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23) 영적 싸움의 승리 비결
사사기 3:12-23


오늘 6월 호국 보훈의 달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아직도 남북간에 휴전상태로 대치하고 있습니다만 우리의 영적 전쟁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은 두 번째 대사사인 에훗에 대해서 말씀의 은혜를 나누고자 해요. 그렇다면 에훗이 그의 연약함 속에서도 어떻게 대사사로서 쓰임 받으며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는지를 보면서요. 우리도 연약함 속에서도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일생의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해야 함
먼저 본문 1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   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통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영적 지도자인 대사사 웃니엘이 죽은 후 이스라엘은 또 다시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해요. 하나님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하게 하셔서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적하게 하세요. 그래서 에글론 왕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쳐들어와서요.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인 즉 여리고를 점령해서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18년 동안 통치하게 돼요. 이 고난 속에서 또 다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어서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요. 그가 바로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이었어요. 그 이름의 뜻은 ‘칭찬 받는 자’란 뜻이었어요. 그런데 이 에훗이 왼손잡이(a left-handed man)였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우리가 잘 아는 바와 같이 ‘베냐민’이란 히브리어로 ‘오른손의 사람’이란 뜻이나 그런데 왜 하필이면 오른손의 사람인 베냐민 지파에서 뽑아 세운 사람이 왼손잡이였을까요? 그가 베냐민 지파 사람들 중에서도 무언가 특이하고요. 소외되고요. 부족해 보인 것 같지만요.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약한 사람의 부족함조차도 다 채워주시고요. 귀하게 사용하셨다는 것을 주목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도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고요.
하나님의 직분자로 세우심을 받기 전에는 죄악됨도 많았고요. 부족함도 많았고요. 연약함도 많았어요. 그래서 프랑스의 작가
<예화: 프랑스의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쓴 「웃음」>


결국 인생이란 너 나 할 것 없이 대소변 가리는 것을 배워서 자랑스러워하다가요. 사는 날 동안 대소변을 내 손으로 가리는 걸로 마감한다는 거예요. 그것이 인생이라는 거예요. 어찌 보면 세상 살아간다는 것이 그리 자랑할 것도 없고 욕심에 쩔어 살 필요도 없고요. 우리 인생 자체에는 아무런 은혜의 근거도 없고요. 축복의 조건도 없고요. 내세울 것조차도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28-29에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증거하셨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어진 오늘 하루를 하나님께 선물 받은 것으로 최선을 다해 감사하고요. 최선을 다해 사랑하고요. 최선을 다해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느냐는 거예요. 그런데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이나 말하는 것이나 행하는 것은 다 완전한 줄 알아요. 그래서 결국에는 자신이 하나님과 같이 높아지는 교만의 시험에 쉽게 빠져들고 마는 거예요.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핏값으로 사신 교회까지도 자신의 세력 구축을 위해 사당화(私黨化)하는 엄청난 죄악을 저지르고 마는 거예요(행 20:28). 그러나 하나님의 교회는 하나님만이 주인이시기 때문에요. 어떠한 목사나 장로나 권사나 집사도 주인이 될 수 없는 거예요. 우리는 주님의 뜻을 받들어 섬기는 종에 불과한 거예요. 그런데도 교만해지니까 자신의 신앙생활이 더 이상 은혜로울 수가 없고요. 축복될 수도 없고요. 결코 행복할 수도 없는 거예요. 그래서 주님께서는 고린도전서 10:12에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하시고요. 갈라디아서 6:3에도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고 거듭 경고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자신만 의롭고 거룩한 체하며 다른 사람들 특히 세리를 비난하던 바리새인과는 달리요.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은 세리와 같이 날마다 순간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눅 18:13)고 통회 자복해야 하는 거예요. 이처럼 우리가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우리에게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가 절실히 필요했던 거예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모든 죄악도 대신 저주셨고요. 우리의 모든 상처도 대신 저주셨고요. 우리의 모든 질병도 저주셨던 거예요. 그리하여 이를 믿는 자들은 지난 날의 모든 죄악과 상처와 질병이 치유 받고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요. 주님의 제자로 불러 주시고요. 주님의 종으로서 귀하게 써 주셨어요. 그러니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러운 일이에요?
<예화: 이해인 수녀의 시 ‘들꽃이 장미보다 아름다운 이유’>


그래서 바울 사도는 너무도 고통스러운 육체의 가시로 인해 세 번이나 주님께 간구했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후 12:9상)는 것이었어요. 그러자 바울 사도는 고린도후서 12:9-10에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 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고 선언하였던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자라난 가정환경이 안 좋고요. 건강이 안 좋고요. 외모가 빼어나지 못하고요. 많이 배우지 못하고요. 높은 지위에 오르지 못하고요. 경제적으로 어렵고요. 노후 대책이 불안정해도요.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요. 십자가의 능력을 믿음으로 살아가면요.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뛰어 넘어서요. 놀라우신 주님의 은혜와 능력과 축복에 사로잡혀 살아가게 될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1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 사사 에훗을 통해서 바쳤어요. 그런데 에훗이 길이가 한 규빗(약 45cm)되는 좌우가 날선 칼을 만들어 그의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고 있었다는 거예요. 그것은 왼손잡이는 칼을 왼쪽 다리에 차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에 에훗은 왕의 경호병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반대로 오른쪽 다리에 칼을 찼던 거예요. 물론 이 칼은 모압 왕 에글론을 살해하기 위해 무장했던 것이었어요. 그러면 우리도 에훗처럼 칼을 차고 다녀야 하나요? 대제사장의 종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베드로가 그 종을 쳐서 귀를 잘라버려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마 26:52)고 경고하셨어요. 다시 말하면 폭력을 사용하는 자는 폭력으로 망할 것을 경고하신 거예요. 대부분의 사탄의 사람들은 폭력을 사용하는 거예요. 끝까지 오기와 혈기로 달려드는 거예요. 그래서 온갖 험담과 비방과 선동과 폭력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협하는 거예요.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성령의 사람을 결코 이기지 못하는 거예요. 사탄의 폭력적인 방법으로 결국 자신들이 망하고 말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이 칼은 말세 마지막 때 우리에게 무엇을 상징하느냐는 거예요. 에베소서 6:17에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명령하세요. 다시 말하면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사탄 마귀에 대적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해야 하는데요. 머리에 구원의 투구를 쓰고요.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고요. 허리에 진리의 허리 띠를 매고요. 발에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신을 신고요. 손에 믿음의 방패를 가져야 하는데요. 여기까지는 다 방어용 무기예요. 그런데 이어서 두 가지 공격용 무기를 말씀하시는데요. 그 첫 번째 공격용 무기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예요(엡 6:17). 그리고 두 번째 공격용 무기는 기도예요(엡 6:18-20).
<예화: 총회부흥전도단 임원수련회>


그런데 수요밤 예배에 울릉도에서 가장 큰 동광교회에서 베드로전서 4:7-11의 말씀을 증거하면서도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가장 먼저 깨어 기도하고요. 원수라도 뜨겁게 사랑하고요. 선한 청지기 같이 봉사하라고 증거하면서요. 가장 먼저 말세 마지막 때 깨어 기도하지 않으면요. 어느 누구도 예외 없이 사탄의 시험에 다 빠지고 만다면서요. 먼저 깨어 기도해야 어떤 시험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했어요. 그리고 나서 이 기도와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영적 무장을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말씀이 공격용 무기가 되는가 하는 거예요. 가장 먼저는 늘 강조하지만 우리의 인생의 건강문제, 물질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나라문제, 민족문제, 열방의 문제까지도 깊이 파고 들어가면 다 영적 싸움인 거예요. 그러니 교회문제는 더더욱 영적 전쟁의 최전방의 영적 싸움인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흔히 교회의 분쟁이 일어나면 목사편이냐, 반대편이냐로 갈라지는데요. 엄밀하게 영적으로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의 편이냐, 사탄 편이냐로 갈라지는 거예요. 그러면 그것을 어떻게 분별하느냐는 거예요. 그 모든 신앙생활의 판단의 기준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를 보면 곧바로 알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한다는 근거가 어디에 있느냐 하면요. 가장 먼저는 상대방이 거짓말을 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어요. 사탄의 사람들은 거짓의 아비인 마귀(요 8:44)의 영향을 받아서 어떻게 해서든지 거짓말을 만들어요. 그래서 그런 사람들은 분명히 말이나 행동에 전과 후가 다르고요. 앞과 뒤가 다르고요. 겉과 속이 달라요. 그리고 입만 열면 온갖 거짓으로 하나님의 사람들을 비방하고요. 험담하고요. 공격하는 거예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진실은 다 밝혀져요.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을 다 풀어 주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도 억울하고 원통해도 진실이 밝혀질 그때까지만 기다리면 하나님께서 오히려 우리에게 기필코 보상해 주셔서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복을 주시고 귀하게 쓰시고 크게 영광 거둬 주시는 거예요. 더 나아가서 상대방이 허물을 들추느냐, 덮어주느냐를 보면 금방 알 수가 있어요. 베드로전서 4:8에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고 증거하였는데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상대방의 수많은 죄를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알아도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해주셨듯이 다 용서하고 덮어주는 거예요. 그런데 사탄의 사람들은 상대방이 조그만 실수나 허물이 발견되면요. 주님의 몸 된 교회가 흔들리고 깨지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이요. 오히려 그러면 그럴수록 더 좋아하면서요. 그 허물을 어떻게 해서든 들추고요. 끝까지 물고 늘어지고 죽일려고 달려드는 거예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국 선악간에 다 심판해 버리세요. 마지막으로 사탄의 사람들을 분별하는 방법은 진정한 헌신과 헌금을 하지 않으면서 말로만 혼자 예수님을 제일 잘 믿고요. 혼자 주님을 제일 사랑하고요. 혼자 교회를 제일 위하는 것처럼 큰 소리를 쳐요.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이 “어떻게 해서라도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고 말해요. 그러나 저는 그러한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의 종으로서 담대히 외치고 싶어요. “너나 잘하세요! 당신 가정이나 영적으로 바로 세우세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인 됨을 기억할 때 절대 그렇게 말이나 행동을 할 수가 없는 거예요(아멘?). 번지르르한 말만 듣고 영적인 분별력이 없는 사람들은 다 그 말에 넘어가버리지만요. 그들의 삶을 훤히 아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들을 너무나 다 잘 알고 영적으로 분별해 버려요.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에 대해서 바로 알려면 주위의 영적인 장로님이나 권사님이나 집사님들의 말을 들어보면 금방 알지만요. 주의 종들에게 물어보면 가장 확실하게 잘 알 수 있는 거예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해서 우리가 먼저 사탄의 사람들을 영적으로 분별해야 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사탄의 공격을 물리치기 위한 공격용 무기로서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범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모범으로 보여주시는데요. 마태복음 4장에서 예수님께서 먼저 40일 금식하시면서 영적으로 충만해지신 다음에 광야에서 3가지 시험을 받으셨는데요.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육신의 정욕(정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8:3 말씀을 인용하여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4)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시고요.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라는 이생의 자랑(명예욕)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16 말씀을 인용하여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마 4:7)라는 말씀으로 물리치시고요.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는 안목의 정욕(물질욕)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신명기 6:13 말씀을 인용하여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 4:10)는 말씀으로 물리치시는 모범을 보여 주세요.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위로도 받고요. 새 힘도 얻고요. 어떠한 사탄의 공격도 물리칠 수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요. 지혜를 얻고요. 능력을 얻을 수가 있어요. 그러므로 어떠한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의 약속을 확실히 믿고요. 끊임없이 말씀을 읽고요. 끊임없이 말씀을 공부하고요. 끊임없이 말씀을 묵상하고요. 끊임없이 말씀을 암송하고요. 끊임없이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면서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철저히 무장하게 될 때 언젠가는 우리의 능력을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의 은혜와 지혜와 능력을 충만하게 체험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사탄을 대적하여 물리쳐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21-2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에훗이 왼손을 뻗쳐 그의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칼   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 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겼더라” 모압 왕 에글론은 매우 비대해서(a very fat man) 동작이 느린데요. 에훗은 공물을 메고 온 수행원들을 먼저 돌려보내고요.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의 본영이었던 길갈 근처의 ‘돌 뜨는 곳’이란 히브리어로 ‘ם֙ילִיספְִּהַ(합페씰림)’이라고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우상을 만드는 장소였는데요.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호와 신앙의 정체성을 흐리게 하여 자기 권위를 드러내기 위해 일부러 길갈 근처에 우상을 만드는 채석장을 두었던 거예요. 그곳에서 에글론 왕에게 돌아와서 은밀히 드릴 말씀이 있다고 하여 서늘한 다락방에서 왕과 독대를 하도록 유인해서요. 에훗이 모압 왕에게 아뢸 말이 있다고 하자 왕이 자리에서 일어나니깐요. 에훗이 왼손을 뻗쳐 오른쪽 허벅지 위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찔렀는데요. 에훗이 얼마나 혼신의 힘을 다해 찔렀는지 칼날을 지나 칼자루까지 모압 왕의 두터운 배를 뚫고 들어가서요. 그 칼끝이 등 뒤에까지 나갔고요. 칼은 그의 몸에서 빼내지 아니하여서요. 몸의 내장의 기름이 칼날에 엉길 정도로 처참하게 살해한 거예요. 이어서 에훗이 이스라엘 군사들을 데리고 모압군이 있는 여리고로 공격해서요. 모압 군사 1만 명을 죽이고 승리함으로써요. 그때서야 이스라엘 온 땅이 80년 동안 평온하였던 거예요. 여러분, 에훗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있어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학대하는 모압 왕은 사탄과 같은 존재였어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에도 그대로 적용이 되는데요. 우리를 불화하게 하고요. 불행하게 하고요. 고통스럽게 하는 존재는 성령님이 아니라 사탄이에요. 사탄이 우리가 평온하게 사는 것을 절대 보지 못하고요. 우리 주위의 사람들 가운데 역사해서요. 우리들에게 갖가지 시비를 걸고요. 발목을 잡고요. 불행과 고통으로 끌고 갈려고 해요. 그런데 결국 우리가 영적 분별력을 갖지 못하고요. 사탄에게 속아서요.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은 십계명을 비롯한 신, 구약성경에 분명하게 경고하신 말씀과 같이 자신의 여생도 다 헛되게 무너지고 말뿐만 아니라요. 자손들의 장래까지 다 무너뜨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니 평생 목사, 장로, 권사, 집사를 하고도요. 이 얼마나 불쌍하고 불행한 인생이에요?
<예화: 총회부흥전도단 임원수련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사탄을 분별해야 하지만요. 그래도 분별이 안 될 때에는 성령님께 분별의 은사를 간구하면서 이를 영적으로 잘 분별하고요. 사탄의 역사를 대적하고 물리쳐야지요. 결단코 사탄의 역사에 속아 넘어가서요. 사탄의 도구로 쓰임 받다가 멸망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많은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사탄의 공격에 대해서 참거나 기도하거나 사랑하면서 인내하다가요. 결국 사탄에게 지쳐 쓰러지거나 사탄을 피해 뛰쳐나가거나 사탄에게 물려 죽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형제와는 시편 133:1, 3의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는 말씀처럼 연합하고 동거하고요. 원수는 마태복음 5:44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말씀처럼 사랑하고 기도해주어야 하지만요. 사탄은 분명히 영적으로 분별하고 대적해서 물리쳐야 하는데요.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사탄의 계략과 공격들을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느냐는 거예요. 예수님께서 사탄을 이겨내는 그 모범을 우리에게 확실하게 보여주시는데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마 16:17-19)에 크게 칭찬하셨는데요. 이어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을 처음으로 예언하셨을 때(마 16:21)에 베드로는 금방 예수님의 칭찬에 육적으로 교만해져서요. 예수님을 붙들고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하고 항변하면서요(마 16:22). 예수님의 십자가의 구속의 역사를 가로 막으려는 베드로를 향해서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마 16:23)하며 대적하셨던 거예요. 더 나아가 예수님의 동생인 야고보 사도도 야고보서 4:7에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복종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명령했고요. 바울 사도도 에베소서 6:11에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고 명령하였고요. 베드로 사도도 베드로전서 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고 명령하였던 거예요.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우리만 마귀의 공격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난 날 예수님도, 야고보 사도도, 바울 사도도, 베드로 사도도, 초대교회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도, 더 나아가 말세 마지막 때의 주의 종들이나 성도들도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할수록 마귀의 공격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이에요. 가짜 신자나 삯군 목자에 대해서는 마귀가 공격도 하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는 절대로 마귀의 공격에 대해서 낙심해서도 안 되고요. 염려해서도 안 되고요.  두려워해서도 안 되는 거예요. 그렇다면 문제는 우리는 많은 사탄의 세력이 우리보다 힘이 센데 어떻게 이겨내느냐는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 결단코 낙심하거나 염려 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이사야 41:10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시기 때문에요. 그리하여 우리의 힘으로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강하신 분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능히 이겨내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심을 확실히 믿고요. 사탄의 세력들에 대해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결단코 물러서지 말고요. 끝까지 인내하며 승리해야 하는 거예요.
<예화: 공군 여 중사 성추행 사건>


그래서 제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지요?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긴다고요? 정답은 선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아니라요. 끝까지 버틴 사람이 이긴다고 했어요. 아무리 선한 사람도 끝까지 못 버티면 지고요. 아무리 악한 사람도 끝까지 버티면 이기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21년 동안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함께 해오면서 처음 10년 동안 기나 긴 영적 싸움에서도 우리가 10년 이라는 세월을 끝까지 인내하면서 버팀으로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와 능력으로 다 이겨내고 승리하였던 영적인 체험이 있지 않아요? 그러므로 영적 싸움의 결론에 대해서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고 확실히 증거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살아계신 하나님만 믿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의 어떠한 연약함 속에서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능히 사탄의 세력들을 대적하여 물리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울릉도 첫 목사 주낙서 목사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갖가지 고난이 안팎에 끊임없이 닥쳐와도요. 먼저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고요. 사탄을 대적하고 물리치면서요. 우리의 일생의 영적 싸움에서 끝까지 승리해 나갈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할 때 언젠가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승리의 영광과 축복이 기필코 여러분과 자손들 가운데 차고 넘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