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모범(44)

마지막 때의 신앙(사무엘상 28:3-7)


      
  우리는 오늘 종교개혁(The Reformation) 제504주년 기념주일을 맞이하게 되었어요. 사실 개인적으로 ‘종교개혁’이라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종교라는 말에는 세상 종교가 다 들어가 있기 때문이에요. 기독교는 사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듯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인거예요(요 14:6). 그래서 저는 ‘신앙개혁’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신앙개혁은 1517년 독일의 신앙개혁자 마틴 루터(Martin Luther)가 독일 비텐베르크 교회의 문 앞에 캐톨릭 교황의 면죄부 남발에 항의하여 95개조의 반박문을 교회의 문 앞에 써붙인 데서 시작되었어요. 그리하여 신앙개혁자들은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Semper Reformanda)”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개혁운동을 일으켰어요. 그런데 오늘의 말세 교회들은 어떠합니까? 우리가 항상 개혁이 안 되니까 세상도 저렇게 개혁이 안 되는 거예요. 남의 탓을 할 것 아무 것도 없어요. 나 자신부터 개혁신앙으로 일어서야 하는 거예요. 점점 개혁신앙은 사라지고 현실에 안주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오늘의 우리의 신앙의 모습인 거예요. 그러나 우리가 위기를 맞이할수록 신앙의 본질로 돌아가라는 개혁신앙을 되살려야 해요. 그렇다면 우리가 또 다시 종교개혁주일을 맞이하면서 사울 왕이 결정적인 실패를 보면서 우리가 말세 마지막 때 어떠한 개혁신앙으로 살아야 할 것인가 이 시간도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길 바랍니다.


1. 현실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함
  먼저 본문 5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블레셋 군대는 이스라엘과의 전쟁을 하기 위해서 대규모 군대를 모집하였어요. 그리하여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골리앗 장수와 맞서 싸웠던 엘라전쟁 이후의 최대 규모의 전쟁을 일으켰어요. 그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한 이유는 엘라전쟁 때 골리앗 장수를 죽인 다윗이 이제는 저들이 편에 서있다는 것과 사울의 군사력이 급속히 약화되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그리하여 블레셋의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이번 전쟁에 블레셋 군에 가담하여 싸워야 한다고 선언한 거예요. 그동안 아기스 왕이 사울 왕으로부터 피난 생활을 하는 다윗에게 호의를 베풀어 준 것은 바로 이 때를 위한 것이었어요. 더욱이 아기스 왕은 다윗에게 영원히 내 머리를 지키는 경호대장으로 삼겠다고 재단을 할 정도였어요. 그런데 이스라엘은 사무엘 선지자도 죽었고요. 영적인 지도자를 잃은 상태에서요. 블레셋 대군이 진을 친 수넴에서 약 15km 떨어진 길보아라는 곳에 진을 쳤는데요. 얼마나 두렵고 떨렸겠어요? 사울 왕까지도 블레셋 군대를 보고요.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 거예요.
예화) 대전시청에 방역수칙관련 항의하는 박목사님
예화) 기독교계 대표들의 회개하자는 고백


 그렇다면 우리가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에요? 우리는 그 근거를 여호수아 1장에서 찾아볼 수가 있어요. 먼저 여호수아 1:6에 보면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세요 이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떠한 현실 속에서도 강하고 담대해야 해요. 계속해서 여호수아 1:7에도 보면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형통할 것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해요. 마지막으로 여호수아 1:9에 보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에 강하고 담대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도 우리는 기도할 때 흔히들 “하나님 아버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는데요. 성경적으로 볼 때 엄밀하게 말하면 이것은 불신앙의 기도인 거예요. 신약성경에서도 주님께서는 마태복음 28:20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시고요. 그리고 히브리서 13:5에 계속해서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   하리라......”고 분명히 약속하시지 않아요? 그런데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기도하면요. 주님께서 뭐라고 하시겠어요? “내가 그토록 성경에 다 약속해 놓았는데도 너처럼 나를 못 믿는 사람 처음 봤다!”그러실 것 아니에요? “하나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하는 기도도 에베소서 4:3에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강조하셨듯이요. “하나 됨을 힘써 지키게 하여 주시옵소서!”해야 성경적 기도인 거예요.
예화) 종교개혁자 얀후스의 순교


  그러므로 우리가 코로나19의 어떠한 어려운 현실 속에서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이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요. 영원히 함께 하실 것을 분명히 약속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러므로 우리가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신앙으로 나아갈 때 앞으로의 인생의  어떠한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줄 확실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함
  계속해서 본문 6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위기를 맞은 사울 왕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아서요. 그의 생애의 마지막 전쟁이 될 길보아전쟁을 대비했는데요. 두려워 떨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게 돼요. 그러나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영인 성령님은 권능의 상징이었기 때문에요. 신약성경의 성령님의 임재의 상징과는 달리요. 들어왔다 나갔다 하셨어요. 그래서 범죄 한 사울 왕을 떠나셔서요(삼상 15:26, 16:14). 그에게 응답하지 않으신 거예요. 그래서 그의 꿈에도 안 나타나시고요. 대제사장의 옷 에봇에 달린 우림과 둠밈(빛과 완전함)으로도 계시하시지 않으시고요. 하나님의 종인 선지자로도 응답이 없으셨던 거예요. 우리도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을 따라 살아야지요. 그때 가서 갑작스럽게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서 되겠어요?
 예화)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루터, 존갤빈과 위그노 사상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순탄하고 형통할 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지 않아요. 그러다가 꼭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치면 그때 주님 앞에 나아와 눈물, 콧물 쏟으며 기도할 때가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코로나19로 인해 이 부흥과 선교의 불이 결단코 여기서 꺼져서는 안 되는 거예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이 신앙이 우리의 자손들을 통해서 이어져야 하는 거예요.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두 기둥을 붙잡고 살아계신 하나님께 메어 달려 부르짖을 때 시편 107:6에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13절에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9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8절에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시고”라고 분명히 약속하시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가 적어도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의 올무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에겐 다른 길이 없어요. 말세 마지막 때 우리가 날마다 말씀과 기도로 깨어 간구하고요. 성령충만한 가운데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개혁신앙으로 나아갈 때 어떠한 사탄의 시험과 계략도 능히 이겨낼 줄 확실히 믿습니다.


3. 하나님만 믿고 의지해야 함
  마지막으로 본문 7절 말씀을 다함께 읽겠습니다. “사울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나를 위하여 신접한 여인을 찾으라 내가 그리로 가서 그에게 물으리라 하니 그의 신하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엔돌에 신접한 여인이 있나이다” 이렇게 하나님의 응답이 없으니깐요. 사울 왕은 신접한 여인을 찾게 된 거예요. 정말 아이러니(irony)인 거예요. 불과 얼마 전 사울 왕이 죽은 후에 장사를 치루고요. 신접한 자와 박수를 이스라엘 땅에서 다 쫓아냈다고 본문 3절에 기록되어 있는데요. 여기 ‘신접한 자’를 히브리어로 ‘תובאֹ(오보트)’라고 해서 지하에서 지상으로 죽은 자의 혼령을 불러올리는 자로서 영매를 하는 자(medium)를 말하는데요.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의 무속인과 같았고요. 그 다음에 나오는 ‘박수’는 히브리어로 ‘םינִעֹדּיּ(잇데요님)’이라고 해서요. 마술을 행하는 자(spiritist)였어요. 우리나라의 마술사는 눈속임을 통해 신비로운 일을 행하는 것이라면 이스라엘의 박수는 신비로운 환상을 통해 미래를 알려고 하는 심령술사를 말하는 거였어요. 이러한 행위들에 대해서 신명기 18:10-11에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울 왕은 끝까지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지 않고요. 왕복을 벗고요. 평민 차림으로 변장을 해서요.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요. 세상을 떠난 사무엘 선지자의 혼을 불러 달라고 해요. 결국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최악의 영적 상태에 이른 사울 왕을 더 이상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시지 않고요. 그가 세 아들들과 함께 블레셋 군대에 패배를 당하고 죽을 것을 경고하시게 돼요(삼상 31:6). 그런데 말세 마지막 때 우리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불확실성의 세상 가운데 살다보니깐요. TV나 신문 등 각종 언론매체에 이르기까지 운세에 대해 유행이 널리 퍼져버렸어요. 이렇게 말세 마지막 때 사탄이 우는 사자 같이 우리를 삼키려 하고요. 귀신들이 역사하고 있는데요.
예화) 무속인들의 영향받는 대선후보들


 이처럼 온 세상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의 편 가르기로 쫙 갈라져 있는데요. 세상을 치유해야 할 교회도 목사, 장로들까지도 영적인 분별력을 갖지 못하고요. 보수니, 진보니 이념에 휘둘려서요. 영적인 선택을 바로 하지 못하게 될 때는 우리는 과거의 불행한 전철을 또 다시 밟고 말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이라도 세상 사람들과 달리 하나님을 철저히 믿고 의지하는 영적인 대통령을 선택해야 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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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말세 마지막 때 이 개혁신앙의 십자가를 함께 나눠지고요. 합심합력 하면서요. 이 거룩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함께 나아가길 원합니다. 그리할 때 지금은 주님 안에서의 우리의 작은 꿈이 비록 희미해 보이고요. 앞이 캄캄하게 보일지 모르지만요. 언젠가는 우리의 개혁신앙의 결단이 옳았고요. 그것이 하나님께서 바라셨고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이루신 말세 마지막 때의 개혁신앙의 열매였음을 감사하고 감격할 날이 꼭 다가오게 될 줄 확실히 믿습니다.