고요. 큰 시험에 빠져서요. 하나님의 은혜가 메마르기 시작하고요. 축복이 사라져 가고요. 행복을 다 잃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도서:「감사해요 하나님(Thanking God)」,로버트 T. 켄달(Robert Tillman Kendall)>


 우리의 성령 충만의 증거(엡 5:18)로 찬송의 기쁨(엡 5:19)과 감사의 행복(엡 5:20)과 복종의 섬김(엡 5:21)이 있는데요. 감사는 가장 확실한 성령의 능력이며 성령 충만의 증거라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천국 백성으로 살게 하는 한 마디 고백이 있다면 “감사해요! 하나님”(Thanks, God)인데요. 말세 마지막 때가 되어서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갖게 해서요. 현실에 결코 감사하지 못하고 만족하지 못하고 행복하지 못하게 만들어서요. 입만 열면 불평과 원망만 가득하고요. 험담과 비방만 가득한 지옥과 같은 삶을 살게 하는 거예요. 그 결과는 하나님의 영광만 가리우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인생을 끝내버리고 마니 이 얼마나 불행하고 불쌍한 인생이에요?
<예화: 2021년도 치유하는교회 임직자 선거>


 이제 남은 여생이라도 우리가 이러한 열심으로 성경 말씀을 받아야 하고요. 기도에 힘써야 하고요. 헌신적으로 헌금하고요. 구제하고요. 봉사하고요. 전도하고요. 선교하면서 살아보세요.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요. 은혜 베풀어 주시고요. 축복 내려주시고요. 행복의 감격 속에 마지막 때 사명을 감당하며 영광 돌리겠어요? 그러므로 이렇게 장로 되려고 육신적으로 열을 내는 사람들은 절대로 뽑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우리 치유하는교회가 20여 년 전 당회가 병들고 썩어서 10년 동안 그 큰 전쟁을 치러놓고도 또 다시 과거로 돌아갈려고 그러세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 말세 마지막 때 사사시대나 다를 것이 뭐가 있겠어요? 장로가 세상 명예나 감투입니까?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모든 것 다 바치고 십자가 지고 죽을 각오로 헌신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목숨 걸고 주님과 고통당하는 이웃을 위해 헌신할 각오가 되어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세요. 위임목사로서 그런 분들은 장로 되도록 힘껏 도와드릴게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라도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 않고 사탄이나 기뻐할 기복주의, 인본주의, 세속주의의 바벨탑을 쌓으면서요. 세속의 물결이 너무 교회 안에 깊숙이 거세게 들어와서요. 영적으로 점점 우리의 신앙이 잠들고요. 우리의 영혼을 병들게 해서요. 세상의 우상이나 섬기는 죄악 가운데 죽어가고 있었다면요. 이제라도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돌아와서요. 한시라도 빨리 주님 안에서 새로워진 믿음으로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을 과감하게 내어버릴 수 있길 바랍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2:15-17의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 살던 그 견디기 어려운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요.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올 때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응답하셔서 영원히 복되게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고난 속에서 통회 자복하며 돌이켜야 함
 계속해서 본문 14-1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넘겨 주사 그들이 노략을 당하게 하시며 또 주위에 있는 모든 대적의 손에 팔아 넘기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하지 못하였으며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니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요. 바알신들과 아스다롯신들을 섬기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요. 그들을 노략하는 자들의 손에 넘겨줘서 노략을 당하시거나 또 주위에는 원수 대적들의 손에 팔아 넘기셔서요. 그들의 대적들에게 더 이상 항거하지 못하게 하시고요. 더 나아가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셨던 거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괴로움의 고통이 더욱 더 심해져 갔던 거예요.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요.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우리가 하나님의 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는데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서부터요. 불행과 고통이 시작되었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마음의 기쁨을 잃어버리고요. 육신이 병들고 고통스럽고요. 물질의 손실을 당하고요. 가정의 불행을 겪고요. 주의 종들과 영적인 교우들과의 관계가 무너진 바로 그때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해요. 그리고 그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교만과 거짓과 불의와 폭력에 대해 한시라도 통회 자복하고요. 새롭게 변화되어야 해요. 대부분의 믿음의 사람들은 복되고 형통할 때보다도요. 이러한 고통의 고난을 통해 연단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의 품으로 돌아오게 돼요.
<예화: ‘강철부대’(A채널)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가수 박주우>


 우리의 문제는 이렇게 인생의 고난 속에서 정금 같은 믿음으로 연단을 받고 변화되어 나오면 큰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사는데요. 이렇게 목회를 하면서 보면 남을 비판하고 비난하는 사람들일수록 자신은 더욱 더 크고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요. 자신의 죄악은 깨닫지 못하고요. 남을 비판하고 정죄만 하다가 일생을 끝내는 거예요. 이것이 바로 세상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 거예요.
<예화: 미국에 살고 있는 딸과 아들을 방문한 어머니>


 우리의 판단의 잣대의 기준에 문제가 있는 거예요. 그래서 남이 타협하면 ‘야합’이 되고 내가 타협하면 ‘양보’가 돼요. 남이 한 우물을 파면 ‘우물 안 개구리’이고 내가 한 우물을 파면 뚝심있는 ‘전문가’예요. 남이 이혼하면 ‘이해심과 참을성이 부족한 것’이고, 내가 이혼하면 ‘하루 빨리 새 삶을 찾기 위한 것’이 돼요. 남이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들으면 ‘줏대가 없는 사람’이 되고, 내가 남의 말을 잘 들으면 ‘포용력이 있는 신사’가 돼요. 남이 빗나간 사랑을 하면 ‘불륜’이 되고, 내가 빗나간 사랑을 하면 ‘로맨스’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로남불’이라고 하는 말이 나온 거 아니에요?
<예화: 전 아이돌 가수, 탤런트, 애프터스쿨 출신 ‘리지’의 음주운전과 과거 발언 논란>


 우리도 얼마나 ‘내로남불’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요? 우리 편이 잘못하면 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용서하고 덮고 지나가면서요. 남의 편이 잘못하면 하나님의 법대로 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 땅에 오셔서 이러한 거짓과 가식과 위선과 독선을 가장 책망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마태복음 23장에서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하고 혼자 하나님을 잘 믿는 체하며 큰 소리만 치던 당시 종교지도자들을 7번씩이나 책망하셨어요. 여기 ‘화 있을진저’는 헬라어로 ‘Οὐαὶ(우아이)’이고 영어로 ‘Woe(비통, 비애)’인데요. 쉽게 말하면 오늘날의 “위선적인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이여 너희들에게서 분노와 절망을 느끼노라!”고 탄식하시며 경고하셨던 거예요. 그러나 영적인 성도들이나 주의 종들을 보세요. 절대 남의 탓을 안 해요. 오히려 자신을 돌이켜 보면서 세리와 같이 주님 앞에 엎드려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요.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하고 통회 자복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러한 죄악으로 인한 고통 가운데서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불신자들은 회개(convert)를 해야 하고요. 적어도 믿음을 가진 신자라면 통회 자복(confess)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리할 때 사도행전 3:19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고 분명히 약속하지 않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부터 통회 자복하며 돌이켜야 하고요. 사랑하는 가족들이나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도 회복해야 하고요. 주의 종들이나 영적인 교인들과의 관계도 회복해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것은 내 의지나 노력으로는 안돼요. 성령님께서 회개의 영을 부어주실 때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고 변화가 이루어지니까요. 우리가 오직 성령님의 충만을 간구해서요.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해요. 그리할 때 계속되는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고 주님으로부터 새롭게 되는 놀라운 은혜와 축복과 행복의 삶이 새롭게 펼쳐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6-17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 그들이 그 사사들에게도 순종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다른 신들을 따라가 음행하며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들의 조상들이 행하던 길에서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더라” 이렇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회개하며 부르짖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세우셨어요. 여기 ‘사사’라고 하는 것은 히브리어로 ‘םיטפְשֹֽׁ(쇼페팀)’이라고 해서 영어로 ‘Judge(재판관)’, 즉 ‘Spiritual Leader(영적인 지도자)’를 세워서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분쟁을 재판하고 화평케 하기도 했지만요. 군대 지휘관으로서 대적들의 공격에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던 거예요. 그래서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가 나오는데요. 대사사 6명(옷니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과 소사사 6명(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이 있어요. 여기에 엘리와 사무엘 그리고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까지 합하면 15명의 사사가 되는데요. 이들은 영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지만요. 그들이 태평해지면 또 다시 마음이 돌변하고요. 사사들의 깨우침을 듣지 않고요. 다시 우상숭배의 죄악에 빠지고 말았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범죄와 고난과 회개와 구원은 약 300여년의 사사시대 가운데 계속해서 되풀이된 견디기 힘든 불행과 고통의 역사였던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의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스라엘 자손들과 다를 바가 아무 것도 없어요. 육신의 큰 질병을 앓거나 경제적인 큰 손실을 당하거나 가정적인 큰 불행이 닥칠 때 대부분 교인들은 그때 신실한 신앙을 회복하게 되고요. 자신의 지난날의 나태하고 침체되었던 죄악을 철저히 깨닫고요. 주님 앞에도 열심히 나아오고요. 주의 종들과 기도하는 교인들에게 기도 부탁을 하면서 매어 달리고요. 온유하고 겸손해지고요.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건강도 회복하고요. 경제적으로 먹고 살만하고요. 가정도 순탄해지면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과거로 돌아가 버리는 교인들을 목회를 하면서 얼마나 많이 보는지 몰라요.
<예화: 노량진교회 심방전도사 시절, 소년부 학생의 아버지의 죽음과 영적 체험>


 여러분, 우리가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가 말세 마지막 때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가 없이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으니깐요. 이제라도 날마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의 시간을 회복해야 해요. 그리하여 에베소서 5:18의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는 말씀처럼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져야 해요. 여기 ‘충만함을 받으라’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πληροῦσθε(플레루스테)’라고 하는데요. 현재 수동 명령형으로서 기록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해요. 과거에 성령님의 충만을 받았다 할지라도 현재 지금도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아야 하고요. 성령님의 충만은 하나님께서 부어주셔야 가능하니까 그 성령님의 충만함을 갈급히 사모하며 간구해야 하고요. 더 나아가 성령님의 충만은 내가 받고 싶으면 받고 받기 싫으면 안 받으며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요. 우리가 말세 마지막으로 우리를 이 계속되는 불행과 고통으로 몰고 가는 마귀의 궤계를 영적으로 잘 분별하고 대적하고 승리하면서요.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하게 마지막 때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하면서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충만함은 무조건 필수불가결하기 때문에 이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더 이상 세상에 취해 살아가지 말고요. 이제라도 남은 여생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날마다 순간마다 성령 충만함을 받아 살아갈 때 우리는 주님 부르시는 그 날까지 날마다 순간마다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우리의 인생의 어떠한 모든 고난을 모두 다 이겨내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故 박영진 장로님 1주기, 故 최윤복 안수집사님 발인예배, 최성님 전도사의 유가족 인사와 10가지 감사 고백>


 최 전도사님의 10가지 감사의 고백이 저의 가슴에 뜨거운 감동으로 남은 것은 2년 전에 그토록 사랑하며 가까이 지내던 누나를 심장마비로 떠나보내고요.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겠어요? 그런데 그토록 큰 위로와 힘이 되어주셨던 존경하는 아버지마저도 작년에 건강 검진을 받으러 갔다가 알게 된 암으로 인해서요. 급속도로 암이 퍼져서 그렇게 갑자기 떠나가버리시니까 그 마음이 얼마나 충격을 받고 그 슬픔이 컸겠어요? 그런데 일찍이 여수 반란사건으로 인해 사랑하는 두 아들을 잃고 10가지 감사를 드렸던 사랑의 성자 손양원 목사님과 같이요. 또한 작년 10월에 42살의 그토록 사랑하는 변호사 아들을 대장암으로 잃고 10가지 감사기도를 드렸던 아버지 지구촌교회 이동원 목사님과 같이요. 사랑하는 아버지를 잃고 10가지 감사의 고백을 하는 최 전도사님의 아버지의 죽음을 이겨내는 성령 충만한 신앙의 감사의 고백에 큰 감동을 받고 돌아 왔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처럼 우리의 인생 가운데 끊임없이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도 오늘 성령강림주일을 계기로 하나님의 사랑의 품을 떠나 범죄하지 아니하고요. 오히려 고난 속에서 통회 자복하며 돌이키고요. 새롭게 변화된 삶을 살아갈 때 거기서부터 우리의 인생 가운데 계속해서 임하는 어떠한 고난의 의미도 바로 깨닫고요. 어떠한 인생의 고난도 모두 다 이겨내고요. 승리의 영광과 축복의 감격이 일생토록 함께 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