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27)            (2021.7.4.)

아 하나님의 은혜로 (사사기11:1-1)

 오늘 우리는 한 해 첫 보리 추수의 맥추감사주일을 지키면서요. 우리 치유하는교회 설립 52주년을 맞이하고 있어요. 사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 개인이나 가정이나 우리 치유하는교회 조차도 오늘에 이를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결코 하나님으로부터 쓰임 받을 수 없었던 5번째 대사사가 나와요. 그가 바로 입다에요. 그토록 천박했던 입다가 어떻게 하나님의 은혜로 그렇게 위대한 사사가 될 수 있었는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우리도 비천한 신분 출신이었음
 먼저 본문 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길르앗 사람 입다는 큰 용사였으니 기생이 길르앗에게서 낳은 아들이었고” 당시 이스라엘 서북쪽에 시돈, 동북쪽에 아람, 동쪽에 암몬, 동남쪽에 모압, 서쪽에 블레셋이 위치해서 시험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지금까지 섬겨왔던 바알들과 아스다롯 외에 시돈의 신들과 아람의 신들과 모암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들의 신들까지 적어도 7가지 이상의 잡신들을 우상으로 섬겨왔어요(삿 10:6).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블레셋과 암몬 자손들에 의해서 18년 동안이나 억압을 당하게 하셨던 거예요(삿 10:8).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도 결코 긍휼을 잊지 않으셔서요. 이스라엘 자손들을 위해 5번째 대사사로 입다를 세워주셨던 거예요. 그런데 입다는 원래 기생이 낳은 아들이었어요. 그러니까 본처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요. 첩에게서 난 것도 아니고요. 기생(매춘부, prostitute)에게서 난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입다는 태어날 때부터 이렇게 너무도 비천한 환경의 출신이었어요. 그나마 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은 그의 이름 ‘입다’가 히브리어로 ‘חתָּפְיִ(이프타흐)’ 즉 ‘여는 자’, ‘풀어주는 자’라는 의미였고요. 그의 아버지가 요단 동편의 길르앗 사람 길르앗임을 밝혀주고요. 더욱이 지금까지 역대 대사사 중에 기드온(삿 6:12)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용사(might warrior)라고 칭찬하고 있어요. 그것도 히브리어로 ‘ליִח רובּגִּ(낍보르 하일)’이라고 한 것은 ‘입증된 전사(proven warrior)’라고 할 정도였어요. 다시 말하면 그가 매춘부의 아들이라는 비천한 신분의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입증된 큰 용사가 되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던 거예요. 우리도 과거에 다 허물과 죄로 인해 죽었던 인생이었고요. 그래서 세상 풍조를 따르고요.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을 따라 살았고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어요(엡 2:1-3). 그런데 에베소서 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증거하고 있어요.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대속에 인한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요. 우리가 죄악과 상처와 질병의 대속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 혼, 육의 영원한 구원에 이르게 된 거예요.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단 한 분밖에 없는 죄 없으신 아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이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까요? 계속해서 에베소서 2:10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아요? 다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하기 위하여 우리를 이 땅에 보내주셨고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시는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는 거예요.
예화) 6.25 기념 특별나눔 감사예배와 에드나 넬슨(Edna Nelson) 할머니가 45년 동안 후원하신 조명환 장로님 이야기


 우리가 지난 주일에 이어서 기드온 300 용사의 은혜에 감사하면서요. 300명의 굶주린 어린아이들을 하나님의 나라의 일꾼으로 길러낼 수 있다면 이보다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된 일이 어디에 있겠어요? 에드나 넬슨 할머니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더욱 건강하고 장수하고 복된 여생을 살아가게 될 거예요. 그래서 부족한 종도 지금까지 10명의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의 불쌍한 아이들을 도와 왔지만요. 이번에 에디오피아 3명의 굶주린 아이들을 또 다시 돕게 된 거예요.
예화) 뉴햄프셔주의 한 레스토랑에서 1800만원의 팁을 남겨놓고 간 한 손님 이야기


이 얼마나 멋진 크리스천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빈 손으로 이 땅에 왔다가요. 어짜피 빈 손으로 떠나갈 인생인데요. 대부분의 교인들이 우리에게 주신 축복을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사용하지 못하고요. 움켜쥐고만 살다가요. 어느 날 갑자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세상을 떠나고 말아요. 그러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때 마태복음 25:26, 30의 말씀처럼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고 분명히 경고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어렵고 힘들게 살아도요. 물질이 풍요로워서가 아니라 늘 감사하고 행복해서요.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요. 마태복음 25:21, 23의 말씀처럼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하는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누릴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모두 다 과거에 죄로 인해 영원히 멸망당할 죄인이라는 비천한 신분이었지만 하나님의 그 크신 십자가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되고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한 일을 행하는 영광스러운 축복을 영원히 누리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우리도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수 없었음
 계속해서 본문 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길르앗의 아내도 그의 아들들을 낳았더라 그 아내의 아들들이 자라매 입다를 쫓아 내며 그에게 이르되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한지라” 입다의 아버지는 본부인이 있었고 또 그에 따른 아들들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아들들이 입다가 아버지가 매춘부에게서 낳은 아들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입다를 집에서 쫓아내면서요. “너는 다른 여인(매춘부)의 자식이니까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고 말해요. 여기 ‘기업을 잇다’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לחנְתִ(티느할)’이라고 해서 ‘유산을 상속 받는다(get inherance)’는 의미였던 거예요. 그는 아버지로부터 어떠한 축복도 이어 받을 수 없었던 거예요. 그러나 그의 어떠한 본처 자녀들은 이름도 없이 사라졌지만요. 입다는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에 까지 그의 이름이 기록되는 하나님의 큰 축복을 누리게 돼요. 우리도 죄로 인해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었으니 어떻게 하나님의 축복의 기업을 이어 받을 수 있었겠어요? 그러나 에베소서 3:6에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이방인이었던 우리를 복음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요. 함께 교회의 지체가 되고요. 함께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신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복되게 살도록 하시고요. 더 나아가 약속하신 영원한 천국을 상속으로 받게 하신 거예요. 그러니 이것이 세상의 부귀나 명예나 향락, 그 무엇보다도 큰 하나님의 축복의 유산이냐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고요. 축복을 내려주시지 않으시고요. 행복을 부어주시기 않으셔서요. 우리가 복되게 살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요. 우리가 모든 하나님의 복을 감사하게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니깐요. 이 복이 더 이상 우리에게 행복이 되지 못해서요. 평생을 스스로 불행과 고통 가운데 살아가는 거예요.
예화) 오규훈 목사님이 쓴 책,「감사의 7가지 언어」


 우리가 날마다 이 일곱 가지 감사만 잊지 않고 고백하고 살아도요. 이 얼마나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의 삶을 살겠어요? 그래서 목회를 하면서도 보면요. 아무리 유복한 가정에 태어나고요. 많이 배우고요. 높은 지위에 오르고요. 많은 부귀를 얻고도요. 이 소중한 감사를 다 잊어버리니깐요. 믿음의 가난한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리하여 스스로 불행과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를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생각한다는 ‘think’와 감사한다는 ‘thank’는 같은 어원이라고 하잖아요? 우리의 모든 삶을 깊이 생각해보면 우리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요. 감사하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는 거예요.
예화) 모든 것에 감사하게 된 한 교인의 세가지 소원 이야기와「탈무드」의 격언


 우리가 남은 여생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살아갈려면 이 시간부터 일생 나를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부모님께 감사하고요. IMF때 보다 어려운 때 고생하는 남편으로 인해 감사하고요. 갖가지 불행과 고통 속에서도 끝까지 인내하며 가정을 지켜준 아내로 인해서 감사하고요. 가정과 학교와 직장의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자녀들로 인해서도 감사하고요. 우리의 지금까지 모든 신앙생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적으로는 기업을 이을 것이 없었지만요.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믿음의 축복의 상속자가 되었음을 잊지 않고요.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감사하며 살아갈 때 남은 여생을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게 될 뿐만 아니라요. 영원한 천국을 하나님의 기업으로 잇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우리도 버림 받은 인생이었음
 마지막으로 본문 3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입다가 그의 형제들을 피하여 돕 땅에 거주하매 잡류가 그에게로 모여 와서 그와 함께 출입하였더라” 입다는 비천한 환경 출신이고요. 부모로부터 기업도 못 잇고요. 그 이복형제들로부터도 쫓겨나서 버림받은 인생이었어요. 그래서 그의 이복형제들을 피하여 먹고 살기 위해서요. 길르앗에서 동북쪽으로 약 24km 떨어진 아람(시리아)의 ‘돕 땅’ 즉 히브리어로 ‘בוטֹ ץרֶאֶבְּ(뻬에레츠 토브)’ 즉 기름진 좋은 땅으로 찾아갔어요. 그 땅은 비록 비옥한 땅이였지만 어디까지나 이방 땅이었어요. 그런데 여기 나오는 ‘잡류’는 히브리어로 ‘םיקִירֵ םישִׁנָאֲ(아나킴 레킴)’으로써 ‘온갖 부류의 가치 없는 자들’인데요. 쉽게 말하면 별 볼 일 없는 버림 받은 자들이 몰려와서 함께 살았어요. 그러나 그곳에서까지도 입다는 유대인으로서 소외감을 느끼며 살아야 했을 거예요. 그런데 암몬 자손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18년 동안 괴롭히면서 이스라엘을 치려하니깐요. 길르앗의 장로들이 돕 땅의 찾아가서 그들의 군대장관이 되어주길 요청해요. 결국 하나님의 은혜로 그는 이스라엘의 제5대 대사사가 되어서요. 먼저 암몬과의 요단 동부의 소유권으로 협상을 하다가요. 협상이 결렬이 되자 입다는 암몬에 쳐들어가서 결국 대승리를 거두고 돌아왔는데요. 그가 암몬 자손들을 이기고 돌아올 때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자를 여호와께 번제로 드리겠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 결국 그토록 사랑하는 외동딸을 하나님께 바치게 돼요(삿 11:29-40). 그런데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전통적인 성경해석에 대해서 저는 오늘 새로운 복음적 해석을 전하고 싶어요. 입다가 그의 딸을 번제물로 드렸다고 하는데요. 그 딸을 죽여서 드렸다는 성경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에요. 다시 말하면 실제로 그를 잡아서 죽여 불태워 바쳤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 근거로는 신명기 12:31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는 네가 그와 같이 행하지 못할 것이라 그들은 여호와께서 꺼리시며 가증히 여기시는 일을 그들의 신들에게 행하여 심지어 자기들의 자녀를 불살라 그들의 신들에게 드렸느니라”고 증거하셨듯이요. 하나님께서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종교와 분명히 구별하세요. 그렇다면 입다가 사람을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한 서원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레위기 27:2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만일 어떤 사람이 사람의 값을 여호와께 드리기로 분명히 서원하였으면 너는 그 값을 정할지니”고 증거하셨듯이요.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희생제물로 대신한 번제를 드릴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던 거예요. 그래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릴 때도 하나님께서 이삭을 죽이게 하지 않으시고요. 이삭 대신 숫양을 준비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자녀를 하나님께 주의 종으로 바치는 서원기도를 할 때 자녀를 죽여서 바치지 않고 일생토록 주의 종으로 헌신하게 하듯이요. 입다도 그의 사랑하는 딸을 번제로 드린 것은 사람을 번제로 드릴 때 동물을 드릴 때처럼 피를 흘리고 완전히 불태워 드린 것이 아니라요. 입다의 딸은 평생을 성막에 가서 하나님께 헌신하고 수종 들었던 것으로 여겨져요. 그만큼 입다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철저히 지킨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요셉의 둘째 아들로 야곱의 오른손 축복을 받았던 에브라임 지파가 특권의식을 가지고 교만에 빠져서요. 기드온 때에도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자기들을 안 불렀다고 서운해가지고 시비를 걸어왔듯이요(삿 8:1-3). 이번에도 입다에게 시비를 걸어와서 에브라임과 싸워서 크게 승리를 거두고요(삿12:1-7). 부모 형제로부터 버림받은 가장 견디기 어려운 불행과 고통의 삶까지도 믿음으로 다 이겨내고요. 이스라엘의 대사사로 6년이란 짧은 세월이지만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큰 감동을 주며 이끌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게 돼요.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요. 믿음의 상속자가 되었지만요. 이 땅을 살아가면서 때로는 부모님에게서 버림을 당하고요. 형제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요.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당하고요. 첫사랑으로부터 버림을 당하고요. 그토록 믿었던 남편(아내)에게서 버림을 당하고요.


심지어 자식들에게까지 버림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토록 믿고 의지했던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의 사랑의 배신의 상처는 세상의 어떠한 고생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우리가 부모나 형제나 친구나 남편이나 아내나 심지어 자식들에게서까지 버림당해서요. “나는 혼자다! 이 땅 위에 아무도 날 사랑하는 사람이 없다. 날 이해하는 사람도 없다. 날 알아주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차라리 이렇게 외롭고 힘들고 고통스럽고 불행하게 희망 없이 살기 보다는 차라리 죽음으로써 모든 것을 끝내자!”하고 거침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려요.
예화)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되는 고3 학생과 3선 의원 이야기


 그러나 이 우울증의 근본적인 치료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배신의 상처로 인해 고통과 불행의 눈물을 흘리며 몸부림치는 우리를 향해서 시편 27:10에 분명히 약속하세요.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에게 진정한 만족도 줄 수 없고요. 위로도 줄 수 없고요. 행복도 안겨다 줄 수 없고요. 언제든지 다 우리 곁을 떠나가지만요. 변함없이 우리를 살아하시고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고요. 끝까지 우리를 사랑으로 지켜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십자가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하고요.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요. 날마다 순간마다 가슴 속 깊이 느끼며 살아갈 때에 우리는 어떠한 배신의 상처도 치유 받고요. 오히려 그들을 불쌍히 여기고요. 다 용서하고요. 끝까지 사랑하면서요. 주님 안에서 삶의 행복과 축복을 새롭게 발견하게 되고요. 어떠한 우울증도 다 이겨내고요. 주님의 위로와 평강과 행복의 감격 속에 인생을 진정으로 의미있고 보람되고 행복하게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의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 받았다고 할지라도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나타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우리를 변함없이 위로해 주시고 끝까지 새 힘을 주시고 어떠한 배신의 상처조차도 다 이겨내게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우리의 지나온 삶을 돌이켜보면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요. 우리의 가정을 지켜온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고요. 심지어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주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에요.
예화) 김의식 목사님의 생명을 살리신 하나님께서 치유하는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부흥케 하신 이야기


 수많은 상처와 고통과 불행 속에서도 함께 십자가를 지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교회를 지켜 준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해요. 그리함으로 우리 치유하는교회가 깨어지거나 흩어지거나 무너지지 않고요. 이렇게 코로나19의 위기 속에서도 다시 일어나고 부흥하게 된 것도 다 여러분이 끝까지 합심합력 해 준 덕분이에요. 이처럼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를 기적적으로 지켜올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기적적인 은혜가 아니면 결코 불가능한 거였어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모든 하나님의 은혜가 저와 우리 치유하는교회에만 임했겠습니까? 오늘 우리는 맥추감사주일이요. 교회설립 52주년을 맞이하면서요.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지나간 생애와 지난 한 해만 돌이켜 보아도 우리 모두 다 비천한 신분 출신이었고요.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수가 없었고요. 사랑하는 사람들로부터 버림받을 때도 많아서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는 한 순간도 살 수가 없었어요. 그러나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을 감사하고 감격하면서요. 남은 여생을 새로운 기회도 허락해주신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어떻게 믿음으로 살 것인가 결단하게 될 때에 우리의 얼마 남지 않은 남은 여생이라도 더욱 의미있고 보람되고 복된 여생으로 주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