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모범(29)            (2021.7.18.)

견딜 수 없는 상처 속에서도 (사무엘상1:7-18)

    
 우리가 믿음으로 살려고 하면 고난이 없는 인생이 없어요. 내가 져야 할 십자가가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인생의 행복과 불행은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본문 가운데에도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상처의 고통과 불행 가운데에도 일어선 한 여인이 나와요. 그녀의 이름은 한나예요. 그녀의 남편 엘가나는 예루살렘에서 서북쪽 8km 지점의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살고 있었는데요. 여기 ‘에브라임 산지’는 팔레스타인 중앙부에 위치한 산간지역으로서 주로 에브라임지파 사람들이 거주했기 때문에 ‘에브라임 산지’라고 불리워졌지만요. 엘가나는 레위지파 사람이고요. 레위지파 사람들은 기업을 분배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전국에 흩어져 살면서 신앙적 사명을 감당했던 거예요. 그리고 여기 ‘라마다임소빔’이란 지명은 원래 히브리어로 ‘םיפוצִֹ֖ םיִתַ֛מָרָהָ(하라마타임 초핌)’이라고 두 단어로 나뉘어 기록되어 있는데요. 엘가나의 조상인 숩(추프)의 자손들이 사는 하라마타임이라고 보여져요. 중요한 것은 이곳에 사는 엘가나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요. 첫째 아내가 한나로서 ‘은혜, 은총’이라는 뜻이고요. 둘째 아내는 브닌나로서 ‘홍보석, 진주’라는 뜻을 가지고 있었어요. 영적인 아내와 육적인 아내가 그 이름부터가 이렇게 달랐어요. 그런데 한나에게는 자식이 없었어요. 그러니 자녀 출산이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믿었던 히브리의 여인에게는 큰 불행이요 고통이 아닐 수 없었어요(창 1:28, 16:1-4). 그러나 브닌나에게는 ‘자녀들(םידלִָ֔יְ, 엘라딤)’이 있었는데요. 그것도 ‘הָיתֶ֖ונֹבְוּ הָינֶ֛בָּ(빠네하 우베노테하)’ 즉 ‘그녀의 아들들과 딸들’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적어도 아들 둘 이상, 딸 둘 이상 해서 자녀가 넷 이상인 것으로 보여져요(:4). 그런데 한나에게는 이 자녀들이 하나도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엘가나는 자식을 얻기 위해 둘째 아내인 브닌나를 얻었는지 모르지만요(신 21:15-17). 자식이 없었던 첫째 아내인 한나에게 더 깊은 사랑을 쏟아줘요. 그래서 엘가나는 한나를 사랑함으로 제물의 분깃을 브닌나와 그의 모든 자녀들에게 준 것보다 한나에게 갑절을 주었다고 하는데요(:5). 히브리어 원어성경에 보면 ‘םיִפָּ֑אַ תחַ֖אַ הנָ֥מָ(마나 아하트 압파임)’이라고 한 것은 엘가나가 한나에게 ‘(특별히 좋은) 가치 있는 것’을 주었다는 의미인 거예요. 그런데 자식이 많은 브닌나가 자식이 없는 한나를 얼마나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는지 몰라요. 그러니 한나는 자식을 못 낳는 것만 해도 서럽고 눈물 나는데요. 둘째 마누라인 브닌나에게 자식을 못 낳는다고 구박까지 당하니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요? 어떠한 육신적인 고통 보다도 마음의 깊은 상처는 너무도 견디기가 어려운 거였어요. 이 때 한나가 할 수 있는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밖에 없었어요. 그러면 이 믿음의 여인인 한나가 그 견디기 어려운 상처 속에서도 어떻게 기도하며 이겨내었는가를 보면서 우리도 수시로 부딪혀오는 인생의 견디기 어려운 상처를 어떻게 기도하며 이겨낼 것인가 이 시간에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금식기도를 해야 함
  먼저 본문 7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남편이 그같이 하매 브닌나가 그를 격분시키므로 그가 울고 먹지 아니하니”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차례, 출애굽의 구원의 역사를 기념하는 유월절과 첫 보리 추수에 감사하는 맥추절과 가을 추수에 감사하며 광야생활을 기억하는 수장절에 여호와 앞에 나아갔던 거예요(출 23:14-17, 신 16:16-17). 그런데 한나도 당시 자신이 살던 라마다임소빔에서 22km 떨어진 실로에 있었던 여호와의 집, 즉 성막에(수 18:1, 삿 18:31) 올라갔는데요. 본문 5절과 6절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니......여호와께서 그에게 임신하지 못하게 하시므로”라고 계속해서 강조하셨듯이요. 여호와께서 한나의 자궁을 닫으셨으므로 임신을 하지 못하니깐요. 한나뿐만 아니라요. 사실 지난 날 신앙의 여인들도 다 출산을 못하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 매어 달렸어요.


그래서 믿음의 어머니 사라도 하나님께 매어 달렸고요(창 18:9-15). 라헬도 하나님께 매어 달렸고요(창 30:1-24). 삼손의 어머니도 하나님께 매어 달렸던 거예요(삿 13:2-5). 더구나 한나가 매년 여호와의 법궤가 있는 실로의 거룩한 성막에까지 가서 화목제물을 드리고 기도를 드리는데요. 그녀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혔다고 하는데요(:6). 여기 ‘적수’라는 단어가 히브리어로 ‘הּ֙תָרָצָֽ(차라타흐)’라고 해서요. ‘고통을 주는 자’라는 의미인데요. 한나를 ‘격분하게(התָּסַ֤עֲכִֽוְ, 웨키아쌋타)’ 해서요. ‘괴롭게(הּמָ֑עִרְּהַ, 하레이마흐)’ 했다고 하는데요. 다시 말하면 천지를 뒤엎을 듯한 ‘우레소리’가 날 정도로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그녀의 마음의 상처는 안 겪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그래서 한나는 그 상처의 아픔이 얼마나 컸던지 남편 엘가나가 준 특별히 좋은 제물조차도 먹지 않고요(삼상 1:5). 눈물로 금식하며 매어 달렸던 거예요. 이처럼 우리도 결혼을 하고 자녀가 없다는 것은 큰 아픔이 아닐 수 없어요. 그런데 주위에서 비아냥거리는 상처까지 줄 때 그 심정이 어떠하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인생의 견딜 수 없는 상처를 겪을 때 붙잡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오직 주님밖에 없고요. 기도해도 안 되면요. 금식하면서라도 매어 달릴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우리가 하루 중 한 끼를 정해서 매일 금식을 할 수도 있지만요. 우리가 하루, 이틀, 사흘 또는 계속해서 금식기도를 하면서 매어 달리다 보면요. 우리의 육신은 의지할 것이 아무 것도 없고요. 살아계신 주님밖에 없어요. 그리하여 더욱 더 주님만 믿고 의지하다 보면요. 하나님의 살아계신 놀라운 기적을 분명히 체험하게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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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요. 항상 우리의 기도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시지만요. 예수님께서도 “기도와 금식이 아니면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마 17:21)고 강조하셨듯이요. 기도해서 안 되면 금식하며 매어 달릴 때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으로 분명히 응답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금식장인 이사야 58:6, 8, 11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 같이 비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의 견딜 수 없는 상처 속에서도 다른 길이 없어요. 살아계신 하나님만 믿고요. 기도해도 안 되면 금식하며 매어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적적으로 응답하시고요. 치유하시고요. 출산까지 하게 해주실 줄 분명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통곡기도도 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10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한나가 이처럼 금식하며 기도하니깐요. 남편 엘가나가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래서 “한나여, 어찌하여 울며 어찌하여 먹지 아니하며
어찌하여 그대의 마음이 슬프냐? 내가 그대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8)고 고백해요. 엘가나도 아내를 바라보면서 얼마나 안돼 보이는지요. ‘어찌하여(המֶלָ֣, 라메)’라는 단어를 3번이나 사용하면서요. 열 아들보다 낫지(בוטֹ֣, 토브, 좋지) 아니하냐고 위로해준 거예요. 그런데도 한나는 금식하며 기도해도 브닌나에게 당한 상처의 아픔이 아물어들지를 않고요. 희망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마음이 너무도 괴로워서요. 금식기도에다가 통곡기도까지 하면서요.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주님 앞에 다 쏟아부었던 거예요. 우리는 흔히 “하나님이 귀머거리냐? 작은 목소리로 기도해도 다 들으시지!”하면서요. 속삭이며 기도하다가 금방 기도의 힘을 잃어버리고 기도를 그치고 말 때가 얼마나 많아요? 더욱이 간절히 우리의 마음을 쏟아 통곡하며 기도하지 못함으로 인해서요. 가슴의 응어리진 채 살아가고요. 하나님의 기적의 응답도 체험하지 못 할 때도 얼마나 많았어요? 여러분, 상담치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끌어안고 있으면요. 그것이 우리의 마음 속을 다 썩게 만들고요. 그것이 뼈마디를 뒤틀리게 해서요. 갖가지 신경성 질환을 일으키고요. 이러한 마음의 상처의 스트레스가 결국에는 암 덩어리로 변하고 마는 거예요. 그러니 상처 받은 것만 해도 서러운데 갖가지 질병의 고통과 암에 걸려 죽어야 한다면 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눈물 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우리의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쏟아붓는 것이 치유의 첫걸음인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가슴 속에 응어리진 상처의 감정들을 사람 앞에 쏟아붓는 거예요. 그러니까 원수가 또 다른 원수를 낳고요. 자신의 일생에 원수를 못 갚으면 자식들에게 대신 갚아달라고 부탁하고 떠나가서요. 평생을 복수혈전(復讐血戰)을 하다가 끝내버리고 마는 거예요. 그러나 우리의 상처의 감정을 사람들 앞에 쏟아붓지 말고요. 주님 앞에 쏟아부어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 개운해진 빈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을 간구해서요. 그 사랑으로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를 용서해 주셨듯이 다 용서하는 거예요. 그리고 나면 어떠한 상처도 다 치유 받는 거예요. 이처럼 통곡기도는 우리의 상처의 감정들을 모두 다 주님 앞에 쏟아붓는 치유의 위력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지난 22년 동안 끊임없이 강조하였듯이 예레미야 33:3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사실 부르짖는 통곡기도는 신구약 성경에 하나님께서 계속해서 강조하시는 기적의 응답의 기도였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우리 치유하는 교회에 대해서 어디 가서나 자랑하는 것은 새벽에 통성기도가 시작된지 한 시간이 지나도 주의 종들과 많은 교인들이 성전에 남아서요. “왕왕왕왕......”뜨겁게 부르짖는데요. 그 기도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의 가슴이 뜨거워지고요. 성령님의 기적의 불이 붙는 것이 뜨겁게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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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상처 속에서도 통곡기도를 하며 가슴에 응어리진 것을 주님 앞에 다 쏟아부으면서요. 믿음으로 간절히 부르짖으면요. 우리의 간절한 통곡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기적의 응답의 역사가 불일 듯 일어나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서원기도도 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1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이라고 3번씩이나 자신을 낮추면서요. 아들을 주시면 하나님께 ‘나실인’ 즉 ‘구별된 자’로 바치겠다는 서원기도까지 한 거였어요. 민수기 6장에 나와 있는 나실인의 규례대로 아들의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아니하고 자신의 몸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거였어요. 이처럼 한나가 아들을 얻기 위해 구한 것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함이었던 거예요. 이것이 바로 가장 능력 있는 서원기도인 거예요. 저는 우리의 수많은 기도 가운데 이 서원기도가 영적으로 마음을 다 비우고 기도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최고의 기도라고 믿어져요. 더구나 지난 주일 함께 나누었던 삼손의 어머니는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아들을 낳으면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드렸다면요. 한나의 기도가 더욱 위대해 보이는 이유는 그녀가 자발적으로 아들을 나실인으로 바치겠다고 서원기도를 한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한나의 만민이 기도하는 성막에서 금식기도와 통곡기도와 서원기도로 삼위일체로 기도 드렸더니요.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라는 뜻의 ‘사무엘’이라는 위대한 선지자가 나와서요. 그 어두웠던 사사시대를 마무리하고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정시대의 문을 열게 하세요. 흔히들 우리 주위에 기복신앙이나 번영신학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을 구하면 무조건 기복신앙이나 번영신학이니 하면서 ‘저질 신앙(?)’으로 취급을 해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성경을 몰라도 너무도 모르는 사람들이에요. 우리 인간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복이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성경의 모든 신앙의 위인들은 다 하나님의 복을 구했던 거예요. 또한 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믿음의 사람들의 서원기도에 응답해서 복을 부어주셔서요. 하나님의 나라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복되게 이어졌던 거예요. 그렇다면 기복신앙과 복음신앙, 번영신학과 복음신학의 차이가 뭐냐는 거예요? 기복신앙과 번영신학은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만을 위해서 복을 구하는 것이고요. 복음신앙과 복음신학은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서 복을 구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0:31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령하지 않아요? 그러면 우리가 그토록 많이 외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이 무엇이에요? 그것은 계속해서 고린도전서 10:32-33에 말씀하시는데요.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교회에 더 이상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요.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서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과 온 천하보다 귀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응답하시면 이렇게 갚아드리겠다는 서원기도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서원기도를 해서 응답을 받은 것은 꼭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갚아드려야 하는 거예요. 우리 주위의 많은 교인들을 보면 자신이 어려울 때는 서원기도를 부탁해서요. 우리가 합심해서 기도를 해서 기적의 응답의 축복을 받고 나서요. 입을 딱 씻어버리는 교인들을 많이 보게 돼요.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거기까지가 하나님의 축복의 한계인 거예요. 하나님께서 한 번 속지도 않으시지만요. 두 번 속으시겠어요? 그들의 여생에 더 이상의 기적의 응답의 역사는 없는 거예요. 그리하여 그들의 여생이나 자녀들의 앞날에 더 이상의 하나님의 축복을 다 막아버리는 거예요. 그러나 한나는 그렇게 어렵게 눈물로 금식하고 통곡하고  서원기도를 해서 얻은 그 귀한 아들이지만요. 하나님께 약속한대로 미련 없이 하나님께 바쳤더니요. 하나님께서 한나에게 사무엘 외에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놀라우신 기적의 축복을 누리게 하신 거예요(삼상 2:21).
예화) 어렵게 자녀를 출산한 젊은 집사님 부부 이야기


그러므로 우리가 어떠한 견딜 수 없는 상처 속에서도 주님과 고통 당하는 이웃을 위해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하며 서원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믿음의 서원기도에 기적의 응답을 허락해 주실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화) ‘재미작가 김은국(Richard E. Kim) 성도님의 작품「순교자(The Martyred)」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요. 때로는 억울하고 원통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우리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요. 심지어 교회 안에서까지도 이런 일을 당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더구나 지난 1년 7개월 동안 20여 명의 교인들이 교회 밖에서 코로나19에 걸려서 교회에 나왔지만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방역을 철저히 하니까 단 한 명의 감염 환자도 교회에서는 나오지 않았는데요. 사탄은 교묘하게 신앙이 없는 정부를 통해서 ‘온라인 예배’라는 것을 만들어서요. 교회들에게 이 온라인 예배를 강요하면서요. 성전예배 드리는 것조차 어떻게 해서든지 가로막을려고 교회마다 가룟 유다들이 있어서 밀고까지 하는 말세 마지막 때가 되고 말았어요. 그리하여 복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가로막고 교인들의 신앙을 다 흩어 놓으며 교인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복을 다 막고 있어요. 더욱이 정부가 앞장서서 마스크를 벗으라고 해서 이렇게 변이바이러스가 퍼지게 해놓고요. 민주노총은 8,000명이 모이고요.공연장은 5,000명까지 허용하고요. 수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해수욕장의 문들은 다 열어 놓으면서요. 교회만 만만하게 보고 2,500석 모이는 성전에 20명만 모여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는 거예요.
예화) 코로나19특징을 정리한 카카오톡 메시지 내용


이처럼 우리도 가슴 아프고 눈물 나고 통탄할 말세 마지막 때가 다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데도 아무미 인간의 죄악 된 욕망에 의해 생겨난 코로나19의 알파, 베타, 감마, 델타 바이러스가 퍼져가는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 우리 아버지만은 우리의 중심을 다 아시니깐요. 우리는 견딜 수 없는 상처의 고통 속에서도 지난 날 초대교회 신앙의 선조들이 카타콤(동굴 묘지) 속에서 숨어서 예배를 드렸듯이요. 우리도 하나님의 성전의 곳곳에서 금식기도를 하고요. 통곡기도를 하고요. 서원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의 응답의 때를 기다리게 될 때에 언젠가는 우리의 억울하고 원통했던 진심도 다 밝혀지고요. 코로나19의 위기도 다 극복하게 되고요. 기적의 응답의 승리의 그 날이 꼭 다가오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