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모범(42)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사무엘상 23:1-14)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에요.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만 살아가면 아무리 코로나19의 피폐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 부족함 없는 축복을 누리고 행복의 감격이 넘치게 되는 거예요. 오늘 본문 가운데 다윗은 사울 왕의 추격을 피해서 아둘람 굴에 있었는데요.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블레셋 땅과 가깝지만 헤브론 서북쪽 13km 지점인 유다의 영토인 그일라를 침략하여 타작마당을 탈취하는 거예요. 그래서 다윗에게 도움을 요청하니까 사울 왕을 피해 다니는 다윗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숨어 지내야 하는데요. 드러내놓고 블레셋과 싸워야하는 난감한 상황 속에 빠지게 되었어요.그런데 이때 다윗이 어떻게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가를 보면서요. 우리도 어떻게 주님의 뜻을 이루며 진정으로 주님 안에서 은혜롭게 살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다함께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함
   먼저 본문 2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성읍에서 추수를 하면 곡식을 타작마당에 그대로 쌓아두고 파수꾼을 두어 지키게 하다가요. 가을 우기가 되면 곳간에 드려놓았던 거예요. 그런데 블레셋 사람들이 그일라의 타작마당을 공격하여 곡식을 탈취한 거예요. 이에 사울에게 보고를 하지 않고 다윗에게 요청한 것은 사울이 백성들을 돌보지 않아서요. 그일라 북쪽 5km 지점의 아둘람 굴에 있는 다윗에게 요청한 거예요. 그런데 그일라 거민의 하소연을 들은 다윗으로서는 동족을 도와주어야 한다는 데는 이의가 없었지만요. 자신이 나서서 싸우게 되면 금방 소문이 나고요 사울 왕의 군대가 죽이러 달려들 것이요. 더욱이 블레셋의 돌격대는 강력한 부대였기 때문에 다윗의 부하들에게도 큰 공포를 느끼게 했어요. 그래서 다윗으로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심각한 딜레마(dilemma)에 빠지고 만 거예요. 그러나 다윗은 가장 먼저 여호와께 엎드려 간구하게 돼요.


그래서 다윗이 “제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하고 여쭤보니깐요.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고 응답하신 거예요. 그러자 다윗을 따르던 사람들이 다윗에게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하고 물어요. 그러자 다윗은 여호와께 다시 여쭈어봤는데요. 여호와께서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고 응답하신 거예요. 결국 다윗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주님의 뜻을 따라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서요.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이 잃었던 곡식을 회수하고요. 가축까지 전리품으로 끌어와서요. 그일라 주민들을 구원한 거예요.


 우리도 주님의 뜻을 이뤄갈려면 가장 먼저 주님의 뜻을 간구해야해요. 그것이 우리가 손해를 보든지 피해를 입든지 생명의 위협을 느껴도 주님의 뜻을 구해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 모범을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기도 가운데 마태복음 6:10에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고 분명히 주님의 뜻을 그토록 강조하셨고요. 예수님께서 그의 생애의 마지막에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변할 정도로 기도하시는 가운데 누가복음 22:42에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고 간구하시지 않았어요? 예수님께서는 육신적으로는 너무도 고통스러워서 피하고 싶으셨지만요.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간구해서 그 고통스러운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지만요. 그 결과가 어떻게 되었어요? 빌립보서 2:9-11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고 분명히 증거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따랐던 것이 영원한 축복이 된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떠해요?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 보다도 내 뜻을 구하며 살아가요.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기도를 해도 응답이 없다고 불만을 품고. 불평하고 불신에 빠지고 말아요 다 주님의 뜻보다도 자기 육신의 뜻을 구해왔던 거예요.
 예화) 버스탄 신부님 이야기 예화) 선교회찬양제 이야기


 이처럼 결과론적으로 나타나는 주님의 뜻은 우리의 기대나 바램과는 달리 더욱 깊고 오묘하고 놀라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뜻만 구하며 나아가야 해요. 그리함으로 우리가 코로나19의 아무리 어려운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구할 때 기필코 우리에게 더욱 놀라운 은혜가 되고 축복 되고 행복이 될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주님의 뜻을 분별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본문의 말씀을 앞선 사건과 연결이 되지 않아요. 그러나 다윗이 그일라를 칠 때에 어떻게 하나님께 물었는지를 설명하며 본문 이전인 사무엘상 22:20에서 에돔 사람인 사울 왕의 목자장 도엑의 고발로 인해서 제사장 85명이 사울 왕에 의해서 살해될 때에 아히멜렉 제사장의 아들 아비아달이 혼자 남아 성소를 지키다가 화를 면하고요. 기브아의 참사 소식을 듣고 에봇을 챙겨(삼상 21:9, 23:6) 다윗에게로 도망을 갈 때 에봇을 챙겼다는 것을 강조한 거예요. 여기에 영적인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대제사장의 예복인 에봇의 가슴에 판결흉패가 달려 있는데요.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었는데요. 우림과 둠밈은 ‘빛’과 ‘완전함’이란 뜻으로서요. 그 모양이나 위치는 알 수 없지만요. 분명한 것은 빛과 완전함이 되시는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도구였던 거예요(출 28:6-14, 30).
 예화) 워런 위어스비 목사님의 ‘당신은 사탄의 계략을 아는가’ 책이야기


 그러므로 우리가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로마서 12:2의 말씀대로 영적 준비를 하지 않으면 결코 안돼요.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는 세상의 유행 풍조를 결단코 본 받아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다시 말하면 세속적 가치관, 인생관, 세계관 등을 따라가서는 결코 안 되는 거예요.
 예화) 이성희 증경총회장님이 보내주신 유머카톡.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 가운데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해요. 그리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사탄에게 사로잡혀서 불평하고 험담하며 지옥과 같이 살지 않게 되고요.. 오직 성령님으로 충만한 가운데 사랑과 감사의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되는 거예요. 그리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첫째,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나 둘째, 기도하는 가운데서나 셋째, 주위의 영적인 사람을 통해서나 넷째, 우리의 환경을 통해서나 다섯째, 우리 주위의 사건을 통해서 보여지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게 되어서요.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면서요. 자손 대대로 천국의 축복과 행복의 감격 속에 살아가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의 뜻을 따라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13-14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다윗과 그의 사람 육백 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나서 갈 수 있는 곳으로 갔더니 다윗이 그일라에서 피한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말하매 사울이 가기를 그치니라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그런데 문제는 다윗이 그일라 성에 있다는 것이 사울 왕에게 전해지고 말았어요. 사울 왕이 20만 명의 군사를 모아 그일라로 내려가서 전쟁을 할려고 해요(삼상 11:7, 15:4). 그일라 성을 포위하고 다윗을 죽일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사울 왕의 도성 기브아에서 다윗이 거하는 그일라까지는 약 35km 거리였어요. 그러자 사울 왕이 군대를 소집하고 그일라까지 오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으므로 다윗은 사울 왕의 계략을 알고 또 다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아비아달 제사장에게 에봇을 가져오라고 한 거예요. 다윗은 블레셋을 공격할 때뿐만 아니라(:2, 4) 사울 왕으로부터 도피할 때도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   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길 원했던 거예요. 그랬더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사울 왕이 내려오리라......그일라 사람들이 너와 네 사람들을 사울 왕에게 붙이리라”(:10-11)고 응답하세요.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지난 주일 다윗 일행이 아둘람 굴에 머물 때 다윗과 함께 한 자가 400명 가량이라고 했는데요(삼상 22:2). 오늘 본문에 다윗과 그의 사람 600명 가량이 일어나 그일라를 떠났다고 기록해요. 그 사이에 다윗을 따르는 무리가 200여 명이 늘어난 거예요. 다윗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나아갈 때 선한 뜻을 가진 사람들이 더해지는 놀라운 축복을 누릴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요. 사울 왕은 다윗 일행이 그일라를 떠났다는 그 소식을 듣고 그일라로 가기를 포기해요. 이처럼 그일라로 떠난 다윗은 예루살렘 남방의 유다광야에 있었고 그일라 동남쪽 약 20km 지점의 십 황무지(수 15:55)에도 머물면서 유랑생활을 하게 돼요. 그러나 사울 왕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하는 다윗을 죽일려고 혈안이 되어 추격을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해요.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셨던 거예요.
 예화) 김창옥 교수의 ‘나는 당신을 봅니다’ 책 예화
 예화) 춘천 동부교회 김한호 목사님의 디아코니아(봉사) 목회 이야기
 예화) 아델라이데 애디슨 폴라드 이야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인생의 고통 가운데 방황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러나 살아있는 동안 주님의 뜻을 구하고요. 분별하고 주의 뜻 따라 살아갈 때 이 땅에 사는 동안 천국을 누리며 주님의 뜻을 이루다가 우리도 영원한 천국에 이르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