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26) 부족한 자의 승리 비결
사사기 7:2-18


  오늘 설교 전 동영상을 통해서 보았듯이 우리 치유하는교회가 5년 전 지구상의 가장 소외되고 고통스러운 오지인 아프리카 케냐의 잃어버린 어린 아이들을 1,000명에 이르도록 후원했는데요. 5년이 지난 지금 얼마나 아름답고 복된 열매를 맺게 되었어요? 그러나 지금도 아프리카 땅에서 10초마다 어린아이 한 명이 기아나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고 하는데요. 우리가 코로나19로 인해 어렵다고 하지만요. 어떻게 이 지구상의 최악의 오지인 아프리카 땅과 비교할 수 있겠어요? 그런데 오늘 우리는 지난 주일 6.25 기념주일에 이어 6.25기념 특별나눔 감사예배를 드리면서요. 6.25 참전국인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를 돕기 위한 모금을 하고자 하는데요. 우리가 이러한 구제와 봉사와 선교의 주님의 일을 해나갈려면 영적 싸움을 이겨내야 해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제4대 대사사로 부족함이 많았던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요. 그가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 명(삿 8:10)과의 영적 싸움에서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데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믿음으로 나아가게 되니깐요. 기적적인 승리가 가능했던 거예요. 그렇다면 그토록 부족함이 많았던 기드온이 어떻게 그러한 기적적인 승리를 할 수 있었는가를 보면서 말세 마지막 때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가로막은 영적 싸움에서 우리가 어떻게 승리하며 영광 돌릴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결단코 두려워 떨지 말아야 함
먼저 본문 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여룹바알(“바알과 논쟁하라”는 뜻, 삿 6:31)이라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은 일찍이 일어나 하론 샘 곁에 진을 쳤고요. 미디안의 연합군은 이스라엘 백성의 북쪽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어요. 그런데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기를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으니까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들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하고 교만할까 함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기드온은 백성들에게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라”고 외친 거예요. 그러자 기드온은 과거와는 달리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섰고요. 13만 5천 명의 미디안 대군에 두려워 떠는 자들은 다 집으로 돌려보냈던 거예요. 그리하여 모였던 3만 2천 명의 백성들 가운데 2만 2천 명이 돌아가고요. 1만 명만 남게 된 거예요.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사탄과의 영적 싸움에서도 우리는 가장 먼저 상대가 강하다고 생각하면요. 그가 선하든지, 악하든지 상관없이요. 두려워하고요. 떨게 되어서요. 금방 낙심하고요. 전의(戰意)를 상실하고 말아요. 그리하여 영적 싸움을 한 번도 해보지도 못하고요. 사탄의 세력들에게 무릎을 꿇고요. 패배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말씀이 이사야 41:10 말씀이에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I will strengthen you)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and help you)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우리가 이 말씀을 너무도 많이 듣고요. 너무도 잘 알면서도요. 너무도 암송까지 잘 하면서도요. 왜 이 말씀을 믿지 못하니깐요. 결국에는 두려워서 떨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부족한 종이 항상 가장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행복이 우리에게 임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일을 소홀히 여기고요. 사탄의 시험에 빠져서 비대면 예배를 보고 있다가요. 결국에는 불행과 고통과 절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때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하고 돌아오는 교인들을 보게 돼요. 지난 주간에도 그런 교인들을 보았지만요. 코로나19로 인해서 주님을 떠나 교회에 나오지 않다가요. 결국 말로 다할 수 없는 불행과 고통 가운데 돌아와서요. 눈물로 기도요청을 하는 거예요. 그러면 주의 종의 마음이 시원하고요. “교회에 예배 드리러 안 나오더니 고생 좀 하고 이번 기회에 정신 좀 차리세요” 그럴 거 같지요? 그런 목사는 선한 목자가 아니에요. 악한 목자에요. 적어도 선한 목자라면 얼마나 안타깝고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일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아야 할 것은 지난 날 영적 싸움에서도 우리는 항상 부족하고 연약하였지만요. 스스로 계시는 강하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고 대신 싸워주심으로 다 이겨내었듯이요. 믿음으로 사는 우리가 적어도 확실히 믿어야 할 놀라운 사실은 스스로 계신 여호와께서 우리의 가장 강하신 분이신 되셔서요. 우리와 함께 하시고요. 우리를 강하게 하시고요. 우리를 도와주시고요. 우리를 그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심을 확실히 믿는다면요. 죽음이 우리 앞에 놓인다 할지라도 살아계신 하나님만 믿고요. 두려워하거나 떨지 마시길 바랍니다.
<예화: 아메리카 갓 탤런트에서 영예의 골든 버저를 받은 제인 마르크제프스키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에게 어떠한 가난과 질병과 고통과 죽음 앞에서 조차도 결단코 두려워 떨지 않고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일어설 때 우리는 어떠한 영적 싸움도 주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능히 승리하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항상 지혜롭게 깨어 있어야 함
계속해서 본문 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이스라엘 백성 1만 명을 데리고 싸우러 나가도 미디안 연합군 13만 5천 명을 결코 감당할 수가 없는데요.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아직도 백성이 많으니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서 그들을 시험하라”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개처럼 엎드려 입을 물에 대고 정신없이 물을 마시는 자는 적의 공격을 쉽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제외시키고요. 또한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시는 자는 조금 전 사람보다는 약간은 나으나 경계심이 부족하기 때문에 역시 제외시키고요. 마지막으로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물을 핥는 자들은 전투에 대한 경계심이 투철했기 때문에 따로 세우라고 했더니요. 300명만이 남은 거예요. 그 300명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다 집으로 돌려보내라고 하신 거예요. 그래서 9,700명의 백성들을 돌려보내고 300명만 진영에 남아 있게 한 거예요.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는 적진의 동태를 살피면서 지혜롭게 깨어 있는 자만 남게 하셨던 거예요. 우리도 영적 싸움에 있어서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의 힘으로 이겨내려고 하기 때문에요. 우리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요. 다 무너지고 마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모든 영적 싸움의 배후 조종자인 사탄은 우리보다 훨씬 힘이 더 세고요. 우리를 교활하게 속이기 때문에요. 다 우리는 결코 패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지혜롭게 깨어 있으면요.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하나님의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어떠한 사탄의 계략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은혜와 능력으로요. 영적으로 다 분별하고요. 대적하고요. 결국에는 다 승리하게 되는 거예요.

<예화: 청년부 찬양대 지휘자였던 전은경 권사님의 어머니 임옥례 권사님 이야기>


그래서 마태복음 26:41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변할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고 계시는데요. 베드로 사도를 비롯해서 모든 제자들이 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베드로 사도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어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우리가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깨어 기도하면 어떠한 시험에 들었더라도 이겨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말세 마지막 때가 되면 모든 주의 종들이나 교인들의 가장 약한 것이 무엇인가 하면요. 깨어 기도하지 않는 거예요. 거기서부터 우리는 영적 싸움에서 백전백패하고 마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행복하고 축복되게 살려고 애쓰고 수고해도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 않으면 절대 복을 누리지 못하는 거예요. 그런데 지혜롭지 못한 사람들은 깨어 기도는 안하고요. 혼자 애쓰고 수고하면서요. 피곤에 지쳐 어렵고 힘들게 살아가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쓰러지고 말아요. 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이에요?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오히려 세상 일에 빠져 바쁘고 피곤하고 지쳐 살아가는 것보다도 깨어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가장 지혜로운 성도는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써 시험에 들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요. 시험에 들어도요. 성령님의 권능에 사로잡혀 살아가니깐요. 어떠한 영적 싸움에 있어서도 능히 승리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하여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8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이렇게 300명의 백성을 선발한 기드온은 300명의 훈련되지 않은 백성들은 미디안 연합군 135,000명을 대적한다는 것이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었어요. 그런데 그 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미디안 연합군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9)고 약속하세요. 그런데 밤 중에 미디안 연합군을 정찰을 하러 가서 보니깐요.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와 같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데 미디안 군사 중 한 명이 꿈을 꾸고 그의 친구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데요.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이 무너져 버리더라는 거예요. 그러자 그의 친구가 하는 말이 보리떡은 기드온을 상징하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미디안 연합군을 기드온의 손에 넘겨주셨다는 거예요.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하나님께서 미디안 연합군을 그의 손에 붙이신 것을 확신하게 되고요.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의 진영으로 돌아와서요.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고 선언하고요. 300명의 백성들을 100명 씩 세 그룹으로 나누고요. 그들의 각 손에 칼과 창을 들려준 것이 아니라요. 양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게 하고요.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여서요. 나와 나를 따르는 자들이 다함께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크게 외치라고 한 거예요. 이렇게 기드온 300 용사가 미디안 진영에 쳐들어간 것이 이경 초였으니깐요. 히브리인들은 오후 6시부터 아침 6시까지를 밤을 3경으로 나누어서요. 초경은 오후 6시부터 밤 10시까지고요. 이경은 밤 10시부터 새벽 2시까지이고요. 삼경은 새벽 2시부터 아침 6시까지니깐요. 이경 초이니까 밤 10시가 지나서요. 기드온의 명령을 따라 그 어두운 밤에 갑자기 일제히 큰 소리로 나팔을 불고요. 항아리를 깨부수고요. 항아리 속에 숨겼던 횃불을 들면서요.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라고 외치게 하셨어요.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를 위하라!”고 외친 것은 그들이 믿음의 용사들이니까 다 이해할 수 있지만요. 왜 “기드온을 위하라!”를 더하였을까요?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라 영적 싸움의 리더로 세운 사사였기 때문에요. 이스라엘 300 용사들이 기드온을 따르며 위하기도 해야 했지만요. 이 말씀을 상담치유학적으로 접근해보면 지금 이 전쟁에서 기드온처럼 이스라엘의 생사의 갈림길의 막중한 사명감과 책임을 가진 사람이 누가 있었겠어요?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기드온이야 말로 영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육신적으로나 가장 외롭고 힘들게 고통을 당하는 자였음에 틀림이 없었어요. 그러한 기드온을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라!”고 외치라고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고 외쳤을 때 기적이 일어났어요. 미디안 연합군이 깊은 밤에 정신없이 자다가요. 항아리 300개가 한꺼번에 깨지는 큰 소리가 나지요. 어두운 밤이 갑자기 대낮처럼 밝아지지요.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는 함성이 들려오니깐요. 무슨 난리가 일어났는가 하고 일어나서요. 겁에 질려 어둠 속에서 달아나면서요. 서로 찌르고 죽이다가 보니깐요. 미디안 연합군 135,000명 가운데 120,000명이 죽고요. 15,000명만 살아남게 된 거예요. 그러자 기드온이 추격하여서 남은 진영도 다 격파하고 말아요. 항상 하나님의 영적 싸움을 보면 무력으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요. 인간적인 힘으로는 도저히 못 이길 것 같은데요. 항상 주님만 바라보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하여 믿음으로 나아가면요. 어떠한 위기 상황 속에서 기적적인 승리를 가져오고 말아요. 우리도 영적 싸움에서 기적의 승리를 하려면 기드온 300 용사와 같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하여 하지 않으면 안돼요. 그런데 말세 마지막 때 대부분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들을 보면 말로는 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서, 주님의 교회를 위해서, 주님의 복음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도요. 사실은 알고 보면 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명예 또는 인간관계를 위해서, 감정을 위해서 하다 보니까요. 다 패망하고 마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꿈에도 잊지 말아야 할 말씀이 마태복음 22:37-40에 잘 나와 있어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구약성경 가운데 가장 크고 중요한 율법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에요. 그런데 이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그대로 실현된 거예요. 그래서 십자가는 종적으로 하나님 사랑과 횡적으로 이웃 사랑을 의미하는 거예요. 더 나아가 이 십자가를 더욱 깊이 묵상해보면 종적인 것과 횡적인 것이 교차하여 연결되어 있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에요.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느냐는 거예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의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아멘 소리 없는 것 보세요) 말로만 큰 소리 치며 살지 마시고요. 이제는 삶으로 서로를 불쌍히 여기고요. 어떠한 허물도 덮어주고요. 서로를 위해서 무엇으로 섬길 것인가를 깊이 기도하면서요. 그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가야 해요. 그래야 우리의 남은 여생이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하게 쓰임 받게 되는 거예요.
<예화: 월드비전 회장 조명환 장로님 간증집 「꼴찌박사」>
<예화: 6.25 참전국 중 에티오피아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외국에 나가보면 6.25전쟁 참전용사 뿐만 아니라 그 자녀들까지도 지금까지도 우리나라를 잊지 못하고요. 마치 대한민국을 그들의 고국인 것처럼 반가워하며 애정을 표현해요. 사실 지난 날 우리가 6.25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이렇게 조국의 번영과 한국교회의 부흥을 가져오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신앙의 선조들의 희생도 있었지만요. 우리나라를 뜨겁게 사랑한 자유우방국가들의 희생과 도움이 있었음을 결단코 잊어서는 안돼요. 그래서 오늘의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자유의 삶을 누리며 살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우리의 남은 여생도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야 하겠어요? 우리의 인생의 영적 싸움에서 결단코 두려워 떨지 말고요. 항상 지혜롭게 깨어 있어야 할뿐만 아니라요. 궁극적으로 우리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살아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가 아무리 부족한 자라고 할지라도 어떠한 영적 싸움에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능히 승리할 뿐만 아니라 복음의 빚진 자로서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되게 쓰임 받으며 영광 돌리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