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24) 연약한 자의 승리 비결
사사기 4:4-16

이스라엘의 2대 대사사인 에훗으로 인해 80년의 세월이 평온하였어요. 그런데 어리석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에훗이 죽으니깐요. 여호와의 목전에서 또 악을 행해서요. 여호와께서 하솔에서 통치하고 있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이스라엘 자손을 팔아버리세요. 여기 나오는 야빈은 북부 가나안 연합군의 맹주로서 여호수아에게 격파되어 죽었기 때문에(수 11장) 개인 이름이 아니라 왕의 공식 칭호(애굽의 ‘바로’나 로마의 ‘가이사’)였을 거예요. 이렇게 가나안 왕 야빈은 20년 동안이나 이스라엘 자손들을 심하게 학대를 하게 돼요.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음으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여성인 드보라를 사사로 세워주셔서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데요. 육신적으로 연약한 여성이 어떻게 그 엄청난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물리쳤는가를 보면서요. 너무도 육신적으로 연약한 우리가 어떻게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가 이 시간도 들려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해야 함
먼저 본문 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여기에 소개되는 드로라라는 여인은 우리 개역개정판과는 달리 히브리어 원어 성경에서 보면 여선지자, 랍비돗의 아내, 사사의 순서로 소개되어 있어요. 여러분, 우리가 한 가지 사명도 감당하기 어려운데요. 드보라는 남성 위주의 혹독한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도 구약성경에 나오는 미리암(출 15:20)이나 훌다(왕하 22:14)와 같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고 증거하는 여선지자의 사명을 충성스럽게 감당했을 뿐만 아니라요. 가정에서는 랍비돗의 충실한 아내였고요. 더 나아가 이스라엘이 어려운 때 그들을 구원해내는 사사까지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어요. 어쩌면 남들은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그가 평소에 모든 일에 충성을 다했기에 3관왕의 영광을 누리게 된 거예요. 그 비결은 그의 이름 가운데서 찾게 되는데요. 드보라가 히브리어로 ‘הרָוֹבדְ(데보라)’라고 해서요. ‘꿀벌’이란 뜻이었어요. 꿀벌은 예로부터 근면을 상징하는 곤충이 아니에요? 드보라가 사사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에도 가정 일을 다 마치고요. 종려나무 아래에서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들을 재판을 해주고 있을 정도로 충성스럽게 사명을 감당하고 있었어요. 다시 말하면 그녀는 하나님 앞에서나 주어진 가정에서나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 앞에서 까지도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사명에 충성을 다하였어요. 그러했기 때문에 그녀가 연약한 여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사로까지 부르심을 받게 된 거예요. 우리도 육신적으로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요. 어떠한 영적 싸움에도 승리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우리의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하나님의 교회에서의 삶부터 충실해야 해요. 그리하여야 우리는 어떠한 영적 싸움에서도 먼저는 하나님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요. 그 다음 가까운 주위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아서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귀하게 쓰임 받고요. 궁극적인 영적 승리를 거둘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평소에는 불충성하고요. 불성실하고요. 불신실하고요. 어느 날 갑자기 세상 선거나 교회의 임직자 선거가 닥쳐오면 그때 사람들 앞에 잘 보일려고 하고요. 열심히 선거운동이나 하고요. 어떻게 해서든지 표를 얻을려고 하지만요. 늘 강조하지만 잠언 16:33의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선악간에 다 심판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경우에도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평소에 하나님 앞에서 충성을 다하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예화: 강서갑 국회의원인 우리 치유하는교회 강선우 성도님 이야기>


우리도 모두 다 바쁘고 피곤하고 힘들게 살아갈지라도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가장 먼저 예배 드리는 것을 생명 같이 소중하게 여기고요. 가정이나 직장 일에도 충실하고요. 더 나아가 일평생 맡겨주신 전도와 치유와 양육과 구제와 봉사와 선교의 사명에 충성을 다할 때에요. 요한계시록 2:10의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는 말씀과 같이요. 우리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충성을 다할 때에 어떠한 영적 싸움에서도 승리하게 하셔서요. 어떠한 환난도 다 이겨내게 하실 뿐만 아니라요. 오히려 복되게 쓰임 받게 하시고요. 하늘의 상과 이 땅의 복으로 다 갚아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야 함
계속해서 본문 9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르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당시 철제무기는 블레셋만 보유했었고요. 다른 민족들은 쇠로 무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어요. 그런데 가나안 왕 야빈이 이 철병거를 900대를 가지고 있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 애굽 왕의 철병거가 600대였는데 가나안 왕 야빈의 철병거가 900대였으니깐요. 얼마나 강성한 부대인가를 알 수가 있지요? 그러니까 이러한 가나안 왕 야빈에게 대적할 이스라엘의 남자가 단 한 사람도 나타나지 않으니깐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때에 이 연약한 여성 드보라를 택하셨어요. 그러나 어떠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부분의 여성들은 “남자들도 못 나설 일을 어떻게 제가 할 수 있겠어요?”하고 거절했을 거예요. 그러나 그녀는 결코 회피하거나 피신하지 않고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서요. 이스라엘 백성들을 학대하는 불의한 가나안 왕의 강성한 군대에 한 몸을 던지게 돼요. 그리고 사람을 보내서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에게 도움을 요청해요. 그러자 바락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도 가지 아니하겠노라”고 응답을 해요. 여러분, 무언가 순서가 뒤바뀐 느낌이 아닙니까? 전쟁터에 그래도 육신적으로 강한 남자가 나가야지요? 연약한 여성에게 함께 가자고 사정을 하니 얼마나 우스운 일이에요? 또한 그렇게 남자들이 나올 때 거기에 그러한 응답으로 “전쟁은 남자들이 하는 것이지, 왜 연약한 나를 꼭 끌고 들어 갈려고 하느냐?”고 대답할 수 있었는데요. 드보라가 뭐라고 대답합니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번에 가는 길에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임이니라”고 예언을 해요. 이 말씀은 사사 드보라가 바락과 함께 전쟁터에 나가지만요. 바락이 승리의 영광을 거두는 것이 아니라요. 이어지는 사사기 4:21에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뜻밖의 하나님의 개입으로 전쟁에 패망해서요.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모세의 장인 르우엘의 아들 호밥(민 10:29)의 자손인 겐 사람 헤벨의 집으로 피신했다가요. 헤벨의 아내 야엘이 준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요. 피곤에 지쳐 잠들어 있을 때 야엘이라는 여인이 시스라의 관자놀이에 말뚝을 박아 죽이게 될 것을 예언한 거예요. 이처럼 드보라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나 바락을 데리고 전쟁터에 데리고 나갔던 거예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도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하나님의 교회에서 끊임없이 영적 싸움을 하게 되는데요. 대개 보면 남성들이 앞장서서 나서고요. 큰소리를 치고요. 뭔가 해볼 것 같지만요. 위기의 때에 자세히 보면 무언가 자신에게 불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면요. 금방 움츠려 들고요. 안 나타나버리고요. 쓰윽 빠져 나가버려요. 이렇게 주님의 십자가를 함께 나눠질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결국 더 이상의 은혜도, 축복도, 행복도 다 잃어버리고 포기해 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나 말씀과 기도로 영적으로 무장한 여성들은 오히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요. 함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믿음으로 인내하면서 승리하는 것을 보면서요. 옛날 제가 초등학교 때 보았던 ‘남자는 절개, 여자는 배짱’이라는 영화가 떠올라요.
<예화: 위임목사님의 시카고한인연합장로교회 담임목회시절 이야기>


여러분,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가면서요. 항상 강조하지만 남의 탓 할 것 아무 것도 없어요. 목사로서, 장로로서, 권사로서, 집사로서, 성도로서 나만 잘하면 돼요. 그러면 아무도 모르는 것 같아도요. 가장 먼저는 주님이 다 아시고요. 주의 종들이나 영적인 성도들이 다 알고요.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들뿐만 아니라요. 우리 주위 사람들이 다 아는 거예요.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도 말만 앞서고 큰소리나 치는 어떤 교인들보다도 가장 소중한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빠지지 않고요. 새벽기도회나 심야기도회나 심지어 낮 시간에 시간만 나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에 나아서 묵묵히 기도하는 여 성도님들을 진심으로 더욱 더 신뢰하게 되고요. 의지하게 되고요. 목회에 큰 힘을 얻곤 해요. 그런데도 늘 장로 선거에 보면 여성들이 그러한 신앙의 여성장로를 더 안 세워줘요. 그래서 여성장로가 쉽게 안 나옵니다만 교인 수의 2/3나 되는 여성들만 뭉쳐도 얼마든지 세울 수가 있어요. 요즘 세상에서도 30% 여성 할당제를 시행하는데요. 지난 날 여성들이 그토록 무시되던 시절에도 여성들을 교회나 학교로 이끌어 내었던 기독교가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의 강력한 역사 속에 더욱 더 폐쇄적이 되어서요. 여성이 여성을 더 안 뽑아주니깐요. 자신도 장로가 되지 못하고요. 자신의 딸도 장로가 되지 못하고요. 자신의 손녀까지도 장로로 쓰임 받는 영광스러운 복을 결국에는 다 잃어버리고 마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을 스스로 다 막아버리고 만 거예요. 이것이 바로 말세 여성 교인들의 한계인 거예요.
<예화: 정순자 권사님 이야기>

여러분, 우리는 임직자 선거를 통해서 결과론적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면서요. 내가 무엇이 부족했는가를 깨닫고요. 하나님의 연단 후에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오면요. 그 다음에 우리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선거철에만 교회에 나오고요. 장로, 권사, 집사 되기 위해서 기도회에 나오고 봉사하는 데 나오고 전도하는 데 나오는 것은 엄밀하게 말하면 믿음이 아니에요. 다 자신의 명예나 물질이나 이익을 위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한 사람들은 절대로 영원한 천국에도 못 들어갈 뿐만 아니라요. 더 이상의 하나님의 은혜도, 축복도, 행복의 감격도 없는 거예요. 진정한 복음의 신앙은 나 같은 죄인을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사랑해주신 십자가의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내 몸과 마음과 사랑과 재능과 물질과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드릴 수 있는 믿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복음의 열정이 불타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인 거예요. 그러므로 말세 마지막 때 영적 싸움을 위해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있는데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정복을 앞둔 여호수아에게 주신 첫 번째 말씀인 여호수아 1:6에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증거하시면서요.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바라보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시는 거예요. 이어서 두 번째로 여호수아 1:7에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고 증거하시면서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형통함을 바라보며 강하고 담대하라고 명령하시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1:9에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고 강조하시면서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라고 3번씩이나 명령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연약해도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가지고 일어설 때에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형통한 복을 누리면서요. 영적 싸움에 승리하며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심을 믿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4-1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넘겨 주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에 앞서 나가지 아니하시느냐 하는지라 이에 바락이 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 산에서 내려가니 여호와께서 바락 앞에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 와 그의 온 군대를 칼날로 혼란에 빠지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걸어서 도망한지라” 드보라 사사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삿 4:6) 바락에게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만 명을 거느리고요. 갈릴리 호수에서 서쪽으로 18km 떨어진 580m 높이의 다볼 산으로 올라가요. 당시 가나안의 군대 장관은 당시 마른 땅이었던 기손 강에 진을 치고 있었어요. 사실 고대 전쟁은 항상 건기에 하였기 때문에 비가 오리라고는 어느 누구도 상상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늘 강조하셨듯이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듯이요. 하나님께서 예상치 못했던 사사 드보라와 바락 앞에서 폭우를 갑자기 쏟아 부으셔서요. 마른 계곡에다가 폭우만 쏟아지면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는 와디(Wadi: Dry Valley 건곡)였던 기손 강에 시스라 군대를 완전히 혼란케 하시고요. 철병거를 무력화시키셔서요. 시스라는 병거에서 뛰어내려 도망을 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결국 바락이 시스라의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서 한 사람도 남김없이 다 멸망시키고 나서요. 이스라엘의 땅에 40년의 평화가 임하게 된 거예요. 여러분, 우리의 영적 싸움도 우리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것 같지만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우리의 배후에 역사하는 악한 사탄 마귀와의 영적 싸움인 거예요. 그래서 에베소서 6:12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그래서 가정에서도 남편과 아내 사이에 부모와 자식 사이에 싸우는 것 같고요. 직장에서도 상사와 부하 사이에 동료간에 싸우는 것 같고요. 하나님의 교회에서도 목사파와 반대파가 싸우는 것 같지만요. 실제로 깊이 들어가 보면 하나님 편과 사탄 편의 영적 싸움인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아무리 어렵고 힘들고요. 길고 고달프고요. 앞이 캄캄하고 희망이 안 보여도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가운데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무장을 하고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요.
끝까지 하나님의 편에 서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싸워주셔서요. 기필코 승리하게 되는 거예요.
<예화: 사업에 실패한 중년 남자 이야기>


우리는 가장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리면서요. 무엇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요. 무엇이 하나님의 교회에 유익하고요 무엇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먼저 구하면요. 확실한 영적 분별력을 얻게 되는 거예요. 그리하면 틀림없이 우리의 인생이 평생토록 승리의 영광과 축복의 감격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예화: 위임목사님께서 받은 하나님의 사랑>


그래서 우리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가정에서나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에서까지 지금까지 영적 싸움을 해오면서요. 출애굽기 14:13-14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씀이 뜨겁게 가슴에 와닿지 않을 수가 없어요. 이 승리의 복음이 그 이후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 계속해서 증거되다가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에게까지 이르게 된 거예요. 여러분, 왜 우리가 영적 싸움에서 항상 승리할 수밖에 없습니까? 그 결정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싸워주시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부족하고 연약해도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성령 충만한 가운데요. 하나님의 전신갑주로 영적 무장을 하고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요. 하나님의 편에 서서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심을 믿음으로 끝까지 물러서지 않으면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주심으로 언젠가는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그 날이 꼭 다가오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증경총회장 이상근 목사님과 설귀연 사모님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날 육신적으로 그토록 연약해 보이시면서요. 내적으로 그렇게 강인하셨고요. 우리가 잘 되기만 바라는 우리의 신앙의 어머님들이 계셨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음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될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비록 연약한 자일지라도 그분들의 신앙을 본받아 맡겨진 사명에 충성을 다하고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서서요. 하나님께서 대신 싸워주심을 확실히 믿을 때 우리의 인생의 어떠한 영적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는 영광과 축복이 우리의 여생과 자손들까지 차고 넘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